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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산 겨울바람…빈필 신년음악회
오대산 겨울바람…빈필 신년음악회
  • 박성용 부장|사진 김해진 기자
  • 승인 2016.01.29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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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STYLE|CLASSIC

오대산 두로령과 두로봉 중간쯤에서 날이 어두워졌다. 편평한 자리를 찾아 발로 눈을 다지고 텐트를 쳤다. 해가 기울자 기온은 급속도로 곤두박질쳤다. 좁은 텐트 안에는 이틀째 제대로 씻지 못한 시커먼 청춘들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페로몬향이 가득 찼다. 배낭에서 버너와 코펠을 꺼내던 후배 하나가 콧구멍을 벌름거렸다.

“아무리 겨울이라지만 너무들 하네유. 이게 사람 냄새유 짐승 냄새유.”
“야, 니 발은 어떻고. 까나리액젓을 엎질러놓은 것 같아.”

다들 낄낄거리며 차가운 소주가 담긴 코펠을 돌렸다. 가스랜턴과 휘발유버너의 열기로 텐트 안은 금세 달아올랐다. 텐트 천장에 연결한 슬링에 널어놓은 양말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날 선 바람이 허술한 텐트 문을 비집고 젖은 등짝에 달라붙을 때마다 몸서리를 쳤다. 간단한 안주와 라면으로 저녁을 때우고 나서 침낭 속으로 몸을 눕히면 텐트를 때리는 바람소리가 아득하게 들렸다. 랜턴을 끄면 엄습해오는 칠흑 같은 어둠과 매서운 바람 속에서도 희미한 봄의 기운이 느껴졌다.

▲ 카라얀이 지휘봉을 잡은 1987년 빈필 신년음악회 연주실황 음반.
2016년 1월 1일 현지시각 오전 11시쯤 열리는 제75회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이하 ‘빈필’) 신년음악회 지휘자와 프로그램이 홈페이지에 발표됐다. 올해 지휘자는 구 소련 라트비아 출신의 마리스 얀손스Mariss Jansons. 네 번째 신년음악회 지휘를 맡는다. 레퍼토리는 늘 그렇듯 왈츠 중심의 선곡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빈필 신년음악회와 인연이 없던 카라얀Herbert von Karajan은 다 늙어서야 1987년 무대에 지휘봉을 잡는다. 과거 나치 협력을 문제 삼아 초대하지 않았던 빈필은 당대의 최고 지휘자 카라얀을 죽기 2년 전에 초청한다.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카라얀은 신년음악회 최초로 흑인여성 소프라노 캐슬린 배틀Kathleen Battle을 기용해 봄의 소리 왈츠를 노래로 들려준다. 캐슬린 배틀은 화사하고 고혹적인 장미색깔의 드레스를 입고 나와 청아한 목소리로 봄의 정취를 한껏 뽐낸다. 카라얀의 캐슬린 배틀 기용은 누구도 예상치 못했지만, 결과는 대히트를 쳤다. 역시 카라얀은 카라얀이었다.

▲ 빈필 신년음악회 무대에 선 최초의 흑인여성 소프라노 캐슬린 배틀.
▲ 1941년 빈필 신념음악회 첫 무대를 지휘한 클레멘스 크라우스.

옆 동네에 있으면서 한 번도 불러주지 않은 신년음악회 무대에 파격적인 흑인여성 성악가를 출연시키면서 빈 출신의 지휘자들만 선호해왔던 고루한(?) 빈의 정서에 한방 어퍼컷을 날린 것이다. 클레멘스 크라우스Clemens Krauss는 1941년 빈필 신년음악회 첫 무대를 지휘한 빈 출신이다. 이 무렵 빈에서 살지 않아서 모르지만, 호사가들이 말하는 ‘빈풍’의 정서를 잘 뽑아내는 지휘자로 정평이 나있다. 참고로 빌리 보스코프스키Willi Boskovsky는 25년이라는 최장기 신년음악회 지휘를 맡았다.

전 세계 90개 나라에 텔레비전으로 생방송되는 신년음악회는 약 5천 만 명이 시청하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날 저녁 7시 메가박스에서 생방송으로 감상할 수 있다. 지상파에서는 며칠 후에 녹화방송으로 틀어준다.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홈페이지 www.wienerphilharmoniker.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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