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길 찾아 튀어!…괴산 산막이 마을
옛길 찾아 튀어!…괴산 산막이 마을
  • 류정민 기자 | 사진 김해진 기자 | 장비협조 MSR
  • 승인 2015.06.02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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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R OUTBOUND ①트레킹&캠핑

산수절경에서 아침을 맞았다. 비가 그친 다음날이라 하늘은 그 어느 때보다도 청명했으며 구름은 몽실몽실, 강물은 넘실댔다. 건너편 절벽 언저리엔 멋진 정자 하나가 있어 궁금증을 자아냈는데 다음엔 저 강 너머 동네도 한 번 찾아가 보리라. 한 폭의 산수화 같았던 멋진 풍경을 보며 먹는 아침이란 그야말로 ‘허니버터칩’ 보다 더한 꿀맛이었는데 사진으로, 글로 충분히 상상이 되려나?

오지라면 오지. 깊숙한 곳에 장막처럼 주변 산이 둘러싸여 있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산막이 마을’은 “가족끼리 올래? 남자친구랑 올래?” 했을 때 머뭇머뭇 대답을 망설이게 만드는 곳이다. 연인과 아기자기하게 데이트하기에도 좋고, 온 가족이 함께 모여 나들이 오기에도 좋아서다. 길이 잘 나있어 엄마아빠 손잡고 아장아장 걸을 수 있는 아가들이 오기에도 괜찮다. 좋은 풍경 보며 맛있는 음식 먹고 가면 그만한 추억이 또 있을까 싶겠지만, 있다. 캠핑! 편집장만 사무실에 두고 온 <캠핑> 취재팀은 이 좋은 곳에서 먹고 자고 실컷 즐기다가 왔다.

▲ 산막이 옛길에 들어서자마자 볼 수 있는 연리지

산막이 옛길을 따라서

산막이 옛길 주차장에 차를 세우자마자 주말인 듯 주말 아닌 분위기에 혼이 쏙 빠져나갔다. 어찌나 북적거리던지 평일에 캠핑을 다니는 취재의 특성상 캠핑 하다 마주치는 사람들을 손가락에 꼽을 정도인데, 출장 중 가장 많은 사람 구경을 했다. 입소문이 난 지는 얼마 안됐지만 2011년부터 해가 갈수록 관광객 수가 증가하고 있단다.

▲ 뜨거운 사랑을 나누고 있는 소나무 ‘정사목’ 궁금하다면 직접 가서 보시라.
산막이 옛길은 괴산군의 사오랑 마을과 산막이 마을을 연결해주던 10리의 옛길을 산책로로 복원한 것이다. 괴산호와 건너편에 보이는 군자산을 바라보며 걷는 길도 멋진데 옛길 곳곳에 26개의 명소를 만들어놔서 하나하나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 중 제일은 고공 전망대와 앉은뱅이 약수. 느티나무 위에 만들어 놓은 고공전망대는 마치 휴양지에 온 듯한 느낌을 준다. 사진 찍고 멋져서 감탄사를 연거푸 날렸다. “꺄~ 발리 같아요.” 사진 기자 왈, “발리 가본 적 있어요?” “없어요. 사진에서 봤어요. 흑흑”

저 멀리 보이는 군자산은 아카시아 나무가 곳곳에 심어져 있어 푸릇푸릇한 산 속에 묘한 파스텔 색의 나무가 숨어있었는데 지난겨울까지 우리 책에 연재됐던 그리스 여행기에 나온 산과 비슷해보였다. “꺄~ 그리스 산 같네요!” “그리스 가본 적 있어요?” “ㅇ...” 이 시리즈가 이틀간 계속 되었다던가.

앉은뱅이 약수는 옛길 중간쯤에 있는 약수턴데, 앉은뱅이가 지나가다 물을 마시고 난 후 효험을 보고 걸어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물도 맑고 일 년 내내 물이 마르지 않는다고 하니 우리도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시원한 물 한 사발과 바람 한 모금을 마시며 정자에 앉아 숨을 돌리고 있는데, 여기저기 다람쥐 식구들이 뛰어다니는 통에 나무에서 눈을 뗄 겨를이 없었다. 나무에서 물이 졸졸 흘러나오게끔 만들어놨는데 물이 고이는 곳에 누군가가 띄워놓은 나뭇잎이 약수에 돌돌 떠다니는 모습도 정겨웠다.

