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 혹은 논란…와인의 오크통 숙성 향
재미 혹은 논란…와인의 오크통 숙성 향
  • 글 진정훈 소믈리에|사진제공 금양인터내셔널
  • 승인 2016.02.24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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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STYLE|WINE

와인을 만드는 과정 중 하나는 알코올 발효다. 알코올이 발효되면서 포도즙의 당분이 알코올로 변하게 된다. 이후 숙성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이때 사람이 인위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것이 있다. 바로 오크통에서 나오는 향이다.

▲ 오크통을 제작하는 모습. 직육면체의 나무를 이어서 단단한 쇠고리로 잡아둔 다음 통 안쪽에 불을 피워 열을 가면 그 힘으로 나무를 구부리면서 아래쪽에도 쇠고리로 단단히 잡는 과정이다. 못이나 풀 등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액체를 담는 용기를 만들기에 큰 기술이 필요하다.

오크통은 직육면체의 기다란 나무 널빤지를 연이어 만든다. 이때 오크통 내부에 열을 가해 나무 널빤지를 타원형의 모양으로 휘어지게 하고, 동시에 그을음을 주어 그 향이 와인에 베어들게 한다. 다른 향에 비해 오크통 숙성 향은 인위적인 향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관대하게 받아들이는 편이다. 아마도 유리병이 나오기 전부터 와인을 담는 용기로 사용했고, 그 시절엔 오크통 외에 다른 대안이 없었던 까닭이 아닐까.

지금도 오크통을 이용하지 않는 나라는 거의 없을 정도로 전 세계 와이너리에서 오크통을 적절하게 이용하고 있다. 특히, 비싸고 질 좋은 프랑스산 오크통을 사용해 1~2년 숙성 한 와인은 마치 좋은 품질의 와인이라는 인식이 생길 정도로 마케팅의 한 요소가 되어버렸다. 실제로 장기 숙성을 위한 느린 숙성 속도와 프랑스 오크통의 타닌 퀄리티 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다양한 맛이라는 본질적인 의미로 볼 때 오크통의 역할이 긍정적이기만 한지에 대해서는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 와인이 오크통에 담겨 숙성되고 있는 모습. 오크통 안쪽의 그을음과 나무의 타닌이 와인을 부드럽게 하고 와인에 향을 더하지만, 최근에는 오크통 사용을 하지 않고 와인 본래의 맛을 즐기려는 움직임이 프랑스를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다.

▲ 오크통을 만들 때 직육면체의 나무를 타원형으로 휘어지게 해야 하므로 제작과정에서 열을 사용한다. 이 열의 강도와 그을음의 정도를 이용하여 와인에서 느낄 수 있는 커피 향, 스모키 향 등을 줄 수 있다.
보르도를 포함한 프랑스 남부 지역의 라디오 방송을 듣다보면 오크통 숙성 향에 대한 토론을 종종 다룬다. 오크통 숙성 향에 와인 퀄리티가 너무 치우쳐 있다는 것을 경계하는 내용이다. 우리나라 음식을 예로 들어보자. 싱싱하고 맛있는 회가 있다. 우리는 횟감에 각자 원하는 만큼의 고추장 또는 간장 소스를 찍어 먹는다. 그런데 회 자체만으로도 신선하고 섬세한 맛을 즐길 수 있다면 소스는 찍는 둥 마는 둥 회 자체를 즐길 것이다. 개인 취향의 관점이 아니라 미식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신선한 횟감의 높은 퀄리티가 주는 미식을 즐기기 위해서 상대적으로 소스를 덜 먹을 것이다. 하다못해 정말 맛있는 소스가 있더라도, 횟감 원래의 맛과 매력이 소스에 묻혀 느껴지지 않는다면 횟감만으로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볼 필요가 있다.

다시 와인 이야기. 숙성을 했을 때 더 맛있다면 적절한 숙성으로 향미를 더욱 풍부하게 하거나, 반대로 신선할 때 먹어야 한다면 상황에 맞게 먹는 방법을 고려할 수 있다. 중요한 건 원재료(포도, 와인)의 맛을 극대화시키는 것이지 부재료(오크통)의 가미를 극대화하는 것이 아니다. 포도의 퀄리티와 그 포도로 만든 오크통 숙성 전 단계의 와인만으로 충분한 향미가 나온다면 굳이 오크통의 향을 더할 필요가 없다. 와인의 퀄리티가 훌륭하다면 굳이 오크통 숙성이 필요하지 않다는 뜻이다. 포도 본연의 재료에 충실한 맛을 즐기고 싶을 때는 오크통 숙성 향이 방해가 될 것이다.

우리가 와인을 마실 때 상대적으로 쉽게 호감을 느낄 수 있는 부드럽고 나무에 그을린 듯한 구수한 향이 원래 포도로 만든 술을 느끼는 과정을 방해하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식재료의 퀄리티 자체를 느끼려고 할 때, 불에 구운 듯한 향은 식재료가 부족한 부분을 감추는 가장 좋은 방법일지도 모른다.

▲ 신선한 횟감을 먹을 때 소스를 많이 찍을수록 횟감의 본래 맛을 느끼기 어렵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신선하지 않은 횟감을 먹더라도 소스만 적당히 찍으면 맛있다고 착각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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