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느끼는 편안함을 아웃도어에서도, 시에라 디자인
집에서 느끼는 편안함을 아웃도어에서도, 시에라 디자인
  • 글 사진 ‘양식고등어’ 조민석 기자
  • 승인 2015.10.06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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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고등어’의 텐트 이야기

아웃도어에서도 안락함을
시에라 디자인은 1965년 미국 캘리포니아 리치몬드에서 처음으로 문을 연 아웃도어 브랜드입니다. 당시 창업주는 텐트메이커 왈루스를 만든 핵심 인물이었던 조지 마크George Marks와 홀루바 마운티어링즈 사에서 일하던 밥 스완슨이었는데요. 그들이 시에라 디자인을 세우기로 뜻을 모은 곳이 캘리포니아 주의 리치몬드였습니다.

그들의 의견은 당시에는 꽤나 생뚱맞은 것이었습니다. 단순한 물음에서 시작되었지요. ‘왜 산으로 들로 나가면 항상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것인가? 집에서 느끼는 편안함과 안락함을 아웃도어에서 구현할 방법은 없을까?’ 당시에는 오늘날 우리나라의 캠핑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거실형 텐트를 기반으로 한 오토캠핑 문화가 전무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해가 쉽겠네요.

▲ 1970년대 초반 시에라 디자인이 공식적으로 사용한 로고입니다.

▲ 1968년 최초로 개발한 60/40 파카입니다. 노스페이스와 콜라보레이션 종료 후 시에라 디자인사에서 나온 첫 제품입니다.
시에라 디자인 VS 노스페이스

시에라 디자인이라는 브랜드를 단독으로 내건 제품이 출시된 것은 1968년이었습니다. 처음 2년 동안은 다른 아웃도어 용품점에 자사에서 만든 제품들을 콜라보레이션의 형태로 납품했습니다. 이때 노스페이스와 함께 제품을 만들었습니다. 당시 납품되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시에라 디자인의 장비들은 ‘분명히(expressly) 노스페이스를 위해 시에라 디자인이 만든’ 제품이라는 로고를 붙이고 있었습니다. 이에 자존심이 상한 밥과 조지는 업무협약을 체결한 지 2년이 되는 해에 납품 계약을 전부 해지했고, 두 브랜드는 이후 라이벌이 되어 독자적인 길을 걷게 됩니다.

시에라 디자인은 계약을 파기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자체 브랜드를 내걸고 60/40 파카를 시장에 선보였습니다. 58%의 면과 42%의 나일론 섬유를 혼방한 특수섬유로 재킷을 만든 것인데, 시에라 디자인은 이를 필두로 급속도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고, 노스페이스와의 보이지 않는 경쟁도 불이 붙었습니다.

시에라 디자인이 노스페이스와 맺은 계약을 파기하고 60/40 파카를 시장에 선보인 것은 세간에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중소규모 아웃도어 장비 판매점이 자체적으로 개발해 선보인 제품이 시장에서 하나의 트렌드로 떠오른 것도 화제였지만, 기존 노스페이스 매장에서 살 수 있었던 콜라보레이션 제품의 수준이 더 뛰어났기 때문입니다.

▲ 옥타돔의 모태가 되었던 로마의 세인트피터스 성당입니다. 돔을 이중으로 씌우는 구조에서 착안하여 텐트를 디자인하였다고 하는데, 정작 카탈로그를 읽은 산꾼들은 ‘저게 무슨 소리야?’라며 어리둥절했다는 후문이 있습니다.

▲ 옥타돔은 1978년 출시 후 곧바로 미국에서 특허 등록을 마쳤습니다. 아치형 텐트 구조 자체로 특허를 받는 것을 시작으로 현재 상용화된 디자인들은 대부분 특허 등록이 되어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텐트로 번진 경쟁

파카라는 제품을 두고 붙은 두 회사의 경쟁은 얼마 지나지 않아 텐트까지 이어졌습니다. 70년대 초반 노스페이스의 실권을 쥐고 있던 케네스 합 클롭은 지오데식 돔을 발명한 버크민스터 풀러를 섭외하여 반구형 지오데식 돔 구조를 텐트 디자인에 적용하여 구조적 내구성을 높이는 프로젝트에 돌입했습니다. 이 프로젝트의 결과로 오벌 인텐션이나 노스스타, VE-23, VE-25와 같은 모델들이 시장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돔 구조의 텐트를 개발하기 위한 노력이 단순히 노스페이스의 이야기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빌 모스가 70년대 초반에 A형 텐트 구조를 쓰레기통에 갖다 집어넣는 수준의 파격적인 텐트 디자인을 보여준 이래로 많은 텐트메이커들이 기존의 오래된 군용 텐트 디자인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를 거듭했습니다. 이른바 텐트의 ‘탈군대화’가 시작되었던 것이지요.

