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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낙엽카펫 울렁이는 낭만의 성곽길
붉은 낙엽카펫 울렁이는 낭만의 성곽길
  • 김경선 기자
  • 승인 2015.11.26 09: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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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서울성곽길과 해외여행자들의 관광 1번지 북촌

가을이 떠났다. 어느새 곱게 물든 단풍이 떨어지고 온 거리마다 낙엽이 뒹군다. 강원 산간에는 폭설이 내리고 서울에는 첫눈이 내렸다. 이제 시나브로 겨울이다. 하지만 춥다고 웅크리기에는 아직 가을의 여운을 느끼고 싶다. 멀리 갈 것도 없이 가까운 서울성곽만 해도 붉은 낙엽카펫이 지천이다. 전국의 이름난 올레길, 바우길, 둘레길까지 가기 힘들다면 이번 주말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서울성곽으로 떠나보자.

▲ 북악산을 향해 고도를 높이는 서울성곽길은 사방으로 서울의 조망이 시원하게 펼쳐지는 최고의 산책로다. 사진=김경선 기자

서울, 워커블 시티로 거듭나다

서울이 변했다. 바쁜 현대인들이 일에 치이고 사람에 치이던 메가시티에서 걸을 수 있는 도시로 변신중이다. 청계천을 복원해 도심 속 물길을 만들었고, 무너진 서울성곽을 복원해 사대문을 연결했다. 2017년에는 서울역 고가에도 공원을 만들어 시민이 여유롭게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든다고 하니 더 이상 워커블 시티가 해외의 전유물은 아닌 셈이다.

▲ 붉은 낙엽카펫을 깐 듯 가을색이 완연한 성곽길 초입.

▲ 초겨울로 접어들었음에도 성곽길은 여전히 붉은 낙엽이 지천이다.

서울에서 자연과 도심을 만끽하며 가볍게 걸을 수 있는 길을 꼽자면 단연 서울성곽길이다. 북악산(342m)과 인왕산(338m), 낙산(125m), 남산(262m) 4개의 산을 연결한 서울성곽은 4개의 대문(숭례문·흥인지문·돈의문·숙정문)과 4개의 소문(혜화문·창의문·소덕문·광희문)을 품고 있다. 서울성곽을 따르는 길은 결국 4개의 산을 지나며 8개의 문을 찾는 보물찾기 여행이다.

▲ 혜화문을 지나면 성곽길이 모습을 감추고 주택가로 이어진다.

백악코스는 서울성곽 중 혜화문~와룡공원~말바위안내소~숙정문~백악마루~창의문 약 4.5km 구간이다. 이중 백악마루~창의문 구간은 탐방로 공사로 인해 다음달 15일까지 출입통제가 돼 백악마루에서 다시 회귀하는 구간만 가능하다.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 5번 출구로 나와 반대 방향으로 100여m를 걸으면 혜화문이 보인다. 낙산부터 오롯이 이어지던 성곽은 혜화문을 기점으로 잠시 끊기기 때문에 길은 혜화문 이후 주택가로 이어졌다. 아기자기한 골목길을 따라 경신중고교를 지나자 큰 도로를 만났다. 성곽은 도로를 건너자 온전히 모습을 드러냈다.

▲ 오랜 세월의 흔적인 남아 있는 성곽은 시간을 과거로 되돌린 듯 착각을 일으킨다.

▲ 서울성곽길에서 만나는 송림.

성곽길에 올라서자 붉은 낙엽이 넘실댄다. 산책 나온 시민들도 완연한 늦가을의 정취에 취한 모습이다. 길은 와룡공원까지 오르막이 이어지는데, 중간 중간 보이는 확 트인 성북구 일대 조망이 압권이다.

와룡공원부터는 성곽 우측의 숲길로 빠진다. 오솔길을 따라 가다 나무 계단을 올라서면 전망대다. 전망대에서는 성북동 일대 주택가와 북악산, 팔각정, 삼청각이 한 눈에 보인다. 복잡한 서울이라고는 믿기 힘들 만큼 한적하고 여유로운 풍경에 마음까지 차분해지는 기분이다.

▲ 말바위안내소에서 바라 본 서울 시내 전경. 저 멀리 남산도 보인다.

“걷기는 가장 우아하게 시간을 잃는 방법”

길은 소나무숲을 지나 말바위안내소까지 이어졌다. 말바위안내소부터 창의문까지는 신분이 확인된 사람만 출입할 수 있다. 북악산 일대가 청와대와 인접해 군사지역으로 분류돼 있기 때문이다. 북악산은 1968년에 발생한 1·21사태(북한군 특수부대원들이 청와대를 습격하기 위해 서울 세검정 고개까지 침투했던 사건)로 인해 2007년 4월 다시 시민들의 품으로 돌아오기까지, 약 40년간 철저히 출입이 통제됐었다.

