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일러는 허리다…트레일러 면허 도전기(상)_코드명 TRL
트레일러는 허리다…트레일러 면허 도전기(상)_코드명 TRL
  • 서승범 차장 | 사진 김해진 기자
  • 승인 2015.06.08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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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ILER MATTERS ②License

운전면허 필기시험 100점 맞았다고 운전 잘 하는 거 아니듯, 트레일러 기능 공식 지면에 백날 설명해야 헛일이다. 차라리 꼭 알아야 할 내용 한두 가지만 정확하고 분명하게 이해하는 게 낫다. 이보다 더 중요한 건 쫄지 않고 도전할 수 있는 용기다. 쉽진 않지만 겁먹을 필요 없다. 머리가 기억하지 못해도 몸이 움직일 것이다.

▲ 탑과 트레일러를 합치면 길이가 15m 정도다. 어마어마한 차체가 주는 긴장감은 몰다보면 조금씩 사라진다.

발행인과 신경전을 벌인 지 몇 달째. 트레일러 면허 따라. / 트레일러 살 일이 당분간은 없을 것 같다. / 캠핑 잡지 편집장이 트레일러 못 모는 게 자랑이냐. / 자랑은 아니지만 아직은 관심이 그닥 없다. / 몰면 (관심도) 생긴다 / 알겠다. … 땄냐? / 아직 안 땄다. 이런 식의 대화가 이따금 반복되던 차, 생각이 바뀌었다. 살면서 한 번쯤 유럽에서 트레일러로 여행할 일이 없을까. 트레일러를 몰아보겠다는 생각은 꼬리를 이었다. 캠핑장에 붙박이로 묶인 트레일러에서는 느낄 수 없는 경험을 해보고 싶어졌다. 내가 가는 곳이 길이라면 못 갈 곳이 없듯, 내가 서는 곳이 집이라면 어디서든 묵지 못할 까닭이 없지 않나. 회사 근처 운전면허학원의 문을 두드렸다. 코드명 TRL. 뭐, 트레일러 면허 따겠단 뜻이다.

▲ 대학입학시험 볼 때도 이렇게 심각하진 않았다.

낯선 용어에 쫄지 말자

“탑과 데루는 방향이 반대에요.” “킹핀을 풀고 아웃 트리거를 내리면 분리와 고정이 되겠죠.”
새로운 도전이 주는 긴장과 위기는 낯선 말에서 시작된다. 캠핑 처음 하는 사람들이 데니어, 자립/비자립, 풋프린트, 액출 이런 말들에 어지러워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시간 지나면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좀 익숙하게 시작하시라고 낯선 용어 몇 가지만 정리해본다. 진짜 쉽다.

우리가 따고자 하는 면허는 ‘트레일러 면허’다. 트레일러trailer, 동력 없고 바퀴 달린 컨테이너 박스다. 그러니 트레일러는 뭔가에 끌려다녀야 한다. 그럼 끄는 놈이 있겠지, 트랙터tractor다. 트랙터가 앞에서 끌고 트레일러는 뒤에서 끌려간다. 트랙터를 ‘탑top’, 트레일러를 ‘테일tail’이라고도 한다. 데루는 테일의 일본식 발음이다. 운전면허학원에서는 탑과 트레일러라는 표현을 많이 쓴다.

▲ 차가 큰 데다 운전자 위치가 앞바퀴보다 앞에 있기 때문에 반드시 고개를 밖으로 내밀어 주변을 확인해야 한다.

탑과 트레일러를 연결하는 부위도 있지 않겠는가. 둘을 연결시키는 부위를 커플러coupler라고 한다. 캠핑 트레일러처럼 볼 정도를 끼우는 게 아니다. 지름이 꼬마 키만한 판으로 연결된다. 이 판을 킹핀kingpin이라고 한다. 킹핀을 기준으로 방향이 틀어지기 때문에 보통 ‘허리’라고 부른다. 둘을 뗀 다음 트레일러가 굴러가지 않도록 네 귀퉁이의 기둥을 내린다. 기둥의 이름은 아웃트리거outtrigger. 이 정도만 알고 가도 긴장감의 반을 줄일 수 있다.

머리 말고 몸을 믿어라
목표는 시험 합격이다. 시험의 핵심은 기능시험이고 기능시험의 9할은 T자 후진 주차다. 어렵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주차가 아니라 짐 혹은 컨테이너를 싣고 내리기 위해 정확한 장소에 트레일러를 대는 것이다. 후진으로 트레일러를 주차시키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첫째, 후진할 때 탑과 트레일러의 방향이 반대로 움직이기 때문이고, 둘째, 트레일러가 너무 길어서 그 끝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방법은 하나다. 머리로 이해하려 들지 말고 몸으로 익혀라. 다른 면허와 마찬가지로 트레일러 기능시험 역시 정해진 공식이 있다. 공식을 이해하거나 외우려고 하면 머리가 터지려 할 거다. 공식의 핵심은 허리를 적절하게 꺾었다가 적당한 순간에 정확하게 펴는 것이다. 그래서 트레일러는 허리다. 공식의 순서를 생각하지 말고 손과 발, 몸이 익숙해져야 한다.

▲ 트레일러 운전의 핵심은 허리 꺾기와 허리 펴기다. 꺾고 펴는 정도와 타이밍, 발놀림이 삼위일체를 이뤄야 한다.