노스페이스에서 지오데식 돔 텐트 시리즈가 나온 이후 산꾼들 사이에서 가장 눈길이 갔던 회사는 다름 아닌 시에라 디자인이었습니다. 노스페이스가 이 정도 수준의 텐트를 만들어냈는데 시에라 디자인은 과연 어떤 수준의 텐트를 만들어낼 것인가? 이런 생각을 한 거죠. 당연히 시에라 디자인 입장에서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격이었습니다. 시에라 디자인 쪽에서는 70년대 중반까지도 A형 텐트 디자인을 고수하고 있었거든요.

▲ 80년대 초반 옥타돔이 단종되고 아치형 구조의 기함급 텐트를 개발하자는 목적으로 후에 출시된 그랜드 마더십 모델입니다.

최초의 돔 텐트?

소비자의 니즈마저 그 트렌드에 묶여 따라가는 상황에서 돔 텐트 개발이 절실했던 밥과 조지는 새로운 텐트 디자인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던 끝에 산꾼들이 생각지도 못한 결과물을 만들어 세상에 선보였습니다. 대부분의 회사들이 지오데식 돔 디자인에 얽매여 노스페이스의 뒤를 좇는 상황에서, 그들은 업계가 전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로마의 세인트피터스 대성당입니다. 건축물 상부에 있는 이중 돔 구조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던 것이지요.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긴 시에라 디자인은 최초의 돔 텐트인 옥타돔을 만들어냈습니다. 구조적 특성상 바람을 맞는 면적 비율이 다소 어긋나는 바람에 극한 상황에서의 성능은 지오데식 돔 구조를 바탕으로 만든 노스페이스의 텐트에 비해 다소 떨어졌지만, 산꾼들은 도리어 옥타돔을 보고 브라보를 외쳤습니다. 케네스 합 클롭이 밀고 나가던 자본의 논리를 기발한 아이디어로 와장창 씹어먹었다는 게 그 이유였다나요?

산꾼들은 옥타돔을 보고 브라보를 외쳤지만, 실제 판매량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상징적인 아이디어를 타이로스 같은 주류 모델 개발의 기회로 삼았다는 점인데요. 당시 옥타돔의 뒤를 이어 출시된 주류 모델들은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시장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디자인과 성능이 우수합니다.

▲ 70년대와 80년대 시에라 디자인의 직원들 단체사진입니다. 규모가 확실히 준 것이 눈에 띌 정도입니다. 직원들 중에는 텐트 바느질만을 전문으로 하는 한국인들이 다수 있었는데, 당시 아웃도어 업계에서는 한국인들을 원단 바느질 같은 작업을 위해 고용하는 사례가 상당히 많았습니다.

▲ 70년대와 80년대 시에라 디자인의 직원들 단체사진.

모토는 여전히 ‘편안함’

노스페이스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승승장구하던 시에라 디자인도 영원히 승승장구하지는 못했습니다. 90년대 중반 아웃도어 분야 기술의 집성체인 마운틴 하드웨어가 생긴 것이 시에라 디자인에겐 중요한 변곡점이 되었습니다. 마운틴 하드웨어가 설립되면서 아웃도어의 메이저급 브랜드에 있던 경영진들과 기술진들이 대거 이적하는 사태가 발생했었는데, 여기에는 시에라 디자인의 기술진 중 핵심 인물이었던 마틴 제미티스와 폴 크라머, 부사장 잭 길버트 등이 포함되어 있었지요.

▲ 60/40 파카와 더불어 60년대 후반에 출시되었던 제품들입니다. 당시 카테고리에 있던 여러 제품들이 노스페이스로 납품되었는데, 매니아들 사이에서는 2년간 출시되었던 제품을 모으는 트렌드까지 생겨났을 정도라고 합니다.이른바 텐트 디자인의 ‘탈군대화’가 일어난 70년대 초반, 시에라 디자인의 주력모델인 글래시어 모델입니다. 텐트 분야에서 돔 구조를 개발하려는 트렌드에 다소 늦게 편승하였음에도 내구성 측면에서 늦게까지 좋은 평가를 받은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마운틴 하드웨어의 설립은 결과적으로 20세기 중반 아웃도어 시장을 주름잡던 브랜드들의 영향력이 약해지는 결과를 낳았다고 볼 수 있는데, 그 흐름에서 시에라 디자인도 자유로울 순 없었습니다. 시에라 디자인은 그 후 여전히 아웃도어 장비 시장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곤 있지만, 전성기의 그것과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오늘날 원정용 텐트 시장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텐트 디자인들이 실질적으로 시에라 디자인의 유전자를 물려받아 계승되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시에라 디자인은 집에서 느끼는 편안함을 아웃도어에서도 느낄 수 있게 하자는 모토를 실현하기 위해 여전히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 텐트 디자인의 탈군대화가 일어난 이유를 가장 정확하게 보여주는 사진입니다. 실내 공간의 효율성 확보를 위한 것인데, 요즘은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텐트 벽을 바깥쪽으로 세우는 방식의 구조 개발에 많은 브랜드들이 끊임없이 몰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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