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STYLE|MOVIE
이제 막 시작하려는 커플이 있다. 침대 위를 동동 뛰어도 부족한 시기. 우연히 상대가 자신을 헐뜯는 내용의 녹음테이프를 듣게 된다. 잘못되어도 뭔가 단단히 잘못됐다. 알고 보니 그들은 과거의 연인이었고, 헤어졌고, 서로의 기억을 모두 지웠다. 녹음된 목소리는 기억을 지우기 전, 서로에 관해 이야기 한 내용이다. 두 사람은 그 사실을 지금 알아버렸다. <이터널 선샤인>의 큰 줄거리다. 본의 아니게 스포일러를 읽었으니 짜증이 밀려오겠지만 괜찮다, 고 뻔뻔해지고 싶다. 알고 봐도, 보고 또 봐도 절대 지겨울 수 없는 영화니까.
첫 작품 <휴먼 네이쳐>로 온갖 혹평을 받은 뒤, 미셸 공드리가 작정하고 내놓은 영화다. 영국 가디언은 영화를 역사상 최고의 로맨스로 꼽았다. 지난 2015년 BBC 주관 미국영화 100선 중 2000년 이후 멜로 장르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미셸 공드리 특유의 상상력과 전개, 정신없는 프레임의 복잡함 속에서도 단순명쾌한 이야기를 담아내며 10년이 지난 지금도 뛰어난 평가를 받는다.
공개되지 않은 감독판에는 몇 십 년 후, 할머니가 된 여주인공이 다시 병원을 찾아가 “기억을 지워 달라” 말한다니, 이 얼마나 미셸 공드리다운지! 그마저도 재미있었을 게다. 혹시 미셸 공드리식 영상을 스크린으로 보기 부담스러운 이라도 이 영화는 시도해 보라고 권한다. 특히 권태기와 가까운 커플이 있다면 주저 말고 영화를 틀라. 당신 옆에 있는 사람의 처음이 기억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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