야생화 보러 튀어!…풍도 백패킹
야생화 보러 튀어!…풍도 백패킹
  • 류정민 기자 / 사진 양계탁 기자
  • 승인 2016.04.08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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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R OUTBOUND ①CAMPING

야생화의 보물섬 풍도. 하루에 배가 한 대밖에 없는 풍도는 들어가면 다음날에 나와야 한다. 어쩔 수 없이 하룻밤 야영은 필수. 썸 타는 남녀들에게도 참 좋은 곳이다. 특히나 봄에는 야생화를 보러 오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은 탓에 배표를 구하기도 힘들다. 풍도에서 조만간 백패킹을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봄이 떠날 새라 부랴부랴 풍도로 향했다.

야생화의 섬, 풍도
풍도에 가기 위해 대부도 방아머리 항에서 일행을 만났다. 작년 겨울, 월간 <CAMPING> 취재를 위해 서대산 백패킹을 함께 한 박경원 씨. 일 년 만에 함께 한 경원 씨는 작년보다 더 많은 곳으로 캠핑을 하러 다니는 ‘레알’ 아웃도어인이 되어 있었고, 웬만한 서해 섬은 다 가봤을 정도로 섬 캠핑도 자주 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한 명의 뉴 페이스. 동물과 식물을 사랑하는 양계탁 사진 기자. 꽃에 관한 이런 저런 이야기보따리를 어찌나 재미있게 풀어내던지 마치 전문 해설사를 섭외한 느낌이었다. 섬을 사랑하고, 꽃을 사랑하는 일행에게도 풍도는 처음. 흔하게 볼 수 없는 야생화를 보러 갈 생각에 출발 전부터 설렜다.

▲ 방파제 벽에 꾸며져 있던 풍도만의 이야기.

▲ 부리나케 도망가는 마을의 백구들.

단풍이 아름다워 이름 붙여진 풍도楓島는 섬 주변에 수산자원이 풍부하다고 해서 풍도豊島로 이름이 바뀌었다. 서산 앞바다에 있는 풍도는 행정 구역상 안산 단원구에 속하지만 당진이 더 가깝다. 인천과 풍도를 오가는 배는 하루에 단 한 대뿐이다. 인천항에서 대부도, 육도를 거쳐 풍도를 향해 떠나는 서해누리 호는 정원 97명, 자동차 6대 정도를 실을 수 있는 작은 배다. 요즘엔 야생화를 보러 오는 사람들이 많아 전세를 내고 단체로 관광을 하러 많이 찾기도 한다. 인천에서 2시간 반, 대부도에서 1시간 반 배를 타면 풍도에 닿는다.

▲ 분교 담벼락에 그려진 각양각색의 물고기들.

▲ 채석장을 지나 북배로 올라가는 길.

▲ 붉은대극. 화려한 꽃은 없지만 수수한 아름다움을 지녔다.
붉은 바위에서의 하룻밤

선착장을 지나 걷다 보면 방파제 벽에 그려진 물고기와 야생화가 눈에 띈다. 하나 뿐인 풍도 분교 담벼락에도 각양각색의 물고기들이 살고 있다. 인위적으로 바꾸지 않은 돌 모양 그대로 그려져 있는 물고기를 바라보고 있자니 웃음이 절로 난다.

마을 어귀를 지나 북배로 가는 길, 방파제에 풍도에 대한 이야기가 멋진 글씨와 그림으로 담겨 있다. ‘풍도를 아시나요?’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500년 된 은행나무가 있고, 진달래 색의 수석이 있는, 야생화로 가득 찬 풍도를 정겹게 그려내고 있다. 풍도 주민들의 애환도 담겨있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방파제 벽에 쓰인 글과 그림을 구경하며 30분 정도 걷다보면 흙과 모래가 잔뜩 쌓여있는 채석장이 나타난다. 여기저기 돌을 파헤쳐 필요한 녀석들을 쓰고는 뒤처리를 해놓지 않고 버려둔 휑한 공간들. 마음이 아파 눈을 감고 싶을 정도다.

채석장을 지나면 오솔길이 나오는데 야생화가 잔뜩 피어있는 후망산으로 가는 길과 북배로 가는 길이 나뉜다. 안내 표지판이 따로 있지 않아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방향으로 향했더니 웬걸, 북배가 아닌 군부대가 나왔다. 분명 지도에서 본 북배는 코앞이었는데. 계획에도 없던 후망산 등산을 하고 나니 온 몸에 기운이 쭉 빠졌다. 갈림길에서 오른쪽 길로 갔어야 했는데 야생화 구경을 위해 산을 오르는 사람들을 따라 온 것이었다. 어디로 갈까 망설이다가 온 길을 되돌려 걷기로 했다. 산에서 길을 잃었을 때는 다른 길을 찾기보다 온 길 그대로 내려오는 게 가장 안전하고 빠르다. 해가 떨어지면 어쩌나 마음이 조급해졌다.

