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금메달…바르셀로나와 베를린
두 개의 금메달…바르셀로나와 베를린
  • 글 사진 앤드류 김 기자
  • 승인 2016.03.02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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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REW’S TRAVEL NOTE

올림픽 폐막식. 그날이 오면 메인 스타디움에 빼곡히 들어찬 관중과 지구촌 사람들의 눈은 마라톤 경기를 주목한다. 올림픽의 꽃이라 불리는 마라톤. 과연 어떤 선수가 그 먼 거리를 달려 제일 먼저 스타디움 안으로 들어올지 초미의 관심사다. 혹독한 자신과의 싸움이나 마찬가지인 마라톤. 관중들은 이런 마라톤 경기에서 먼 옛날 들판에서 싸우던 고대 전사를 보는 듯한 느낌에 환호성을 지른다.

이런 마라톤에서 지난 120년 동안 메인 스타디움 정문 박차고 1등으로 들어온 한국 선수가 2명이나 있어 세계가 놀란다. 그날의 감동은 언제 생각해 보아도 감동스럽고 또 감동스럽다. 아시아 선수들 중에 지금까지 독일 베를린 올림픽 손기정 선수, 스페인 바르셀로나 올림픽 황영조 선수 외엔 금메달 목에 건 선수는 없다. 일본이나 중국이 아무리 마라톤 선수들에게 투자해도 지금까지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 획득에는 실패했다. 우리가 지리적으로 주변 강대국들 사이에 끼어 힘든 과거의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지만 그래도 끝까지 살아남아 세계를 향해 쉬지 않고 전진하는 강인한 국력과 정신력을 가졌기에 마라톤에서도 이런 결과가 나오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1936년 8월 9일 파란 여름 하늘이 유난히 상쾌한 그날 늦은 오후, 폐막식 한 시간 남겨 놓은 베를린 메인스타디움. 그곳에는 제2차 세계대전 주역 아돌프 히틀러가 독일 총통으로 메인석에 앉아 내심 우수한 혈통을 가졌다고 믿는 독일 선수가 우승하리라 믿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갑자기 스타디움이 술렁이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1등으로 들어온 이는 다름 아닌 앞가슴에 일장기 단 한국인 손기정 선수였다. 그것도 2시간 29분 19초, 당시 세계신기록이었다.

56년이 지난 후, 같은 유럽 땅에서 열린 스페인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또 한 번의 감동이 있었다. 황영조 선수가 폐막식 시상대에서 마라톤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황 선수의 기록은 2시간 13분 대. 그는 2년 뒤 히로시마에서 열린 아시안 게임에서도 금메달 목에 걸면서 세계 최고의 마라토너임을 입증했다. 두 선수의 흔적을 따라 찾아간 독일 베를린 주경기장과 스페인 바르셀로나 몬주익 경기장, 경기장을 찾은 날도 그들이 달리던 그날처럼 날씨가 청명했다.

히틀러는 재임 시에 하계올림픽을 유치해 강국 독일을 온 세계에 널리 알리고자 했다. 올림픽을 치르기 위해 지은 베를린 올림픽 스타디움 역시 첫인상이 독일답게 튼튼하다. 특이한 건 그라운드가 무려 지상보다 12m나 낮다는 점이다. 경기 중에 바람의 영향이 기록 경신에 방해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막기 위해 만들어낸 구조였다. 또 하나 응원의 함성이 깨끗한 공명으로 들리도록 하기 위해 마치 고대 로마의 이즈밀 야외공연장이나 이탈리아 베로나의 원형경기장처럼 만든 것도 특색이다.

아무튼 당시 히틀러가 게르만 민족의 우수성을 자랑하기 위해 심혈 기울여 만든 경기장 트랙으로 동양인인 손기정 선수가 뛰어 들어왔으니 히틀러는 실망했겠지만 우리에게는 그만큼 더 감동적이다. 베를린 스타디움은 이후에 개축도 했지만 웅대한 규모와 탁월한 미적 감각은 여전해 지금까지 중요한 행사들을 치르고 있다. 1974년 월드컵도 열렸고 2006년 월드컵 경기 결승전도 모두 여기서 열렸고 2009년 세계 육상선수권 등이 열려 지금까지 초특급 스타디움으로 손색이 없다. 베를린 올림픽 스타디움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이 경기장에서 처음 열린 올림픽에서 우승한 손기정 선수의 영혼이 지금도 저 트랙 어딘가에 살아 있는 듯하다.

바르셀로나 올림픽 폐막식 하이라이트에서 빛난 건 황영조 선수였다. 손기정 선배의 뒤를 이어 가파른 몬주익 오르막을 필사적으로 내달리던 황영조 선수의 뇌리에는 고향 삼척의 가난한 어촌에서 고생하시는 어머니 생각과 고향의 앞바다 뿐이었다. 그 역시 결국 해냈다. 조국의 이름으로 당당하게 마라톤에서 첫 번째 금메달을 선사한 것이다. 손기정 선수는 일장기를 달고 달려야 했고, 독일에서는 아직까지 일본인으로 남아 있지만 황영조 선수는 태극기를 달고 달렸기 때문이다. 조국에 두 번째 금메달을 선사한 황영조 선수가 있어 너무나 자랑스럽다. 바르셀로나 경기장 정문 길 건너편에는 커다란 돌에 새긴 황선수의 부조까지 있어 이역만리 찾아온 우리나라 방문객들에게 조국의 긍지를 느끼게 해 준다.

베를린 올림픽 스타디움의 성화대는 독일답게 탄탄히 만든 거대한 삼발이 모습이다. 이에 비해 바르셀로나 몬주익 경기장 성화대는 희한하게 경기장 밖에 붙어 있는 돌고래 모양이다. 스페인 무적함대가 오백 년 전 배를 타고 전 세계를 누비기 시작한 역사적 배경을 돌고래로 상징한 것은 아닐까 싶다. 오픈식 때 양궁 선수가 불화살을 그라운드에서 쏘아 경기장 외벽에 붙어있던 돌고래에 점화시킨 방식도 당시 세계인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월계관을 쓴 두 선수의 투혼을 품은 스타디움 성화대는 꺼졌지만, 우리나라 국민들 마음 속 성화대의 불꽃은 결코 꺼지지 않으리라 본다.

앤드류 김 Andrew Kim
(주) 코코비아 대표로 커피 브랜드 앤드류커피팩토리Andrew Coffee Factory와 에빠니Epanie 차 브랜드를 직접 생산해 전 세계에 유통하고 있다. 커피 전문 쇼핑몰(www.acoffee.co.kr)과 종합몰(www.coffeetea.co.kr)을 운영하며 세계를 다니면서 사진작가와 커피차 칼럼리스트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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