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달러로 시작된 꿈
12달러로 시작된 꿈
  • 글 사진 정효진 기자
  • 승인 2015.08.26 17:4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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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여행자의 지구별 자전거 여행

우리나라 자전거 인구가 1000만이 넘은지도 오래다. 이젠 자전거를 생존이나 단순 이동수단으로 사용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보통은 열심히 살고 있는 자신에게 여가의 수단으로 자전거를 선물한다. 자전거 동호회나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대회가 늘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이번 달부터 장차 우주를 여행할 한 소녀를 소개한다. 그녀는 우주로 떠나기 전에 먼저 자전거를 타고 지구를 여행 중이다. 4년여의 시간, 자전거 하나에 몸을 맡기고 수만 킬로미터를 여행하고 있는 그녀. 그녀에게 자전거는 생존이면서 유일한 이동수단이다. 매일, 매 시간 어메이징한 이야기를 써가고 있는 그녀의 자전거 여행을 따라가 보자. (편집자 주)

우주여행을 하기 위해
세계여행을 다녀온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여행을 소개할 때 이렇게 시작한다. ‘어렸을 때부터 제 꿈은 세계여행이었어요.’ 하지만 나는 조금 달랐다. 난 어렸을 때 꿈이 없었다. 사는 데 큰 낙이 없었고 왜 사는지 몰랐다. 그래서 꿈이 없었다.

내 인생에 가장 큰 전환점은 2006년이었다. 2006년에 책 100권 읽기를 목표로 했고 성공했다. 그 책 100권이 내 인생을 바꿨다. 물론 당시에 주변에서 봤을 땐 내 변화된 모습을 못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내적으로 크게 성장할 수 있었다.

▲ 캐나다에서 히치하이킹 당시.

가장 놀라운 건, 책을 통해 모험을 좋아하는 나를 발견한 것이었다. 결국, 2010년 7월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무작정 캐나다로 날아갔다. 가진 돈은 12달러가 다였다. 모험이 좋다는 이유로 무모하게 시작했다. 먼저 농장에서 일하며 약간의 돈을 마련했다. 그 돈으로 캐나다 서부에서 동부까지 4개월간 히치하이킹을 다녔다. 그러다 히치하이킹의 말미엔 북쪽에 오로라가 보이는 옐로우나이프에 머물렀다.

옐로우나이프에 도착한 후 며칠 지나지 않아 나는 얼어붙은 호수에서 오로라를 보았다. 그때 느낀 내 감정을 뭐라 표현해야 할까? 오로라를 보며 우주로의 히치하이킹이 하고 싶어졌다. 태양에서 오는 강한 전자에 신호를 보내면 어느 우주인이 날 태워주지 않을까? 그런데 문득 겁이 났다. 지구도 잘 모르면서 우주여행이라니. 무심코 허공에 올렸던 엄지를 내리고 결심했다. 우주여행을 떠나기 전에 지구부터 여행하자.

▲ 여행을 떠나기 전 시험 주행 중.

소원하면 이뤄진다

먼저 지구를 여행하는 데에는 여러 방법이 있었다. 배낭여행, 오토바이 여행, 기차여행, 자동차 여행…. 내게는 자전거가 매력적이었다. 걷기에는 너무 느리고, 차로 가기에는 너무 빠르다. 자전거가 딱 적당한 나만의 속도라고 생각했다.

주변 사람들이 막연한 꿈을 접고 현실을 접할 때, 나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이루고 싶은 일을 마음속으로 강하게 빌면 우주가 그 소원을 들어준다고 했던가. 큰 고민이었던 돈 문제가 죽기 일보 직전까지 일하니 해결되었다. 큰돈은 아니었지만, 미국 횡단 정도는 가능한 돈이었다. 결국, 워홀 비자가 끝날 때쯤 샌프란시스코로 가는 비행기 표를 끊었다.

▲ 중고사이트에서 산 새 제품 같은 셜리를 데리고 오다.