▲ 풍도에 수두룩하게 피어 있던 노란복수초.

▲ 마을을 지나 해변 길을 따라 트레킹을 하면 채석장과 북배를 만날 수 있다.

채석장에서 채 5분도 걸리지 않는, 붉은 바위라는 뜻을 가진 ‘북배’는 풍도에서 야영하기 가장 좋은 곳이다. ‘배’는 긴 바위라는 뜻인데, 푸른 바다와 마주하고 있는 붉은 바위가 꽤나 이국적이다. 곳곳에 불을 피운 흔적이 보였다. 북배에서 캠핑을 하면서 불질을 하거나 쓰레기를 잔뜩 버리고 가는 사람들이 많아 풍도 주민들은 백패커들을 반기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조만간 백패킹을 금지한다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퍼지고 있다.

큰 배낭을 메고 섬을 찾는 사람들에게 주민들이 첫마디로 건네는 말이 “쓰레기는 마을 어귀에 있는 쓰레기장까지 꼭 갖다 놓으라”는 말이라니. 듣고 있자니 유치원생이 된 느낌이었다. 백패킹을 다니다보면 남이 버린 쓰레기까지 주워서 버리는 백패커들이 있는 반면, 자신이 머문 자리를 다음 사람은 사용하기 힘들 정도로 더럽히는 사람이 있다. 한두 마리의 미꾸라지가 물을 흐리는 법이다.

▲ 오늘의 야영지 북배. 붉은 바위들이 한데 모여 있어 이국적이다.

▲ 주말엔 발 디딜 틈도 없다는 북배에서 하룻밤을 보내며.
섬 캠핑에는 섬밥이 최고

캠핑하면서 직접 만들어 먹는 밥이 꿀맛이지만 한 끼 정도는 민박집이나 마을 주민들이 만들어 주는 집밥을 먹는 것도 좋은 경험이다. 된장국을 포함한 반찬 여기저기에 굴이 잔뜩 들어 있었던, 어릴 때 시골 할머니가 손주들을 위해 정성들여 차려준 밥이 떠올랐던 맛깔 나는 밥을 든든히 챙겨 먹고 제철 나물인 사생이 나물과 달래를 한 봉다리씩 사들고 풍도를 나왔다. 할머니들이 마케팅을 얼마나 잘하시던지 안 살수가 없을 정도였다.

캠핑을 하다보면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게 되는 건 다반사다. 그 지역에서 나는 유명한 특산물도 구입 하고, 한 두 끼 정도는 사 먹어도 좋겠다. 머물었던 지역에도 조금이나마 도움을 줄 수 있다. 이런 게 바로 상부상조가 아닐까. 물론 마을 민박집 음식 맛은 복불복이다. 전날 먹었던 곳의 음식들은 도저히 맛있다고 할 수 없는 독특함이 담겨 있어 일행 모두 손사래를 쳤으니까.

야생화 보물찾기
풍도에 왔는데 캠핑만 할 순 없지, 새벽같이 일어나 사이트 정리를 하고 꽃구경에 나섰다. 야생화의 보물섬답게 풍도엔 노란 복수초가 지천에 펼쳐져 있다. 사진기자도 여기저기 다니며 복수초를 보긴 했지만 이렇게 산 전체에 군락을 이루고 있는 건 처음 본단다. 카메라를 들고 아이같이 들떠서 쉼 없이 셔터를 눌러대기 시작했다.

▲ 주민들의 쉼터에도 잠시 앉아 보고.

▲ 바위 위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며 모닝커피 한 잔.

▲ 폐허가 된 옛 집을 구경하는 것도 또 다른 재미.

