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수업 |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문학수업 |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 선정 및 발췌 오대진 기자| 사진 김해진 기자
  • 승인 2015.10.14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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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짓눌렀던 것은 짐이 아니라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었다’

묵직함은 진정 끔찍하고, 가벼움은 아름다울까?
가장 무거운 짐이 우리를 짓누르고 허리를 휘게 만들어 땅바닥에 깔아 눕힌다. 그런데 유사 이래 모든 연애 시에서 여자는 남자 육체의 하중을 갈망했다. 따라서 무거운 짐은 동시에 가장 격렬한 생명의 완성에 대한 이미지가 되기도 한다. 짐이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우리 삶이 지상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우리 삶은 보다 생생하고 진실해진다.

▲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L'insoutenable legetete de l'etre밀란 쿤데라Milan Kundera 지음, 이재룡 옮김 (2011. 민음사)
반면에 짐이 완전히 없다면 인간 존재는 공기보다 가벼워지고 어디론가 날아가 버려, 지상의 존재로부터 멀어진 인간은 겨우 반쯤만 현실적이고 그 움직임은 자유롭다 못해 무의미해지고 만다.
그렇다면 무엇을 택할까? 묵짐함, 아니면 가벼움?

제네바에서 사 년을 지낸 후 사비나는 파리에서 살았으며 여전히 우울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누군가 그녀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냐고 묻는다 해도 그녀는 딱히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할 것이다.

한 인생의 드라마는 항상 무거움의 은유로 표현될 수 있다. 사람들은 우리 어깨에 짐이 얹혔다고 말한다. 이 짐을 지고 견디거나, 또는 견디지 못하고 이것과 더불어 싸우다가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한다. 그런데 사비나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아무 일도 없었다. 그녀는 한 남자로부터 떠나고 싶었기 때문에 떠났다. 그 후 그 남자가 그녀를 따라왔던가? 그가 복수를 꾀했던가? 아니다. 그녀의 드라마는 무거움의 드라마가 아니라 가벼움의 드라마였다. 그녀를 짓눌렀던 것은 짐이 아니라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12~13, 201쪽에서 발췌

쿤데라는 자신의 첫 번째 소설인 <농담>이 사회주의 체제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집필 활동을 금지당했고, 얼마 후에는 프랑스로 망명까지 했다. 그러나 쿤데라는 자신 혹은 자신의 작품이 정치적이거나 반체제적으로 보이는 것을 거부한다. 많은 거장들의 영향을 받고, 음악가들의 작품을 즐겨 적용했던 쿤데라에게 있어, ‘소설’이란 독자들로 하여금 ‘삶의 본질을 깨달을 수 있는 것’이고, 그 역할은 ‘예술임을 증명하는 표시’다. 그리고 이를 가장 잘 표현한 작품 중 하나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다. 쿤데라는 역사의 상처라는 무게에 짓눌려 단 한 번도 ‘존재의 가벼움’을 느껴 보지 못한 현대인의 삶과 사랑을 커다란 감동과 유머로 풀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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