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짐은 언제나 슬프다
헤어짐은 언제나 슬프다
  • 글 사진 정효진 기자
  • 승인 2015.12.02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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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여행자의 지구별 자전거 여행

오전 7시부터 달리기 시작했다. 얼마 안 가 온몸이 땀에 흠뻑 젖었다. 힘든 오르막을 올라 정상에 도달하니 저 멀리 끝이 보이지 않는 사막이 보였다. 많은 사람이 사막지형을 “볼 게 없다”, “지루하다”고 했다. 하지만 언덕에서 내려다본 사막 풍경에 나는 심장이 두근거렸다. 갑자기 가슴이 확 트이는 거 같았다. 내가 가고 싶어하는 우주의 한 풍경과 닮아서 그런 걸까? 아무렴 어떠랴, 끝이 보이지 않는 사막 지형에서 홀로 자전거를 타며 더위에 청춘을 불태웠다.

전설적인 66번 국도를 마주하다
슈퍼에 과자를 사러 들어갔다가 나를 불러 세우는 현지인과 만났다. 자기는 집이 두 개인데 원하면 하룻밤 쉬었다 가도 좋다고 했다. 아침 10시밖에 안 되었지만 이미 45km나 달렸기에 샤워도 할 겸 그의 초대를 감사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집 한 채를 통째로 빌려 쓰게 되어서 편하게 샤워도 하고 저녁엔 멋진 밤하늘도 구경했다. 우연히 만난 사람 덕분에 여유로운 하루를 보내게 되었다.

다음 날, 허허벌판 사막에서 다시 자전거를 타는데 사람들이 사는 집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볼 게 없어서 모든 걸 볼 수 있는 사막지형에 감탄하며 달리다가 전설적인 66번 국도 (Route 66) 사인을 마주하게 되었다.
66번 국도는 미국의 중심 도로 (Main Street USA, Main Street of America)라 불릴 만큼 유명한 도로이다. 66번 국도가 유명한 이유는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서부에서 뉴욕 동부까지 이어지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유명한 가수 밥 트루프(Bob Troup)가 1946년에 <Route 66>라는 노래를 만들어서 히트했기 때문이다. 노래 가사는 국도가 지나는 도시의 여러 관광지를 재미있게 표현하고 있다.

▲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66번 국도에 서다.

66번 국도 주변에는 트레일러 몇 채와 우체국이 보였다. 이 도시에는 8명이 살고 있고 4개의 트레일러에 나눠 산다고 한다. 1명의 보안직원이 7명을 돌보고 있다길래 굉장히 안전하게 느껴졌다. 우체국 뒤에 텐트를 쳐도 되느냐 물으니 보안직원은 나무 그늘 밑에 텐트를 편하게 치라고 한다. 보안직원은 물도 6통이나 선물로 줬다.

다음 날 아침 6시 30분부터 오후 12시 30분까지 계속 오르막이 이어졌다. 급경사는 아니었지만, 날씨가 너무 더워 결국 자전거를 끌고 올라갔다. 잠시 쉬고 있는데 차 한 대가 물을 주면서 괜찮으냐고 계속 묻더니 그러지 말고 그냥 자기 차에 타라고 했다. 앞으로 계속 오르막이라기에 결국 그의 차를 얻어 타기로 했다. 이후 나는 가장 큰 후회를 하게 되었다. 얼마 안 가 내리막길이 나왔기 때문이다. 새벽 6시부터 오후 12시까지 내리막길 하나만 믿고 땀 뻘뻘 흘려 왔는데, 이렇게 차를 타고 내리막길을 가니 너무 허무했다. 심지어 나 자신에게 화까지 나기도 했다. 땀을 낭비했던 날이다.

▲ 내 가방을 뒤지는 도둑을 현장에서 잡았다.

라스베이거스에서 딱 한 판만 해야지

라스베이거스에서 웜샤워(자전거 여행자를 자기 집에 초대해 주는 사이트)를 통해 특별한 사람의 집에 머물게 되었다. 내 호스트 마이크는 올해 50살인데 내년에 집과 차 등 모든 걸 다 팔고 자전거 세계 여행을 한다고 했다. 길에서 만나는 많은 사람의 얘기는 언제나 나를 설레게 한다. 그는 20살 때부터 경찰서에서 일했으며 얼마 전에 은퇴했다. 40대 후반의 은퇴지만 워낙 어렸을 때부터 일 해 매달 나오는 연금이 3000달러가 넘는다.

