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Outdoor 자전거 OUTDOOR INSIGHT
요리사로 살고 있는 자전거 세계의 전설OUTDOOR INSIGHT ⑤김팔용
  • 이지혜 기자 | 사진제공 김팔용
  • 승인 2015.06.09 16:13
  • 호수 121
  • 댓글 1

2005년 삼척 시내에 한 현수막이 걸렸다. ‘김팔용 일본 오사카 자전거 대회 1위’라는 생소한 글이 적힌 현수막이었다. 사람들은 이 현수막을 보고 ‘삼척시의 국가대표 자전거 선수가 국제대회에 나가 수상을 했구나’정도로 생각했다. 하지만 주인공은 뜻밖에도 삼척 시내 포장마차 ‘사랑방’의 요리사 김팔용이었다. 현수막은 ‘전설의 시작’일 뿐이었다.

   
▲ ⓒ 하그로프스코리아 제공

가난한 어린 시절, 먼저 보낸 다섯 형제
찢어지게 가난했다는 상투적인 말이 과장이 아닐 만큼 김팔용 씨의 어린 시절은 열악했다. 김팔용 씨는 6.25 한국전쟁 당시 전쟁이 난 것도 몰랐을 만큼 첩첩산중에 있던 마을, 삼척시 노곡면 고자리 칠째골에서 1964년 팔 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 도박과 노름에 재산을 탕진하던 아버지 탓에 다섯 명의 형제가 병원 한 번 못 가본 채 줄줄이 세상을 떠나 결국 장남으로 자랐다.

   
 
“제가 열 살이 채 되기 전 아버지 역시 세상을 등지셨습니다. 하지만 가난은 홀어머니와 동생들을 더욱 배고프게 했을 뿐이었죠. 친척 덕분에 열 살이 되어서야 아스팔트 깔린 삼척 시내로 나와 단칸방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함과 동시에 건설 현장을 돌아다니며 일용직 노동자로 가족을 먹여 살려야 했어요.”

십 대 후반, 삼척에서는 가난을 벗어날 수 없겠다고 생각한 김팔용 씨는 어머니가 쥐여 준 1만5000원을 가지고 서울로 떠난다. 당시 젊은이들의 우상이자 복싱 세계챔피언 홍수완 선수가 어마어마한 파이트머니를 벌었다는 것을 들었던 그로서는,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무작정 복싱 체육관으로 향했다.

“복싱 체육관에서 훈련을 받고 며칠 지나지 않아 선천적으로 약한 코뼈 탓에 복싱선수로는 부적합하다는 판정을 받았어요. 결국 체육관에서 쫓겨나 노숙자 신세가 되었죠. 어린 제가 홀로 삼척에 있는 홀어머니와 동생을 보살피기엔 호락호락하지 않은 세상이라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어요. 노숙하던 저를 발견한 청계천 주변 식당 주인아주머니가 저를 거두어 주셨어요. 처음엔 설거지 일을 도우며 요리를 시작하게 되었어요.”

   
 
김팔용 씨는 그렇게 18년간 묵묵히 요리사의 길을 걸으며 요리 대회에서 여러 번 입상도 하게 된다. 하지만 소박한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평생을 고생한 홀어머니에게 청각장애와 치매증상이 함께 오는 불운이 겹친다. 김팔용 씨는 서울에서의 모든 생활을 접고 삼척으로 돌아가 홀어머니를 모시고 시내의 음식점에서 요리사로 일하게 된다.

   
 
불혹에 탄 자전거, 세상을 평정하다
고향에 돌아와 요리사 생활을 하던 김팔용 씨에게 우연한 기회가 찾아왔다. 삼척시 MTB 동호회를 방문해 지인의 권유로 처음 자전거를 타게 된 것이다. 전문 MTB를 처음 접한 김팔용 씨에게 자전거는 모르고 있던 희열을 가져다주었다. 터질 것 같은 다리로 페달을 밟고 있으면 마치 가난으로 잃어버린 어린 시절을 보상이라도 받는 듯 행복했다고 한다. 2003년, 그의 나이 서른아홉이었다.

한 MTB숍의 주인이 중고로 내놓은 카본 프레임을 80만 원에 구입하며 본격적인 라이더의 길로 들어선 김팔용 씨는 이후 믿기 힘든 기록을 만들어 낸다. MTB 입문 1년 만에 출전한 2004년 제2회 대관령 힐클라힘 대회에서 남자 3그룹 1위를 차지 한 것. 2위와의 기록은 1.44초였다.

