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에 실은 두 인생 그리고 꿈
자전거에 실은 두 인생 그리고 꿈
  • 이지혜 기자 | 사진 양계탁 기자
  • 승인 2015.06.03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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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TDOOR INSIGHT ②자전거 희망 여행가 박정규&산악자전거 국가대표 유범진

자전거 인구가 1000만을 넘었다. 자전거가 단순히 이동 수단이 아닌 아웃도어 종목으로 자리매김 한지도 오래다. 자전거의 종류와 종목도 다양하다. 도로를 달리는 로드바이크, 산을 오르고 길을 가로지르는 산악자전거(MTB), 아찔한 내리막을 질주하는 다운힐과 그 반대의 업힐, 이들의 장점을 접목한 캐주얼 자전거 하이브리드 그리고 최근에는 단순히 ‘마실용’에서 벗어나 자전거를 타고 장거리 여행에 도전하는 이들의 트래블 바이크까지.

각기 다른 자전거 위에는 어떤 사람이 타고 있을까 궁금했다. 양양군청 사이클팀 소속 국가대표 산악자전거 유범진 선수와 자전거로 세계 일주를 완주한 희망 여행가 박정규 작가. 자연 속에서 자전거를 즐겨 타는, 어쩌면 닮지 않은 두 남자에게 기자는 비슷한 꿈을 보았다.

초면이신 관계로 각자의 소개를 부탁합니다.
박정규 (이하 박) 우연히 자전거를 만나 세계를 여행했습니다. 3년간의 여행을 끝내고 돌아오니 많은 곳에서 관심을 주시더군요. 2011년부터는 서울 시립청소년 직업센터인 ‘하자센터’에서 ‘무한나눔사이클 자전거 공방’에서 강사를 맡고 있습니다. 하자센터에서 만난 아이들과 ‘오라이 프로젝트’도 함께 진행 중입니다.

유범진(이하 유) 양양군청 소속 사이클 선수입니다. 주 종목은 MTB이지만 현재 로드바이크 부문에도 함께 출전 중입니다. 고등학생 때 우연히 동호회 사람들과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서울시청 최진용 선수와 라이딩을 했는데 선수로 전향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권유해 주셔서 지금까지 왔습니다.

두 분 다 이야기를 들어 보니 어릴 적부터 자전거를 꾸준히 타신 게 아니군요. 갑자기 자전거를 타는 삶으로 뛰어 들어왔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네요.
맞습니다. 하지만 늦게 알게 된 만큼 자전거의 매력에 빠르게 빠졌습니다. 또 늦게 빠진 자전거이니만큼 아직도 배울 것이 많습니다. 대학에 입학하고 체대로 편입하며 현재 경희대학교 스포츠지도학과 졸업반에 있습니다. 아무래도 국가대표인 만큼 학교생활에 소홀할 수밖에 없는데, 저로 인해 다른 학생이 피해 보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게 제 지론입니다. 그래서 훈련이 없는 날에는 무조건 학교에 갑니다.

저도 마찬가지로 갑작스레 자전거를 타는 인생이 시작되었습니다. 지난 2006년 5월이니 9년 전 이맘때네요. 스물여섯의 대한민국 남자가 으레 하는 고민을 저도 했습니다. 군대에 있을 때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제대했는데, 막상 대학에 복귀하니 무언가 특별한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이었죠. 저에게 특별하다는 것은 연예인처럼 주목받는 삶이 아니라 희망을 찾고 나누며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그래서 무작정 떠났죠. 떠나기 일주일 전에 처음 자전거를 샀을 정도니 얼마나 겁이 없었겠어요. 하지만 그렇게 떠난 여행이 운이 좋아 3년까지 늘어났습니다. 그리고 20대 후반에 한국에 돌아왔죠. 여행이 인연이 되어 자전거와 함께 살아가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전거로 삶이 바뀐 이후의 이야기를 듣고 싶네요. 각자의 길을 열심히 달려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자전거로 가는 여행은 제 인생 최고의 경험이었습니다. 차로는 갈 수 없는 곳을 직접 바퀴를 굴리며 갔습니다. 힘들어서 자전거를 내팽개치고 싶었던 적도 있었죠. 하지만 그럴 때마다 운명처럼 사람을 만났습니다. 만난 사람들은 저마다 저에게 호의를 베풀고, 먹을 것을 나눠주었습니다. 자전거 위에 올라 페달을 밟으며 만난 고마운 사람들이 지금 저를 있게 한 원동력이죠. 3년의 여행을 끝내고 한국에 돌아와서 본격적인 고민을 시작했어요. 내가 받은 고마움을 자전거를 통해 갚아주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가졌죠.

