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3대 텐트 메이커라는 이름, 힐레베르그②
세계 3대 텐트 메이커라는 이름, 힐레베르그②
  • 글 사진 ‘양식고등어’ 조민석 기자
  • 승인 2015.06.29 16:2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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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고등어’의 텐트 이야기 | 오로지 텐트(하)

가격과 질, 두 마리 토끼를 잡다
산림감독관 자리를 과감하게 집어던지고 텐트 사업에 뛰어든 보 힐레베르그Bo Hilleberg의 이야기. 지난 호에 이어 들려드리겠습니다. 높은 가격대의 힐레베르그 텐트는 더 이상 가격을 인상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그렇다고 공정을 생산 단가가 저렴한 곳으로 옮겨, 제품의 질을 떨어뜨릴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고심 끝에 보 아저씨가 내놓은 방안은 핀란드만을 사이에 두고, 본사가 있는 스웨덴과 인접해 있던 에스토니아로 생산 공정의 일부를 이전하는 것이었습니다.

▲ 20여년 전 힐레베르그 가족의 사진.

생산 공정의 이분화로 에스토니아를 택한 이유는 당시 북유럽과 구소련 간의 시대적 배경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90년대 초반은 소련의 붕괴로 인해 소련에 속해 있던 나라들이 독립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 중 에스토니아는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 인건비 인상의 흐름을 상당히 늦게 타고 있었던 것이지요. 이를 통해 보 아저씨는 적어도 10년 동안은 인건비 인상의 한계를 극복해 낼 수 있었다고 합니다.

▲ 최근 힐레베르그 가족의 사진입니다. 어릴 때부터 함께 자연을 즐기며 살아온 그들은 여전히 자연을 즐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이보의 탄생

힐레베르그는 이후에도 생산 단가에 크게 연연하지 않고 독창적인 시도를 계속 이어나갔습니다. 그 중 가장 야심적이었다고 평가되는 것이 바로 사이보SAIVO 모델 개발에 관한 것이었는데요. 사이보는 기존 사타리스SAITARIS 모델이 상대적으로 무겁고, 기준 인원인 4명보다 적게 사용할 경우 전실 면적이 넓어 열효율성이 크게 떨어진다는 판단을 바탕으로 탄생했습니다.

사이보가 이후 출시된 대형 돔 텐트인 아틀라스ATLAS나 2인용 텐트인 자누JANNU, 카이텀KAITUM 텐트보다 지금까지 더 주목받을 수 있었던 것은 2011년 있었던 한 베이스캠프의 덕이 컸습니다. 그 베이스캠프는 바로 스위스 아웃도어 명가로 손꼽히는 마무트 사의 1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열렸는데, 행사를 위해 스위스 융프라우 산악지대에 사이보 텐트 150동이 종대로 설치되었습니다. 이후 현장에 있었던 150동의 사이보는 행사 이후 한정판매로 시장에 등장, 전 세계 유저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 2013년을 시작으로 롤프 힐레베르그의 마케팅 디렉터 자리를 이어받은 고란 스벤스크의 모습입니다.

컬론 1800과 컬론 1200의 공존

원단 분야에서는 기존 실리콘 코팅 원단인 컬론 시리즈 원단이 오랜 성능 개선 노력 끝에 컬론 1800 원단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이 때 등장한 1800이라는 수치는 이전 4자리 수치와는 다른 개념으로, 인열강도의 뜻을 포함하게 됩니다. 인장강도는 온전한 원단을 찢는 데 얼마나 많은 힘이 들어가느냐에 대한 것을 수치화한 것이고, 인열강도는 원단이 찢어지는 상황이 일어났을 경우 그 손상을 더 크게 하는 데에 얼마나 많은 힘이 드는가에 대한 개념을 수치화한 것입니다. 인열강도가 1800g에 달했다는 것은 텐트의 스킨이 온전한 상태에서 쉽게 파단되지 않는 것을 넘어서, 설령 일부가 찢어졌다 해도 그 파손 부위가 더 넓어질 가능성이 낮다는 뜻입니다.

▲ 힐레베르그 텐트에 사용되는 원단 종류입니다. 컬론 1800, 컬론 1200, 컬론 SP로 크게 분류할 수 있으며, 컬론 SP는 아틀라스와 같은 대형 모델에 적용된 특수 원단입니다.

