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 숲으로 튀어!…경주 삼릉가는길 트레킹 & 캠핑
소나무 숲으로 튀어!…경주 삼릉가는길 트레킹 & 캠핑
  • 류정민 기자|사진 김해진 기자
  • 승인 2016.03.22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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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R OUTBOUND ①CAMPING

성큼 다가온 봄이지만 아직은 꽃이 피기 전, 사시사철 늘 푸른 소나무 숲을 찾았다. 울진 금강송소나무 숲을 가려고 했으나 동계엔 입산이 불가해서 경주 남산 삼릉 소나무 숲으로 발길을 돌렸다. 사진작가 배병우의 안개 낀 소나무 사진으로 유명한 삼릉 소나무 숲은 꿩 대신 닭이라 치기엔 기대 이상이었다. 경주 곳곳에는 신라의 흔적이 가득했고 천 년의 시간이 고스라이 담겨 있었다. 산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남산 주변에 생긴 둘레길 ‘삼릉가는길’ 코스를 따라 한가로이 걷고 즐겼다.

경주 소나무 숲길 트레킹의 게스트는 정바울 씨와 이혜린 씨. 러닝 클럽 PRRC1936에서 만난 달리기 동지이자 트레일 러닝을 같이 하는 산 친구들이다. 특별 게스트로 사단법인 경주남산연구소에서 문화유적답사를 해주시는 유정숙 해설사까지 모셨다. 나긋나긋한 어투로 어찌나 친절하게 설명해주시던지 경주를 향한 애정 담긴 마음이 절로 느껴졌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쌈밥집에 가서 저녁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바울 오빤 2년 전 경주 벚꽃 마라톤에 참여하기 위해 왔었고, 혜린 언니도 4~5년 전 경주에 와봤단다. “경주 하면 수학여행 아닌가?” 했더니 요즘 학생들은 제주도 아니면 해외로 가지 경주로 안 온단다. 그래도 주말엔 줄서서 유적지를 봐야 될 정도로 답사하러 온 사람들이 많아 어딜 가든 북적 거린다고. 세계문화유적 가득한 도시 경주에 이제야 발을 붙이다니 이것 참 쑥스럽구먼. 사진으로만 보던 동궁과 월지, 첨성대의 야경을 내 눈으로 보게 되어 설레기도 했다.

▲ 삼릉 가는 길 초입 길. 천관사지 터를 바라보며 트레킹을 시작하다.

▲ 경주 에코밸리캠핑장. 사이트가 많아 구미에 맞게 고를 수 있다. 우리는 산 아래에 자리 잡고 캠핑을 즐겼다.

신라의 달밤

‘햇빛에 바래면 역사가 되고, 달빛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褪於日光則爲歷史 染於月色則爲神話)’ 이병주 선생의 대하소설 <산하> 서문에 나오는 말인데, 경주의 밤을 두고 생각해낸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고요한 아름다움을 품고 있었다. 훤한 달밤에 비추는 거리의 왕릉과 문화 유적이 신라 천년의 아름다움을 생생하게 뽐내고 있었다.

폐허가 된 곳에 기러기와 오리가 날아들면서 붙여진 이름 ‘안압지’ 혹은 ‘임해전지’로 불리던 ‘경주 동궁과 월지’는 유물이 발굴되면서 2011년 명칭이 바뀌었다. 동궁은 태자가 살던 신라 왕궁의 별궁이고, 월지는 동궁에 있는 연못이다. 총 다섯 채 중 세 채의 동궁만 복원된 동궁과 월지는 평일 저녁인데도 데이트하는 연인들과 가족들로 북적였다. 달이 뜨지 않은 캄캄한 밤에 보는 게 더 멋지다는데, 유난히 밝은 달빛에 대낮처럼 환했는데도 연실 감탄이 흘러나올 정도로 멋졌다.

▲ 안압지로 잘 알려진 동궁과 월지. 조명까지 더해져 화려함을 뽐낸다.

▲ 동궁과 월지의 복원 모습. 다섯 채의 동궁과 리아스식 해안의 모습을 하고 있는 월지.

▲ 트레킹 도중 보게 된 유적을 발굴의 현장.