숙정문을 지나자 와룡공원부터 시종일관 완만한 오르막이 계속되던 성곽길이 곡장을 앞두고 경사가 급해졌다. 곡장은 적을 살피고 좀 더 쉽게 공격할 수 있도록 만든 시설물로 북악산 곡장은 툭 튀어나온 능선에 반원형의 굽은 형태로 축조했다.

▲ 와룡공원으로 향하는 길은 줄곳 오르막이다. 하지만 걷는 중간 중간 뒤돌아 보면 성북구 일대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곡장을 지나자 ‘푸른 꿈을 안으라는 의미’의 청운대다. 이곳에 서면 경복궁 경회루와 근정전을 비롯해 광화문이 보이고 그 앞으로 쭉 뻗은 세종로도 한 눈에 들어온다. 북쪽으로는 시원하게 뻗은 북한산 비봉 능선과 고즈넉한 성북동·평창동 일대도 손에 잡힐 듯 선명하다.

청운대를 지나 가파른 계단을 10여 분 오르자 백악마루다. 북악산 정상인 백악마루에서는 사방으로 막힘없이 서울의 조망이 펼쳐진다. 얼굴을 마주한 남산과 그 너머 유유히 흐르는 한강을 비롯해 서울 전역이 시원하게 펼쳐지는 조망은 북악산을 찾는 이들만이 느낄 수 있는 감동이다.

시계를 보니 출발한 지 어느새 2시간. 프랑스의 사회학자 다비드 르 브르통은 그의 저서 <걷기 예찬>에서 “걷는다는 건 가장 우아하게 시간을 잃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호젓한 길을 따라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다보니 브르통의 말처럼 시간을 잃어버렸다. 온 길을 되짚어 현재로 향하는 발걸음을 내딛었다.

▲ 북촌한옥마을의 백미는 가회동 북촌로11길 일대다.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해외관광객들로 북적거린다.

▲ 조선시대로 돌아간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가회동의 고즈넉한 풍경.

소소한 추억 하나 허투루 버리지 않는 북촌

백악구간과 인접한 북촌은 서울성곽과는 또 다른 과거와 현재의 향기가 공존하는 공간이다. 한옥이 밀집된 가회동이 과거라면 그 주변의 삼청동과 계동은 카페와 갤러리, 아기자기한 각종 상점이 가득한 현재에 가깝다.

북촌 여행은 정독도서관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다. 도서관을 끼고 왼쪽 골목으로 들어서면 예쁜 카페와 옷가게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길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삼청로다. 삼청로는 전망 좋은 테라스 카페가 많아 지친 발걸음을 멈추고 잠시 쉬어가기 좋은 장소다.

▲ 북촌한옥마을은 옛 모습이 남아있어 오히려 이색적인 느낌이다.

▲ 가회동은 골목마다 과거의 향기가 가득하다.

북촌한옥마을은 좁을 골목길 사이에 숨어있다. 가회동 언덕마루에 즐비한 한옥은 100여년의 시간을 되돌린 듯 전통적인 풍광이 오히려 이색적이다. ‘한옥마을’이라는 이름표를 달면서 한때 조용한 마을이던 가회동 일대가 지금은 관광객들로 발 딛을 틈이 없어졌지만 마을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고택을 개조하고 오래된 물건을 모아 손님들을 끌어들이는 게스트하우스나 공방으로 변신했다.

계동은 한옥마을과는 달리 1980~90년대 익숙했던 정겨운 골목길 분위기다. 1940년에 문을 연 최소아과의원이나 아쉽게도 얼마 전 문을 닫은 우리나라 최초의 목욕탕, 시골 읍내에서나 봄 직한 40년 역사의 대구참기름집 등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풍경이 묘하게 마음을 움직인다.

▲ 삼청로는 예쁜 테라스 카페들이 몰려있어 지친 발걸음을 잠시 쉬어가기에 좋은 장소다.

▲ 75년 간 계동의 아이들을 책임진 터줏대감 최소아과의원.

▲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욕탕이었던 곳은 안타깝게도 얼마 전 문을 닫았다.

▲ 40년 간 한 자리에서 참기름을 짠 대구참기름집.

요즘은 추억을 재생하는 일이 하나의 트렌드로 떠올랐다. 80년대를 추억하는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이나 90년대 인기가수를 추억하는 무한도전의 ‘토토가’, 과거 인기 영화의 재상영 등 아날로그 감성을 자극하는 콘텐츠가 넘쳐난다. 그런 의미에서 서울성곽이나 북촌은 추억이란 트렌드에 걸맞은 여행지다. 우리네 엄마와 아빠가, 그리고 내가 기억하는 시간과 감성이 켜켜이 쌓인 공간에서 또 다른 추억을 만들 수 있다.

▲ 삼청로에서 우측 주택가로 접어들면 1980~90년대 봤음직한 추억의 풍경이 펼쳐진다.
▲ 북촌한옥마을의 정취를 사진에 담고 있는 외국 관광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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