‘그래, 나를 혹독하게 다뤄야 해. 흐지부지하면 모든 게 무너지게 될 거야’하는 생각에 여행 출발 날짜도 정했다. 샌프란시스코 도착 일주일 후에 출발하기로 했다. 하지만 문제는 따로 있었다. 내겐 자전거는커녕 캠핑장비도 없었다.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내가 여행을 떠난다는 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각오를 다지고 열심히 주변을 돌아다녔다. 캠핑장비는 가장 저렴하지만, 꼭 필요한 것만 샀다. 그러다 보니 텐트와 침낭은 너무 무겁고 부피가 컸다. 자전거는 크레이그리스트(Craigslist)라는 미국 최대 중고 사이트에서 샀다. 자전거 판매를 하려다가 사업을 접은 사람에게 얻어온 자전거는 조립형 설리 롱 하울 트러커(Surly long haul trucker)였다. 공장에서 출고된 새 제품을 사려면 1200달러(130만원) 가까이 줘야 했는데 중고 조립용 자전거는 750달러에 판매되고 있었다. 장거리 여행자에게 인기가 많은 제품이다. 프레임은 새 제품이었고, 부품들은 중고와 새 제품이 섞였다. 어쨌든 이 자전거의 첫 주인은 나였다.

자전거를 비롯해 여러 가지 장비를 사니 정말로 출발할 수 있을 거 같았다. 강하게 소원하면 이뤄진다. 모든 게 하나씩 맞아 들어갔다.

▲ 여행 출발 전 0km를 기념하며 찍은 사진.

길 위는 상상 그 이상

꿈에 그리던 여행 첫날이 왔다. 바람 쌩쌩 맞으며 떠나는 자유여행을 상상했다. 하지만 현실은 샌프란시스코도 못 벗어나 쩔쩔매는 모습이라니! 짐을 제대로 묶지 않은 탓에 삼각대도 잃어버리고 심지어 지도마저 보이질 않았다. 어디가 어딘지 몰라 고속도로에 들어가 차에 치일 뻔도 했다. 출발과 동시에 심장이 콩알만큼 줄어들었다. 고속도로를 헤매다 경찰에게 구두 경고까지 받았다. (미국에선 주요 고속도로에 자전거가 다닐 수 없게 되어 있다. 두 번 이상 경찰에 적발되어 딱지를 받게 될 경우 강제 추방 당한다.)

그야말로 ‘나는 누구? 여긴 어디?’ 상태가 되었다. 길을 헤매다 어딘지도 모르는 마을에 도착했다. 사전에 들은 바로는 현지인에게 부탁해 그들 앞마당에 텐트를 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첫 시도부터 쉽지 않았다. 여러 번 거절 받은 뒤 한 결국, 필리핀 가정집 앞에 텐트를 쳤다. 필리핀 가족은 나에게 굉장히 친절했다. 내 텐트는 이 집 뒷마당에 쳤고 화장실도 이용할 수 있었다. 가족은 나에게 햄버거를 주며 아침밥도 꼭 먹고 가라고 신신당부했다. 나중에 다시 오면 꼭 연락하라며 공항에 픽업 나오겠다는 약속까지 했다. 집주인과 페이스북 계정도 교환했다. 첫날의 추억은 영원할 것 같다.

▲ 첫째 날 텐트 친 곳.

샌프란시스코도 못 벗어나던 첫날과 다르게 둘째 날은 조금 수월했다. 그냥 1번 도로만 타고 내려가면 되기 때문이다. 드디어 도시를 빠져나오니 멋진 풍경이 보였다. 그제야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그래 내가 이런 걸 보고 싶어서 여행을 시작했지.’

퍼시픽 코스트(Pacific Coast)로 가게 될 경우 오르막과 내리막이 심하다. 거기다 안갯속 도로가 너무 좁아서 마인드 컨트롤을 해야만 했다. 음악을 듣는 건 애당초 포기하고 도로 상태에만 집중했다. 귀는 최대한 열었다. 이날 내가 깨달은 가장 중요한 교훈은 ‘내가 핸들을 휙 꺾지 않는 이상 차는 절대 나를 치지 않는다. 그러니 무서워하지 말고 핸들 꽉 잡고 집중해서 앞으로 나아가자’였다.

