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믿는 사회…피로사회
아무것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믿는 사회…피로사회
  • 선정 및 발췌 오대진 기자|사진 김해진 기자
  • 승인 2016.02.19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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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STYLE|BOOK

긍정성의 과잉 상태에 아무 대책도 없이 무력하게 내던져져 있는 새로운 인간형은 그 어떤 주권도 지니지 못한다. 우울한 인간은 노동하는 동물animal laborans로서 자기 자신을 착취한다. 물론 타자의 강요 없이 자발적으로. 그는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이다. 강조적 의미의 자아 개념은 여전히 면역학적 범주다. 그러나 우울증은 모든 면역학적 도식 바깥에 있다. 우울증은 성과주체가 더 이상 할 수 있을 수 없을 때 발발한다. 그것은 일차적으로 일과 능력의 피로Schaggens- und Konnensmudigkeit이다. 아무것도 가능하지 않다는 우울한 개인의 한탄은 아무것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믿는 사회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더 이상 할 수 있을 수 없다Nicht-Mehr-Konnen-Konnen는 의식은 파괴적 자책과 자학으로 이어진다. 성과주체는 자기 자신과 전쟁 상태에 있다. 우울증 환자는 이러한 내면화된 전쟁에서 부상을 입은 군인이다. 우울증은 긍정석의 과잉에 시달리는 사회의 질병으로서, 자기 자신과 전쟁을 벌이고 있는 인간을 반영한다.

▲ 피로사회MUDIGKEITSGESELLSCHAFT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2012. 문학과지성사)
성과주체는 노동을 강요하거나 심지어 착취하는 외적인 지배기구에서 자유롭다. 그는 자기 자신의 주인이자 주권자이다. 그는 자기 외에 그 누구에게도 예속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그 점에서 성과주체는 복종적 주체와 구별된다. 그러나 지배기구의 소멸은 자유로 이어지지 않는다. 소멸의 결과는 자유와 강제가 일치하는 상태이다. 그리하여 성과주체는 성과의 극대화를 위해 강제하는 자유 또는 자유로운 강제에 몸을 맡긴다. 과다한 노동과 성과는 자기 착취로까지 치닫는다. 자기 착취는 자유롭다는 느낌을 동반하기 때문에 타자의 착취보다 더 효율적이다. 착취자는 동시에 피착취자이다. 가해자와 피해자는 더 이상 분리되지 않는다. 이러한 자기 관계적 상태는 어떤 역설적 자유, 자체 내에 존재하는 강제구조로 인해 폭력으로 돌변하는 자유를 낳는다. 성과사회의 심리적 질병은 바로 이러한 역설적 자유의 병리적 표출인 것이다.
<피로사회> 27~29쪽에서 발췌, 볼드는 저자 강조

2010년 독일 문학계와 철학계는 발칵 뒤집혔다. 주인공은 책 한 권, 한병철 교수의 <피로사회>였다. 철학서로는 놀라울 정도의 독자 반응을 이끌어내며 독일의 모든 언론 매체를 도배했다. 한국의 분위기도 다르지 않았다. 2012년 번역 출간 후 수 개월 간 베스트셀러 1위에서 내려오지 않았고, 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독자들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다. 그가 냉철한 독일사회의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단 하나의 무기는 ‘날카로움’이었다. 그가 바라본 현 시대는 ‘긍정성이 지배하는 사회’. 한병철에 의해 파헤쳐진 ‘현재’는 너덜너덜해졌고, 그는 이제 ‘문화 비판의 혁신자’라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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