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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4대궁을 아시나요?”4대궁 및 종묘 걷기 PART II
  • 이슬기 기자 | 사진 양계탁 기자
  • 승인 2016.01.31 09:58
  • 호수 128
  • 댓글 0

구석구석, 옛 서울 정취 따라
경복궁 정문으로 나와 국립현대미술관, 정독도서관으로 향하는 길. 하루가 멀다고 다른 모양의 옷으로 갈아입는 삼청동은 그새 또 새로운 분위기를 풍긴다. 찻집과 오래된 우리식 건물을 개조한 음식점, 박물관 등 구석구석에서 옛 서울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15분 정도 걷자 이윽고 북촌 문화센터다. 여기서부터 창덕궁 1길이 시작되는데, 멀리 담장 너머로 내다보이는 창덕궁의 풍경이 북촌 8경 중 1경으로 꼽힌단다.

   
▲ 북촌에서 바라본 담장 너머 창덕궁의 전경.

   
▲ 1989년까지 이방자 여사가 거처했다는 낙선재.
돈화문을 지나 정전인 인정전에 도착했다. 2단의 월대 위로 세워진 모습이 근정전에 비해 소박하지만 당당하다. 창덕궁은 애초 경복궁에 이은 이궁으로 건립됐지만 이후 임금들이 이곳에서 주로 거주하며 실질적인 법궁의 역할을 했다. 이후 여러 차례 화재를 겪으며 소실됐지만 복원돼 현재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공식집무실인 선정전에는 일월오행도 그림이 걸려있었다. 하늘을 수놓은 두 개의 태양과 달이 천자의 위엄을 나타내는 듯하다.
보물 1764호인 낙선재로 들어가는 문인 장락문에는 호쾌한 필체의 현판이 걸려있는데, 흥선대원군이 직접 적어 단 것으로 그의 호방한 성격을 엿볼 수 있다. “낙선재에는 1989년까지 왕족이 살고 있었대.” “정말요?” “응,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비 이방자 여사였다고 해.” 오후가 되자 냉랭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선배가 장갑을 꺼내 사이좋게 한 짝씩 나눠 꼈다.
‘Secret Garden’. 후원 입구로 연결되는 곳에 적혀 있는 후원의 영문 이름이 낭만적이다. 후원은 해설사를 동반한 시간제 관람만 허용하고 있어 미리 예약하고 오는 것이 편리하다. 시간 관계상 후원은 다음에 둘러보기로 하고 후원 입구 옆에 위치한 함양문을 통해 창경궁으로 넘어갔다.

겨울부터 준비해야 꽃을 피우지
“나는 창경궁이 가장 좋아. 나무가 많아서 산책하기도 좋거든.” 어디선가 직박구리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다른 궁에서는 들을 수 없었던 새소리다. 내전 터에는 커다랗고 배배 꼬여 신기한 모양새의 고목이 서 있었는데, 썩은 나무 안쪽을 지지하기 위해 인공물이 들어가 더 독특했다.
바람의 방향을 확인할 수 있는 풍기대와 해시계 앙부일구를 살펴보고 성종의 태실비에 도착했다. 성종의 탯줄을 보관한 곳이다. 유리로 지어진 한국 최초 서양식 온실인 대온실은 일제가 창경궁에 동물원과 함께 지은 곳이다. 탐스럽게 열린 금귤과 유자가 손끝에 닿을까 까치발을 해봤지만 턱없이 부족했다. 아름다운 자태를 한껏 뽐내는 고운 연분홍빛의 동백꽃 위로 우리의 아픈 식민의 역사가 아른거린다.

   
▲ 창경궁 식물원 안에는 유자와 금귤이 주렁주렁 열려있다.

   
▲ 춘당지에서 원앙 무리를 만났다.