첨성대는 별을 보는 곳인데 일 년을 상징하는 365개의 화강암을 쌓아 만들었다.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 관측대인데도 무료로 개방해놓고 있었다. 500원의 입장료를 받던 것이 무료로 바뀌었단다. 오릉이나 포석정도 마찬가지. 입장료가 1,000원 2,000원밖에 안한다. 혜린 언니가 참다 참다 한 마디를 뱉어낸다. “외국 가서 역사, 유적지 보려면 다 비싸게 표 끊어서 봐야 되는데 우리나라는 막 보여주네.” 맞는 말이다. 비싼 돈을 내야 비싼 값을 한다고. 비싸게 돈을 지불해야 관리도 철저해지고 사람들도 그만큼 소중하게 생각할 텐데. 한 쪽으로 기울고 있는 첨성대가 마음에 자꾸 걸렸다.

▲ 넓은 사이트와 식물원, 곤충체험관 등 가족 캠퍼들이 즐길만한 시설이 많은 경주 에코밸리오토캠핑장

신라의 시작과 끝 ‘삼릉가는길’
‘삼릉가는길’은 월정교부터 삼릉까지 남산 서쪽의 주요 명소를 따라 걷는 길로 김유신이 말의 목을 벤 일화로 유명한 천관사지, 신라 건국의 역사 왕족이 잠들어 있는 오릉, 박혁거세가 태어난 나정, 남산의 가장 큰 사찰 남간사지, 가장 큰 탑 창림사지 3층 석탑, 유흥이 가득했던 포석정, 연꽃이 가득한 생태공원 태진지, 천진한 웃음을 가진 배동석조여래삼존입상, 소나무 숲과 어우러진 삼릉과 경애왕릉 까지 총 8km의 코스로 이루어져 있다.

‘삼릉가는길’에는 신라의 시작과 끝이 다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혁거세가 태어난 ‘나정’과 신라의 종말을 상징하는 ‘포석정’이 길 위에 있기 때문. 지금은 복구되지 않은 유적지들이 많아 상상력을 자극시킨다. 깨진 기왓장이 흙길에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다. 10년 뒤가 궁금하고 100년 뒤가 궁금한 도시 경주. 나중에 내 아이들을 데리고 오면 지금의 기억을 되뇌며 이야기 하고 있겠지? 경주가 우리의 타임캡슐이라면 타임머신을 타고 미래로 가보고 싶다. 어떤 모습으로 마주하게 될까.

▲ 알영정에서 남산연구소 문화 답사 선생님의 설명을 주의 깊게 듣는 중.
▲ 캠핑장에서 펼쳐진 사진기자의 미드나잇 쇼.

창림사지 3층 석탑이 있는 곳에 올라오자 해설사 선생님이 아이 같이 좋아한다. “상쾌하지 않아요? 여기는 올 때마다 기분이 좋아요. 경주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너무 벗어나고 싶었어요. 여기저기 다른 곳에서 살다 다시 돌아오니 경주 만한 곳이 없어요. 건물도 낮아서 언덕 조금만 올라가도 온 시내가 다 보이고 곳곳에 볼거리도 많고.”

바람은 찼지만 봄은 어느새 곁에 다가와 있었다. 여기저기 매화꽃이 몽글몽글 피어 있었고 쑥도 냉이도 곳곳에서 자그맣게 봄을 알렸다.

▲ 박혁거세가 잠들어 있는 오릉의 아름다움과 능선의 향연에 넋을 잃고 바라보다.

▲ 몽글몽글 꽃이 피기 시작한 매화를 보며 경주의 봄을 만끽하다.

▲ 창림사지 3층 석탑을 향해 나아가는 길. 복원 사업 중이라 곳곳에 문화유적이 굴러다닌다.

▲ 남간동네에는 남간사의 흔적이 집집마다 남아 있다고 한다. 까치발 들어 들여다보는 중.

▲ 박혁거세왕의 왕비 알영부인이 태어난 곳, 알영정을 거닐다.

