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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속 최고의 즐거움, 서핑은 신앙입니다”OUTDOOR INSIGHT ②서미희 원장 & 예수환 선수
  • 이지혜 기자 | 사진 양계탁 기자
  • 승인 2015.07.08 17:18
  • 호수 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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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도 서핑을 해요?” 이런 물음은 이제 옛말이다. 부산 송정과 다대포, 제주도, 서해 만리포, 강원도 양양, 경북 포항 등지에서 로컬서퍼들이 오랜 시간 다져온 기반 덕분에 최근 국내 서핑 인구만 5만 명으로 추산될 정도니 말이다. 서프보드도 없던 시절, 외국 비디오를 구해와 서핑을 배웠다는 국내 1호 여성 서퍼 서미희 원장과 세대를 이어 최근 3세대 서퍼를 대표하는 예수환 선수를 부산 송정해수욕장에서 만났다.

   
 
두 분은 오랜 시간 동안 알고 지낸 사이라고 들었어요. 서로를 소개해 주시겠어요?
서미희(이하 서) 6년 전인가요. 유난히 눈이 반짝반짝하던 남자아이가 저를 찾아와 쑥스럽게 서핑을 하고 싶다 말했어요. 그때 어찌나 상큼하고 예쁘던지.(웃음) 하루 이틀 두고 봤죠. 그런데 한 철 왔다가 잠깐 서핑을 즐기고 가던 사람들과는 다른 무언가가 있었어요. 무슨 운동을 한 건지 보드 위에서 균형 잡는 시간도 보통 서퍼들보다 확연히 빨랐고요. 그때 알았죠. 이놈은 무엇이든 되겠다. 결국,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프로 서퍼가 되었잖아요?

예수환(이하 예)
원장님은 부산에서 서핑을 즐기는 로컬서퍼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든든한 존재예요. 송정 해수욕장에 서핑이 자리 잡도록 최초로 기반을 닦으셨어요. 지금은 서핑숍이 여럿 있지만 모든 서핑숍은 원장님이 뿌리내리신 송정서핑학교의 가지인 거죠. 결국, 송정의 서핑은 원장님을 통해 시작되고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나이가 있으시지만 아직도 서핑을 진심으로 사랑하시는 마음이 느껴져 저도 가끔 숙연해지곤 할 정도니까요.

   
 
서핑에 빠진 계기가 있으세요?
원래 제 성격이 화끈해요. 한 번 할 거면 제대로 하자는 주의죠. 1996년 당시에 10년 동안 해 온 윈드서핑으로는 채울 수 없는 무언가에 허전해 하고 있었어요. 우연히 송정해수욕장에서 외국인이 서핑을 타는 것을 보게 되었는데 파도를 자유자재로 가지고 노는 것에 마음을 빼앗겨 버렸어요. ‘저거다’ 싶었지요. 당장 그 외국인에게 달려가서 물었죠. “당신이 타고 있는 게 뭐냐?”고요. 얼마나 황당했겠어요.(웃음) 그만큼 전 절박했어요. 서핑을 처음 본 순간부터 서핑이 하고 싶어 안달이 났으니까요. 외국인을 2박 3일 우리 집에서 재우고 먹이며 서핑을 배웠어요. 당시엔 제대로 서핑을 배울 수 있는 곳이 없었죠. 외국에 나갔다 들어오는 지인들에게 부탁해 서핑 비디오를 손에 넣을 수 있었어요. 필름이 끊어질 때까지 비디오를 보며 서핑을 독학했어요. 그때부터 시작됐지요. 제 서핑 사랑이.

지금의 매형이 서핑을 즐겨 저도 자연스럽게 따라다니며 시작하게 됐어요. 사실 운동신경이 좋다고 자부하고 있어서 서핑도 자신이 있었는데 처음 타보니 그게 아니더라고요. 서핑은 지금까지 했던 운동과는 달랐어요. 운동신경이 좋다고 다 되는 게 아니었죠. 밸런스, 기술, 체력, 인내심까지 모든 것이 어우러졌을 때 비로소 보드 위에 설 수 있는 거죠. 쉽지 않아서 더 매력이 있었나 봐요. 시작하고 몇 날 며칠을 자려고 누우면 바다와 파도 소리가 들릴 정도였으니까요.(웃음) 사실 당시 제 나이가 스물세 살이었어요. 막 군대를 제대한 남자라면 으레 하는 미래에 대한 걱정을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서핑을 타면서 자연스레 제가 걸어야 할 길이 열리더라고요. 그렇게 지금까지 서핑과 함께 살고 있어요.

