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을 넘어, 바람을 따라
언덕을 넘어, 바람을 따라
  • 이슬기 기자|사진 이두용 차장
  • 승인 2015.11.28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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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THLY, HERE ①|안산 대부도 해솔길

어느덧 올해 달력도 마지막 잎새 마냥 달랑 한 장 남고 말았다. 한 해 동안 반짝반짝 빛나던 순간도 있었겠지만 때로는 무언가에 지친 표정을 짓기도 했으리라. 아쉬움은 고이 개켜두고 마음을 짓누르던 짐을 홀가분히 내려놓을 어디론가 떠날 때다. 불어오는 바람에 잊고 싶은 것들 모두 날려 버릴 수 있을, 그런 곳으로 말이다.

▲ 대부도 바닷가에서 만난 소녀들. 물수제비를 띄우느라 여념 없다.

마음을 씻어낼 바람이 필요하다면
가까운 곳으로의 즉흥 여행은 일상의 권태를 벗겨낼 힘을 준다. 떠나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하나하나 계획을 세우는 설렘은 덜 하지만, 문득 탁 트인 하늘이 그립거나 바닷바람이 필요한 날 부담 없이 훌쩍 떠날 수 있는 낭만이 있다. 시가지 내 녹지가 3분의 2 이상에 달하는 녹색 도시 안산은 서울에서 차로 한 시간밖에 걸리지 않아 가볍게 발걸음 하기 좋은 곳이다. 그중에서도 경치가 빼어나 안산의 하와이로 불리는 대부도를 찾았다.
‘큰 언덕’이라는 뜻의 대부도(大阜島)는 서해안에서 가장 너른 섬으로 선감도, 불도, 탄도, 누에섬 등 여러 부속도서들을 거느리고 있다. 시흥시 오이도와 시화방조제로 연결돼 사실상 육지가 되어버렸지만, 섬만이 지닌 서정과 감상은 여전히 오롯하게 남아 숨은 보석처럼 반짝인다. 푸른 바다를 길게 가로지르는 시화방조제길 위, 어느샌가 차창 너머 풍경에 정신을 빼앗기고 말았다. 양옆으로 뻗은 해안선 위 말간 하늘과 부드러운 물결의 일렁임. 여행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날씨다.

▲ 해솔길 곳곳에 이정표가 있어 길을 찾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 대부도는 문득 바다가 보고 싶을 때 부담 없이 찾을 수 있어 좋다.

끝이 안 보이는 광활한 갯벌과 화려한 빛깔로 물드는 석양의 정경, 해산물 푸짐하게 들어간 맛깔 나는 음식이 골고루 버무려진 이 섬의 매력은 대부 해솔길에서 그 정점에 달한다. 모두 7개 코스로 이루어진 해솔길은 안산 9경 중 하나로, 해안선 따라 이어지는 길을 통해 섬 전체를 한 바퀴 둘러볼 수 있도록 조성됐다. 오늘은 1코스인 ‘바다소리 해안둘레길’을 걷기로 했다.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에 바다 내음이 실려 코끝을 스친다.

▲ 탁 트인 대부도의 전경.

구불구불 소나무 길 따라
길 위는 한적하고 고요하다. 나지막한 파도 소리와 갈매기 울음소리만이 가득한 해변길은 곧 대로변으로 이어지는데, 처음 30여 분은 생각보다 단조롭고 지루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북망산 입구에 도달하고 나서야 비로소 본격적인 걷기 코스가 시작된다. “대부도 관광사무소에서 안내 책자를 받을 요량이 아니라면 여기서부터 출발하는 게 낫겠다.” 동행인이 볼멘소리를 냈다.

▲ 깊어진 가을이 느껴지는 오솔길에서의 한 컷.
북망산은 인터넷 지도에서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작은 산이지만, 생각보다 길이 가파르고 험해 오르는 길이 수월하지만은 않다. 구불구불 이어지는 코스는 정겨운 어촌 마을의 정경을 비췄다가 다시금 산길로 향하기를 반복한다. 사람이 오고 간 흔적이 비교적 적은 데다 가을 내 수북이 쌓인 낙엽 때문에 길은 어느새 다 지워져 있었지만, 곳곳에 묶인 색색깔 리본이 이정표 역할을 해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헉헉’ 낮은 산이라고 얕봤다 보기 좋게 녹다운 당하고 말았다. 북망산은 해솔길 1코스의 초입에 불과하기 때문에 무리하지 말아야 남은 길을 걷는 데 부담이 없다. 다시 한 번 등산화 끈을 고쳐 맸다. 머지않아 전망대에 다다를 수 있었다. 꼭대기에 서니 사방에서 상쾌한 바람이 불어와 가슴 깊은 곳까지 개운하게 씻어준다. 후련하다. 눈앞에 하늘과 맞닿은 서해 바다가 펼쳐진다. 오른쪽 바다 멀리 송도 신도시와 인천대교가 보인다.
“빨리 서둘러~.” 북망산에서 내려와 구봉도로 향하는 길 위로 낯선 목소리가 울려 고개를 돌렸다. 빨간 고무 대야 앞에 쭈그리고 앉은 아주머니였다. “빨리 안가면 너무 깜깜해져서 못 가. 여기는 버스도 택시도 없어.” 마음이 조급해졌다.

아름답게 물드는 석양을 바라보며
해솔길을 걷다 땅의 끄트머리에 도착하면 밀물과 썰물에 끊어졌다 이어지기를 거듭하는 섬이 나오는데, 이곳을 잇는 다리가 바로 개미허리 아치교다. 개미허리같이 잘록한 모양새라 재밌는 이름이 붙었다. 밀려오는 파도를 내려다보니 물 위를 걷는 듯 짜릿한 기분이다. 밀물 때면 다리 밑으로 바닷물이 차올라 내려갈 수 없지만, 썰물엔 열린 바다 밑으로 놓치기 아까운 멋진 풍경이 드러난다.

▲ 많은 이들이 멋진 노을을 보기 위해 찾는 구봉도 낙조전망대. 사진제공 안산시청
 

▲ 붉게 물드는 노을 풍경은 이 섬의 백미다.

다리 너머로 구봉낙조전망대에 닿자 이미 많은 이들이 셔터를 연신 눌러대고 있다. “와아!” 해 질 녘 온통 붉어진 대부도의 하늘과 바다는 이 세상의 것이 아닌 양 더없이 황홀하다. 서해 석양의 아름다운 노을과 햇빛을 나타낸 조형물엔 ‘석양을 가슴에 담다’라고 새겨 있었다. 그 앞에 서서 여행의 기억을 사진기 안에 열심히 옮겨 담았다. 이곳은 그동안 수많은 연인과 가족, 친구의 소중한 추억을 담은 한 장이 되었으리라.
새로이 다가올 한 해를 또다시 차곡차곡 담기 위해 묵은 것들은 개운히 비워낼 때다. 젖어 있는 장작에는 아무리 불을 붙여도 소용없다. 새 불길로 뜨겁게 타오르기 위해 괜스레 응어리졌던 것들을 이제는 내려놓아야겠다. 다행히 올해 겨울은 포근한 편이라니 과거의 나를 털어낼 곳을 향해 주저 말고 짐을 꾸려보자.

▲ 서해안의 바다가 가슴을 뻥 뚫어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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