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20분만 자고 330km 완주를 꿈꾸다
매일 20분만 자고 330km 완주를 꿈꾸다
  • 김정훈 트레일 러너 기자
  • 승인 2015.10.23 13: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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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토르 데 지앙 2015① 쿠르마예~발그리센체 48.63km 구간

지난 9월 13일 이탈리아 아오스타 계곡 일대에서 ‘토르 데 지앙(Tor des geants) 2015’ 대회가 열렸다. 330km 구간을 150시간 안에 달려야하는 죽음의 레이스에 지난해에 이어 2번째로 참가한 한국인 김정훈씨. 2014년 완주 이후 더욱 실력을 쌓아 도전한 이번 대회에서 그가 겪었던 생생한 이야기를 글과 사진으로 엮어 4회 연재한다. <편집자주>

▲ 대회 첫날, 시작을 알리는 총소리와 함께 전 세계에서 모인 900여 명의 선수들이 일제히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사진 Tor des Geants Official

Part1. 쿠르마예~발그리센체|48.63km

토르 데 지앙은 이탈리아 아오스타시의 몽블랑산군에서 펼쳐지는 울트라 트레일 레이스로 총 거리 330km, 누적 상승고도 2만4천m를 150시간 안에 완주해야 하는 극한의 경기다. 코스에는 6개의 라이프베이스와 약 10km 마다 체크포인트가 준비돼 있다.

올해로 6번째 대회를 맞이한 토르 데 지앙은 어느 대회에도 뒤쳐지지 않을 만큼 코스 구성이 알차고 먹을거리, 의료진, 진행능력 등이 잘 어우러진 세계적인 대회다. 게다가 참가선수들 보다 두 배 이상 많은 자원봉사자가 함께해 대회기간 내내 마을은 축제분위기로 들뜬다.

▲ 출발 시작 종소리가 울리기 전 선수들과 마을 주민들이 모두 모여 축제 분위기를 즐겼다. 사진 Tor des Geants Official

▲ 빗 속을 뚫고 달려나가는 선수들. 사진 Tor des Geants Official

지난해에도 토르 데 지앙 대회에 참가해 완주한 이후 그 매력을 잊지 못해 다시 참가한 토르 데 지앙. 또 한 번의 두근거림을 느끼며 신발끈을 조였다. 그런데 시작부터 비가 많이 내렸다. 쌀쌀한 날씨에 기상까지 좋지 않아 ‘작년처럼 시끌벅적하진 않겠구나’ 생각했는데 이게 웬 걸. 마을 주민들 모두 우산을 쓰거나 우비를 입고 나와 카메라를 들고 워낭을 흔들며 선수들을 반기고 있었다.

대회 시작은 10시. 쿠르마예에 모인 선수들은 출발시간이 다가오길 기다렸다. 곧이어 “뜨레, 두에, 우노(셋 둘 하나)” 함성이 터지고 선수들이 출발했다. 시끄러운 워낭소리와 사람들의 함성이 울리자 악천후 속에서도 힘이 솟는 느낌이다. 2km 정도 갔을까. 아르프산이 보였다. 시작부터 나타난 급경사에 선수들은 트레킹폴을 꺼내들기 바쁘다.

▲ 꼴 크로사티를 향해 달려가는 선수들. 사진 김정훈

▲ 대회 시작 전 긴장된 마음을 감추기 위해 장난스럽게 사진을 찍었다. 사진 김정훈
대회에 참가한 아마추어 선수들은 완주거리가 330km라는 걸 간과하고 초반부터 달리는 경우가 많다. 초보 선수들이 하기 쉬운 실수다. 울트라 트레일 레이스는 일반적인 마라톤과 페이스가 다르다. 왜냐면 중상위권의 선수들도 ‘나도 충분히 뛰어볼만하다’ 싶을 정도의 느린 속도로 달리기 때문이다.

그렇게 페이스 조절을 해가며 아르프산과 파소 알토를 순조롭게 넘었다. 이후 크로사티산이 보였다. 이곳엔 2013년 대회 때 저체온증으로 안타깝게 숨진 중국인 선수를 기리는 비석이 서있었다. 이 비석을 지나는 중국인들은 그냥 지나치지 않고 자신들만의 애도를 하는데, 나도 애도하는 마음으로 눈을 감고 조용히 묵념하며 지나갔다. 이런 일을 대비하기 위해 참가자들은 고어텍스 재킷과 오버트라우저를 지참해야한다. 무게를 덜기 위해 빼놓고 갔다간 언제 어디서 큰 낭패를 볼지 모른다.

비는 그쳤고 이제부터 약 12km의 내리막을 달리면 첫 번째 라이프베이스가 등장한다. 오늘은 더 이상 오르막이 없기에 힘껏 뛰어 내려갔다. 그런데 프라나발을 지날 무렵부터 갑자기 코피가 나기 시작했다. 대회 전 컨디션 조절 실패가 화근이었다. 마음은 급한데 지혈이 잘 되지 않았다. 그렇게 코피는 나고, 차가운 비까지 고스란히 맞은 채 저녁 8시쯤 첫 라이프베이스인 발그리산체에 도착했다. 라이프베이스에서는 대회 전 지급해주는 드롭 백을 받을 수 있고, 식사를 비롯해 의료서비스와 마사지도 제공된다. 무엇보다 최대 8시간까지 잠을 잘 수 있다. 하루 일정에 지쳐 준비해 온 라면을 먹고 비타민제를 챙겨먹은 뒤 쪽잠을 청했다. 1시간만 자려고 했는데 20분이나 더 자버린 탓에 밤 11시가 되서야 급하게 준비를 하고 근육테이핑을 감은 뒤 다시 길을 나섰다.

▲ 꾸르마예~발그리산체 코스 거리 및 고도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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