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최대의 와인 상업 지구
중세 최대의 와인 상업 지구
  • 글 진정훈 소믈리에 | 사진제공 금양인터내셔널
  • 승인 2015.06.22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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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NE|가치 있는 땅, 보르도

와인을 잘 모르는 사람도 ‘보르도 와인’은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보르도’는 실제로 와인을 생산하는 지역 중에서는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로 유명한 도시다. 보르도를 한국의 지리와 비교하자면 남서쪽의 항구 도시인 목포 또는 군산과 비슷한 위치로 볼 수 있다. 프랑스에서 단일 명칭 포도밭으로 가장 넓은 면적이며, 프랑스 AOP와인(원산지 표기 와인 중 높은 등급의 지역 와인을 뜻함)의 약 4분의 1을 생산하고 있다.

▲ 샤또 까망삭 2008Ch.Camensac

보르도는 로마 시대 해군기지였으며, 물가Bord de l’eau라는 뜻에서 유래된 명칭이다. 보르도는 기후와 토양 조건이 와인용 포도 재배에 완벽하고, 대서양으로 나갈 수 있는 강을 끼고 있어서 중세시대부터 영국, 벨기에, 네덜란드 등으로 배를 이용하여 수출할 수 있는 완벽한 무역 환경까지 갖추고 있었다. 교통과 커뮤니케이션 환경이 매우 열악한 중세 시기에도 보르도 와인은 유럽에서 꽤나 유명했다. 그 당시 양조 기술이 발달되지 않았음에도 믿고 마실 수 있다는 의미로 별명이 진한 색을 뜻하는 끌라렛Claret이라고 붙여질 정도였다.

이런 가치 있는 땅 보르도가 백년전쟁(1337~1453)이라는 큰 역사적 사건에 휘말리는 계기가 있었다. 약 1000년 경, 보르도 지방의 공주인 알리에노르Alienor(1122~1204)는 루이 7세Louis VII와 결혼했지만, 피레네 산맥에 이르는 남서부 지방을 왕실 직영에 포함시키지 않는다는 조건을 달았다. 당시 프랑스 왕실의 힘이 그리 크지 않았는데, 1152년에 루이 7세가 결혼을 무효화했고 두 달 뒤, 알리에노르는 당시 프랑스 앙주 지역 백작이었던 헨리 플랜테저넷Henri Plantagenet과 두 번째 결혼을 하게 된다. 이 앙주 지역 백작은 2년 뒤에 영국 왕 헨리 2세Henry II가 되는데, 재미있는 건 두 번째 결혼에서는 알리에노르가 보르도 지역의 땅을 영국의 통치를 받는 조건으로 결혼식을 올렸다는 점이다.

▲ 샤또 뒤포르 비방Ch.Durfort Vivens

아이러니하게도 보르도 와인은 영국에서 날개 돋친 듯이 판매가 되며 황금기를 맞았고, 급기야 백년전쟁 때 보르도 사람들은 영국 편을 들게 된다. 백년전쟁 후 영국의 입김이 없어지면서 보르도 와인 산업은 한 때 주춤했지만, 루이 11세Louis XI 이후에 다시 한 번 전성기를 맞이한다. 많은 포르투갈계의 유태인을 시작으로 네덜란드, 독일, 영국인까지 보르도 항구 지역에 정착을 하게 되고, 이들은 항구의 새로운 마을을 형성하면서 보르도 와인 수출의 네트워크를 만들어가며 산업의 활기를 불어넣는다.

▲ 샤또 오 브리옹Ch.Haut-Brion
▲ 샤또 무똥 로쉴드 2006Ch.Mouton Rothschild

이러한 와인 산업의 발달은 오늘날의 샤또라는 개념을 출현시킨다. 1525년 장 드 퐁탁Jean de Pontac이 보르도 지역에 샤또의 개념을 처음 도입하고 건물을 지으면서 포도 재배, 발효, 병입 등을 한 장소에서 할 수 있게 되었는데, 이 와이너리는 현재의 샤또 오브리옹의 전신이 된다. 1855년 나폴레옹 3세Napoleon III가 보르도 와인을 여러 나라에 소개하고자 파리박람회를 개최하게 되는데, 샤또 오브리옹은 보르도의 메독지역 와인이 아니었음에도 당시 너무나 유명하여 1등급 와인에 선정될 수 있었다. 샤또 오브리옹은 보르도의 메독 지역 1등급 와인 중 하나로 지금까지 남아있지만, 실제는 뻬싹 레오냥 지역 와인이다.

1855년에 정한 그랑 크뤼 끌라쎄Grand crus classe는 거의 변동이 없이 오늘날까지 적용되고 있다. ‘15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품질의 변화가 거의 없다’라는 다소 불합리한 점이 있긴 하지만, 이 등급에 속한 샤또는 높은 품질의 보르도 와인을 전 세계 시장으로 견인하는 책임을 가지고 와인 시장을 이끌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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