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어철? 선상낚시!
고등어철? 선상낚시!
  • 오대진 기자|사진 하정숙
  • 승인 2016.01.26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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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내 이야기, 다섯

매번 자존심만 구기다 지난 낚시 캠핑에서 몇 마리 낚긴 했지만 사나이 자존심에 간 금은 쉽사리 회복되지 않았다. 이제 막 십여 차례 낚시 바늘을 만져 본 사내놈도 씩씩 거리는 마당에 30년 넘게 손맛을 즐긴 사내는 오죽할 터.

두 사내 모두 절치부심. 제대로 마음먹었다. ‘이게 손맛이다, 이게 낚시다, 이게 인생의 기다림이다’를 보여주려고. 그리고 통했다.

“이번 낚시 캠핑 무대는 어디냐?”
“손 맛 제대로 볼 수 있는 곳이요.”
“그게 어디냐? 아빠도 찾아봤다. 지금 포항이 고등어철이란다.”
“헐, 저도 포항 선상낚시 알아보고 있었는데….”
“오케이, 그럼 이번에는 포항. 아빠 친구들 말로는 던지면 올라온단다.”
“진짜 이번에는 한 50마리는 잡아야겠어요. 회 떠 먹고, 구워 먹고, 조려 먹고, 쪄 먹고. 회사 사람들한테도 나눠주고 그래야겠어요. 자랑도 좀 하고요.”

모든 것이 정해졌다. 장소는 포항 양포항, 낚싯배는 양포 최강 웨이브호, 주 타겟은 고등어. 낚시 초짜 아들과 30년 낚시 인생 아버지 모두 낚싯배는 처음. 사진작가로 나선 어머니 역시 마찬가지. 다들 얼굴에 기대감이 한 가득이다.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의 선장님이 기대감에 불을 지핀다.

“요즘 고등어철 아입니까. 넣으면 올라옵니더. 1월까지는 마 쭉쭉 올라옵니더.”
“아, 그래요? 삼치랑 도다리는요?”
“삼치는 끝났다 아입니까. 도다리는 봄이나 되야 입질합니더.”

내심 삼치를 기대했지만 고등어가 어딘가. 밥반찬만 할 수 있다면. 낚싯배에 오른다. 파도에 따라 꿀렁꿀렁 하는 게 한강서 탄 오리배를 떠올리게 한다. 뱃전 위에 꽂혀 있는 낚싯대 역시 처음 본 광경. ‘서울 촌놈 티내면 안되는데….’ 양포항에서 출항하는 낚싯배는 대부분이 오전 7시~11시, 오후 1시~5시 스케줄로 움직인다. 요금은 1인당 4만 원. 준비물은 없다. 낚싯대, 미끼 일체 모두 제공.

뿌연 연기를 내뿜으며 육지를 밀친다. 금세 속도를 내 항구를 빠져나오자 더욱 거침없다. ‘철썩철썩’ 거친 파도를 헤치며 포인트로 향한다. 크지 않은 배라 그런지 덩치 큰 파도에 좌우로도 크게 꿀렁인다. 초심자들이 큰 움직임에 움찔움찔 하고 있을 즈음, 반대편 뱃전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경상도 아재 5명은 구수하고 익살스러운 사투리를 주고받으며 이 상황을 즐긴다. 꽤 재미있었는데 알아듣긴 힘들었다. 그렇게 20여 분을 달리니 엔진 소음이 걷힌다. ‘오늘의 포인트로구나.’ 맞은편 배에는 먼저 온 낚시꾼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배가 자리를 잡자 선장님이 미끼를 나누어 주며 낚시 요령을 설명한다.

“새우를 바늘에 껴 가, 바다에 추를 던집니더. 추가 바닥에 다면 릴 서너 번 감아주면 됩니더. 수심은 17m 정도니 마 그리 알고 계심 됩니더.”

짧고 간단한 설명이 진행되는 동안 맞은 편 배에서는 고등어를 간간이 건져 올리고 있었다.
“아부지 보셨어요? 꽤 잡히나 본데요.”
“응, 그러게. 오늘 잡히는 날인가 본데?” 말이 끝나기 무섭게 첫 대를 던진다. 맞은편 낚시꾼들의 호성적(?)에 몸이 바로 반응했다. 채 5분이 지나지 않았다. 진짜다. 선장님과 이런저런 말을 섞던 아부지가 최근 보인 적 없었던 날래고 민첩한 몸놀림으로 스텝을 밟았다. 낚싯대가 통통 튀지만 잠시 기다리며 때를 기다린다. 그리고는 곧바로 치켜 올려 ‘위잉위잉’

“대진아 왔다. 크다 커. 어우, 꽤 쎈 놈이야.”
릴은 계속 감긴다. 퍼런 바닷물 밑으로 보인다.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는 은색 형체가.
“여차! 잡았다. 아빠가 1등이다. 하하.”
“이야. 하하. 던지자마자 바로 올라오네요.”
“그러네. 캬. 어이구. 1타 2피였네!”

고등어 두 마리가 낚싯줄에 몸을 퍼덕거리며 떨고 있었다. 이제껏 보지 못한 광경에 어머니는 연신 셔터를 누른다. 경상도 아재들을 비롯해 여기저기서 20여 명의 축하 목소리가 이어진다. ‘하하. 오늘 할 맛 나는 날이구나.’ 크기는 생각보다 작았다. 식탁에 올라오는 놈을 생각했는데 한 2/3 정도 되는 손바닥보다 조금 큰 놈들이었다.

