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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자연이 맺어준 낯선 만남들…꽃보다 아름다운 아이슬란드
대자연이 맺어준 낯선 만남들…꽃보다 아름다운 아이슬란드
  • 글·사진 박지연 기자
  • 승인 2016.03.19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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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떠난 아이슬란드 여행기 2탄…싱벨리르 국립공원과 얼음동굴투어

사람은 누구나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아무리 건강해 보이는 사람도 마음에 생채기 하나 없는 사람은 없다. 나 역시 웃지만 마음까지 늘 웃지는 못한다. 그런 내게 여행은 내면을 치유하는 수단이다. 난 여행에 오르면 내 감정에 솔직해지고, 오롯이 내게만 집중할 수도 있어 좋다. 낯선 인연을 통해 의외의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 아이슬란드, 그 위대한 자연에서 난 낯선 사람들과의 인연을 통해 치유의 걸음을 이어갔다.

▲ 붙잡고 싶었던 시간, 놓치고 싶지 않은 기억·인연. 아이슬란드여야만 가능한 여정.

감사한 인연
멀고 먼 나라, 아이슬란드에서만큼은 완벽한 이방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일까, 새로운 투어를 할 때마다 바뀌는 외국인 일행들과 어울리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자연스레 외로움에 길들여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낯선 일행들과 2박 3일간 남부해안투어를 하기로 했다. 이번엔 어떤 인연을 만나게 될까. 설렘을 품고 차에 올랐다. ‘웬열!’ 그동안 어딘가에 숨어있던 동양인들이 여럿이다. 한국말도 들려온다. 순간, 이방인으로의 자유는 사라졌고 모든 행동이 조심스러워졌다.

애써 누르고 있던, 남을 의식하는 내 안의 습관이 스물스물 몸 밖으로 기어올랐다. 그들 앞에 탄로나게 될 서투른 영어실력, 그리고 장소불문 철판 깔고 삼각대로 사진을 찍던 내 모습이 조금씩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가이드와 함께하는 투어였기 때문에 맨 앞좌석에 앉았다. 한 단어라도 더 알아듣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첫 목적지 싱벨리르 국립공원에 도착했다. 풍광을 마주하자 입이 떡 벌어지는 장관에 여기저기서 탄성을 쏟아낸다. 분홍과 하늘색이 오묘하게 섞인 하늘, 공원을 비추는 따스한 햇살, 찬란하게 빛나는 호수와 눈 덮인 초원까지. 동화책을 펼쳐들고 그 안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 속으로 들어온 것 같았다. 비현실적인 풍경으로 조심스레 한발 내딛었다. 눈 밭 위에 처음 닿는 사각사각 발자국 소리에 감동받아 입에서는 근본 없는 멜로디가 끊임없이 흘러나온다.

▲ 햇살의 속삭임과 바다를 닮은 파란 하늘을 만끽할 수 있었던 싱벨리르 국립공원.

▲ 한 겨울에 불어오는 바람은 매몰차지만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을 가진 감격스러운 곳이다.

점심시간. 유료 화장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식당에서 무조건 일을 해결해야 했다. 여유로운 마음으로 천천히 메뉴를 고르고 있는데 비슷한 또래 여자가 말을 걸어왔다.

“한국 분 맞으시죠? 같이 식사 하실래요?”

갑자기 입이 근질거렸다. 혼자가 편하다고 생각했는데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줄곧 버스에서 시간을 보내고 나니 이 유혹에 넘어가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어느 나라 사람으로 보였는지 궁금했다.

인터넷카페를 통해 만났다는 그들은 이번 투어만 동행한다고 했다. 늦은 나이에 꿈을 위해 아일랜드로 날아와 공부중인 래형오빠, 직장을 그만두고 유학길에 오를 동갑내기 혜성이, 러시아 시베리아횡단열차를 시작으로 여행 중인 취준생 보라까지. 대화를 나누다보니 갑자기 이 순간을 공유할 수 있는 동지들이 생겼다는 든든함이 생겼다.

예상과는 다르게 세 사람은 함께하는 일정 동안 나에게 큰 자유와 가르침을 주었다. 내 친구 삼각대를 날려 보낸 바람에 슬퍼하고 있을 때, 그들이 많은 사진을 남겨주었다. 나눔에 인색하지 않은 모습을 보며, 나는 내가 옳다고 생각해왔던 개인적 행동을 반성했다. (물론, 속으로만) 함께해서 가장 좋았던 것은 식당마다 정해지다시피 했던 양고기, 닭고기, 생선의 세 가지 메뉴를 다 먹어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처음엔 각자 다른 마음으로 모였지만, 같은 곳을 향해 왔다는 동질감 때문인지 서로가 가지고 있는 고민을 나누며 우리의 기억은 같은 시간 안에서 물들어 갔다.

