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내 이야기, 다섯
매번 자존심만 구기다 지난 낚시 캠핑에서 몇 마리 낚긴 했지만 사나이 자존심에 간 금은 쉽사리 회복되지 않았다. 이제 막 십여 차례 낚시 바늘을 만져 본 사내놈도 씩씩 거리는 마당에 30년 넘게 손맛을 즐긴 사내는 오죽할 터.
“이번 낚시 캠핑 무대는 어디냐?”
“손 맛 제대로 볼 수 있는 곳이요.”
“그게 어디냐? 아빠도 찾아봤다. 지금 포항이 고등어철이란다.”
“헐, 저도 포항 선상낚시 알아보고 있었는데….”
“오케이, 그럼 이번에는 포항. 아빠 친구들 말로는 던지면 올라온단다.”
“진짜 이번에는 한 50마리는 잡아야겠어요. 회 떠 먹고, 구워 먹고, 조려 먹고, 쪄 먹고. 회사 사람들한테도 나눠주고 그래야겠어요. 자랑도 좀 하고요.”
모든 것이 정해졌다. 장소는 포항 양포항, 낚싯배는 양포 최강 웨이브호, 주 타겟은 고등어. 낚시 초짜 아들과 30년 낚시 인생 아버지 모두 낚싯배는 처음. 사진작가로 나선 어머니 역시 마찬가지. 다들 얼굴에 기대감이 한 가득이다.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의 선장님이 기대감에 불을 지핀다.
“요즘 고등어철 아입니까. 넣으면 올라옵니더. 1월까지는 마 쭉쭉 올라옵니더.”
“아, 그래요? 삼치랑 도다리는요?”
“삼치는 끝났다 아입니까. 도다리는 봄이나 되야 입질합니더.”
내심 삼치를 기대했지만 고등어가 어딘가. 밥반찬만 할 수 있다면. 낚싯배에 오른다. 파도에 따라 꿀렁꿀렁 하는 게 한강서 탄 오리배를 떠올리게 한다. 뱃전 위에 꽂혀 있는 낚싯대 역시 처음 본 광경. ‘서울 촌놈 티내면 안되는데….’ 양포항에서 출항하는 낚싯배는 대부분이 오전 7시~11시, 오후 1시~5시 스케줄로 움직인다. 요금은 1인당 4만 원. 준비물은 없다. 낚싯대, 미끼 일체 모두 제공.
“새우를 바늘에 껴 가, 바다에 추를 던집니더. 추가 바닥에 다면 릴 서너 번 감아주면 됩니더. 수심은 17m 정도니 마 그리 알고 계심 됩니더.”
짧고 간단한 설명이 진행되는 동안 맞은 편 배에서는 고등어를 간간이 건져 올리고 있었다.
“아부지 보셨어요? 꽤 잡히나 본데요.”
“응, 그러게. 오늘 잡히는 날인가 본데?” 말이 끝나기 무섭게 첫 대를 던진다. 맞은편 낚시꾼들의 호성적(?)에 몸이 바로 반응했다. 채 5분이 지나지 않았다. 진짜다. 선장님과 이런저런 말을 섞던 아부지가 최근 보인 적 없었던 날래고 민첩한 몸놀림으로 스텝을 밟았다. 낚싯대가 통통 튀지만 잠시 기다리며 때를 기다린다. 그리고는 곧바로 치켜 올려 ‘위잉위잉’
“대진아 왔다. 크다 커. 어우, 꽤 쎈 놈이야.”
릴은 계속 감긴다. 퍼런 바닷물 밑으로 보인다.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는 은색 형체가.
“여차! 잡았다. 아빠가 1등이다. 하하.”
“이야. 하하. 던지자마자 바로 올라오네요.”
“그러네. 캬. 어이구. 1타 2피였네!”
고등어 두 마리가 낚싯줄에 몸을 퍼덕거리며 떨고 있었다. 이제껏 보지 못한 광경에 어머니는 연신 셔터를 누른다. 경상도 아재들을 비롯해 여기저기서 20여 명의 축하 목소리가 이어진다. ‘하하. 오늘 할 맛 나는 날이구나.’ 크기는 생각보다 작았다. 식탁에 올라오는 놈을 생각했는데 한 2/3 정도 되는 손바닥보다 조금 큰 놈들이었다.
