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으로 물들인 비밀의 계곡
젊음으로 물들인 비밀의 계곡
  • 글 박지인|사진 김세영 기자
  • 승인 2015.08.31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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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CREW|덕풍계곡 용소골

암반을 타고 길게 굽이치는 시원한 계곡 물.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신비로운 절경의 연속. 덕풍계곡은 천혜의 비경을 품은 대한민국 최후의 오지다. 얼음장같이 차가운 계곡과 대자연의 수려한 자태 앞에서 8월의 무더위는 이미 온데간데없었다.

오지를 찾아 떠난 젊은이들
서울에서 차를 타고 장장 4시간을 달려 도착한 강원도 삼척의 덕풍산장. 이곳은 차량으로 진입할 수 있는 마지막 지점인 동시에 계곡 트레킹이 시작되는 장소다. 초입부터 줄기차게 흐르는 계곡 물은 트레킹 코스를 따라 쉼 없이 이어진다. 내로라하는 높은 산들과 함께 응봉산이 명산으로 손꼽히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12㎞에 달하는 웅장한 협곡 때문이다. 수량도 풍부해 계곡 곳곳에는 여러 개의 소와 작은 폭포가 산재해 있다. 특히 세 개의 크고 깊은 용소는 진한 노란색과 초록색이 섞인 듯한 신비로운 빛깔이 일품이다.

계곡 물은 상류부터 굽이치며 먼 거리를 내려오다 보니 수온도 적당하고, 암반 지형이 물 위로 그대로 보일 만큼 수질도 맑다. 입수 트레킹을 즐기기에 더할 나위 없는 최적의 조건이다. 덕풍계곡에 왔다면 과감히 신발을 적셔가며 첨벙첨벙 계곡을 거슬러 오르는 재미를 놓쳐서는 안 된다.

덕풍계곡 용소골은 지리산의 칠선골, 한라산의 탐라계곡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다. 제1용소부터 제3용소까지의 구간을 용소골이라 부르며, 그 이후로는 응봉산 정상으로 향하는 등산 코스다. 트레킹 시작 지점에서 제1용소를 거쳐 제2용소로 가는 데는 성인 걸음으로 약 1시간 30분. 이어서 제3용소로 가기 위해서는 다시 1시간 30분을 걸어야 한다. 시간도 시간이지만 깊이 들어갈수록 지형은 더욱더 험난해진다. 더군다나 비라도 내리는 날에는 마땅한 탈출로도 없는 ‘죽음의 협곡’이 되므로 방문하지 않는 게 상책. 그런 이유로 계곡 트레킹만 즐기러 온 등산객은 대게 제2용소를 반환점으로 삼는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제2용소를 거점으로 물놀이를 즐긴 후 하산 길에 야영장을 찾기로 했다.

태고의 자연이 그대로
한동안 이어진 지독한 가뭄. 전국의 호수와 계곡은 심각한 갈증에 시달렸다. 그런 상황을 비웃기라도 하듯 덕풍계곡은 기암괴석 사이로 더욱 힘차게 물이 흐르고 있었다. 우리의 1차 목적지인 제1용소까지는 무난한 코스가 이어졌다. 물살을 가로질러 가도 될 만큼 완만한 경사의 계곡. 한편에는 편리한 철제다리도 마련돼 있었다. 걸음마다 펼쳐지는 신비로운 장관이 배낭의 무게마저 잊게 했다.

그렇게 40분 남짓 걸었을까. 산골짜기 속에 은둔해 있던 지상 낙원, 제1용소에 도착했다. 양옆으로 깎아지른 듯한 절벽과 맹렬하게 쏟아지는 폭포. 그 아래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짙푸른 색의 용소. 자연이 만들어낸 세월의 산물 앞에 넋을 놓고 감탄했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정오를 넘어서 도착한 탓에 원점 회기 시간을 따져보면 여유 부릴 틈이 없다. 우리는 발걸음을 재촉해 제2용소로 향했다.

트레킹 내내 1급수의 지표라 불리는 버들치가 닥터피시마냥 등산화에 입을 맞춘다. 다소 생소한 광경에 발걸음을 잠깐 멈췄다. 태고의 자연은 인간에게도 거리낌 없는 바로 이런 모습이었을까. 또는 대자연의 원시림 속에서 느끼는 한순간의 사소한 잡념일까. 거침없이 내딛던 발걸음을 이제부터 한 발, 한 발, 조심스럽게 나아가기로 했다.