▲ 빙하를 한입 깨물어봤지만, 내가 알고 있는 얼음과자의 맛은 아니었다.

꽃보다 아름다운 청춘
시간에 쫓기는 걸 싫어하는 가이드 덕분에 여유롭게 풍광을 감상할 수 있었다. 다음날로 스케줄이 미뤄지는 경우도 생겼지만 여유를 즐기러 온 내가 문제 삼을 일은 아니었다. 그저 풍경 하나라도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쉼 없이 셔터를 눌러댔다. 찍어놓은 사진들이 글로 표현할 수 없는 그날의 감정들을 표현해주길 기대하면서. 사실은 이 순간이 잊힐까 두려웠다.

▲ 거친 파도소리에 쿵쾅쿵쾅 뛰는 심장을 붙잡고, 얼굴에 맞닿는 바람에 나를 맡기기만 하면 되는 시간이었다.

▲ 크고 작은 사각형 모양의 돌기둥이 불규칙적으로 세워진 주상절리 절벽과 바다 위에 우뚝 서 있는 현무암 바위가 인상적이다.

레이니스드란가르, 검은 모래 해변과 주상절리가 일품인 이곳에서 바다위로는 붉은 해가 뜨고, 산위로는 푸른 달이지는 신기한 광경과 마주했다. 아름다움은 늘 새롭고 벅찬 것일까?

검은 모래가 신기했던 나는 두발을 모은 사진을 찍었다. 흑백모드로 찍었다는 걸 뒤늦게 발견한 순간 등골이 서늘했지만, 어쨌든 모래는 검은색으로 나왔으니 됐다며 홀로 위안을 삼았다.

▲ 검은 모래로 이루어진 해변에서 멈칫하는 순간. 신기함과 동시에 이 곳까지 데려다준 두발이 어찌나 기특하던지.

기대했던 얼음동굴투어가 시작됐다. 헬멧과 아이젠으로 중무장을 마친 후, 작은 차로 옮겨 탔다. 얼음 위를 달리고, 물웅덩이도 가로지르더니 아예 롤러코스터를 탄다. 자유자재로 핸들을 돌리는 기사아저씨가 여자들 눈에는 영화 <매드맥스>의 톰 하디처럼 보였다. 수다는 끊이지 않았다. 뒤에 있던 래형오빠가 찍어준 우리는, 마치 전문 사진기자들 같았다. 비록 삼각대와 셀카봉밖에 없었지만.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다 한파에 내버려진 듯한 무리를 발견했다. 이곳은 대부분 차량으로 이동하는데 그들은 거센 바람과 싸우며 걷고 있었다. “우리보다 싼 투어를 신청했나봐!” 나름의 이유를 추측하다보니 그들은 대화주제의 일부가 되었고, 결국 불쌍하다며 입을 모아 동정했다. 그 사이 우리는 얼음동굴에 도착했다.

4명씩 짝을 지어 입구에 모였다. 45분정도 동굴 안을 구경 할 수 있다는 가이드의 말과는 달리 투어는 단 5분 만에 끝났다. 계절과 날씨에 따라서 구경할 수 있는 동굴이 다른 탓이었다. 밀려오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예쁜 척 사진을 찍었다. 헬멧끈에 볼살이 구겨진 것도 모른 채.

▲ 나를 데려다줘요. 투어 차량마저 아이슬란드를 닮았다.

의식하지 않다가 알아차리면 놀라운 게 이곳 기온이었다. 아이슬란드의 눈보라는 이따금 감당하기 힘들만큼 추웠다. 다른 일행의 투어를 기다리는 동안 바람을 피하기 위해 동굴 뒤쪽으로 몸을 움직였다.

“어? 강하늘씨 아니에요?”

