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차려진 풍경에 두 발만 얹다…홍천 백우산 용소계곡
잘 차려진 풍경에 두 발만 얹다…홍천 백우산 용소계곡
  • 이슬기 수습기자 | 사진 양계탁 기자
  • 승인 2015.07.08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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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with MAMMUT ②TREKKING

여름의 홍천은 푸름 일색이다. 커다란 풍선 가득 초록 물감을 채워 넣고 흰 도화지 위에 ‘톡’ 하고 터뜨린 듯 지천이 푸르다. 그 푸름을 양옆에 두고 꼬불꼬불 꽤 오랜 시간을 달리면 동화책 속 한 장면 같은 계곡이 나타난다. 풀빛 요새 아래 꼭꼭 숨어 있는 피터팬의 네버랜드. 두 발을 담그면 마음까지 녹여주는 팅커벨의 물약이 있는 곳, 백우산 용소계곡으로 날아갔다.

가슴까지 시원한 계곡을 찾아
올여름 무더위의 예고편 같던 6월의 어느 날. 내리쬐는 태양 아래서 트레킹이라니 아무래도 썩 내키지 않았다. 그 어떤 황홀경이 앞에 펼쳐져 있어도 눈에 흘러들어 가는 땀 때문에 지나치고 말 거다. 더울 땐 역시 시원스런 물장구가 최고다. 그래서 가슴 시릴 정도로 차가운 물이 흐르는 계곡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용소계곡은 내촌면 광암리에서 발원해 두촌면 괘석리를 거쳐 천현리 경수마을까지 이어지는 홍천강 최상류 지류다. 트레킹 코스는 광암리 굽넘이입구에서 계곡을 따라 내려오거나 하류인 용소교차로를 기점으로 올라갈 수 있다. 흐르는 물의 방향을 따라 내려오는 길이 훨씬 더 수월하지만, 우리는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기로 했다. 용소교차로에서 차를 타고 굽은 길로 조금 더 들어갔다. 흙길을 미끄러져 내려가니 빨간 구름다리 아래로 계곡물이 반짝이고 있었다.

▲ 수심이 깊은 구간을 피해 조심스럽게 계곡을 건넜다.

▲ 등산 스틱을 이용하면 물속에서 중심을 잡는 데 도움된다.

“우와!” 차에서 내리자마자 감탄사가 절로 터져 나왔다. 눈앞으로 우거진 숲과 우묵주묵한 너럭바위들이 멋들어지게 뒤엉켜 손짓하고 있었다. 표지판에 적힌 홍천 제7경이라는 글자가 기대감을 더했다. (홍천이 자랑하는 9경(景)이란 팔봉산, 가리산, 미약골, 금학산, 공작산 수타사, 용소계곡, 살둔계곡, 가칠봉, 그리고 삼봉약수를 뜻한다) 구름다리에는 2014년 11월 완공이라 쓰여 있어, 아직 많은 이가 다녀가지는 않은 듯했다. 훼손되지 않은 원시 그대로의 모습이 더 짙게 남아 있으리라.

▲ 버들치를 잡기 위해 생수병으로 간이 통발을 설치하는 일행.
흐르는 물에 첫발을 담그다
설레는 마음에 신발 끈을 꼭 동여매고 다리를 건넜다. 왼편으로 걸어 내려가니 다리 밑 싱그러운 계곡 정경에 숨이 탁 트인다. 기분 좋게 속삭이는 물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바위를 넘고 물살을 거스르는 계곡트레킹은 처음이라 출발 전 살짝궁 걱정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머리 위로 한낮의 태양이 쨍쨍하게 내리비추니 주저할 새가 없다. 오른발을 계곡물 안으로 밀어 넣었다. 발목에서 느껴지는 청량감이 핏줄을 타고 머리끝까지 전달되는 느낌이다. 짜릿하다.