탑은 우리가 15톤 트럭이라 부르는 차로 한다. 차에 오르기 위해서는 2단 계단을 올라야 한다. 기본적으로는 늘상 모는 일반 승용차와 거의 같다. 2가지 차이점만 기억하자. 운전석이 앞바퀴보다 앞에 있고, 주차브레이크가 공기압축식이다. 운전석과 앞바퀴의 위치는 회전할 때 중요하다. 주차브레이크는 큰 힘이 필요하기 때문에 공기를 압축해 사용하는 에어 브레이크 방식이다. 한 번 사용할 때마다 압력이 뚝뚝 떨어진다. 공회전할 때나 주행 중에 계속 압축하지만 자주 써서 압력이 떨어지면 브레이크가 말을 듣지 않는다. 반대로 압력이 너무 높아지면 알아서 공기를 빼 압력을 조절한다. 버스나 트레일러가 고래처럼 가끔 ‘쒸이’하면서 숨을 거칠게 내쉴 때가 있는데, 공기 빼는 소리다.

합격률? 뭔가를 움직이는 면허증은 클수록 따기 쉽다고 한다. 탑과 트레일러는 길이만 15m 정도고 오토바이 모는 소형 면허가 합격률이 제일 낮단다. 그래서 붙었냐고? 시험이 내일이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다.

▲ 맨 뒤의 바퀴가 두 개의 검지선 사이에 있어야 한다. 닿기만 해도 감점 20점, 좌우 검지선 넘어도 감점 20점, 바로 불합격.
 

트레일러 면허 따기의 모든 것
2종 오토 면허 1년 이상 경력이면 OK
기능 10시간, 학과 3시간 이수 후 시험

모든 트레일러에 트레일러 면허가 필요한 건 아니다. 공차중량 기준 750kg에 못 미치는 트레일러는 그냥 몰아도 된다. 카고 트레일러나 티어드롭 방식의 트레일러가 그렇다. 침실과 화장실, 부엌 등을 갖춘 일반적인 트레일러의 경우 ‘좀 작다’ 혹은 ‘좀 귀엽다’ 싶은 느낌이 든다면 대개 750kg이 안 된다.

트레일러를 끄는 탑은 수동 트랜스미션이다. 1종 보통 면허가 있으면 볼 수 있다. 2종 자동 면허라고 실망할 필요 없다. 1년 이상 운전경력 있으면 자동 면허라도 도전할 수 있다. ‘자동’만 몰아봐서 수동 기어를 못 몬다? 배우면 된다. 수동 미션의 가장 큰 어려움은 시동을 꺼뜨리기 쉽다는 점인데, 트레일러를 끄는 탑은 워낙 힘이 좋아서 실수로 시동을 끄기가 더 어렵다. 기자도 ‘수동’ 주행거리는 겨우 1000km나 될까 싶고 마지막 몰아본 것도 8~9년 전이지만 시동 한 번도 꺼지지 않았다.

시험을 보기 위해서는 기능 10시간, 학과 3시간을 이수해야 한다. 기능 10시간이면 어느 정도 몸이 익숙해질 수 있는 시간이다. 학원에서 시험을 본다면 늘 연습하던 차로 보기 때문에 클러치 유격이나 수동 기어 방식(차종에 따라 1단과 후진 기어 위치가 다르다)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참고로 하루에 들을 수 있는 수업시간은 최대 4시간이기 때문에 몰아서 연습해도 3일은 걸린다. 한 번 떨어지면 3일이 지나야 다시 시험 볼 수 있다. 대신 일반적으로 운전면허학원에 트레일러는 한 대만 있는 경우가 대다수이기 때문에 한방에 몰아서 배우기 어려울 수도 있다.

시험은 기능시험만 본다. 기능시험 시간은 15분. 5분은 탑과 트레일러 연결, 5분은 전진-회전 후진 주차-회전 전진-후진의 코스 시험, 5분은 탑과 트레일러 분리다. 연결과 분리에서 떨어지는 사람은 거의 없다. 코스에서 가장 많이 떨어지는 부분이 회전 후진 주차다. 각도를 정확하게 맞추고 그 각도를 유지하는 것이 관건이다. 허리를 적당히 구부렸다가 적당한 순간에 정확하게 펴서 반듯하게 유지하는 것. 물론 기억해야 할 지표들과 표시들이 있기 때문에 미리 겁부터 집어먹을 필요는 없다.

트레일러 면허 합격 기준은 100점 만점에 90점 이상이다. 안전사고를 내거나 안전벨트를 매지 않거나 시동을 3회 이상 걸지 못하거나 주차 브레이크를 채운 상태로 출발하거나 주어진 5분 이내 마치지 못하면 그 자리에서 바로 실격이다. 검지선을 넘으면 20점 감점이니 한 번만 실수해도 불합격이다.

전국 운전면허시험장에서 시험을 볼 수 있다. 모든 시험장에서 응시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전국 26개 운전면허시험장 가운데 강남, 인천, 안산, 부산 남부, 대전, 예산, 전북, 전남, 문경, 포항, 울산, 제주 면허시험장에서 볼 수 있다. 기타 자세한 도로교통공단 운전면허서비스 홈페이지 dl.koroad.or.kr에 있다. 트레일러와 트레일러 기능 코스를 갖춘 운전면허학원에서도 시험을 볼 수 있다. 기자는 사무실에서 가까운 파주의 올리브자동차운전면허학원에서 배웠다. 10시간 동안 연습한 차로 시험을 보기 때문에 연습하듯 편안하게 시험 볼 수 있다.

결론은 도전해보면 보기보다 쉽다는 거다. 가고 싶은 만큼 가고 머물고 싶은 곳에서 머무는 트레일러 캠핑의 첫 관문은 생각보다 수월하게 열어젖힐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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