지금의 하자공방에서 청소년들에게 자전거를 통한 경험을 쌓아주며 조금씩 실천해 나가고 있습니다. 소외된 아이들과 함께 폐타이어를 주워 테이블을 만든다든지, 자전거를 타며 다양한 직업군의 많은 경험을 가진 사람을 만난다든지, 버려진 자전거를 수리해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등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본격적으로 프로 사이클 선수 생활이 시작되며 운동과 철저한 자기관리의 시작이었습니다.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기도 했지만 군대 문제로 선수생명이 짧았기 때문에 군 제대 후 지도자의 길을 걷고자 했습니다. 그러다 2007년 전국체전 준비 중 압박골절이라는 심한 부상을 입었습니다. 입대 3주 전의 일이었죠.

불행인지 다행인지 부상으로 인해 군 생활이 공익근무로 대체되었습니다. 군인 신분으로 자전거를 탈 수 없었지만, 당시 저를 후원해 주시던 기업이 모든 장비 지원을 무상으로 해주셔서 겸직허가를 받고 대회 참가 자격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지금까지 선수 생활을 할 수 있었죠. 개인적으로는 소심했던 성격이 운동하며 바뀌기도 했습니다. 지금까지 죽 좋은 선배님과 스승을 만난 덕분에 많은 입상을 하긴 했지만, 아직 진행형입니다. 할 수 있는 만큼 자전거를 타야 하니까요.

두 분 모두 자연 속에서 자전거를 즐기시는 분들이네요.
솔직히 훈련의 강도가 높은 날에는 힘들어서 주위 경관을 둘러볼 겨를이 없어요. 한 번만 더 페달을 굴리면 이보다 더 높은 곳에 갈 수 있으니 집중력을 위해서라도 주위를 안 둘러보는 경향도 있죠. 하지만 높은 곳에 올라가 쉴 때면 여기가 천국이구나 싶을 때가 있어요. 선선한 바람도 있고 다양한 동물도 있죠. 힘든 훈련을 버텨낼 수 있는 원동력이기도 합니다.

저도 유 선수의 말에 동의해요. 자전거는 어쩌면 철저히 외로운 운동이죠. 혼자 이 길을 헤쳐나가야 하니까요. 하지만 조금만 더 알고 보면 자전거만큼 따뜻한 운동이 없어요. 자연 속에서 자전거를 타다 보면 어느새 새, 곤충, 동물과 마주칩니다. 웃기게 들릴 수도 있지만, 그 생물들은 힘들어서 지치고 싶은 저를 위로해요. 이처럼 아이러니하게도 자전거는 외롭지만 외롭지 않고, 혼자지만 혼자였던 적 없는 운동이에요. 설령 외롭다 해도 그 외로움마저 자신을 돌아볼 기회를 주는 시간이니까요.

그렇겠네요. 자연 속에서 자전거를 타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발전해 있을 것 같아요.
맞아요. 저도 여행을 떠나기 전에 운동을 즐겨 하긴 했지만, 자전거를 이렇게 탈 수 있을 거라곤 생각 못 했어요. 말로 다 못할만큼 힘든 과정을 겪고, 죽을 고비도 넘겼죠. 하지만 웅장하고 아무도 가본 적 없는 자연 속에 있던 시간이 저를 성장시켰어요. 그 과정들이 있기에 지금 자전거를 타는 제가 있는 거죠.

저 역시 동의해요. 특히 자전거를 전문적으로 타는 사람에게는 인내심이 더욱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한 번만 페달을 더 밟으면 되는데 ‘여기까지만 하자’는 유혹이 끊임없이 드니까요. 그 고비만 넘기면 되는데 대부분의 선수가 그때를 넘기기 힘들어요. 하지만 자연 속에 몸을 던지고 페달을 밟다보면 저도 모르게 인내심이 길러지곤 합니다.