환락의 메카 포석정과 삼릉 소나무 숲

코스 중 제일 기대했던 ‘포석정’은 전복‘포’ , 돌‘석’ 이름 그대로 뒤집어 놓은 전복 같이 생겼다. 생각보다 작은 규모의 석조 구조물이었다. 역대 임금들이 연회를 베풀던 장소로 알려진 포석정은 돌로 만든 22m 물길에 술잔을 띄워놓고 시를 읊었던 것으로 유명하다. 신라 시대 환락의 메카라고나 할까? 후백제 견훤의 군대가 들이닥친 순간에도 이곳에 있었던 신라 55대 경애왕은 사치와 향락으로 나라를 멸망케 했다는 설이 전해지지만 군사적, 국가 제례를 지냈던 공간으로 재해석되고 있다.

▲ 밤에 더 빛나는 천문대의 야경.
▲ 삼릉 가는 길 의 종착지. 하늘까지 구불구불 뻗어 있던 경주 삼릉 소나무 숲.

바울오빤 “저는 여태까지 포석정이 안압지 안에 있는 줄 알았네요. 하하” 어쩐지, 어젯밤 동궁과 월지에 갔을 때 그렇게 열심히 포석정을 찾던 모습에 다 같이 깔깔대고 한참을 웃었다. 하긴 화려한 동궁과 월지 속에 있으면 잘 어울렸겠다. 화려하고 시끄러운 곳을 상상했는데 포석정은 너무나 고요한 궁궐 뒤뜰의 느낌을 갖고 있었다.

쭉쭉 뻗은 소나무들 사이로 이글거리는 태양이 눈부시게 비친다. 삼릉계곡 입구 양지바른 곳에 세 개의 왕릉이 있다. 8대 아달라왕, 53대 신덕왕, 54대 경명왕 등 3명의 박씨 왕 무덤이라고 전해진다. 이미 오릉에서 낙타 등 같은 릉의 아름다움을 한껏 느끼고 왔는데도 구불구불한 소나무 숲과 어우러진 삼릉의 매력에 폭 빠져 한참이나 서있었다. 양기를 받으려는 소나무 가지들이 삼릉을 향해 힘차게 뻗어내고 있었다. 솔향기 맡아가며 찬찬히 걸었는데도 금세 삼릉 가는 길 막바지에 다다랐다. 안개 낀 소나무 숲이 그렇게 아름답다는데 새벽이슬 맴돌 무렵 다시 찾아야겠다고 다짐하며.

▲ 창림사지 3층 석탑이 있는 곳에 올라서자 경주가 한눈에 보인다.

“난 사실 이렇게 걷는 게 더 좋아. 달리는 것보다. 그런데 왜 달리기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네.”
“언니 나도! 트레킹이 훨씬 좋아!”
“우리 트레킹 클럽 하나 만들어야 하나? 프라이빗 트레킹. ㅋㅋ”
“트레킹도 하고 캠핑도 같이 하면 참 좋을 텐데.”

끝나가는 길이 아쉬웠다. 좋은 길,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걸으니 이보다 더 행복할 수 있을까. 좋아하는 사람은 보고 또 봐도 자꾸 보고 싶은 법이다. 경주는 그런 도시였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낮과 밤 모습까지도 궁금한 곳. 갓 겨울을 벗어난 터라 온통 활기 잃은 누런색으로 뒤덮인 왕릉이 싱그러운 초록색으로 변신한 날들도 보고 싶고, 함박눈 가득 쌓인 포석정의 모습도, 훤하게 달빛이 비추는 삼릉의 소나무 숲도 궁금하다. 벚꽃 휘날리는 봄날의 경주가 그렇게 아름답다고 하니 다음 달 경주에서 열리는 벚꽃 마라톤에 도전장을 내밀어봐야겠다.

▲ 세월의 그라데이션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어느 집의 대문.

▲ 웃고 떠들며 걷다보니 8km의 트레킹 코스가 눈 깜짝할 사이 막바지에 다다르다.

▲ 창림사지 3층 석탑에 새겨진 조각이 그저 신기할 뿐.

▲ 신라 환락의 메카 포석정. 국가 제례를 지냈다는 신성한 곳이라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 족히 백년을 훌쩍 넘긴 제멋대로 휘어진 노송들과 삼릉의 위엄이 조화롭다.

▲ 따스한 봄 햇살을 느끼며 신라 천년의 역사를 엿보다.

▲ 삼릉 가는 길의 옛 모습. 미래의 모습도 궁금해진다.

▲ 남간 마을 안에 있는 돌우물 석정. 남간사 옛 터의 흔적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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