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에 뜨는 별, 반딧불이를 찾아서
지상에 뜨는 별, 반딧불이를 찾아서
  • 글 사진 김호섭 별과꿈 별관측소 소장
  • 승인 2015.08.03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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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CE & STAR | 매년 6월부터 9월 사이…2주 동안의 짧고 강렬한 유혹의 빛

형설지공(螢雪之功). 중국 진(晋)의 가난한 차윤(車胤)은 반딧불을 모아 그 불빛으로 글을 읽고, 손강(孫康)은 한겨울 눈에 반사되는 달빛으로 공부했다. 개똥벌레라고도 불리는 반딧불이를 본 적 없는 도시아이에게 이 상투적인 이야기를 들려주면 무슨 말인지 고개를 갸웃댈 거다. 맑고 투명한 하늘에 별들이 빛나는 초여름밤, 지상에서도 반짝이는 환상적인 별이 바로 그 녀석들이다.

▲ 반딧불이의 군무와 북쪽 하늘 별들의 일주.

은하수 사진을 찍으러 갈 때마다 새로운 화각을 얻기 위해 장소에 대한 고민이 많아진다. 몇 해 전 그 날도 밤하늘이 맑고 투명해 마음먹고 집을 나섰는데 우거진 나무들로 넓은 시야를 확보하기 어려워 산속을 헤매고 있었다. 시간은 흐르고 마땅한 장소를 찾지 못해 낙심하고 있던 차, 어디선가 물소리가 나서 비춰보니 근처에 작은 골짜기가 있었다. 후덥지근한 밤 기온에 온몸이 땀범벅이 된 터라 반가운 마음에 양말을 벗고 시원한 계곡 물에 발을 담갔다.

한밤중의 망중한을 즐기던 그때, 눈앞으로 작고 노란 불 하나가 춤추듯 지나갔다. 반딧불이였다. 공중을 사뿐사뿐 깜박이며 날아가는 작고 앙증맞은 반딧불이를 보고 있노라니 그만 혼이 빠져 나가버리는 듯했다. 주변을 둘러 봤지만 군무까지 이어지지는 않았고, 눈앞으로 지나간 반딧불이도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흐르는 물소리만 적막을 깨는 칠흑같이 어두운 계곡과 꿈을 꾼 듯한 순간에서 빠져나온 후로 여름만 되면 어딜 가든 혹시나 반딧불이 무리를 발견하지 않을까 주변을 살피는 버릇이 생겼다.

5년이 흘러 다시 5월, 또다시 찾아 나선 반딧불이를 향한 여정의 끝자락. 올해도 역시구나 싶던 그 순간, 마침내 지금껏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엄청난 반딧불이의 군무와 조우할 수 있었다. 그때의 사진(1)을 바라보노라니 이루 말할 수 없는 감동으로 벅차던 순간이 다시금 고스란히 느껴지는 듯하다.

▲ 반딧불이들이 날고 있는 가운데 은하수가 떠오른다.

2주 동안의 강렬한 웨딩라이트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은하수와 반딧불이는 청정지역의 지표와도 같다. 은하수는 광해가 적은 곳이라야 볼 수 있고, 반딧불이 역시 인위적인 시설이 적을수록 만날 확률이 높아진다. 반딧불이의 서식지는 주변에 깨끗하게 흐르는 물이 있고, 인공불빛과 인적이 없어야 하는 등 그 조건이 까다롭다. 근방에 전신주만 있어도 전기의 자력선 때문에 반딧불이가 사라진다는 주장도 있다. 애반딧불이와 운문산반딧불이는 알에서 성충까지 자라는데 1년 정도 걸리고, 늦반딧불이는 애벌레로 2년을 살지만, 성충으로서의 수명은 고작 2주 정도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여러 해 동안 연속적으로 서식환경이 유지되어야 개체 수가 늘어날 텐데 불행히도 우리 주변의 환경은 그리 녹록지 않다.

