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가 가진 모든 걸 버리고 나면”
“그대가 가진 모든 걸 버리고 나면”
  • 이두용 차장
  • 승인 2016.01.23 09: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사키 후미오의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

내가 기억하는 할머니는 밖에 나갔다가 오시면 손에 늘 뭔가를 들고 들어오셨다. 보통은 당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사오시거나 누군가에게 얻어온 것들이었는데 길에서 주워오는 고물 같은 것도 꽤 많았다. 그리고 집 여기저기에 처박아 두셨다. “언젠가 쓸 일이 있을 거야”라는 말씀과 함께. 그것들 대부분은 거의 사용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사실 쓸모없는 것이 더 많았다. 결국, 할머니가 수십 년 모아온 쓸모 있다던 그것들은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고스란히 버려졌다.

가지고 있는 것을 버리기란 쉽지 않다. 그것을 가지기까지의 대가지불이 아까워서다. 비용과 시간, 열정 등이 들어 있는 물건은 본전이 생각나서도 쉽게 버리지 못한다. 거기에 달곰한 혹은 가슴 아린 추억이라도 담겨 있으면 그 물건은 원래 가치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자신만의 의미가 포함된다. ‘나보고 이걸 버리라고? 절대 못하지!’

하지만 필요한 것과 가지고 싶은 것은 극명하게 다르다. 우린 필요 이상의 물건들을 가지고도 있는 것들에 대한 만족보다 없는 것에 대한 동경에 가슴앓이를 한다. 실제로 외출이라도 할라치면 옷장 가득 쌓인 옷들을 보면서 “입을 옷이 하나도 없네”라고 투덜거리거나, 사놓고 읽지 않은 책이 수북한데도 휴가에 읽을 책을 고를 땐 베스트셀러에 눈길을 돌리는 일이 허다하다.

- 필요한 물건은 전부 갖고 있으면서도 내게 없는 물건에만 온통 신경이 쏠려 있으니 조금도 행복하지 않았다. 저것만 손에 넣으면 나는 행복해질 수 있는데, 저것이 없어서 행복하지 않다는 생각만 들었다. (p.48)

이 책의 저자 사사키 후미오도 우리와 별반 다름없는 삶을 살았다고 한다. 10여 년간 좁은 집안에 온갖 물건을 쌓아두고 그것이 행복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믿었다. 지금 자신에게 있는 많은 물건을 두고 내게 없는 남이 가진 하나가 더 필요하다고 느껴 욕심냈다. 그리고 계획에도 없던 소비를 이어갔다. 사사키 후미오는 자신의 행복을 위해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필요 이상의 물건과 생각, 시간소모 들을 버리고 미니멀리스트가 되라고 말한다.

- 내가 생각하는 미니멀리스트는 자신에게 정말로 필요한 물건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사람이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며 물건을 갖고 싶어 하는 사람이 아니라 무엇이 소중한지를 알고 그 외의 물건을 과감히 줄이는 사람이다.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이 소중한지는 사람마다 다르다. 미니멀리즘에 정답은 없다. (p.52)

저자마다의 실천방법이 조금씩 다른 것을 제외하면 사실 미니멀리즘이나 효과적인 정리에 관련한 책들은 기존에도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은 워낙 구체적인 방법이 많아 한 번쯤 실천해보고 싶은 욕구가 들게끔 한다. 책을 읽다 보면 중간 즈음에서 미니멀리즘의 정점은 무소유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저자가 주장하는 내용의 요지가 많은 부분 법정스님의 수필 ‘무소유’의 내용과 닮아 있기도 하다. 무소유를 잠깐 들여다보자면 스님은 책에서 이런 말씀을 했다.

- 나는 지난해 여름까지 난초 두 분을 정성을 다해 길렀는데 실수로 이 난초를 뜰에 내놓는 바람에 죽어버린 것이다. 나는 햇볕을 원망할 정도로 안타까웠지만, 너무 난초에게 집념한 게 아닌지 곧 반성한다. 나는 기르던 난초가 죽어버린 일로 무소유의 의미를 깨닫게 된 것이다. 나는 우리들의 소유 관념이 우리들의 눈을 멀게 한다고 충고한다. 크게 버리는 사람이 크게 얻을 것이라고 나는 말한다. 아무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는 게 무소유의 진정한 의미라고 나는 강조한다.

무소유에서도 그렇듯 미니멀리즘은 단순히 물욕을 버리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물건을 버리면서 쌓인 내공으로 마음에 담긴 쓸데없는 생각을 버리는 단계까지 올라가야 진정한 미니멀리스트라고. 물욕으로 비롯해 생겨났던 남과의 비교와 불안감, 불필요한 소비계획 등을 버리고 나면 지금의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으니 물건을 버리고 난 뒤 쾌적한 집처럼 마음도 가벼워진다는 말이다.

- 나는 미래를 위해 모아둔 물건과 과거를 위해 가지고 있었던 물건을 많이 버리고 나서 현재의 일만 생각하게 되었다. 미래의 뭔가를 두려워하는 일은 이제 없을 것이다. (p.250)

- 타인의 생각은 어떻게 해도 증명할 길이 없다. 증명할 수 없는 일에 계속 얽매여 있겠다면 어쩔 수 없다. 남의 시선이 두려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하지 못하는 게 안타까울 따름이다. (p.203)

찔렸다. 할머니 얘기로 책 이야기를 꺼내들었지만 나 역시 물건에 대한 집착이 만만치 않다. 할머니 피를 이어받은 게 분명하다. 이따금 집안 대청소를 하면 쓸데도 없으면서 남이 가지고 있어서 구입한 것들이 제법 쏟아져 나온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오랜 고민 끝에 결정한 소비였다는 생각에 불확실한 ‘언젠가’라는 미래의 쓰임을 위해 그저 방치되고 있었다.

▲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 저자 사사키 후미오 / 역자 김윤경 / 비즈니스북스 / 276페이지 / 1만3800원
이 책이 즐거운 건 ‘너의 행복을 위해 무조건 버려라’라는 강요보단 ‘집안에 있는 쓸모없는 물건 버리기 8대 원칙’과 함께 ‘물건을 줄인 후 찾아온 12가지 변화’라는 당근과 채찍을 함께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여러 번 고개를 갸웃했지만 말미에 물건을 버린 후 찾아온다는 변화에 매력을 느꼈다. 나도 한 번쯤 도전해보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 저자는 미니멀리스트가 되었을 때 생기는 12가지 변화를 이렇게 말한다. 시간이 생기고, 생활이 즐거워지며 자유와 해방감을 느끼고, 남과 비교하지 않으며, 남의 시선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행동하는 사람이 되고, 집중력이 높아지고, 절약하고 환경을 생각하게 되고, 건강하고 안전해지며, 인간관계가 달라지고, 지금 이 순간을 즐길 수 있으며, 감사하는 삶을 산다고.

단순한 책 한 권에 인생이 송두리째야 바뀌지 않겠지만, 아직 초반부인 2016년, 차분하게 주변 환경과 마음가짐에 변화를 꾀하고 싶다면 책을 덮고 난 뒤의 실천을 각오하고 책 읽기에 도전해봐도 좋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