두 분 다 열렬히 서핑을 사랑하시는군요. 서핑의 매력이 도대체 뭔가요?
서핑은 90%가 기다림이에요. 대자연 속에서 수평선을 바라보며 파도를 기다리다 보면 저도 모르게 경외감이 느껴져요. 육지에선 휴대전화를 손에서 놓지 못하고 고민 많은 일상이 반복되지만, 바다 위에선 내 몸과 보드밖에 없죠. 그리곤 조용히 파도를 기다리는 거예요. 서핑을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사람은 아무리 설명해도 알 수 없는 묘한 감정이죠. 세상에 오로지 나만 존재하는 듯한 느낌, 파도가 나를 허락해 줄까 하는 걱정, 그리고 결국 파도를 넘었을 때의 쾌감. 어떤 것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서핑의 매력이죠.

서핑의 매력은 배려와 자유로움으로 설명할 수 있어요. 파도 위에선 국경과 인종을 넘어 배려가 존재하죠. 서핑룰은 대부분 그림으로 되어 있어서 알기 쉽고, 세계의 모든 서퍼들에게 공통으로 적용돼요. 파도 위에선 가장 많이 기다린 사람이 배려받죠. 받는 배려도, 남에게 베푸는 배려도 모두 자연스러운 것이 서퍼의 세계에요. 결국, 파도가 허락하는 자유로움은 사람이 사람을 배려할 때 느낄 수 있는 거예요. 멋있지 않나요?

   
 
멋있어요. 그렇다면 서핑을 타시며 위험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스포츠나 운전이 그렇듯 가장 위험한 시기는 똑같아요. 바로 초보 딱지를 뗀 직후죠. 서핑을 배우기 시작하고 조금씩 몸에 익어갈 때쯤 못 넘어갈 파도가 없다 생각했어요. 그때 숱하게 다치며 느꼈어요. ‘아, 서핑은 쉬운 게 아니구나’하고요. 어디 가서 운동신경 떨어진단 얘길 듣는 게 참 자존심 상했는데, 서핑 앞에서는 자존심을 세울 수 없었어요. 파도는 자연이 만들어 준 놀이터죠. 한낱 사람이 거기서 뛰어놀기 위해선 항상 겸손해야 했어요. 몸 다쳐가며 겸손함을 배운 셈이죠.(웃음)

저도 원장님과 비슷해요. 서핑을 시작한 지 3달쯤 지났을 때에요. 남들이 말하길 제가 서핑을 잘 탄다고 하더라고요. 제 자신감도 하늘을 찔렀죠. 태풍이 치기 직전인 나사리 해수욕장에서 서퍼 형들과 파도를 타고 있었어요. 집채만 한 파도가 덮쳤는데 순간 세탁기(Washing Machine : C모양으로 부서지는 파도 안에 갇혀 세탁기 속 빨래처럼 몸이 계속 돌기만 하는 상태)에 걸린 거예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리쉬(Leash : 서프보드와 몸을 연결해주는 줄)까지 풀렸죠. 이렇게 죽는구나 싶었어요. 그런데 그 전날 우연히 배운 보디서핑(Bodysurfing : 보드 없이 몸으로 하는 파도타기)이 생각나더라고요. 몸에 힘을 빼고 보드처럼 몸을 폈어요. 자연스럽게 파도에 휩쓸려 해변으로 밀려나더라고요.

얼마나 무서웠겠어. 몸이 덜덜 떨리지.
네. 말 그대로 방금 죽을 수도 있었겠단 생각에 몸이 덜덜 떨렸어요. 그렇게 한 10분 앉아있었을까요?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다 보니 어느 순간 형들이 계속 서핑을 타는 게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순간 재밌겠다는 생각이 또 들었어요. 말없이 리쉬를 발에 묶었죠. (웃음)
서 그렇게 된다니까. 서핑은 신앙 같아.

   
 
서핑이 신앙이란 말이 인상 깊네요. 서핑을 위해 다양한 곳을 다녀보셨을 텐데, 어디가 가장 인상 깊으셨나요?
서핑을 시작하고 본격적인 서핑 유학을 준비하고 있었어요. 원래 계획은 필리핀에서 어학연수를 마치고 떠나려 했죠. 그런데 미국에 사는 친누나가 캘리포니아로 와서 조금 더 생각 해보라고 권유했어요. 캘리포니아를 갔더니 그야말로 서핑의 천국이었어요. 아름다운 파도와 화려한 묘기, 라이프 스타일로 서핑을 즐기는 사람을 수없이 봤어요. 그 중 트레슬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서프보드에 몸을 싣고 파도를 가르며 달려나가는 기분이 그야말로 최고였죠.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동쪽으로 35km 정도 가다 보면 롬복이라는 섬이 나와요. 그곳의 파도가 끝내주죠. 발리는 서핑의 천국이에요. 1년 365일 서핑하기 좋은 파도가 치죠. 아이들을 발리에 유학 보낸 것도 그런 이유에요. 롬복에는 서핑 포인트도 많지만, 암초도 곳곳에 있어 조심해야 해요. 하지만 해 질 녘 암초에 부서지는 파도는 그야말로 장관이에요. 세상 그 무엇도 자연이 만든 바다만큼 아름다운 것은 없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니까요.

