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k Column|라이프 이즈 올웨이즈 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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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승범 차장
  • 승인 2016.03.31 15: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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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참으로 변화무쌍하여 계절 인사를 먼저 올립니다. 따스했던 겨울이 지나고 입춘이 열흘이나 지난 지금 밖에는 굵은 눈발이 한창입니다. 어제 자전거 타고 행주대교를 건널 땐 차가운 강바람이 귀싸대기를 올려붙이는 통에 혼쭐이 빠졌습니다. 겨울 내내 눈 내리는 곳을 찾아 기상청과 포털 사이트 일기예보를 뒤지던 기자들은 결국 앙상한 겨울 풍경을 담아야 했습니다. 사이다 같은 설경은 올겨울을 기약하며 남쪽으로 남쪽으로 향했지만 주보에도 없던 눈 소식이 하루 전에 전해졌습니다. 날씨가 계절의 전형에서 자꾸만 벗어나 계절감을 책에 담아야 하는 기자들은 고민이 많습니다. 뭐 세상살이가 원래 그런 거죠. 들쑥날쑥한 날씨에도 여러분의 일상은 평안하신지요.

지난해 12월 초, 그러니까 1월 호를 만들기 위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때까지도 레니 크라비츠Lenny Kravitz를 몰랐습니다. 꽤 괜찮은 뮤지션이 있으니 소개하고 싶다고 했고 그러라고 했을 뿐입니다. 원고가 넘어왔고 ‘장르불문! 다 잘하는 섹시한 형아’라는 제목을 달고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형들에게 섹시함을 느끼지 못하는 취향입니다만 어지간한 장르는 다 잘하는 모양이네 하고 말았습니다. 마감이 끝난 후 기사를 썼던 기자가 ‘너도 들어보면 섹시하다고 느낄거야. 괜찮아, 자연스러운 거야’ 류의 미소를 띠며 음반을 건넸습니다. 2002년에 나온 레니 크라비츠의 베스트 음반. 역시나 몇몇 곡들이 귀에 착착 감겼고, 그의 최근작이 궁금해졌습니다. 1964년 생이니 쉰을 넘긴 뮤지션이 그 에너지와 감각을 유지하는 건 쉽지 않지만, 레니 형아니까. 2014년에 나온 스트럿STRUT 앨범의 네 번째 곡 ‘뉴욕시티NewYork City’. 소리 높여, 하지만 절규 같지는 않게 레니는 외칩니다. 라이프 이즈 올웨이즈 터프! ‘인 뉴욕시티’가 뒤따르지만 뉴욕에서 힘든 삶이 서울이라고, 서울 아닌 대한민국 어디라고 만만하겠습니까.

봄을 앞두면 마음이 늘 설렙니다. 곧 꽃을 볼 생각에요. 봄이나 꽃에 마음 두근거린 건 그리 오래 되지 않았습니다. 겨울 빠져나간 공간에 봄이 들어서고 봄기운이 물씬해지면 꽃은 으레 피는 거니까요. 그게 자연이니까요. 한두 번 피우는 것도 아니고 말이죠. 왜란이 일어난 임진년 봄에도, 프랑스혁명 직전 앙시엥레짐의 봄에도, 네로가 로마를 불사르던 그 해 봄에도 꽃은 피었을 테니까요. 그런데 아닙디다. 겨울 떠난 곳에 봄이 오는 게 아니라 저 바다 끝부터 기운을 덥혀 봄이 온몸으로 밀고 들어오면 겨울이 저만치 밀려나는 것이더라고요. 나무는 잎 떨구고 대사를 멈춰 겨울을 버티던 몸으로 막 녹기 시작한 물을 빨아들여 딱딱해진 껍데기 틈으로 꽃망울을 피워내더란 말입니다. 언제 알았느냐. 노오란 산수유꽃이 좁쌀처럼 터지던 산동마을에서, 아기 주먹처럼 커다란 동백꽃 툭툭 지던 지심도에서 너 참 대단하구나 하며 쳐다보는데 그 꽃들이 그러는 것 같았습니다. 원래 그래. 아하. 그래서 스스로 자에 그러할 연을 쓰는구나. 설명도 변명도 없구나. 덕분에 그렇고 그런 크로노스의 연속이었던 여행에 카이로스가 잠시 다녀갔지요. 꿈은 설명하는 게 아니라 보여주는 거라던 누군가의 말도 스쳐갔고요. 암튼, 그 뒤로 망울이든 봉오리든 활짝 핀 꽃이든 그리 예쁠 수가 없습니다.

다들 힘들다고 아우성입니다. 이 바닥, 아웃도어 바닥이든 잡지 바닥이든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브랜드는 제품이 팔리지 않아서, 소비자들은 아웃도어를 즐기고 싶은데 그럴 여유가 없어서, 잡지판은 어렵다고 광고도 안 하고 책도 안 사서. 사회가 상식적이라면, 정치와 경제가 바로 돌아가고 있다면, 한 달 동안 성실하게 일한 노동자가 아웃도어를 즐길 정도의 여유는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쉽게 바뀌지는 않겠지만 포기할 수도 없잖아요. 그래서 얼마 남지 않은 투표가 중요한 거고. 늘 희극보다 웃기고 비극보다 슬픈 사회 모습에 절망하지만 그렇다고 욕하면서 닮아갈 수도 없습니다. 우리라도 행복해야죠. 떠도는 연애의 지혜를 빌자면 ‘헤어진 연인에게 최고의 복수는 행복한 연애’이기 때문이고, 까뮈의 말을 빌자면 ‘정의롭지 못한 사회에서 부정의에 저항하는 유일한 방법은 스스로 정의로워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행복해져야 하는 세상입니다. 어떻게? 일단은 꽃을 오도카니 보는 것부터. 이왕이면 꽃이 핀 저기로 가서 말입니다. 조금 서두르세요. 요즘 봄은 짧아서 서정춘 시인의 말처럼, ‘꽃 그려 새 울려놓고 지리산 골짜기로 떠났다는’ 파르티잔처럼 언제 사라질지 모르니까요. 다시, 우리라도 행복하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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