아버지가 손맛을 보셨으니 이제 내 차례다. 낚싯대 끝 부분에서 눈이 떠나질 않는다. 응? 뚫어지게 보고 있는데 뭔가 움직임이 있다. 위아래로 불규칙하게 투둑투둑 떨리는 게 느껴진다. 내 낚싯대가 아니다. 옆 낚싯대다.
“아들, 또 왔다. 또 왔어.” 이번에도 아버지다. 낚시 바늘을 물고 바다 속을 휘젓고 다니는 폼이 꽤 큰 놈인가 보다.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내자 예상이 맞았다. 처음 올라온 놈들보다 덩치가 있다. 소식을 듣고 떼가 몰려왔나보다. 여기저기서 “왔어!” 타령이다.
“이 놈아 고랜데?” , “상어네!? 이거 밀당 해야겠는데?” 경상도 아재들은 큰 놈들과 사투(?)를 벌이며 농을 주고받는다.
선장님은 “어제 KBS서 고등어 잡으러 왔는데 한 마리도 못 건지고 갔다 아임니까. 며칠 전만해도 제주도에 태풍이 와서 바닷물이 뒤집혔는데 오늘은 잠잠허니 고등어 건지기에 괜찮은 날씸더”란다. 오늘은 확실히 되는 날. 이어 “고등어회 허시겠소? 드실라면 몇 마리 주이소”라며 주방에서 칼과 도마를 꺼내온다. 뱃사람답게 이리저리 칼질하고 비늘을 벗기자 금세 큼지막한 접시에 고등어회가 수북이 쌓인다. 각종 야채와 간장에 초고추장까지 세팅 완료. 배 위에서 갓 잡은 생선회를 이렇게 빨리 접할 줄을 몰랐다. 그것도 쉽게 맛보지 못한다는 고등어 회를(고등어는 성격이 급해 잡히면 이리저리 발버둥을 치다 금방 죽는단다. 그래서 산지가 아니면 회로는 쉽게 접할 수 없다고).
“맛나다. 참으로 맛나.”
“니는 한 따까리 하고 입에 쳐 넣는 기가?”
“아까 못 봤습니꺼, 고래랑 상어 잡은 거? 회 뜬 거 반은 제가 잡은 겁니더.”
아재들의 농이 참으로 맛깔난다. 이어 술잔까지 기울이며 더 흥겨운 시간을 갖는다. 재미있게 낚시하시네. 하하. 아버지랑 부드러운 식감의 고등어회를 몇 점 입에 넣었는데 어머니가 드시질 않는다. 얼굴이 이미 하얘졌다. ‘멀미 하시는구나….’ 낚시에 빠져 어머니를 신경도 못 썼다. 꿀렁임이 심해서인지 선체 안에는 이미 몇 사람이 누워 뱃멀미와 씨름하고 있었다. 서둘러 온다고 멀미약을 챙기지 못했다. 힘들어 하는 어머니 얼굴을 보니 준비성 없는 못난 아들이 더 원망스러웠다. 대형 여객선도 아니고 통통배 수준인데 챙기지 못했으니 말 다했다.
“50마리는 못 채워도 30마리는 채워야져.”
“그래, 오늘 그 정도는 가능할 것 같다. 오늘 목표다. 30마리가.”
투둑투둑. 빗방울이 떨어진다. 저녁때나 되어야 온다는 비가 조금 일찍 찾아왔다. 이후 성적도 신통치 않다. 철수 전에 투망을 끌어올려보니 고등어만 딱 18마리다. 횟감 3마리에 중간에 방생한 전갱이에 우럭 새끼 고등어 새끼 2마리까지 더하면 총 25마리.
“이 정도면 만족스러운데요?
“그러게 말이다. 많이 잡힌다 잡힌다 해도 이 정도는 생각도 못했는데 말이다.”
초짜 선상낚시꾼들의 입에서 웃음이 떠나질 않는다.
다섯 번째 낚시 캠핑까지 스코어. 꺽지 한 마리, 망둥어 다섯 마리, 고등어 스물세 마리, 전갱이 한 마리, 우럭 한 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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