다음 날 저녁 늦게 드디어 카지노장에 들어갔다. 솔직히 나는 잘 모르겠다. 로또 같은 것에 당첨되어서 큰돈을 한순간에 벌게 되면 인생이 슬퍼질 거 같다. 돈벼락을 갑자기 맞게 되면 삶이 허무해지지 않을까? 혹시 돈벼락을 맞으면 내 삶이 너무 슬퍼질 거 같아서 딱 한판만 하기로 했다. 다행히 3달러 정도 얻게 되었다. 이 정도면 대만족이다.

▲ 라스베이거스의 밤거리.

라스베이거스에서 유명한 것은 도박 이외에도 또 있다. 그것은 바로 뷔페다. 카지노 뷔페는 저렴하기로 유명하다. 마이크가 사막 횡단을 축하하며 뷔페를 대접했다.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에 모든 종류의 음식을 다 먹었다. 오랫동안 밥을 먹으며 마이크와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동안 내가 만났던 현지인 호스트 중 마이크와 가장 많은 대화를 했다.

떠나는 날 마이크는 또다시 나를 뷔페에 데려갔다. 마이크는 내가 먹는 모습을 보더니 “너는 자전거로 세계 여행을 해도 살 안 빠질 거니 걱정하지 마”라고 했다. (이 말은 내 자전거 여행에 전설적인 명언으로 남게 된다. 정말 살이 잘 안 빠진다.)

LA에서 캠코더를 산 뒤부터 길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남겨 달라고 했다. 마이크의 영상 메시지 녹화를 마친 후 나도 모르게 눈물이 펑펑 났다. 여행 이래 처음으로 사람 때문에 눈물을 흘렸다. 마이크는 “넌 앞으로 많은 사람을 만날 거고 그러면 헤어질 때 더는 울지도 않을 거야. 헤어짐이 낯설어서 네가 우는 것뿐이야”라며 나를 달랬다. (이 말은 내 자전거 여행에 전설적인 오류로 남게 된다. 몇 년을 여행했지만, 아직도 난 가끔 헤어짐이 슬퍼서 운다.)

▲ 밸리 오브 파이어에서.

화성과 많이 닮은 밸리 오브 파이어(Valley of Fire)

마이크와 헤어진 뒤 밸리 오브 파이어에 도착해 주변 지형을 보니 마치 내가 꼭 화성에 서 있는 것 같았다. 짐을 한 곳에 내려놓고 자전거로 한 바퀴를 둘러봤다. 공원은 꽤 컸는데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 되었다. 공원 이름 그대로 정말 불 타는 계곡처럼 주변이 온통 붉은 돌로 가득했다. 어쩌면 화성에 가지 않아도 될 거 같다는 쓸데없는 자기 합리화를 하며 주변을 구경했다. 유타(Utah)주는 신비한 자연이 가득한 곳으로 유명하다. 아직 유타주에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벌써 이런 걸 보게 되니 감개무량하다.

이날 저녁은 캠핑카에 부탁해서 텐트를 쳤다. 캠핑장은 대부분이 유료다. 여기 캠핑장은 20달러였다. 그런데 밤이 늦으면 주변 직원들이 퇴근해서 그냥 텐트를 쳐도 된다고 들었다. 대신 아침에 직원들 오기 전에 몰래 빠져나가면 된다고 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이 살기 위해 노력했다. 사람들한테 거절 받아 상처를 받는 한이 있어도 ‘몰래캠핑’은 안 하기로 했다.

서리하지 않기. 쓰레기 버리지 않기. 들어가지 말란 곳에 들어가지 않기. 하지 말란 거 하지 말기. 준법정신 지키기. 지역 문화재 보존하기… 나는 여행하면서도 철학을 지킬 수 있게 노력하고 싶다. 결국 한 독일커플이 자기들이 쓰지 않는 캠프그라운드에 텐트를 칠 수 있게 허락해줬다.

▲ 길옆에서 우연히 발견한 신발더미.

Where are you from?

밸리 오브 파이어를 빠져 나오는 길도 멋졌다. 좀 더 광활한 풍경을 담아 보고 싶어서 캠핑카들이 있는 주변으로 갔다. 그러다가 캠핑카 앞에 있던 어떤 아시아 여성과 아침 인사를 나눴다. 한 10분 정도 영어로 대화했다. 북미는 인종이 다양해 자연스레 영어로 이야기를 나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Where are you from?” 물으니 한국사람이라고 한다. 게다가 제주도! 내가 사랑하는 제주도에서 온 사람을 만나다니. 심 봉사가 눈을 뜨듯 우리는 한국말에 입을 뗐다. 그녀는 5년 전에 지금의 남편을 만나서 캠핑카 여행 중이라고 한다.

