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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k Column|못난이 돌부처
Desk Column|못난이 돌부처
  • 서승범 차장
  • 승인 2016.01.05 1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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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주사 아시죠? 전라남도 화순 운주사. 화순은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화순 주변으로 관광지 혹은 여행지로 방귀깨나 뀌는 고장들이 자리 잡고 있거든요. 위로는 무등산국립공원의 광주가 있고 옆에는 담양 소쇄원이 있지요. 동쪽으로는 남원과 구례의 지리산, 밑으로는 순천만, 다시 남쪽으로는 월출산국립공원의 영암. 그렇다고 화순이 주눅 들진 않습니다. 운주사가 있거든요. 사람들은 ‘화순’하면 ‘어디?’하고 5초쯤 생각하다가 ‘혹시 화순 운주사 그 화순?’하고 되묻습니다. 네, 그 화순 맞습니다. 지난가을 어느 날 운주사에 다녀왔습니다.

운주사가 유명한 건 천불천탑 혹은 와불 때문입니다. 여느 절에서는 볼 수 없는 형태거든요. 운주사는 참 특이합니다. 보통 절에 가면 일주문과 천왕문(눈 부라린 사천왕상이 선)을 지나 대웅전에 이릅니다. 대웅전에는 불상이 있고 대웅전 앞마당에는 탑이 있죠. 운주사는 그렇지 않습니다. 절 곳곳에 갖가지 모양의 탑들이 울쑥불쑥 솟아 있고, 불상들도 그냥 이곳저곳에 있습니다. 널렸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정도로 말이죠. 심지어 목이 잘린 불상의 몸통도 있고, 몸통 없이 머리 부분만 놓여있기도 합니다. 크기도 다양해서 불상의 크기가 10m인 것부터 한두 뼘 정도의 불상도 있더군요. 위치도 제각각이어서 일주문에서 대웅전에 이르는 잔디밭 곳곳에도 있고 운주사를 둘러싼 산줄기 능선에도 간혹 탑이 불쑥 보입니다. 게다가 탑과 불상의 생김새가 정교하거나 아름답다기보다는 소박하고 친근했습니다. 그래서 하나하나 돌아볼 때는 별 감흥이 없었습니다. 몇은 대화를 나누는 듯했습니다. “너도 불상이냐? 나도 불상이다.”

일주문을 들어서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높은 석탑입니다. 세어보니 9층입니다. 이름도 단순히 구층석탑입니다. 비례미가 있거나 탑에 아름다운 조각상이 새겨져 있다거나, 그런 거 없습니다. 더 눈에 띄는 건 기단입니다. 탑을 쌓기 전에 바닥공사 하듯 까는 돌을 기단이라 하는데 대부분 네모반듯한 돌을 사용합니다. 보기에도 좋고 탑도 안정적으로 올릴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구층석탑의 기단은 넓적한 자연석인 것 같습니다. 그것도 다른 곳의 자연석을 탑의 위치로 적당한 이곳으로 옮긴 게 아니라 넓대대한 돌이 있는 곳에 탑을 쌓은 것으로 보입니다. 덤벙기단인 셈이죠. 건물의 기둥에는 주춧돌이 있는데 다듬지 않고 자연석 그대로 쓴 주춧돌을 덤벙주초 혹은 막돌주초라고 하거든요. 개심사에 가시거든 대웅전 기둥 밑을 잘 봐보세요. 구층석탑이 제법 멋있어 보입니다.

와불을 보러 산에 올랐습니다. 두 와불은 햇볕 좋은 능선에서 일광욕을 하고 있습니다. 눈은 지그시 감고 있고 두 손은 모으고 있습니다. 옷을 표현한 주름은 단순하게 몇 개가 쭉 파였습니다. 신앙의 대상이었을 불상 앞에서 “큭”하고 웃음이 터진 건 두 불상의 모양 때문입니다. 영락없는 홀쭉이와 넓죽이입니다. 그것도 어느 정도여야죠. 처음 홀쭉한 와불을 봤을 땐 불상인지도 몰랐습니다. 다시 들여다보니 뭔가 문양이 있었고 자세히 쳐다보니 불상이었던 겁니다. 얼굴 크기가 넓죽이 불상의 삼분지일도 채 되질 않습니다. 물러서서 전체를 보면 와불은 돌침대 위에 누워있는데, 돌침대와 일체를 이룬 듯합니다. 소파와 일체를 이루는 주말의 아빠들처럼요.

