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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하게 남은 ‘한 글자’…글자전쟁
유일하게 남은 ‘한 글자’…글자전쟁
  • 선정 및 발췌 오대진 기자|사진 김해진 기자
  • 승인 2016.03.24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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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STYLE|BOOK

“중국 자전에 있는 발음기호의 모순을 이제 이해하겠나? 그럼 백두산(白頭山)을 예로 들어볼까? 아까 백은 박맥이라 했지?”
“네, 그래서 백이라 발음된다고 하셨죠.”
“자전에 두(頭)는 ‘도후(徒侯)’로 표기되어 있어.”
“같은 원리로 ‘도’에서 ㄷ을 ‘후’에서 ㅜ를 취하여 ‘두’가 되는군요.”
“산(山)은 ‘사한(師閒)’으로 표기되어 있으니 ㅅ과 ㅏ와 ㄴ이 합쳐져 ‘산’이 되는 거야. 그럼 중국의 자전에서는 백두산을 어떻게 읽으라고 되어 있는 거지?”
“지금 얘기하신 그대로 ‘백두산’이군요. 그런데…….”
태민은 크나큰 충격에 빠졌다. 중국어로 백두산은 ‘백두산’으로 읽는 게 아니라 ‘바이토우샨’이라 읽는 것이었다.
“중국인들이 백두산을 ‘바이토우샨’이라 발음하지만 ‘백두산’이라고 발음해야 한다는 거 아니에요? 지금 교수님 말씀은.”
“내 얘기가 아니라 중국의 자전에 그렇게 발음기호가 되어있단 말이네.”
“아니, 어째서 한국말이 그대로 중국 자전의 발음기호가 되어 있는 거죠?‘
“어째서 그렇겠나?”

…(중략)…
“아직 여기에 대해 확고부동한 이론은 없어. 하지만 어떤 글자가 있으면 그 글자는 가장 정확하게 발음하는 사람들과 깊은 관계가 있을 수밖에. 나는 이 문제를 자네에게 숙제로 내주고 싶네. 자네는 수재이니 뭔가 성과가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자네는 한국인이야. 한국말의 수수께끼는 한국인이 푸는 게 맞아. 다음에 다시 한 번 나를 찾아온다면 나는 아주 기쁠 거야.”
태민은 아직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스티븐스 교수는 지금 한자가 자전의 발음기호대로 가장 정확하게 발음하는 사람들과 무관할 수는 없다고 말하는 게 아닌가.
<글자전쟁> 290~291쪽에서 발췌

글자전쟁 김진명 지음(2015. 8, 새움)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로 우리에게 이름을 알린 작가 김진명의 소설이다. 문화와 역사를 주제로 우리네 이야기를 그려내는 그에게는 많은 수식어가 붙는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그의 프로필 가장 윗줄에 자리하고 있다면, 그 아래로는 ‘극단적 민족주의자’ 혹은 ‘과도한 상상력의 작가’라는 낯선 수식어도 보인다. 이는 현실인 듯 현실 아닌, 실제와 닮아있는 주제와 소재를 채택해 작가의 성향으로 결론 짓는 데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탁월한 문장력과 흡입력이 그의 무기. 다만, 호불호가 있다. 소설 <글자전쟁> 또한 마찬가지. 유일하게 남은 ‘한 글자’를 둘러싸고 펼쳐지는 이야기는 봄날 야외 벤치에 걸터앉아 ‘킬링 타임’용으로 제격이다. 그러나 ‘뭐지?’라는 물음표가 떠오를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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