그녀는 이제 캠핑카 여행이 지겹다고 했다. 서쪽에 집이 있지만 주로 남편과 계속 떠돌아다녔다. 그녀의 남편은 어떻게 38년을 캠핑카로만 미국 여행을 할 수 있지? 미국에는 독특한 사람들이 참 많다. 한국 여성은 캠핑카 안으로 나를 초대한 뒤 한국 음식을 차려줬다. 길에서 우연히 만난 첫 한국인이다.

▲ 모르는 한국 분들에게 110$ 거금을 받았다.

그녀와 작별한 후 자전거에 올랐는데 내리막길이 이어져 오후 3시에 라이딩을 끝내는 신기록을 달성했다. 맥도널드 앞에서 이메일을 체크 하고 있는데 한국말이 들렸다. 반가운 마음에 배시시 웃었더니 자기네들끼리 한국말로 이야기를 했다. 또 배시시 웃었더니 일행 중 한 명이 한국사람이냐고 내게 물어왔다. 5개 주를 여행하러 온 관광객들이었다. 내 여행에 대해서 관심이 많은 듯 질문이 끊이질 않았다. 반가운 마음에 묻는 말에 다 대답했다. 그중 한 분이 자기 삼촌도 자전거 세계여행을 했다고 했다. 그분들은 이만 가봐야 한다며 여행 잘하라고 하고 떠났다.

그런데 몇 분 후, 일행 중 한 분이 돌아오더니 10달러를 쥐여줬다. 자기 삼촌도 자전거 여행하면서 도움 많이 받았다며. 내게 그렇게 도움을 주고는 사라졌다.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다시 몇 분 후에 이번엔 다른 일행 중 한 분이 남편을 데리고 오더니 내게 100달러를 손에 쥐여줬다. 너무 큰돈이라 몇 번이나 거절했는데 괜찮다며 받으라고 주고 갔다. 난 그들의 이름도 모른다. 그들 또한 내 이름을 모른다. 어떻게 모르는 사람에게 큰돈을 줄 수 있는 거지? 기분이 좋았지만, 한편으론 이상했다. 내가 이 돈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 건가? 나는 누군가에게 이렇게 도움을 준 적이 있었는가? 오늘 길에서 만난 인연들은 오랫동안 잊지 못할 거 같다. 이름도 성도 모르지만 마음만큼은 오래된 친구마냥 따뜻했던 이들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 캠핑카에 허락 받고 캠핑그라운드를 빌려 쓰게 됐다.

장엄한 유타주에 들어서다

다들 유타주가 더우니 사막에 가지 말라는 말만 했지, 춥다는 얘기는 없었다. 자전거에 올랐는데 너무 춥다. 하기야 여기는 사막이 아니라 그 유명한 유타주지! 유타주에서는 정말 말 그대로 어디에다 사진기를 대도 멋진 작품들이 나왔다. 자연님은 어떻게 이렇게 멋진 조각을 만들 수 있는거지? 자연님은 미술전공을 하셨나? 우선 유타주에서 유명한 공원 중 하나인 자이온 공원(Zion Park)에 방문했다. 자이온 공원에 들어서자 웅장한 풍경에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웅장한 풍경이 앞으로 계속 나올 거 같다.

▲ 자이온 공원의 멋진 풍경.

다음으로 방문한 곳은 브라이스 캐니언(Bryce Canyon)이다. 사진으로만 보던 풍경을 내 두 눈으로 보게 될지는 전에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게 현실로 일어나고 있었다. 내 두 눈으로 담을 뿐만이 아니라 사진기에도 잔뜩 담았다.

사실 유타주는 내 계획에 없던 곳이다. 그런데 여러 현지인을 만나며 이야기를 듣다가 결정하게 된 루트다. 만약 그들과 소통하지 않고 달렸다면 아마 이런 멋진 풍경들을 놓치지 않았을까.

▲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옷을 여러 겹 껴입었다.