애벌레로서 반딧불이는 숲 속의 포식자다. 물속에 사는 애반딧불이 애벌레는 수중달팽이와 다슬기의 속살을 섭식하고, 육상 곤충인 운문산반딧불이나 늦반딧불이 애벌레는 주로 육상 달팽이나 민달팽이를 먹고 산다고 알려져 있다. 반면에 성충으로서의 반딧불이는 2주의 짧은 기간 동안 번식을 위한 산란에 모든 것을 집중하여 식음을 전폐한다. 교미와 산란을 위한 최소한의 이슬 외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은 채 열렬한 사랑의 빛을 뿜어내는 거다.

빛 공해와 오염으로 급감하는 반딧불이
급속한 도시화와 소하천 등지의 농약 오염, 어딜 가나 켜져 있는 인공 불빛 등 인간의 편의를 위한 시설들로 반딧불이의 서식지가 급격히 파괴되고 있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지금 중년 이상의 나이라면 어릴 적 반딧불이와 만났던 시골에서의 추억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요즘 아이들에게는 그저 다큐멘터리 혹은 그림책에서나 존재하는 공상의 곤충에 가깝다는 점이 참으로 안타깝다.

희망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 몇 년 동안 다수의 반딧불이를 목격하지 못했을 뿐, 은하수를 찍으러 갈 때마다 적은 수지만 반딧불이를 목격한 적은 많았다. 다만 수컷이 암컷을 유혹하기 위해 빛을 내는 짧은 짝짓기 기간이 끝나면 반딧불이가 있다 하더라도 발광을 하지 않아 우리는 알아차릴 수가 없다.

▲ 반딧불이들과 동남쪽 하늘 별들의 일주.

캠핑장에서 반딧불이를 찾아보자

하지만 모든 반딧불이가 똑같은 시기에 발광을 하는 것은 아니다. 6월에서 7월 사이에 애반딧불이나 운문산반딧불이를, 8월에서 9월 사이에는 늦반딧불이를 목격할 수 있다.

아이들과 함께 캠핑을 떠난다면 도시에서 거리가 있는 외진 캠핑장을 찾아가 보자. 캠핑장은 대부분 주변에 물을 끼고 있으므로 조금만 벗어나면 멋진 은하수와 반딧불이를 동시에 볼 수도 있다. 물론 운이 좋아야 한다. 밤하늘의 별과 지상의 별이라니. 생각만 해도 가슴이 울렁거린다. 다만 반딧불이를 찾으려면 조명 램프의 불은 모두 끄고, 목소리는 물론 발소리까지 죽여야 한다.

우리 아이들에게 반딧불이를 보여주지 못하는 것은 어른들의 잘못이다. 경제 개발의 명분과 논리도 중요하지만, 아이들의 미래에 반딧불이가 없다면 참으로 슬플 것이다. 한편에서는 반딧불이의 보존을 위해 인공사육도 하고 서식환경 보존에 애쓰는 이들도 있다 하니 그 와중에 참으로 다행이다.

혹시라도 반딧불이를 채집하여 배 부분에서 발광하는 노란 신비의 빛을 자세히 들여다보고자 한다면 조심스럽게 관찰 후 반드시 다시 놓아줄 것을 잊지 말자. 지금은 전북 무주군 설천면 하천 일대의 서식지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지만, 요즘 이 땅의 반딧불이는 종 자체가 사실상 천연기념물에 가깝다.

* 필자주 : 반딧불이의 서식지 보호를 위해서 사진 속의 장소는 공개하지 않습니다. 사유지이며, 지주분과 마을 분들의 간곡한 부탁이 있었습니다. 양해 바랍니다.

국내에 서식하는 반딧불이 중 발광하는 종에는 애반딧불이, 운문산반딧불이, 늦반딧불이 등이 있다. (모든 반딧불이가 빛을 내는 것은 아니다) 이중 운문산반딧불이(4)는 일제강점기였던 1931년에 경남 운문산에서 처음 발견, 학계에 보고됨으로써 이전까지의 종과는 차이가 있어 새로운 이름을 부여받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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