풍도 곳곳에 피어 있는 야생화를 찾아 구경하는 일은 섬에 숨겨진 보물을 찾아내는 기분이었다. 꽃이 잔뜩 핀 후망산에는 다들 하나 같이 대포 카메라를 들고 엎드려 있었다. 누구보다 멋진 풍도 야생화의 아름다움을 담기 위해서. 사진을 찍고 난 후에는 꽃 주변을 덮고 있던 낙엽을 다시 원래 상태로 만들어 줘야 한다. 꽃들에게는 이불과 같은 존재다. 더군다나 곳곳에 아직 피지 않은 야생화 새싹이 돋아나고 있으니 걷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

샛노란 복수초는 눈을 뚫고 나와서 피는 꽃인데 벌을 유혹하기 위해 꽃잎을 반들반들하게 만들고 꽃잎을 꽃봉오리처럼 모아서 벌에게 따스함을 안겨준다. 복수초가 품고 있는 달콤한 꿀과 따스함이 있으니 꿀벌들이 몰려드는 건 당연한 일. 꽃이 지고 나면 노루귀 모양의 잎이 나온다는 분홍색 꽃 노루귀와 풍도에서만 볼 수 있는 풍도 바람꽃과 풍도 대극, 꿩의 바람꽃까지. 처음 들어보는 이름만큼이나 생김새도 낯선 꽃들이 곳곳에 피어 있었다. 하나하나 살펴볼수록 생소함이 신비로움으로 바뀐다. 화려하진 않지만 수수한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는 야생화. 주변엔 봉우리가 몽글몽글 맺힌 야생화 새싹들도 볼 수 있었다.

▲ 이괄의 난을 피해 풍도로 피난 왔던 인조가 심었다는 500년 넘은 은행나무 두 그루.

▲ 붉고 긴 바위들의 집합소. 북배의 모습.

▲ 돌을 파헤치고 그냥 내버려 둔 채석장의 모습.

꽃의 삶이란

야생화는 가장 낮은 땅에서 피어나는 꽃이다. 키가 큰 나무들이 잎을 뻗기 전, 꽃을 피우고 재빨리 사라져버린다. 다른 나무들의 잎이 무성해지면 태양을 다 가려버리기 때문에, 그 전에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다. 꽃을 피우는 데 에너지의 80% 이상을 사용하는 야생화는 수술과 암술이 수분을 하면 자연스레 꽃이 진다. 만개해 있는 기간은 꽃마다 다른데 대부분 일주일 내외다.

길가에 피어 있는 팬지는 외국에서 개량해서 만든 꽃으로 한 달 내내 피어 있는 종이다. 활짝 핀 모습 그대로 오랜 시간 유지하기 위해 태어난 꽃이니, 제 할 일을 하고 있는 셈이다.

▲ 수석으로도 유명한 풍도. 진달래색을 띄는 수석에 물을 묻히면 더 빨갛다 .

▲ 방파제 벽에 걸터앉아 풍도의 바다도 감상해 본다.

“한 달 동안 햇빛이나 받고 물이나 먹으며 탱자탱자 노는 꽃이지” “저도 팬지꽃 같은 인생을 살고 싶네요.” 사진기자의 이야기를 듣자 순간 팬지꽃이 부러웠다. “의미가 없는 삶인데?” “푸하하. 듣고 보니 그렇긴 하네요.” 신나게 꽃 이야기를 들려주던 사진기자가 퀴즈를 하나 냈다. “겨울이 끝나갈 무렵, 꽃과 나무는 봄이 온 걸 어떻게 알아차리고 꽃을 피울까?” 알 듯 하면서도 대답은 단번에 나오지 않았다. 꽃과 나무들도 봄의 온도를 느끼는 걸까? 답은 ‘해의 길이’ 해가 길어진 걸 보고 식물들은 봄이 온 걸 알아챈단다. 식물들이 참 신통방통하다.

야생화가 활짝 폈다 져도 풍도는 외롭지 않다. 3, 4월에는 야생화를 보러, 5월엔 낚시를 하러, 여름엔 나물을 캐러 육지 사람들이 꾸준히 섬을 찾는다. 취재팀은 3월 중순에 풍도를 방문 했는데, 우리가 다녀간 주의 주말이 절정이라고 한다. 돌아서는 발걸음이 쉬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내 생각을 고쳐먹는다. 야생화의 절정을 못 보면 어쩌랴, 꿈틀대고 피어나려 애쓰는 새싹도 풍도 야생화의 일부분인 것을. 일출보다 아름답다는 풍도의 일몰도 날이 흐려 보지 못했다. 아쉬움이 남아야 다음에 또 오고 싶다는 것을 풍도도 아는가보다.

▲ 해가 뜨면 잎을 활짝 여는 복수초.

▲ 후망산 여기저기에서 피어난 야생화 구경 중.

▲ 아구와 서대, 망둥어를 잡아 매달고 말리는 풍경도 흔하게 볼 수 있다.

▲ 꽃구경 끝내고 마을로 돌아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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