인장강도에 대한 언급보다 인열강도에 대한 수치를 강조한 것은 여타 텐트메이커들 사이에서는 드문 일입니다. 더 흥미로운 사실은, 컬론 1800 원단의 출시와 함께 기존 수치 1500보다 한참 낮은 컬론 1200 원단도 함께 출시되었다는 점입니다. 기능에 관한 수치를 향상시킨 것은 이해가 되지만 수치를 낮춘 원단을 출시한 것은 의아합니다. 원단의 수치를 낮춘 데에는 사실 이유가 있었습니다. 극지방과 같은 혹한의 상황이 아닌 곳에서 극지방에서 사용하는 수준의 기술적 성능을 가진 텐트를 사용하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이 바로 그것입니다. 실제로 힐레베르그 텐트를 사용하는 유저들 중 극지방에서 사용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기본 자재 경량화에 대한 필요성은 보 아저씨에게 적지 않은 고민거리였습니다. 원단의 기본적 성능에서 경량화를 추구하면 텐트 전체의 완성도가 떨어질 가능성도 많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보 아저씨는 기존의 생각과 새로운 방식을 절충하지 않고, 공존시키는 중도의 입장을 취했습니다. 그래서 컬론 1800 원단과 컬론 1200 원단이 공존하게 된 것입니다. 컬론 1800 원단은 극지방 원정 사용을, 컬론 1200 원단은 보다 일반적인 환경에서의 사용을 타깃으로 합니다. 이러한 용도상의 차이는 굳이 구체적인 수치를 보지 않더라도 네 가지 라벨을 통해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 2011년 열렸던 마무트 150주년 기념 베이스캠프입니다. 융프라우 북벽 아랫자락에 150동의 사이보가 설치되었는데, 이는 아웃도어 역사 상 전무후무한 규모였다고 합니다.

▲ 사이보 모델의 개발과 더불어 특이한 시도로 주목받은 모델 중 하나인 1인용 비박 텐트 비버락.

힐레베르그, ‘나’보다는 ‘우리’

힐레베르그가 기능성 못지않게 중요히 여겼던 분야가 마케팅 분야입니다. 우수한 기술력을 유저들에게 알리는 데 마케팅의 역할이 큰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 보 아저씨는 80년대부터 끊임없이 마케팅에 투자했습니다. 그의 가치관은 딸 페트라Petra와 아들 롤프Rolf에게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페트라는 2000년 미주 시장 진출을 위해 워싱턴 주에 힐레베르그 법인을 세웠고, 롤프는 3년 뒤 아버지를 이어 스웨덴 본사의 마케팅 디렉터가 되었습니다. 페트라는 현재까지도 힐레베르그 내에서 활동 중이고, 롤프는 2013년 자신의 자리를 외부 경영인인 고란 스벤스크에게 이관했습니다. 물론 롤프는 이후에도 아웃도어 분야에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 2005년 출시된 대형 돔 텐트 아틀라스. 사진의 아틀라스는 밀리터리 버전인데, 밀리터리 버전 아틀라스 본체만은 이례적으로 중국 OEM으로 만들어졌습니다.

40여 년의 역사를 걸어 온 힐레베르그. 많은 유저들은 보 힐레베르그가 텐트메이커 힐레베르그를 독자적으로 이끌어 온 것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정작 본인은 많은 인터뷰에서 자사의 역사를 소개하며 ‘나’보다는 ‘우리’를 강조했습니다. 맞는 이야기입니다. 아내 르네Rene가 없었다면 오늘날 힐레베르그의 훌륭한 텐트 바느질 기술은 없었을 것이고, 페트라가 없었다면 보의 경영과 제품에 대한 철학을 그 자신만큼 심도 있게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유럽 외 시장으로 진출하는 데에도 지금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입니다. 그들이 말하는 ‘우리’와 텐트에 대한 철학이 오늘날의 힐레베르그를 만들어 왔듯이 앞으로도 그들의 철학적, 기술적 진보는 계속될 것입니다.

▲ 아틀라스와 비슷한 시기에 개발된 2인용 자누 텐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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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ima 2017-12-15 21:00:34
좋은 기사 덕분에 많은 내용을 알 수 있었네요~ 잘 보고 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