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낚시를 떠나다
아버지와 낚시를 떠나다
  • 글 사진 오대진 기자
  • 승인 2015.10.06 17: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두 사내 이야기

올 초, 캠핑 잡지로 회사를 옮기고 부모님과 야외로 자주 나가 바람을 쐬려고 했고, 그럴 줄 알았다. 전에 다니던 밤낮 정신없던 스포츠지 보다는 여유가 있을 줄 알았다. 시간이 나기도 했고, 그렇지 않기도 했다. 취재 일정이 없는 여유 있는 주말은 원고 마감에 정신 못 차렸고, 그렇지 않으면 취재 나가기 일쑤였다.

그렇게 5개월 넘게 흘렀다. 많은 변화가 있었다. 새 직장에 대한 적응은 어느 정도 마쳤고, 나름 여유도 생겨 쉬는 주말도 생겼다. 친구들과 함께 캠핑도 가게 됐다. 변화가 없기도 했다. 캠핑 다니며 즐겁게 일했지만 마음 한 편이 항상 시원치 않았다. 출장이 잦아지다 보니 외박하는 날도 많아졌고, 그렇게 잠시나마 집 없는 생활에 익숙해지기도 했나보다. 현저히 줄어든 부모님과의 시간이 원인이었다.

8월이 시작되고 주변에서 이곳저곳으로 여름휴가를 떠났다. 마침 부모님도 이야기를 꺼내셨다. 생각한 것이 있었다. 부모님과 함께 캠핑을. 그 중에서도 아버지와 즐기는 낚시 캠핑. 아버지와 어릴 적 다니던 낚시는 지금 생각해 보면 꽤 재미있고, 감성적이면서도,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가까운 사람과 교감을 할 수 있는, 여러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그런 것이었다. 편집장에게 “아버지와 낚시 캠핑을 해 보겠다”라고 말했다. 편집장은 이것저것 물은 뒤 조언을 건네며 “재미있게 해 보세요”라고 허했다. 그리고 아버지와의 낚시 캠핑을 다녀왔다. 지금은? 혼자 웃다가, 감상에 빠지다 하며 이 글을 쓰고 있다.

“낚시 캠핑? 하하. 대진이 어릴 때 아빠랑 낚시 다녔던 거 기억나니?” 낚시 캠핑 이야기를 들으신 아버지의 표정에서는 옅은 미소가 번졌고, 어머니 역시 오랜만의 나들이에 “재밌겠네”라며 거드셨다. 어딘가를 가기도 전에 이토록 들떴던 적이 있나 곱씹어보니 꽤 오래 전 기억까지 들춰야 했다. 10년 전 어머니와 떠난 첫 유럽여행 기억까지 다녀왔다.

아버지와 낚시를 떠났다. 열심히 찾아봤다. 40여 년 동안 낚시를 해 오신 아버지한테 조언을 구할 법도 했지만, 처음만큼은 혼자 준비하고자 하는 열망이 컸다. 내셔널지오그래픽 채널에서 봤던 플라이낚시 같은 그림을 떠올렸다. 분위기는 본지 광고에 등장하는 다정한 부자 콘셉트의 스탠리 광고 사진을 생각했다. 생각했던 그림과 분위기를 온전히 느끼고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조금이라도 그 맛을 보고 싶었다. 어릴 적 아버지를 졸졸 따라다니며 손맛을 보곤 했던 그날의 기억이 되살아나길 기대하며.

리버힐즈 캠핑장. 쏘가리 낚시 포인트로 유명한 강원도 영월군 주천강변에 자리하고 있다. 이번 낚시 캠핑의 무대다. 맞은편에는 회봉산의 쏟아질 듯한, 가파른 절벽이 캠핑장을 감싸고 있다.