다음 목적지는 산타크루즈(Santa Cruz). 그런데 너무 멀다. 아무리 가도 도시는 안 보였다. 종일 먹은 것이라곤 긴 빵 하나가 전부다. 결국, 탈진 증상이 일어났다. 식량과 물이 하나도 없고 상점은 보이지 않았다. 첫날 보다 좋다는 말은 취소해야겠다.

하지만 죽으라는 법은 없나 보다. 어지러운 몸을 이끌고 가는데 우연히 농장 가게를 발견했다. 농장 직원이 나를 보더니 상태가 심각해 보였는지 수프와 초콜릿이 덮인 딸기, 빵, 물을 건네주었다. 그날 농장에서 만난 스테파니와 짐은 내 생명을 구해준 은인들이다. 그들은 그 날 내가 텐트 칠 곳도 알아봐 주었다. 너무나 고마웠다.

▲ 필리핀 가족에게 초대받은 아침 식사.

하지만 마음고생은 심했다. 세계를 여행해야 하는데 시작부터 이렇다니. 애당초 일주일 정도는 마음고생이 심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현실은 상상 이상이었다. 자전거 여행에 투자한 돈만 벌써 250만원이 넘는다. 본전은(?) 뽑을 수 있을까. 주변에 자전거 여행을 하겠다며 자신만만하게 떠벌리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초라한 지금이 속상하기만 했다.

야외 샤워 시설에서 샤워하다 랜턴을 나무 바닥 사이에 떨어트려 잃어버렸다. 갑자기 주변에 껌껌해졌다. 마치 지금의 내 마음속처럼 모든 것이 막막해졌다. 나는 도대체 이 여행을 얼마나 오래 할 수 있을까. 밤이 더욱더 어둡게 느껴졌다.

▲ 여행 둘째 날 본 풍경. 여행하는 진짜 목적을 알게 해 준 장소다.

▲ 안개 낀 도로를 빠져나오니 여유가 생긴다.

슬픔 뒤엔 당연히 기쁨

다음날이 밝았다. 이날은 15km밖에 가지 못했다. 자전거에 문제가 있어 고치느라 시간을 지체한 것이다. 그런데 셋째 날은 복권에 당첨된 날 같았다. 오후 5시쯤 지도를 보며 어디에 텐트를 칠까 고민하며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어떤 부녀가 나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하기에 나도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부녀는 계속 나에게 손을 흔들었다. 멈추지 말고 잘 가라는 건가? 그렇게 그들을 스쳐 지나가는데 또 얼마 안 있어 그들이 내 앞에 나타났다. 또 손을 흔든다. ‘저 말하는 거예요?’ 제스처를 취하자 그제야 그들이 손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아빠인 존은 자기도 자전거를 아주 좋아한다며 옆에 있는 딸 밀레나를 소개해줬다.

▲ 멋진 인생을 알게 해 준 가족. 오른쪽은 밀레나 그리고 그녀의 여동생.

존은 지금 홀리데이 기간이라 텐트 치기 쉽지 않을 거라 말했다. 그러면서 그들의 집에서 저녁을 먹고 하룻밤 머물고 가라고 했다. 아니 뭐 이런 행운이 있나. 어젯밤 속상했던 마음이 싹 가셨다. 살면서 한 번도 큰돈을 가져 본 적은 없지만, 이 순간만큼은 세상에서 내가 가장 부자인 것 같았다.

존의 집도 매우 좋았다. 게다가 자전거가 4대나 있었는데 그 중 한대는 대나무로 만든 자전거였다. 처음으로 대나무로 만든 자전거를 구경했다. 존의 가족은 나에게 도움이 될 만한 장비를 주고, 여행경로에 대해서도 조언해 주었다. 밀레나가 나에게 특별히 도움되는 뭔가를 챙겨주기도 했는데 그중 하나는 호신용 스프레이다. 밀레나는 매우 친절했다.

