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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폭 앞에 선 마음은 가시밭길
빙폭 앞에 선 마음은 가시밭길
  • 박성용 부장|사진 김해진 기자
  • 승인 2016.03.31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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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STYLE|CLASSIC 희망·약동·잿빛이 뒤엉킨 불안한 ‘봄’

“등반허가서를 보여주시고 서류에 기재된 인원이 맞는지 확인할 테니 한자리에 모여 주십시오.”
토막골 형제폭에 나타난 설악산 관리사무소 직원은 다소 위압적인 자세로 산꾼들을 향해 목청을 높였다. 형제폭에는 네다섯 팀이 빙벽등반을 즐기고 있었다. 빙벽 밑에서 등반을 기다리던 산꾼들은 술렁거렸다.

“할 일도 드럽게 없나보네. 여기까지 올라와서 머릿수나 헤아리고 자빠지게.”
“허가서를 보여주면 됐지 니가 뭔데 줄을 서라 마라 해!”

분위기는 금세 험악해졌다. 성질 급한 어떤 산꾼은 고함을 치면서 아이스바일을 손에 쥐고 달려들 기세였다. 그냥 놔두면 사태가 심상치 않겠다는 것을 알아챈 각 팀의 고참들은 사무소 관계자를 한쪽으로 데려가 달래고 설득해서 상황을 겨우 진정시켰다. 당시에는 허가서를 받으면 등반 인원까지 체크하는 경우가 드물었으며, 산꾼들은 갈수록 통제와 금지 정책을 일삼는 공단의 행태에 불만이 많았다.

나는 이 광경을 보면서 우울해졌다. ‘하지 말라’는 지시와 명령이 만연한 우리 사회 구조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아 몸은 설악의 눈밭에 왔지만 마음은 가시밭길이었다. 낙빙에 맞아 여기저기 긁힌 얼굴을 어루만지며 나는 천불동 계곡에 봄이 오기를 기다렸다.

▲ 아론 코플랜드 ‘애팔래치아의 봄’.
싱그러운 대지와 희망… 아론 코플랜드 ‘애팔래치아의 봄’
미국 개척민들이 농가와 땅을 개척한 후 축제를 즐기는 모습을 8곡에 담은 모던 댄스음악이다. 1944년 초연 때 마사 그레이엄, 머스 커닝엄 등 유명 무용가들이 무대를 장식했다. 개척시대의 한 신혼부부가 기쁨과 희망으로 황무지를 일구며 평화롭게 살기 바라는 청교도적인 메시지가 담겨 있다. 이중 셰이커 교도의 찬송가 주제를 변주한 7번째 곡이 아름답고 싱그러운 대지의 기운이 느껴진다. 코플랜드가 1959년 직접 지휘봉을 잡은 연주이다.


▲ 슈만 교향곡 제1번 ‘봄’.
약동과 불안의 공존… 슈만 교향곡 제1번 ‘봄’
스승이자 장인의 극렬한 반대를 이겨내고 클라라와 결혼한 이듬해인 1841년에 작곡되었다. 슈만은 기쁨과 설렘, 그리고 고통스러웠던 지난날들에 대한 심정을 1번 교향곡에 쏟아 붓고 ‘봄’이라는 표제를 직접 붙였다. 1악장 도입부에서 팡파르처럼 터지는 금관악기들의 연주는 약동하는 봄날을 닮았지만 어딘가 불안한 구석도 느껴진다. 슈만의 생애에서 행복했던 시기는 짧았다. 오토 클렘페러는 짧은 행복 속에 깃든 불행의 그림자를 잘 포착하고 있다.


▲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봄’.
어눌한 잿빛…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봄’
헝가리 출신의 바이올리니스트 요제프 시게티의 봄은 여느 연주처럼 감미롭거나 화사하지 않다. 다소 어눌하고 잿빛에 가까운 봄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 사회가 생각하는 봄은 아마 이럴 것이다. 화려한 장식 보다는 악보에 충실한 시게티의 연주처럼 진실을 향해 한 음 한 음 짚어가는 우직한 모습을 바라고 있다. ‘고난극복형’ 인물의 대명사 베토벤이 남긴 섬세하고 아름다운 이 선율 너머에는 우리가 응시해야 할 눈물과 한숨이 숨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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