그렇게 자전거를 타면 없던 자신감도 생길 것 같아요. 자전거를 타며 성격도 변했나요?
원래 저는 굉장히 소심한 성격이었어요.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것도 신기할 정도죠. 하지만 자전거가 제 성격을 변화시켰어요. 종목 중에 로드바이크처럼 개인이 아닌 팀으로 하는 경기도 있죠. 선수들 사이에선 제 나이가 많은 편이어서 후배들을 앞뒤에서 격려하며 때로는 질책하며 챙겨야 해요. 그러다 보니 없던 성격도 생기고(웃음) 자신감도 함께 생겼죠. 적극적인 성격으로 변했어요.

자전거는 제 성격을 변화시킨 결정적인 도구죠. 여행을 가기 전엔 막연한 꿈만 꾸던 소심한 남학생이었어요. 하지만 젊은 나이에 패기로 시작했던 여행이 도중에 많은 사람을 만나며 성격을 변화시켰어요. 더욱더 긍정적이고 밝게요. 이제는 소외된 이웃을 돌아보고 싶어요. 자전거 여행 때는 제가 소외된 이웃 같은 존재였어요(웃음). 하지만 그런 저에게 많은 사람은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죠. 조금이나마 갚아 나가고 싶어요. 모든 것은 자전거가 변화시켜 주었어요.

자전거를 타지 않는 날엔 무엇을 하세요?
사실 저는 제 나이 또래가 하는 ‘노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시끄럽거나 사람이 많은 것은 저와 맞지 않아요. 고리타분할지도 모르겠지만 운동하지 않는 날에는 학교에 가거나 블로그로 많은 분과 소통하려고 노력해요. 대부분 시간을 혼자 즐기는 편이에요. 또 자동차를 좋아합니다. 한 때 튜닝의 끝을 맛보기도 했죠(웃음). 이제는 아니지만요. 얼마 전 고생한 저에게 스스로 자동차를 선물했어요. 그 차를 타고 나가 드라이빙하고 차를 손질하며 시간을 보내요.

대부분을 하자센터에서 아이들과 함께 보내요. 자전거를 타지 않는 날에도 자전거로 아이들에게 어떤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죠. 가족과 있는 시간을 늘리려고 노력도 합니다. 사실 최근에 아내가 아이를 가졌어요. 이제 14주가 됐습니다. 그래서 아내와 시간을 보내는 것에 신경 쓰는 편이에요.

어떤 꿈을 가지고 계시는지 궁금하네요. 자전거를 통해 어떤 목표를 이루고 싶으세요?
진행하고 있는 ‘오라이 프로젝트’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으면 좋겠어요. 2013년부터 시작해 버스기사님께 간식을 나눠드렸고 폐지 줍는 분들이 안전한 길로 다니시라고 형광페인트 칠을 해드렸어요. 오래 서서 일하시는 대형마트 직원들에게는 양말을 전해드렸죠. 조금 더 많은 분이 오라이 프로젝트에 함께 참여하셔서 작지만 따뜻한 마음을 전했으면 좋겠어요. 그러기 위해 제가 더욱 노력해야겠죠.

개인적으로는 지난해부터 도전 중인 철인 3종 경기를 빠지지 않고 참가하는 것도 목표입니다. 매일 출퇴근으로 자전거를 타고 아침마다 수영하러 다니지만 달리기는 아직도 힘들 때가 있더라고요. 앞만 보고 더 열심히 달려야죠.

일단 올 10월의 전국체전을 잘 마무리하는 것이 단기적인 목표입니다. 참가할 수 있는 만큼의 대회에 나가 제 기량을 시험해 보고 싶습니다. 아직 욕심도 많고요. 사실 학교를 더 다니고 싶습니다. 곧 대학 졸업 후에 대학원에 진학할 예정입니다. 지도자가 되겠다는 꿈은 늦춰졌을 뿐이지 포기한 것이 아니니까요. 사실 많은 분 앞에 나가 이야기 하고 성격을 바꾸게 된 계기도 코치가 되기 위한 제 나름의 연습이라고 볼 수 있어요. 제가 운동을 시작했던 시절과는 다르게 요즘에는 훈련 시스템이 잘 되어 있습니다. 이런 시스템을 잘 습득해 최고가 되기 위해 노력 중인 많은 선수에게 힘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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