홍천(洪川)은 큰 물줄기라는 뜻답게 예로부터 물이 풍부한 고장이다. 극심한 가뭄으로 물이 귀할 때도 이곳은 사시사철 마르지 않아 살기 좋았다 한다. 계곡은 한동안 내리지 않았던 비로 수심이 낮아져 있었다. 굉장한 단신인 기자의 허벅지께밖에 차지 않았으니 중간중간 깊어 보이는 구간만 잘 피한다면 안전하게 트레킹을 즐길 수 있겠다. 다만 여름철 장마 기간 등에 비가 많이 내리면 물이 크게 불어나 통행이 금지된다니 유의하자.

그동안 가물었던 탓에 발아래 깔린 돌 위로 퍼런 이끼가 잔뜩 끼어 있다. “미끄러우니까 조심해. 다치기 쉬워.” 동료의 말에 다리 근육이 더 뻣뻣해지는 듯하다. 한발 한발 조심스럽게 내디디며 넘어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써본다. 계곡트레킹에 등산 스틱은 꽤나 요긴하니 참고하자. 미끈거리는 돌 위에서 중심을 잡거나 앞사람이 지나가 뿌옇게 된 물의 깊이를 가늠하기 좋았다. 미끄러지지 않는 신발을 착용하는 것도 필수다.

▲ 계곡트레킹 시 미끄러지지 않는 신발은 필수다.

▲ 미끄러운 돌 위에서 넘어지지 않도록 주의하며 걷는다.

용이 머무는 비밀스러운 청정계곡

계곡길은 약 13km에 달하지만, 주위 풍광을 둘러보며 쉬엄쉬엄 걸으면 5~6시간 정도 소요된다. 30분쯤 걸었을까. 한 발짝씩 물살을 가르고 나아가는 재미에 어느덧 긴장이 풀렸는지 ‘휘청!’ 보기 좋게 입수하고 말았다. 출발 전, 누군가 물에 빠지면 재밌겠다고 농을 쳤는데 그게 기자가 될 줄이야. 뒤집힌 자라 꼴로 버둥대는데 누군가 일으켜 세워주며 물었다. “저쪽 산길로 가면 편한데 왜 이리로 가세요?” 그러게, 기자는 왜 쉬운 길을 두고 여기를 걷고 있는 걸까? 딱히 뭐라 답할 수 없었지만 웃음이 났다. 찧은 무릎이 시큰대고 몸이 잔뜩 젖어도 마냥 즐겁다. 그냥 그걸로 충분했다.

▲ 화창한 6월의 날씨가 아름다운 용소계곡의 정경을 완성한다.

계곡을 걸을 때 가장 멋진 경험은 다리 사이로 지나가는 물고기를 바라보는 일이다. 말갛고 투명한 물결을 따라 이리저리 몸통을 흔드는 미꾸라지와 버들치떼가 앙증맞다. 용소계곡은 1997년부터 2000년까지 자연휴식년제로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됐다. 4년 동안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은 채 자연환경 보호구역으로 관리되었던 까닭에 바닥의 작은 돌멩이까지 그대로 보일 만큼 물이 맑고 청정하다. 운이 좋다면 열목어, 쉬리 등 1급수에만 서식한다는 물고기를 만날 수도 있다.

용소란 용이 첩첩산중에 잠시 쉬어가려 내려앉은 자리란 뜻이다. 이름에 걸맞게 그 풍광이 호쾌하고 운치 있다. 초록의 화첩 위에 수 놓인 나비와 어른 엄지만 한 다슬기, 분주히 헤엄치는 물고기들에게 아늑한 보금자리기도 하다. 누군가 설치해 놓은 통발 안에 미꾸라지와 메기가 가득하다. 동료는 그걸 보더니 버들치를 잡아 보겠다며 간이 통발을 만들었다. 500mL짜리 물통 윗부분을 잘라 으깬 소시지를 넣고 윗부분을 뒤집어 몸통에 꽂아넣으니 제법 그럴싸하다. 다시 돌아가는 길에 와서 풀어주겠노라고 놓아둔 통발을 뒤로했다.