긴 점퍼에 이어진 후드를 머리에 쓰고, 안경으로 가린 얼굴. 하지만 나는 단박에 알아봤다. <꽃보다 청춘>팀이었다. 나와 같은 일정으로 아이슬란드에 왔다는 얘기를 듣고 ‘혹시나’ 했는데, 이렇게 초라한 모습으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놀라운 건 아까 차를 타고 오면서 만난 추위 속에서 걷고 있던 불쌍한 일행이 이들이었다는 사실. 얼떨떨한 마음이 추위와 함께 극에 달했다. 카메라와 함께 다른 멤버들이 나타나자 반가움에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콧물까지 얼어버린 정우, 백설기같이 뽀얀 조정석, 양꼬치와 칭따오만 생각나는 정상훈까지. 이산가족을 만난 듯 반갑게 인사를 나눴고 친절하게 함께 영상도 촬영했다. 나중에 한국에 돌아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아이슬란드편을 빼놓지 않고 봤는데 ‘가차 없이!’ 편집됐다. TV에서 방금 튀어나온 것 같던 나영석PD님 나빠요. 그래도 특별한 추억 덕분에 얼음투어의 실망감을 잊을 수 있어 감사했다.

▲ 얼음 위로 뿜어내는 연기와 붉은 노을은 소리 없이 강했고, 이 날의 온도는 잊히질 않는다.

열정의 그녀 ‘DONA’
다음날, 요쿨살론에 잠시 들렀다. 많은 영화에 등장했던 명소다. 빙하와 바닷물이 합쳐져 만들어진 빙하 라군 위로 수많은 빙산이 떠다닌다. 그런데 그 모습이 숨통을 조일만큼 꽤 아름답다. 좀 더 가까이 보고 싶었지만, 위험하다는 말에 사진만 남기고 빙하워킹투어로 떠났다. 가장 인기 있는 액티비티였기 때문에 어제보다 더 큰 기대를 가졌다.

하루에 2회, 초보자용 코스로 약 3시간 정도 소요되는 기본 코스다. 오늘의 전문 가이드는 도나DONA. 그녀의 설명을 들으며 아이젠과 피켈을 받아들었다. 도나는 한 사람 한 사람 씩 아이젠 길이를 맞춰주었는데, 나의 풀린 신발 끈을 묶어주는 친절함까지 보였다. 살면서 부모님을 빼면 그 어떤 사람도 내 신발 끈을 묶어준 적이 없었는데 남자도 아닌 여자의 손이 첫 경험이 되어버렸다.

그녀의 가르침에 용기를 얻어 빙하 위를 걷기 시작했다. 아이젠을 얼음에 콕콕 찍어 밟으며 발을 업다운해서 조심스럽게 걷다보니 금방 익숙해졌다. 그리고 곧 신비로운 빙하의 세상이 눈앞에 펼쳐졌다.

▲ 실망도 잠시, 온 세상에 가득한 크리스탈은 내가 본 보석 중 가장 빛이 났다.

▲ 아이젠 장착완료. 이제 빙하 속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끝. 더 없이 설렌다.

화산재 때문에 잿빛으로 변한 빙하와 흰색과 검은색, 파란색의 조화로 몽환적인 느낌을 주는 또 다른 빙하를 만나고 나니 흐렸던 정신이 투명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마음이 깨끗하게 씻긴 듯해 허공에 대고 나지막하게 고백했다. ‘나 지금 정말 행복해!’ 응어리진 것도 없었는데 후련했다.

모든 투어를 마치고 도나와 함께 식당으로 이동했다. 그날 먹은 양고기는 아이슬란드에서 최고였다. 그녀는 내 옆 테이블에서 식사했는데, 외투를 벗은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두꺼운 점퍼에 가려져있던 불룩한 배, 도나는 만삭의 임신부였다. 자칫 위험할 수 있는 일정에도 본인의 역할을 100% 해낸 그녀의 열정에 미안한 마음과 함께 고마운 마음에 저절로 박수가 나왔다. 환한 미소를 띠고 있는 그녀의 친절함과 의지가 어쩌면 나를 다시 아이슬란드로 이끌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 카메라 준비완료. 모든 투어는 장비로부터 시작된다.

▲ 그녀의 친절함에 감동받아 더 즐거웠던 빙하투어.
 
▲ 강제로 찍힌 정형화 된 사진이 아니라서 더욱 좋은 우리.

▲ 신비로운 빙하의 세상. 눈 덮인 고요함에 반했다.

▲ 영화에서나 보았던 오묘한 색으로 뒤덮인 빙하는 그저 외롭고 쓸쓸하다.

▲ 화산재로 뒤덮인 빙하를 만났고, 인터스텔라의 앤 헤서웨이처럼 한 발을 내딛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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