식물원 앞에 자리한 춘당지에는 살얼음 낀 연못 위로 원앙이 무리 지어 있다. “와 정말 예쁘게 생겼다. 원앙 실제로 처음 봤어.” “저도요. 정말 화려하게 생겼네요.” 정말로 원앙의 금슬이 좋은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 화려한 모습만큼은 목각인형에서 봤던 그대로다. “요놈들 이거나 먹어라.” 지나가던 아저씨가 건빵을 던지자 원앙이 우르르 몰려온다. 팔뚝만 한 잉어들도 질세라 주둥이를 내밀어 뻐끔거리기 바쁘다.
창경궁 정원에는 산옥잠화, 쑥부쟁이 등 400여 종의 식물을 관찰할 수 있다는 자생식물 학습장이 있다. 계절 탓인지 황량한 흙바닥 말고는 없었다. 아쉬운 마음을 하고 돌아서는데 선배가 어떤 나무 앞에 갑자기 멈춰 섰다. “이게 바로 히어리인데, 1년 중에 가장 먼저 꽃이 피는 나무래.” “오, 처음 들어봐요! 벌써 꽃망울이 영근 것 같아요.” “겨울부터 준비하고 있어야 가장 먼저 꽃을 피우지.”
창경궁 명정전은 조선왕궁의 법전 중에서 가장 오래돼 국보로 지정된 곳이다. 명정문에서 명정전으로 이어지는 삼도는 다른 궁에 비해 덜 다듬어 지고 울퉁불퉁했다. 명정전 단청도 다 벗겨져 있었지만 그 덕에 더 자연스럽고 투박한 고유의 맛이 있었다.

   
▲ 조선 법전 중 가장 오래된 창경궁 명정전.

   
▲ 잠시 숨을 고르며 남은 코스를 확인했다.

종묘에서 효를 엿보다
정동전망대를 비롯해 4대궁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옛 지도 위 창경궁과 종묘는 지금의 모습과 사뭇 다르다. 조선시대 창경궁과 종묘는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숲으로 연결되어 있었는데 일제강점기에 그 사이를 끊어 도로를 세웠단다. 덕분에 창경궁 홍화문을 나와 종묘 입구까지 15분이나 돌아가게 됐다. 다만 옛 모습의 복원을 위해 공사를 시작했다니 곧 다시 이어진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이 반갑다.
종묘는 문화해설사를 동반한 관람만이 가능한데, 1회 최대 300명까지 사전 예약을 받고 있어 해당 회차 인원이 다 찬다면 입장할 수 없다. 대신 매주 토요일에는 자유 관람을 운영하고 있어 편하게 둘러보고 싶다면 이날을 이용하는 것이 좋겠다. 관람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해 종묘 근처를 둘러보는 동안 안쪽에서 종묘 제례악이 들려왔다. 종묘광장공원은 정비 사업이 한창이라 바리케이드가 쳐져 있어 둘러볼 수 없었다.

   
▲ 조선 19왕의 신위를 모시고 있는 종묘의 정전. 그 길이가 101m에 달한다.

1395년 세워진 이래 종묘에서는 줄곧 제사가 이어져 왔는데, 지금도 매년 5월 첫 일요일 종묘대제를 비롯해 1년에 두 차례 제사를 지내고 있다. 당대 최고의 가치인 효의 실천을 위해 일제의 침략과 한국 전쟁 중에도 제례를 계속했다니, 조선 왕조의 숭고한 정신을 엿볼 수 있었던 대목이다. 외대문 앞으로 세 갈래 길인 삼도가 길게 이어진다. 이 삼도의 중간길은 돌아가신 분들의 영이 지나다니는 신로라 해, 산 사람이 함부로 오가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은 자유롭게 다닐 수 있게 돼 있지만 괜스레 에둘러 가장자리 길로 걷는 것이 마음 편하다.
제사를 앞두고 왕이 목욕재계하는 재궁과 음식을 준비했던 전사청을 지나 조선 역대 임금과 왕비의 신주를 모시고 있는 정전과 영녕전에 이르렀다. 정전과 영녕전에는 총 34명의 임금이 모셔져 있는데, 조선 27대 임금 가운데 폐위된 광해군과 연산군을 제외하고 19명의 추존왕을 더했기 때문이다. 추존왕에는 태조의 4대 조상과 사도세자 등이 포함됐다. 보물인 정전은 종묘의 중심 건물로 영녕전과 구분하기 위해 태묘라고 불리기도 한다.

   
▲ 여유롭게 거니는 고궁의 정원.

“서울 5대궁은 어딘지 아세요?” 부끄럽지만 사실 이번 고궁 투어를 나서기 전만 해도 기자는 이 물음에 제대로 대답할 수 없었다. 아름다운 우리 궁궐을 지척에 두고도 제대로 찾아본 적이 없었던 거다. 늘 주변을 지나다니면서도 우리 역사와 뿌리를 외면해 온 것 같아 반성의 마음이 일었다. 밀린 숙제를 해치우듯 고궁 걷기를 마치며 그동안 얼마나 무지했는지 깨닫고 이내 창피해졌다. 더욱더 느린 걸음으로 하나씩 다시 돌아봐야겠다고 스스로와 약속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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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기 기자 | 사진 양계탁 기자  seulki@outdoor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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