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볍고 안전한…Mountain Safety Research_MSR
가볍고 안전한…Mountain Safety Research_MSR
  • 글 사진 ‘양식고등어’ 조민석 기자
  • 승인 2015.07.28 17:2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양식고등어’의 텐트 이야기

탄생의 비밀은 ‘평범한 산악인’의 불만
MSR의 공식 설립연도는 1969년이지만, 실제로 MSR이라는 브랜드가 태어난 건 그보다 이전의 일입니다. 1969년에 MSR을 세운 창업주 래리 팬버시Larry Penberthy (1916.03.11~2001.11.24)는 시애틀을 주무대로 활약하던 산악인이었습니다. 이 ‘평범한’ 산악인은 암벽등반과 같은 극한의 산악 스포츠를 즐기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과 동료들이 쓰는 장비에 늘 불만이 많았습니다. 가장 큰 불만은 광고에 표기된 최대하중보다 더 가벼운 무게를 가하였음에도 쉽게 망가지는 등반장비였습니다. ‘시원찮은’ 장비의 성능을 보며 래리 팬버시는 오기로 스스로 장비를 개발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됩니다.

▲ MSR의 창업주인 래리 팬버시의 모습입니다. 래리는 많은 나이에도 자사 장비를 직접 테스트하는, 열의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래리는 개혁정신 하나로 안전한 등반 장비를 개발하는 일에 착수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안중에는 안전한 등반 장비를 만들어야겠다는 결심은 있었어도 안전한 장비를 만드는 회사를 차릴 생각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등반 장비에 대한 그의 연구는 입소문을 타고 다른 산악인들 사이에서 적지 않은 공감대를 형성하기에 이르렀고, 그를 돕겠다는 등반가들이 속속 등장했습니다. 그의 프로젝트는 생각지도 못한 규모로 커졌고, 마침내 1969년 ‘Mountain Safety Research’라는 이름의 등반 장비 전문 개발 회사를 설립하기에 이릅니다. 그리고 같은 이름의 뉴스레터를 만들어 거기에 자신이 직접 연구하고 개발한 장비들을 소개했습니다. 그 뉴스레터를 전문 산악인들에게 한 부당 3달러를 받고 팔아서 수익을 얻은 것이 그의 유일한 장비 개발 자금이었습니다.

래리의 도전은 이전의 장비 개발 업체들과는 달랐습니다. 스토브와 피켈, 피톤 등의 자체 성능을 직접 시험하기 위해 길게는 1년 반을 투자하기도 했습니다. 부수 당 3달러씩 들어오는 뉴스레터로 장비 개발을 계속 진행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생각에 타 경쟁사의 장비들을 들여와 팔아 수익을 내기도 했습니다. 물론 그 장비들은 장비 개발 자금 마련을 위한 것이었을 뿐, 궁극적으로는 자체적으로 장비를 개발하고 판매하여 수익을 얻는 순환 구조를 만들기 위함이었다고 합니다. 당연히 그러한 장비들이 래리의 성에 찰 리는 없었겠지요.

▲ 1972년 출시된 썬더버드 얼음도끼입니다. 1970년 등장한 초기형을 한층 더 다듬은 모습입니다.

아웃도어 장비 역사의 획기적 개혁

이후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래리가 발간한 뉴스레터는 연일 화제가 됐습니다. 이전에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수준의 장비들이 속속 모습을 속속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본격적인 장비 출시의 선두주자는 3000파운드(약 1360kg)의 무게를 견뎌내는 얼음나사였습니다. 일반 성인 남성이 몸무게가 80kg 전후이고 추락할 때 나사에 걸리는 무게는 그 몇 배이지만 그 충격을 감당할 수 있는 정도였습니다.

이후 아웃도어 장비 역사에서 획기적인 개혁이라 할 만한 장비들이 그의 뉴스레터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1971년 첫 전시장을 시애틀에서 오픈한 이후 크롬으로 만든 썬더버드 피켈, 등반용 헬멧, 리튬 전지를 사용하는 헤드램프 등이 그것들입니다. 이들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1972년 출시된 모델 9 스토브입니다. 연료통과 화구를 따로 분리하여 호스로 연결시킨 이 스토브는 눈으로 덮인 고산지대 등반에서 가장 큰 골칫거리였던 식수 부족 문제를 해결합니다. 해결책은 눈을 녹여 먹는 것이었습니다. 당대의 유명한 산악인들은 그가 개발한 스토브를 14741피트(4,493m) 높이의 설산에 올라가 실제로 사용했고, 모델 9 스토브는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습니다.