▲ 계곡 곳곳에 멋진 기암괴석이 많아 운치를 더한다.

▲ 잠시 휴식을 취하며 시원하게 물장구를 쳐 본다.

▲ 푸른 갈대 밀림을 만나 수풀을 헤치고 나간다.
짙은 푸름 속에 오롯이 스미다

이미 다섯 번은 전신을 물속에 담근 터라 온 신경을 발끝에 집중했다. 바닥에 깔린 조약돌의 모양이라도 달달 외려는 듯 머리를 숙인 채다.

“앗 다람쥐다!”
동료가 외치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그 순간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절벽과 울창한 수풀의 어울림이 폭죽에 터지는 불꽃 마냥 두 눈에 쏟아진다.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비경에 숨이 막힐 정도다. 이곳을 내설악에 버금가는 아름다운 계곡이라 칭하는 이유가 거기 있었다.

발걸음을 멈춘 채 한 폭의 수묵담채화 속으로 한참을 스며들었다. 어느덧 정신을 차려보니 앞서간 동료들의 모습이 사라졌다. 대신 편편한 너래소 너머로 촘촘히 깔린 푸른 갈대가 보인다. 다리를 간질이는 갈대 밀림을 헤치자 정글을 탐험하는 기분이다. 그 앞에 반가운 동료가 웃는 얼굴로 서서 손짓한다.

고즈넉한 계곡길을 따라 5km쯤 걸어 올라가니 눈앞에 괴이한 모양새의 바위가 버티고 있다. ‘거북바위와 노송’으로 불리는 곳이다. 고고히 늘어진 노송을 확인하고 널찍한 바윗돌 위에 걸터앉아 신발을 벗어 던진다. 발가락이 하얗게 퉁퉁 불어있다. 청청한 하늘을 비추는 물결이 발바닥을 어루만지자 신선이라도 된 기분이다.

여름 더위 씻긴 힐링 타임
휘몰아치는 물줄기를 가르다 보면 어언간 중간 지점인 금산이터 와폭에 다다른다. 바위 사이로 세차게 흐르는 물살에 숨 가삐 돌아가는 서울 생활이 겹쳐진다. 돌아가는 차 시간이 떠올라 아쉽게 발걸음을 돌렸다. 계곡 옆으로는 평탄하게 다져진 오솔길이 길게 나 있다. 산길 사이로 누운 통나무 다리를 건너면 경고문이 설치된 농장이 등장한다. 이곳에는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12호로 지정된 ‘괘석리 삼층석탑’이 우두커니 자리하고 있다. 고려 때 수타사(壽陀寺)에서 세웠다고 전해지며, 탑을 옮기려 했으나 호랑이가 나타나 막는 바람에 옮기지 못했다는 전설이 있다.

▲ 계곡을 따라 길게 난 산길을 잇는 통나무 다리.

무성한 나무 아래 그늘이 드리워진 산길은 협소하지만 평화롭고 한갓지다. 공기에 녹아든 여름의 냄새와 스치는 나뭇잎의 소리가 싱그럽다. 도시에서 찌든 폐포가 말끔히 정화되는 기분이다. 아직 고요한 이곳은 종일 우리만의 소리로 가득했다. 모든 이들이 반할만한 곳이지만 너무 많은 사람이 찾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온갖 새로운 것들로 가득 차 바삐 움직였던 봄이었으리라. 나를 지치게 하는 것들로부터 탈출해 네버랜드를 꿈꾸고 있는 당신. 가짜 녹색으로 점멸하는 비상구 너머 펼쳐진 세상은 틀림없이 이런 곳이어야 한다.

상류 내촌면 광암리 861 (내촌면 군유동길293번길 61)
하류 두촌면 괘석리 661 (두촌면 경수길)
가는 길 홍천읍-44번 국도-철정검문소- 촌면 자은리- 두촌초등학교 앞-용소계곡
문의 두촌면사무소 033-430-4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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