제2용소로 향하는 코스도 큰 어려움은 없었다. 그렇다고 용소골에서는 긴장을 늦추면 안 된다. 계곡 지형 특성상 한 번의 실수는 대형 사고로 연결되기 마련. 밧줄에만 의지해야 하는 아찔한 구간도 종종 있으니 항상 안전에 유의해야 한다.

제1용소를 떠난 지 한 시간. 드디어 제2용소가 모습을 드러냈다. 용이 승천했다는 용소의 전설. 눈 앞에 펼쳐진 용소는 용의 거처로도 손색이 없어 보였다. 큰 낙차로 떨어지는 시원한 폭포와 웅장한 기암괴석 절벽의 조합은 이국적인 풍경을 연출했다. 그 앞에는 넓은 자갈 공터가 있어 한숨 돌릴 겸 물놀이를 즐기기에도 제격. 우리는 각자 챙겨온 라이프재킷을 걸치고 무작정 물로 뛰어들었다. 시원한 계곡 수영부터 시꺼먼 용소를 들여다보는 스노쿨링, 폭포 위에서 뛰어내리는 내추럴 다이빙까지. 특히 제2용소 부근에는 천연 워터슬라이드가 유명하다. 여러 팀이 있을 때는 대기 줄이 워터파크를 방불케 할 정도라고.

폭포 뒤쪽으로는 길게 밧줄이 연결되어 있는데 그 방향이 제3용소로 가는 길이다. 사람 한 명 겨우 지나갈 법한 좁은 등반로와 더욱 무성해 보이는 숲은 묘한 도전 정신과 호기심을 자극한다. 지금보다 더 멋진 비경이 숨어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기대감이 부풀어 올랐다. 야간산행을 감행할까도 잠깐 고민했지만, 우리는 아쉬운 마음을 거두고 야영장으로 복귀를 결정했다. 여름이 가기 전에 이런 멋진 곳을 방문했다는 사실, 그거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으므로.

천혜의 경관은 모나리자의 미소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의 ‘모나리자’는 풍부한 감성을 안겨준다. 행복, 즐거움, 쓸쓸함, 슬픔. 정확한 감정 상태를 판단하기 어려운 그녀의 모호한 미소는 보는 이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만약, 어떤 미술가가 그녀의 눈썹을 그려 넣어 그림을 완성했다면 과연 모나리자가 지금의 걸작으로 남을 수 있었을까. 예상해 보건대, 그저 미소 띤 여자의 평범한 초상화가 되어 천편일률적인 감상만을 남겼을 것이다.

덕풍계곡도 마찬가지다. 모나리자의 미소처럼 우리에게 감상의 자유를 선사한다. 대한민국 최후의 오지로 불리며 관광 개발 열풍에 휩쓸리지 않고 지켜온 청정함. 그것이 찾는 사람마다 각기 다른 미사여구로 찬사를 보내는 이유다. 하지만 누군가 덕풍계곡의 ‘눈썹’을 그려 넣는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흔하디흔한 여행 코스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루라도 더 빨리 우리에게 허락된 천혜의 경관을 만끽해야 한다. 아직 에어컨 바람 밑에서 여름 휴가를 고민하고 있다면 이제 슬슬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자. 덕풍계곡은 언제까지고 마냥 당신을 기다려주지는 않을 테니.
아웃도어X크루(www.outdoorxcrew.com)

덕풍계곡 용소골 트레킹 TIP
1
수심이 깊어 물놀이를 제대로 즐기려면 라이프자켓이 필수.
2 계곡 본류에 진입하면 GPS가 잡히지 않으니 길을 잘못 들지 않도록 주의.
3 제3용소 가는 길은 멀고 험난하므로 반드시 숙련자와 동행할 것.
4 계곡 내 취사 및 야영 금지. 간단한 행동식이나 발열 식품 등을 가져가자.
5 종일 바위를 밟고 다니려면 중등산화가 필수. 아쿠아 슈즈는 보조로 챙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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