웃자고 한 이야기고, 사실 이는 와불을 깎아 이곳에 둔 게 아니라 여기에 있던 거대한 돌을 깎아 와불을 새겼다는 걸 뜻하겠죠. 원래 암석의 모양도 지금의 모양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을 겁니다. 눈코입이 없었고 손이 돌 속에 묻혀 있었겠지요. 이래봬도 운주사에서 가장 유명한 대표 불상인데, 온화하고 자비로운 미소라거나 후덕한 인상은 느껴지지 않습니다. 조금 심심한 듯, 소박한 듯. 혹시 압니까, 이 돌에 새겨질 불상은 원래 그렇게 생길 수밖에 없었던 건지. 미켈란젤로가 말했다던가요. “나는 대리석에서 천사를 보았고 천사가 자유롭게 풀려날 때까지 조각을 하였다” 산정의 넓적한 돌에서 부처의 모습을 본 그들은 누구였을까요.

천불천탑이라 하지만 지금은 석불 100여 구와 석탑 21기 정도만 남아 있다 합니다. 지금도 도처에 널린 게 석불이고 석탑인 것 같은데 예전엔 어땠을까요? 꼭 1.000개씩이 아니라 해도 수두룩하게 이곳저곳을 장식하고 있었겠죠. 전하는 말에 따르면 인근 마을 사람들이 가져갔다 합니다. 불상으로 모시려고 가져간 건 아니고 넓적한 건 빨래판으로 쓰고 패인 건 절구로 쓰고 긴 건 봉으로 쓰고 그랬다네요. 돌부처 중에는 유난히 코가 낮은 게 많이 보입니다. 우리나라 사람의 코가 낮아서가 아닙니다. 사람들이 코를 갈아 그 가루를 챙겨갔답니다. 바람난 서방 바람기 잡는 데는 돌부처 콧가루가 최고라는 속설이 있다네요. 남자의 코는 성기를 상징하잖아요. 바람난 서방에게 돌부처 콧가루를 먹이면 서방 역시 돌부처처럼 무덤덤해질 거라 생각했나 봅니다. 천불천탑이 절 이곳저곳을 장식한 장관을 확인할 길이 없어 아쉽긴 하지만 어쨌거나 가난한 사람들의 생활과 소원을 돕고 응원하는 데 쓰였으니 제법 괜찮은 쓰임새 아닐까 싶습니다.

보잘것없는 탑들과 불상들을 부담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즐기고 돌아 나오다 생각했습니다. 조금 과장하자면 돌과 정과 망치만 있다면 나도 이 정도는 만들 수 있겠다. 그러다 다시 생각했습니다.

‘그래 나 같은 사람들이 만들었을 거야. 돌 쪼는 재주도 없고 절에서 본존불 한 번 제대로 볼 기회도 갖지 못한 사람들이 저마다의 간절한 바람을 담아서 서툰 솜씨로 쌓고 쪼고 새기고 했을 거야. 늘 신앙의 객체였던 이들이 주체로 태어나는 순간이 있었겠지. 무지렁이라 불리던 이들은 누군가 지어놓은 절에 들어와 누군가 깎고 쌓은 탑을 돌며 소원을 빌고 누군가 금칠한 부처를 먼발치에서 바라보며 간절한 바람을 청했겠지. 그러다 누군가 그랬겠지. 주변의 돌을 구해 언젠가 한 번쯤 본 적이 있는 부처의 얼굴과 몸을 떠올리며 돌에 새겼겠지. 새기면서 빌었겠지. 우리 아들 이번 전쟁에서 꼭 살아 돌아오게 해달라고. 우리 딸 이번에는 꼭 자식 낳게 해달라고, 그 자식 죽지 않고 아프지 않고 자라게 해달라고. 올해 농사는 좀 잘 돼서 배 좀 곯지 않게 해달라고.’

다시 뒤를 돌아보니 아이들 뛰노는 잔디밭 이곳저곳에 놓인 돌부처들과 돌탑들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습니다. 손 다쳐가며 돌조각 파내던 그들의 바람은 얼마나 이루어졌을까요. 우리는 그때보다 얼마나 나은 세상을 살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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