독일인들과의 동거

일정이 빡빡해 결국은 히치하이크를 하기로 했다. 캠핑카 한 대가 섰는데 안에는 커플 하나와 그들의 친구, 총 독일인 3명이 타고 있었다. 독일인들과 가는 목적지가 똑같아서 함께 가기로 했다. 밤늦게 도착했는데 그들은 자기네 캠핑카에서 하룻밤 자고 가라고 했다. 안 그래도 며칠 동안 제대로 씻지 못하고 추위에 벌벌 떠느냐 잠도 못 잤는데 이들 덕분이 캠핑카에서 편하게 하루 잘 수 있었다.

오후에 같이 공원을 한 바퀴 돌고 점심도 같이 먹게 되었다. 독일인들은 며칠 같이 함께 여행하자고 제안 했다. 캠핑카로 여행 다니는 게 꿈이었고 독일 친구들이 너무 친절하고 재미있어 하루 이틀만 더 다니고 헤어지자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계속 다니다 보니 일주일 넘게 늘어났다.

▲ 유타주의 흔한 풍경.

달력에서만 볼 법한 풍경을 이들과 함께 다니며 다 봤던 거 같다. 모뉴먼트 벨리(Monument Valley), 그랜드 캐니언(Grand Canyon), 말굽 협곡(Horseshoe Bend), 엔텔롭 캐니언(Antelope Canyon) 등 유타주의 유명한 곳은 이들과 방문했다.

음식 담당은 존이라는 친구가 항상 했다. 존의 여자친구 카후가 부러웠다. 세상에서 제일 멋진 남자는 요리하는 남자인데 왜 요리하는 남자는 다 여자친구가 있는 걸까. 이들과 함께 다니며 무엇보다 좋았던 건 혼자가 아니라는 것, 누군가와 함께 있다는 것이었다. 멋진 풍경을 봤을 때 함께 얘기를 나누며 칭찬할 수 있는 것이 좋았다. 하지만 헤어지는 날은 또 왔다. 우리 언제 또 만날 수 있을까? 그들 앞에서 눈물을 흘리면 당황해할 거 같아서 헤어지기 전에 몰래 화장실에서 눈물을 훔쳤다. 확실히 마이크는 틀렸다. 눈물은 자주 났다.

▲ 믿기지 않는 자연의 작품.

미국을 떠나 멕시코로

미국인이 가장 두려워하는 나라 멕시코. 그곳에 간다고 하자 모두 겁을 준다. 어떡하지?
한 사진 사이트에 여행기를 올렸었는데 내 여행기를 본 한인 가족이 피닉스 (Phoenix)에 살고 있다며 지나가면 연락하라 했다. 운 좋게도 이 경로를 지나치게 되어 한국인의 집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체력과 마음을 보충했다. 점점 멕시코 국경에 다가가자 많은 현지인이 경고를 시작했다. 국경에 다가갈수록 온갖 끔찍한 이야기가 들렸다. “멕시코 국경에 목이 20개가 잘렸다.” , “어느 국경에선 전날 총싸움이 나서 뉴스에 나왔었다.” 상상도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계속 들렸다. 모두 멕시코에 진짜 갈 거냐고 물으며 겁을 줬다. 멕시코 국경이 가까워질수록 긴장감은 말로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사실 내게 경고를 하는 사람만 있는 건 아니었다. 조심히 다니면 별문제 없다고 하는 사람도 물론 있었다. 미국에서 내가 만난 사람의 98%가 멕시코에 관해 무서운 얘기를 하며 가지 말라고 말렸다. 나머지 2%만이 멕시코도 우리처럼 사람 사는 동네라고 했다. 98%와 2%의 차이는 단순했다. 멕시코에 한 번도 가보지 못한 98%의 사람들은 뉴스를 보면서 멕시코를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동네로 생각하고 있었다. 멕시코를 가본 2%의 사람은 멕시코도 별다를 것 없는 곳이라고 했다.

▲ 그랜드 캐니언의 밤하늘.

멕시코를 가본 2%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달려 보다가 느낌이 좋지 않으면 후퇴해도 늦지 않겠지. 안 가본 사람보다 가 본 사람의 말을 믿는 게 더 낫지 않을까?

미국 국경에서 멕시코 가족의 집에서 지냈다. 그들과 함께 장을 보러 국경도 몇 번 넘나들었다. 국경에 대한 긴장감이 점점 풀렸다. 그래, 한 번 가보는 거다. 내 인생에 가장 큰 모험이라면 아무래도 멕시코 국경 넘기가 아닐까. 뉴스에서 듣는 것보다 실제로 본 사람의 눈을 믿고 가기로했다. 자, 새로운 모험 멕시코가 눈앞에 기다리고 있다. 용기 내서 가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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