평생 자전거를 탄 선수들도 힘들다는 MTB를 마흔의 나이에 처음으로 우승한 그는 이후 2008년까지 열린 30여 개의 대회에서 전체 1위를 싹쓸이하며 세상을 경악시킨다. 그에게는 ‘산악왕 김팔용’, ‘힐클라임의 황제 김팔용’, ‘업힐왕 김팔용’, ‘자전거대회 일인자’, ‘자전거의 레전드’라는 수많은 별명이 따라붙었다. 특히 2007년 8월, 강릉에서 열린 제5회 대관령 힐클라임대회는 그를 미처 모르던 사람들에게까지 그의 이름을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조금 웃긴 생각이었죠. 당시 철인 3종 경기에 도전하고 싶어서 대회를 한 달 앞두고 로드바이크를 샀어요. 로드바이크로 MTB 대회에 참가했을 때 기록도 궁금했고요. 그런데 실수로 대회당일 클릿슈즈, 헬멧, 장갑을 다 빼고 자전거 한 대만 싣고 강릉으로 가게 됐어요. 큰일이다 싶었죠. 하지만 어쩌겠어요. 돌아가긴 이미 늦었죠. 다행히 동호회 회원에게 헬멧과 고글을 빌릴 수 있었어요.”

장갑과 클릿슈즈는 물론 물통도 챙기지 못하고 시작된 경기. 김팔용 씨는 불안한 마음을 버리고 이내 경기에 집중하기로 했다. 대관령 99굽이를 돌다 보니 서서히 운동화와 맨손이 적응되기 시작했다. 한 명 한 명 제치며 올라가던 김팔용씨의 눈앞에 어느덧 결승선이 보였다. 기록은 44분 07초. 그보다 먼저 결승점을 통과한 선수는 없었다. 1위였다. 보고도 믿지 못할 일이었다.

   
 
지독한 부상, 그래도 멈추지 않았다

전설처럼 계속될 것 같던 김팔용 씨의 기록은 2009년 자전거로 출근 하던 중 자동차 사고를 당하며 멈춘다. 심한 다리골절과 오른쪽 팔의 근육부상, 골수염으로 인한 세 번의 재수술… 세상은 쉰을 넘긴 그에게 쉽게 도전을 허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최근 김팔용씨는 삼척에서 정육점을 오픈했다. 번듯한 자신의 가게를 드디어 가지게 된 것이다. 물론 자전거도 포기하지 않았다. 활발한 동호회 활동을 비롯해 꾸준한 자기관리와 연습으로 일 년에 한 번씩은 대회에 참가하고 있다.

“포기는 죽는 순간에나 할까. 살아 있는 한, 나는 끝나지 않아요.”

   
 

김팔용의 경기기록
2004년 제2회 대관령 힐클라임대회 MTB 3그룹 1위
2005년 제3회 대관령 힐클라임대회 MTB 3그룹 1위
2005년 일본 오사카(오오다이가하라) 오사카 힐클라임 MTB 전체 1위
2006년 제4회 대관령 힐클라임대회 MTB 3그룹 1위
2006년 제1회 제주도 1100고지 힐클라임 대회 전체 통합 1위
2006년 강원도 양양 미천골 산악 힐클라임 대회 전체 1위
2006년 봉화 산악 자전거 대회 XC 1위
2006년 춘천 산악 자전거 대회 XC 1위
2007년 제5회 대관령 힐클라임대회 전체 통합 1위
2007년 일본 도쿄 오모테후찌 후지산 힐클라임 대회 MTB 전체 1위
2007년 제2회 제주도 1100고지 힐클라임 대회 MTB 전체 1위
2007년 제1회 미시령 힐클라임 대회 전체 통합 1위
2007년 오대산 산악 자전거 대회 XC 1위
2007년 원주 산악 자전거대회 1위
2007년 강원도민 체전 도로 독주 2위
2008년 제6회 대관령 힐클라임대회 전체 통합 1위
2008년 제3회 제주도 1100고지 힐클라임 대회 전체 통합 1위
2008년 제2회 미시령 힐클라임 대회 MTB 전체 1위
2008년 제3회 미시령 힐클라임 대회 MTB 전체 1위
2008년 제4회 서울랠리 힐클라임 대회 MTB 전체 1위
2008년 전국 시각장애인 텐덤사이클 대회 파일럿 1위
2008년 정선 하이원 산악 자전거 대회 1위
2008년 대전 산악 자전거 대회 1위
2008년 강원도민체전 도로독주 1위
2008년 강원도민체전 포인트 경기 1위
2008년 남양주 축령산 산악자전거 대회 1위
2008년 평창 산악자전거 대회 1위
2008년 제2회 강릉 전국 산악자전거 대회 1위 최고기록상수상
2008년 제2회 원주산악자전거대회 1위 
 

이지혜 기자 | 사진제공 김팔용  hye@outdoornews.co.kr

<저작권자 © 아웃도어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지혜 기자 | 사진제공 김팔용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1
전체보기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