밀레나는 정말 훌륭한 인격을 가졌다. 그녀가 크면 어떤 멋진 사람이 되어있을까? 기회가 된다면 꼭 존과 밀레나를 다시 만나고 싶다.

▲ 어느 현지인이 집 앞에 텐트 치는 것을 허락했다.

▲ 어설프게 묶인 짐들.

두려움과 마주하다

다음날, 존 가족의 도움으로 쉽게 길을 찾아갈 수 있었다. 오르막이 전혀 없어서 마음이 훨씬 편했다. 넷째 날이 되니 어렵게만 느껴졌던 길 찾기도 조금은 익숙해지고 자전거 타는 것도 첫째 날에 비해 여유로워졌다. 이후 이틀간은 현지인에게 앞마당에 텐트를 치겠다며 요청한 뒤 허락을 받아 잠자리를 해결했다.

퍼시픽 코스트(Pacific Coast)로 가던 도중 반대편에 오던 여행자에게 물을 어디서 구하느냐고 물어봤더니 탭 워터(Tap water : 수돗물)를 그냥 떠 마신단다. 나도 이때부터 화장실에서 물을 구했는데, 물맛은 똑같았다. 캐나다와 미국에서는 탭 워터를 편하게 마실 수 있다. 한 번은 물이 곧 떨어질 거 같아 급하게 상점에 들어갔다가 안에 있던 멋진 조각상들을 구경하기도 했다. 여행은 점점 안정을 찾아가는 듯했다.

자전거 여행을 시작해보니 사람들과 얘기할 기회가 많았다. 휴식을 취할 때면 사람들과 이야기할 기회가 자연스레 생긴다. 부끄럽게도 나에게 사진 한 장을 요청하는 사람들도 있다. 조각을 판매하던 상점에서 만난 사람은 자기가 LA에 산다며 올 일이 있다면 연락하라고 명함 한 장을 건네주기도 했다.

▲ 미국에서 유명한 Big Sur.

▲ 지는 해를 감상하며.

해안도로는 풍경이 정말 멋졌지만, 끊임없이 오르막과 내리막이 계속된다. 자전거 여행 초보자인 나는 언덕이 너무 어렵게 느껴져 매번 자전거를 밀고 걸어 올라갔다.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어려운 경로를 여행 첫 주로 정한 것일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래. 당연히 여행 초보자니까 이런 어려운 경로를 첫 주로 정했겠지. 말년병장쯤 되면 요령이 생겨 쉬운 경로만 찾아다니지 않을까?’

▲ 어느 현지인의 집 앞에서 또다시 하룻밤 묵었다.

매일 텐트에서만 자다 보니 피로가 누적되었다. 대안이 필요했다. 카우치 서핑(Couch Surfing)은 외국인을 자기 집에 초대해서 재워주며 문화 및 여행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을 도와주는 사이트다. 호스팅 웹사이트로 외국에서는 제법 유명하다. 나 역시 캐나다 히치하이킹 당시 사용해보기도 했다. 호스트의 프로필과 추천 평을 보면 신뢰도를 가늠할 수도 있다. 캠브리아(Cambria)에서 카우치서핑 웹사이트를 통해 만난 호스트 집에서 이틀 밤을 보냈다. 하루만 지내려고 했지만, 일주일간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하루 더 묵게 됐다.

자전거로 세계를 여행하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까? 애당초 3~4년의 계획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일주일 만에 앞이 깜깜해진 지금, 과연 자전거에 투자한 본전이나 뽑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가능하긴 한 걸까? 세계여행은커녕 미국도 못 벗어나면 어쩌지? 지금 당장 코앞에 닥친 목표는 LA에 가는 것이다.

▲ 우연히 발견한 물개들.

▲ 끝없이 펼쳐진 멋진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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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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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톰 2019-09-26 03:00:52
상당히 오래된 글이지만
자전거로 세계여행을 시작하려는 사람이라 지나칠 수 없는 글이네요..
글을 읽으며 제 가슴도 벅차오르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