“어릴 적에 무서워서 물 근처에도 안 왔던 거 기억하니?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시간 참 빠르네. 이렇게 다 커서 함께 낚시도 오고.” 차분히 루어 낚시법을 설명하던 아버지는 잠시 옛 기억과 현재의 감상이 교차하셨나보다. “물 무서워했어요? 어릴 때부터 물에 대한 거부감 없이 수영했던 거 같은데 그게 아닌가 봐요. 하하”
“요즘 여기저기 다니면서 이것저것 많이 해 보는 것 같은데 낚시도 하니?”
“아니요. 낚시는 아직. 또래 친구들도 낚시는 잘 안 하는 것 같아요.”
“낚시는 올드한 취미라는 얘긴가? 하하. 앞으로 야외 나가게 되면 낚싯대 하나 정도는 챙겨 가지고 다녀봐. 취미로 즐기기에 낚시도 괜찮을 거다.”
“오늘 재미 좀 붙이면 그렇게 할게요. 손맛 좀 봐야 재밌을 것 같긴 하지만요.”
“다들 말하지. 낚시는 세월을, 인생을 낚는 거라고. 맞아. 아빠 생각도 그렇다. 낚시랑 인생이랑 같아. 차분하게 세월을 기다리는 거야. 요즘 일하느라 정신없어 보이던데 삶을 너무 조급하게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 여유 있게, 때로는 마음을 비우고, 차분하게….”

오랜만에 부자간의 속 깊은 대화가 오고 갔다. 이 때 보고 있던 녀석이 갑자기 심술이 났나 보다. 산통을 깼다. 아버지는 손끝에서 전해오는 짜릿한 감을 느낌과 동시에 스피닝 릴을 감기 시작했고, 손바닥만 한 꺽지 한 마리가 튕겨지듯이 물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루어가 단 3차례 강물에 잠겼을 뿐인데 벌써….
“잡았다! 대진아!! 하하하. 잡았어. 이것 봐라!”
꽤 오랫동안 느끼지 못한 감정이 가슴 한 편을 때렸다. 어린 아이 같은 아버지의 웃음과 환호를 봤던 기억을 떠올려보려 했지만,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아니, 처음이었다. 아버지의 그런 해맑은 얼굴. 뭉클했다. 매우 큰 기쁨이, 환희가 일었다. 뒤늦게야 어릴 적 함께 낚시를 다니던 그 시절이 떠올랐다. 지금과 다르긴 했다. 당신께서 잡은 것에 대한 즐거움보다는 꼬마 아들이 물고기를 건져 올리는 것이 신기하면서도 더 즐거우셨나보다. ‘잘 했다. 우리 아들’하면서.

“아들이랑 와서 그런지 운이 좋았네. 기운이 좋으면 원래 물고기들도 그걸 알아보고 행운을 준다. 대진아”. 연신 미소를 지으신 아버지는 계곡물에 몸까지 담그며 어린 아이처럼 신나게 물장구를 치셨다. ‘이렇게 즐거워하시는 걸. 조금만 더 먼저 신경 써 드릴 걸’하는 아쉬움이 들기도 했지만, 당신의 어린아이 같은 모습에 아쉬움은 이내 가셨고, ‘더 자주, 오랫동안 같이 시간을 보내야겠다’는 다짐만이 깊어졌다.

1. 한 마리. 우리 부자의 이번 낚시 캠핑 스코어다. 아버지에게 행운을 안긴 그 꺽지가 처음이자 마지막. 나는 오기로 몇 시간이고 더 루어를 던졌지만, 물고기들은 초보낚시꾼이 가소로운지 짜릿한 손맛을 허하지 않았다.

화려하지도, 활동적이도, 익사이팅하지도 않았다. 정적이었고, 고요했다. 그러나 다른 즐거움보다 크고, 무게감 있었다. 남들 다 하는 바쁘다는 핑계를 똑같이 따라했다. 눈에 보이지만 찾지 않았던 연결고리 하나를 찾았다. 즐거움을 찾았다. 새롭지 않지만 새로운 즐거움을. 취미도 하나 더 생겼다. 세월 낚는 취미 하나가.

“어릴 적에는 아버지가 텐트 치고 정리하고 다 했었는데, 이제는 아들이 다 하는구나. 자주 다니자. 아들아.”
“네. 좋네요. 이런 시간이… 좋아요. 하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