아버지가 손맛을 보셨으니 이제 내 차례다. 낚싯대 끝 부분에서 눈이 떠나질 않는다. 응? 뚫어지게 보고 있는데 뭔가 움직임이 있다. 위아래로 불규칙하게 투둑투둑 떨리는 게 느껴진다. 내 낚싯대가 아니다. 옆 낚싯대다.

“아들, 또 왔다. 또 왔어.” 이번에도 아버지다. 낚시 바늘을 물고 바다 속을 휘젓고 다니는 폼이 꽤 큰 놈인가 보다.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내자 예상이 맞았다. 처음 올라온 놈들보다 덩치가 있다. 소식을 듣고 떼가 몰려왔나보다. 여기저기서 “왔어!” 타령이다.

“이 놈아 고랜데?” , “상어네!? 이거 밀당 해야겠는데?” 경상도 아재들은 큰 놈들과 사투(?)를 벌이며 농을 주고받는다.

드디어 올 것이 왔다. 탑가이드가 파르르 떨린다. 잽싸게 다가가 낚싯대를 치켜들고 릴을 감았다. ‘그래, 이게 손맛이지.’ 신나게 릴을 감자 은색 고등어 한 마리가 ‘퉁!’ 하고 올라온다. 서해에서 망둥어를 건져 올릴 때와는 다른 손맛이다. 아니, 이게 손맛이고 그건 손맛이 아니다. 하하. ‘이 맛에 낚시를 하는구나.’ 여기저기 난리가 났다. 경험 좀 있어 보이는 경상도 아재들은 1타 3피에 이어 1타 4피까지 줄줄이 사탕처럼 고등어를 건져 올린다. 채 1시간이 지나지 않은 우리 투망에도 벌써 7~8마리가 팔딱거렸다.

선장님은 “어제 KBS서 고등어 잡으러 왔는데 한 마리도 못 건지고 갔다 아임니까. 며칠 전만해도 제주도에 태풍이 와서 바닷물이 뒤집혔는데 오늘은 잠잠허니 고등어 건지기에 괜찮은 날씸더”란다. 오늘은 확실히 되는 날. 이어 “고등어회 허시겠소? 드실라면 몇 마리 주이소”라며 주방에서 칼과 도마를 꺼내온다. 뱃사람답게 이리저리 칼질하고 비늘을 벗기자 금세 큼지막한 접시에 고등어회가 수북이 쌓인다. 각종 야채와 간장에 초고추장까지 세팅 완료. 배 위에서 갓 잡은 생선회를 이렇게 빨리 접할 줄을 몰랐다. 그것도 쉽게 맛보지 못한다는 고등어 회를(고등어는 성격이 급해 잡히면 이리저리 발버둥을 치다 금방 죽는단다. 그래서 산지가 아니면 회로는 쉽게 접할 수 없다고).

“맛나다. 참으로 맛나.”
“니는 한 따까리 하고 입에 쳐 넣는 기가?”
“아까 못 봤습니꺼, 고래랑 상어 잡은 거? 회 뜬 거 반은 제가 잡은 겁니더.”

아재들의 농이 참으로 맛깔난다. 이어 술잔까지 기울이며 더 흥겨운 시간을 갖는다. 재미있게 낚시하시네. 하하. 아버지랑 부드러운 식감의 고등어회를 몇 점 입에 넣었는데 어머니가 드시질 않는다. 얼굴이 이미 하얘졌다. ‘멀미 하시는구나….’ 낚시에 빠져 어머니를 신경도 못 썼다. 꿀렁임이 심해서인지 선체 안에는 이미 몇 사람이 누워 뱃멀미와 씨름하고 있었다. 서둘러 온다고 멀미약을 챙기지 못했다. 힘들어 하는 어머니 얼굴을 보니 준비성 없는 못난 아들이 더 원망스러웠다. 대형 여객선도 아니고 통통배 수준인데 챙기지 못했으니 말 다했다.

회 한 상차림을 뒤로하고 다시 낚시에 집중. 다른 곳에 정신 팔지 못하게 띄엄띄엄 고등어가 올라온다. 아버지는 1타 3피, 아들은 1타 2피까지 맛봤다. 1시에 시작한 낚시가 어느덧 3시를 넘어선다. 선장님은 4시30분까지 하고 철수한단다. 투망을 살펴보니 꽤 많다. 언뜻 보니 15마리는 족히 넘어 보인다.

“50마리는 못 채워도 30마리는 채워야져.”
“그래, 오늘 그 정도는 가능할 것 같다. 오늘 목표다. 30마리가.”
투둑투둑. 빗방울이 떨어진다. 저녁때나 되어야 온다는 비가 조금 일찍 찾아왔다. 이후 성적도 신통치 않다. 철수 전에 투망을 끌어올려보니 고등어만 딱 18마리다. 횟감 3마리에 중간에 방생한 전갱이에 우럭 새끼 고등어 새끼 2마리까지 더하면 총 25마리.

“이 정도면 만족스러운데요?
“그러게 말이다. 많이 잡힌다 잡힌다 해도 이 정도는 생각도 못했는데 말이다.”
초짜 선상낚시꾼들의 입에서 웃음이 떠나질 않는다.
다섯 번째 낚시 캠핑까지 스코어. 꺽지 한 마리, 망둥어 다섯 마리, 고등어 스물세 마리, 전갱이 한 마리, 우럭 한 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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