▲ 1973년 최초로 출시된 모델 9 스토브입니다. 당시 MSR에서 개발된 스토브는 연료통과 화구가 분리되어 있었습니다.

늦은 텐트 시장 합류, 개성있는 세 브랜드

MSR은 아웃도어 장비를 개발하는 회사였음에도 창립 이래 약 30년간 알파인 텐트 제작을 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예외적으로 1973년에 트럭 짐칸에 설치할 수 있는 텐트를 개발하긴 했었지만 산악지대에서 사용할 목적으로 만든 것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러나 MSR도 텐트 시장을 끝까지 외면할 수 없었고, 결국 2000년에 텐트 시장에 뛰어듭니다. 당시 뛰어난 기술력과 매니아층을 가지고 있음에도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던 중소 규모의 텐트 회사 3개를 한 방에 인수 합병하는 것이 그들의 전략이었습니다. 그 3개의 텐트메이커에는 모스도 포함이 되어 있었습니다. 각자의 색이 강했던 세 텐트메이커는 한 브랜드 밑에서 서로 잘 녹아드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종래에는 샐러드볼 모델과 유사한 형태를 띠게 됩니다.

▲ 모스 슈퍼돔 모델.

▲ MSR 팬텀 그레이 버전입니다. MSR로의 인수합병에 의해 단절될 것으로 예상되던 모스의 유전자는 큰 변화 없이 MSR로 이어졌습니다.

MSR은 세 브랜드의 독자적인 텐트 구조는 유지한 채 로고와 디자인만 하나로 통합하여 텐트를 탄생시켰는데, 바로 그 모델이 MSR 그레이 버전입니다. 또한 모스에서 제작되던 리틀 디퍼 구조의 텐트를 프로펫이라는 이름으로, 왈루스의 테라모토가 퓨전 시리즈로 재탄생했습니다. 물론 모스의 파라윙이나 아웃피터윙은 이름마저 그대로 따와 원단만 바꿔 출시됐고, 이전에는 없던 형태의 파빌리온 같은 모델이 출시되기도 했습니다.

그레이 버전의 MSR 텐트는 모카색에 가까운 플라이와 검은색 이너 바닥 시트, 붉은색의 슬리브, 흰색의 이너텐트 원단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모스 텐트 특유의 묵직한 무게감과 완성도가 MSR 그레이 버전 텐트에서도 드러났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기존의 모스 텐트의 배색이 그레이 버전 텐트의 플라이 색상에 영향을 많이 미친 것도 사실입니다. 모카색은 다른 인수합병 대상이었던 왈루스의 텐트나 아르마딜로의 텐트와는 거리가 멀었으니까요.

▲ 모스 빅 디퍼 모델.

▲ MSR 스톰킹 V3 모델입니다. 빅 디퍼의 유전자는 모스의 스타돔과 함께 오늘날까지도 단종되지 않고 디자인상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경량화 바람과 ‘허바허바’의 탄생

MSR의 다채로운 그레이 버전 텐트 시리즈는 시장에 출시된 후 많은 인기를 끌었습니다. 상승세를 끌던 2000년대 중반, MSR은 그레이 버전의 텐트 시리즈를 전량 단종시키고 완전히 새로운 텐트 라인업을 구축하는 변혁을 일으켰습니다. 허바허바 시리즈는 그렇게 태어났습니다. 당시 캠퍼들 사이에는 경량화 바람이 불었는데 MSR은 그 시류에 편승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의 개혁은 경량화에 대한 소비자들의 니즈에는 잘 대응한 것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모스 텐트가 갖고 있던 특유의 무게감이 사라진 부분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토로하는 유저들도 많았습니다.

모스에서 텐트 디자인을 이끌던 테리 브룩스를 영입한 MSR은 경량화 트렌드에 이전과는 다른 행보를 보입니다. 테리의 바뀐 생각을 바탕으로 MSR의 텐트 라인업은 몇 차례의 세대 교체를 거쳐 오늘날까지 이어졌고, 가볍지만 안전한 텐트를 만든다는 그들의 ‘새로운’ 기조 또한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 빅대디 모델. 빅대디는 원정대 베이스캠프를 위해 개발된 특수한 텐트입니다.

▲ 빅대디 모델과 파빌리온 모델(사진)은 MSR 텐트들 중 이례적으로 과거의 유전자를 물려받지 않고 새롭게 탄생한 모델입니다.

▲ 200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경량화의 흐름에 편승한, MSR 기조를 대표하는 허바허바 모델입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