그렇다면 두 분이 살고 계신 송정해수욕장은 어떤가요?
송정해수욕장도 서핑하기 정말 좋은 곳이에요. 동해와 남해가 맞닿는 곳이라, 남풍과 북풍의 영향을 모두 받아 파도가 좋아요. 서핑을 즐기기엔 국내 최적의 장소죠. 상급자를 위한 큰 파도는 없지만 초·중급자들이 즐길 수 있는 파도는 전국 최고예요. 수온이 따듯해 3월부터 11월까지 서핑이 가능하죠. 서핑을 배우기에 이보다 좋은 곳은 없을걸요.

저도 송정해수욕장에서 서핑을 배워서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로컬리즘은 서핑에 가장 중요한 정신이죠. 외국에 나가 서핑을 탈 때면 그곳 로컬서퍼들은 원정서퍼들에게 엄격하게 대하기도 하지만 먼저 파도를 타게 해주거나 모르는 것을 자기 일처럼 알려주죠. 그게 바로 서핑의 로컬리즘이에요. 송정 해수욕장에서 서핑을 즐기는 저 같은 로컬서퍼가 이곳의 로컬리즘이 올바르게 정착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평소에 서로에게 못했던 말이나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으세요?
저는 다시 태어나면 꼭 서핑선수가 되어서 세계를 제패하고 싶어요. 한국에선 제가 빨리 시작한 편이지만, 세계적으로 봤을 땐 제 나이가 적지 않으니까요. 수환이는 그런 면에서 젊은 시절에 서핑을 위한 여행을 다녀봤으면 좋겠어요. 제가 못 이뤘던 것을 이뤄주길 바라는 면도 있죠. 세계를 누비며 파도를 타는 모습은 제 꿈이었거든요. 수환이는 꼭 보드 하나로 더 넓은 세상을 만날 수 있을 거예요.

원장님은 요즘 서프레스큐(전문 서퍼가 서프보드를 이용해 수상에서 인명을 구조하는 활동)를 송정에 정착시키신다고 바쁘세요. 송정해수욕장에서 서핑을 처음 시작하셨고, 지금도 송정 로컬서퍼들에게는 든든한 대모같은 분이시죠. 그런데 가끔 바쁜 스케줄에 건강을 헤칠까 봐 걱정이 되기도 해요. 그 마음은 알겠지만, 이제 저 같은 젊은 서퍼들에게 조금은 맡기시고 건강을 챙기셨으면 해요.

꼭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으신가요?
사실 저는 서핑에 미쳐 살지만, 선수로서 어디까지 올라가야 하겠다는 목표가 뚜렷하진 않아요. 서핑은 어차피 제가 죽을 때까지 함께 할 운동이니까 기록 욕심은 없어요. 그것보다는 제 나이가 선수로서 젊지 않기 때문에 후진 양성에 힘쓰고 싶어요. 현재 국내에서는 서핑의 프로 층이 얇아 아무리 서핑을 좋아하고 잘해도 서핑만 해서 살아가기가 힘든 게 현실이에요. 그래서 많은 루키들이 다른 일을 한다거나 서핑 강사로 살아가는 것이 마음 아파요. 원장님이 서핑을 처음 한국에 이끌고 오셨다면, 저는 서핑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이끌어 현실적으로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 가는 게 꿈이에요.

가족과 함께 바다에서 서핑하는 것이 꿈이에요. 딸과 아들이 서핑 유학을 가 있어서 최근엔 함께 서핑을 타는 시간이 줄었죠. 아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서핑과 함께해서 그런지 뛰어난 서퍼가 될 거 같아요. 아이들이 국내 최고의 반열에 오르고 나아가 세계에서도 인정을 받으면, 가족이 함께 송정에 모여 서핑하는 인생을 살고 싶어요. 파도 위에서 남은 생을 보내는 거죠. 지금도 바다에 들어가면 입꼬리가 올라가 내려올 줄 모르니 평생을 바다에서 살아야죠.

   
 

이지혜 기자 | 사진 양계탁 기자  hye@outdoor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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