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없는 기억은 없어…영화 이터널 선샤인
네가 없는 기억은 없어…영화 이터널 선샤인
  • 이지혜 기자|사진제공 포커스픽처스
  • 승인 2016.02.24 16:53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LIFE STYLE|MOVIE

이제 막 시작하려는 커플이 있다. 침대 위를 동동 뛰어도 부족한 시기. 우연히 상대가 자신을 헐뜯는 내용의 녹음테이프를 듣게 된다. 잘못되어도 뭔가 단단히 잘못됐다. 알고 보니 그들은 과거의 연인이었고, 헤어졌고, 서로의 기억을 모두 지웠다. 녹음된 목소리는 기억을 지우기 전, 서로에 관해 이야기 한 내용이다. 두 사람은 그 사실을 지금 알아버렸다. <이터널 선샤인>의 큰 줄거리다. 본의 아니게 스포일러를 읽었으니 짜증이 밀려오겠지만 괜찮다, 고 뻔뻔해지고 싶다. 알고 봐도, 보고 또 봐도 절대 지겨울 수 없는 영화니까.

최근 개봉 10주년 영화가 다시 스크린에 오르는 것이 유행이다. 지난해 12월, 재개봉 리스트에 <이터널 선샤인>이 올랐단 소식은 미셸 공드리 ‘덕후’ 기자에게 쾌재를 불러일으켰다. 쪼르르 달려가 다시 본 그 영화는 똑같이 아름답고 똑같이 정신없었지만, 가벼운 발걸음으로 비디오를 반납하러 가던 여대생은 이제 없었다. 시간이 선물한 경험은 참 무섭다.

첫 작품 <휴먼 네이쳐>로 온갖 혹평을 받은 뒤, 미셸 공드리가 작정하고 내놓은 영화다. 영국 가디언은 영화를 역사상 최고의 로맨스로 꼽았다. 지난 2015년 BBC 주관 미국영화 100선 중 2000년 이후 멜로 장르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미셸 공드리 특유의 상상력과 전개, 정신없는 프레임의 복잡함 속에서도 단순명쾌한 이야기를 담아내며 10년이 지난 지금도 뛰어난 평가를 받는다.

권태를 한 번 겪었던 그들이 다시 만난 데에는 이유가 있을 거다. 기억이 사라진 뒤, “내가 없어지는 기분”이라는 여주인공의 공허한 대사는 사랑에는 절대 지워질 수 없는 부분이 존재한다는 걸 증명한다. 시간과 공간쯤은 가볍게 무시하는 기억이란 녀석이 얼마나 어마무시한지 말해준다.

끝을 겪어놓고도 다시 시작하는 용기. 권태를 다시 겪을 용기. 진심이 아닌 말로 생채기를 내고, 욱하는 마음에 기억을 지워놓고도, “네가 없는 기억은 없어”라고 할 만큼 서로를 완벽히 사랑했던 커플. 마음이 기억한다는 통속적 명언과 헤어져도 결국 비슷한 사람에게 끌린다는 감성적 명언이 공존하는 영화. 사랑과 싸움과 권태를 겪었다면 누구나 공감한다.

공개되지 않은 감독판에는 몇 십 년 후, 할머니가 된 여주인공이 다시 병원을 찾아가 “기억을 지워 달라” 말한다니, 이 얼마나 미셸 공드리다운지! 그마저도 재미있었을 게다. 혹시 미셸 공드리식 영상을 스크린으로 보기 부담스러운 이라도 이 영화는 시도해 보라고 권한다. 특히 권태기와 가까운 커플이 있다면 주저 말고 영화를 틀라. 당신 옆에 있는 사람의 처음이 기억날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0 / 400
네티즌 2017-02-04 05:02:43
동감합니다 제옆에있는 사람의 처음이 생각났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