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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수업 | 자전거여행
문학수업 | 자전거여행
  • 선정 및 발췌 오대진 기자 | 사진 김해진 기자
  • 승인 2015.07.28 17: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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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만을 가지런히 챙기는 문장이 마음에 듭니다.”

▲ 자전거여행 김훈 지음, 이강빈 사진 (2014. 문학동네)
숲은 숨이고, 숨은 숲이다
광릉 숲에서
거듭 말하거니와 나는 모국어의 여러 글자들 중에서 ‘숲’을 편애한다. ‘수풀’도 좋지만 ‘숲’만은 못하다. ‘숲’의 어감은 깊고 서늘한데, 이 서늘함 속에는 향기와 습기가 번져 있다. ‘숲’의 어감 속에는 말라서 바스락거리는 건조감이 들어 있고, 젖어서 편안한 습기도 느껴진다. ‘숲’은 마른 글자인가 젖은 글자인가. 이 글자 속에서는 나무를 흔드는 바람 소리가 들리고, 골짜기를 휩쓸며 치솟는 눈보라 소리가 들리고 떡갈나무 잎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들린다.

깊은 숲 속에서는 숨 또한 깊어져서 들숨은 몸속의 먼 오지에까지 스며드는데, 숲이 숨 속으로 빨려들어올 때 나는 숲과 숨은 같은 어원을 가진 글자라는 행복한 몽상을 방치해둔다. 내 몽상 속에서 숲은 대지 위로 펼쳐놓은 숨의 바다이고 숨이 닿는 자리마다 숲은 일어선다.

강물이 살려낸 밤섬
잠실에서 여의도까지

강물에 마음이 흘린 사람이 물을 따라 하류로 내려갔다가 돌아오지 않는 것이 유流이고, 상류로 거슬러 올라갔다가 돌아오지 않는 것이 연連이다. 맹자에 나온다. 끝까지 가버린 사람들의 뒷소식은 지금도 알 길이 없다. 물을 따라간 사람들의 실종 사건은 영구 미제다. 그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강은 상류와 하류 양쪽으로 인간을 유혹한다. 상류의 끝은 시원始原이고, 하류의 끝은 소멸이다. 물은 시원에서 소멸 사이를 잇대어가면서 흐른다. 하류의 소멸이 상류의 시원을 이끌어내서, 신생은 소멸 안에 있다. 그러니 흐르는 강가에서 유와 연은 흐르고 싶은 인간의 자기 분열일 뿐, 강물 속에는 다만 진행 중인 흐름이 있을 뿐이다.

“흘러가는 것은 저러하구나”라고 공자는 강가에서 말했다. 흘러가는 것은 그러하다. 젊은 날에는 늘 새벽의 상류 쪽으로 가고 싶었지만, 이제는 강물이 바다로 흘러드는 하류의 저녁 무렵이 궁금하다. 자전거는 하류로 간다. 하류의 끝까지 가겠다. 거기서 새로운 시원과 만날 수 있다면 우리는 맹자의 책을 덮어두어도 좋을 것이다.
(‘자전거여행1’ 96, 130쪽에서 발췌)

언론인으로 보낸 30여 년. 제1막을 내린 김훈의 세월은 ‘자전거여행’에서 제2막의 서막을 알렸다. ‘칼의 노래’와 ‘현의 노래’에서도 그의 새로운 인생은 계속 흐른다. ‘사실만을 가지런히 챙기는 문장이 마음에 듭니다’라는 김훈의 말은 ‘자전거여행’에서 그 정점을 이룬다. 숲과 강 그리고 자전거. 그의 두 바퀴 여행은 물리적 사실을 정확한 시선으로 짚었다. ‘따뜻한 언어’라는 말쑥한 옷까지 갖춰 입은 ‘자전거여행’은 이 땅의 자연과 인생을 그 모습 그대로 보이며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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