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수업|단풍의 속내
과학수업|단풍의 속내
  • 서승범 차장|사진 월간 캠핑 자료사진
  • 승인 2015.11.23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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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맞는 나뭇잎의 장렬한 최후

10월 중순부터 11월 중순까지는 온 나라에 화려한 비단이 깔린다. 단풍. 그 아름다운 자태를 보기 위해 사람들은 주말 새벽부터 쏟아져 나와 방방곡곡 단풍의 명소로 몰린다. 단풍이 그래봐야 단풍이지 생각하다가도 햇살 좋은 날 곱게 물든 단풍의 물결을 보면 아름답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하지만 사람 홀리는 단풍의 아름다움은 사실 겨울을 맞이하는 나무가 할 수 있는 최후의 저항이자 결론이 내려진 이야기의 절정이다.

▲ 노란색은 크산토필, 오렌지색은 카로티노이드의 발현이다. 여러 색소의 조합에 따라 색은 훨씬 다양해진다.

날이 갈수록 해가 짧아진다는 걸 체감하는 나날의 연속이다. 해가 짧아지면 광합성으로 먹고 사는 나무가 치명상을 입는다. 기온도 함께 낮아지면서 녹색의 엽록소들은 파괴된다. 갑자기 추워지는 경우도 있는데, 갑작스러울수록 엽록소도 급속하게 파괴된다. 하지만 잎에는 엽록소만 있는 게 아니다. 붉은색을 내는 안토시아닌도 있고 오렌지색을 내는 카로티노이드도 있고 노란색을 만드는 크산토필도 있다. 색소가 혼합되어 있을 경우에는 주황색인듯 빨간색도 있고 노란색인듯 주황색인듯 싶은 것도 있다.

각 색을 나타내는 색소가 많을수록 그 색이 드러난다. 붉은색을 내는 대표적인 나무는 당단풍나무, 부룩나무, 마가목, 복자기, 팥배나무 등이 있다. 노란색 단풍은 우선 은행나무를 쉽게 떠올릴 수 있겠다. 이밖에 아까시나무와 튤립나무 등이 가을이면 노란색으로 물든다.

▲ 단풍은 겨울을 맞아 생애를 정리하는 나무의 마지막 이야기다. 저 붉은 빛은 안토시아닌이 주연이다.

▲ 한 그루 나무에서도 단풍으로 물드는 시기와 과정은 잎의 위치와 방향에 따라 다르다.
해가 갈수록 단풍이 드는 날짜가 늦춰지고 있다. 지구온난화의 여파로 기온이 올라갔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여름과 겨울이 길어지고 두 풍선에 눌린 듯 봄과 가을은 늦게 시작해 빨리 끝나버리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발표된 한 논문에 따르면 평균기온이 1.1도 높아지면 단풍 시작일이 3~5일 늦어진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1989년부터 2014년까지 기온이 1.1도 오르면서 단풍나무 4.5일 은행나무 6.5일 늦어졌다. 이를 발표한 서울대학교 지구환경과학부 허창회 교수는 “지난해 단풍 시작일은 10월 20일 경이었는데 2050년이 되면 10월 28~30일 경에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고 발표했다.

늦어지는 것보다 심각한 건 단풍도 덜 예뻐진다. 온난화로 기온이 조금씩 오르면 나무마다 적응력이 달라 단풍드는 시기가 제각각이 되고 특히 밤 기온이 올라가면 붉은 색소가 잘 만들어지지 않아 채도와 선명도가 많이 떨어진다고 한다.

올해 단풍이 유난히 아름답다고 한다. 가뭄이 길수록, 기온이 급강하할수록, 일교차가 심할수록 단풍의 색은 더 선명하고 짙어진다. 참, 단풍은 나무의 일생에 절정이라고 했는데 결말은 무엇일까? 안토시아닌이든 크산토필이든 카로티노이드든 다 분해되고 나면 마지막엔 탄닌이 남는다. 갈색의 탄닌. 바닥에 나뒹구는 낙엽이 결론이다.

▲ 올해는 일교차가 커 단풍이 선명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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