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주를 60km 남겨두고 날씨가 발목을 붙잡다니”
“완주를 60km 남겨두고 날씨가 발목을 붙잡다니”
  • 글 김정훈 트레일 러너 기자
  • 승인 2015.10.28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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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토르 데 지앙 2015 ④그레소네이 생장~발토우르넨체 36km 구간

지난 9월 13일 이탈리아 아오스타 계곡 일대에서 ‘토르 데 지앙(Tor des geants) 2015’ 대회가 열렸다. 무려 2만4천m의 고도차를 자랑하는 330km 구간을 150시간 안에 달려야하는 죽음의 레이스에 지난해에 이어 2번째로 참가한 한국인 김정훈씨. 2014년 완주 이후 더욱 실력을 쌓아 도전한 이번 대회에서 그가 겪었던 생생한 이야기를 글과 사진으로 엮어 4회 연재한다. <편집자주>

▲ 이번 대회에서 1등을 차지한 Bohard Patrick 선수. 그는 80시간 동안 2시간만 자고 나머지 시간은 모두 달린 울트라 트레일 러너다.

Part5. 그레소네이 생장~발토우르넨체|36km

네 번째 베이스에 도착하자마자 젖은 옷과 신발을 바꿔 신고 서둘러 출발했다. 또 다시 나와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꼴 핀테르를 넘었을 때 작년 기록보다 확실히 빠르다는 걸 느꼈다. 작년에 이곳을 지날 땐 밤이었는데, 올해는 아직 환한 낮이었기 때문이다. 작년의 나를 뛰어 넘었다는 게 너무 좋았다. 몸에 힘은 없었고 수시로 터지던 코피도 쉽게 멈추지 않았지만 그만큼 내 발걸음도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더 과감하게 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3일간 5시간도 자지 않고 움직였다. 몸이 부서지는 기분이 느껴질 만큼 힘든 상태에서 생 자크에 도착하니 오후 5시. 그곳의 관계자들이 내 몰골을 보고 자고가라고 말할 정도로 지쳐있는 상태였다. 가야한다고 말했지만 의사까지 만류하는 와중에 20분 뒤 깨워주겠다는 약속을 받고 강제 휴식을 취해야했다.

▲ 악천후 속에서 오른 꼴 라소네이 정상.

한숨 자고 일어나니 너무 개운했다. 밖을 보니 해가 떨어지기 전이다. 1층으로 내려가 출발 준비를 하는데 뭔가 이상했다. 분명히 잠들기 전에는 해가 지는 중이었는데 자고 일어나니 해가 뜨고 있는 것이다. 눈이 의심돼 시계를 몇 번이고 다시 확인하니 12시간이 흘러 새벽 5시가 아닌가. 절망적이었다. 설상가장으로 또 다시 코피까지 터져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발을 서두르는데 ‘기상 악화로 경기가 중단됐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머릿속에 수많은 생각이 교차했다. ‘꼭 완주하겠다’는 의지와 열정으로 대회에 임했다. 목표에 들기 위해 잠까지 포기하면서 쉬지 않고 달렸는데 잠 때문에 기록갱신이 힘들어지다니. 기록을 갱신할 순 없었지만 꼭 완주하겠다는 각오로 흐르는 코피를 휴지로 대충 막은 채 출발을 준비했다.

그런데 더욱 황당한 소식이 들려왔다. 잠시 중단했다던 대회가 기상악화로 인해 더 이상 경기를 재개하지 않겠다는 소식이었다. 60km만 더 뛰면 완주인 상황에서 경기종료라니. 말할 수 없이 허탈했다. 힘들게 쌓아 온 노력들이 한 순간 무너졌다는 생각에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목표를 가지고 대회에 임했던 만큼 너무 억울했고 아쉬웠다.

▲ 라규 바그노의 환상적인 풍광 속을 달리는 선수들.

대회가 허무하게 끝난 후 쿠르마예로 돌아갔다. 정말 모든 게 끝이 났다. 참가자 900여 명 중에 500여 명은 중도 포기. 그중에 6명의 선수만 완주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1등을 한 선수는 80시간 동안 2시간만 자고 나머지 시간은 내내 달려 완주했다고 한다. 그 선수들은 얼마나 연습한 걸까. 기상악화나 대회 시간제한 따위는 무시하고 돌파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고 싶었다. 대회는 그렇게 끝이 났지만 내 열정은 겨우 이제 시작이다. 기회가 된다면 아니, 앞으로 기회를 만들어서라도 다시 대회에 참가해야겠다고 다짐했다.

▲ 완주하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한 채 다음을 기약하며 "화이팅"을 외쳤다.

▲ 비록 예정대로 일정이 마무리 되지는 않았지만 대회가 끝난 후 포기하지 않은 모든 선수들에게 피니셔 재킷이 주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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