▲ 소원 적힌 나무판들이 부딪치는 딸각딸각 소리가 마치 몽돌해변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산막이 옛길은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도 참 좋다. 뿌리가 서로 다른 나무의 가지가 한 나무처럼 엮인 현상을 연리지라고 부르는데,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연리지 앞에서 지극한 마음으로 기도를 하면 사랑이 성취되고 소망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그리고 또 하나, 남자와 여자가 뜨거운 사랑을 나누는 모습의 소나무인 ‘정사목’은 천 년에 한 번 나올까말까 한 나무 형상인데 나무를 보면서 남녀가 함께 기원하면 옥동자를 잉태한다고 한다. 친절하게도 남자 나무와 여자 나무가 표시 되어 있어 더 큰 웃음을 준다. 사실 몇 가지는 좀 억지스러움이 없진 않지만 그것조차 푸하하 웃고 넘어갈 정도로 유쾌하게 잘 꾸며놓았다.

마을에서의 캠핑
쾌청한 하늘을 나는 새 한 마리. 물가에서 낚시하다 귀가하는 사람들. 조용한 마을. 정말 그림 같은 풍경 속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시기도 적절했다. 조금만 더 늦게 왔으면 강물 앞이라 모기떼의 습격을 이겨내지 못 했을 텐데.

▲ 자전거캠핑보다 백패킹을 더 좋아했던 대진 기자와의 첫 캠핑. 마음 편한 캠핑이 최고.

마을에서 가장 캠핑하기 좋은 곳에 집을 지었다. 오늘의 우리집은 MSR 허바허바와 플라이라이트, 갤럭시 윙 타프. 타프 안에 들어오니 그나마 바람을 조금 막을 수 있었다. 구름이 빠르게 움직였다. 덩달아 잔잔하던 물결도 빠르게 따라 흐르고 금세 먹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한다. 그나마 사이트 구축을 끝내고 밥 먹을 준비를 할 때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졌고, 한 번의 폭우가 쏟아진 후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해졌다. 잔잔한 하늘과 물결, 대지 속에서 잠든 하루. 평일에도 불구하고 시끌벅적했던, 사람들이 다 가고난 뒤의 산막이 마을은 그 옛날 산으로 막혀있어 많은 이들이 지나다니지 못했던 그때로 다시 되돌아간 듯 조용했다.

나뭇가지들과 먹구름 사이로 비치는 별들이 반겨주던 밤. 사실 별은 작년에 갔던 경반분교가 훨씬 많았지만 먹구름 속에 가득 박힌 별들은 처음이었다. 사진을 찍었지만 보이지 않아 슬펐다. 같이 오지 않는 이상 이 하늘을 어느 누구에게도 보여줄 수 없다는 사실. 역시 눈만큼 좋은 렌즈는 없다.

▲ 소나무 출렁다리가 제법 스릴 넘치게 만들어져 있다.

괴산의 한반도

산막이 옛길을 즐기는 데는 걷거나, 산을 오르거나, 배를 타거나 총 세 가지의 방법이 있다. 배를 타고 나갈 생각도 잠깐 했으나 이 느린 마을의 풍경을 배를 타고 순식간에 지나가기엔 사치라고 생각, 옛길은 걸었으니 자연스레 등산길로 발걸음을 옮겼다. 등산길은 세 시간 코스의 제1코스와 2.9km의 제2코스로 나뉘는데 우리는 후자를 택했다. 진달래 능선을 따라 올라가서 천장봉-한반도 전망대-등잔봉을 지나고, 모든 등산로는 산막이 옛길의 초입인 노루샘으로 이어진다.

▲ 5월의 산막이 옛길은 초록으로 뒤덮여 있다.

▲ 옛길에서 산막이 마을로 들어가는 중. 9월 가을의 풍경이 벌써 궁금하다.

450m의 산도 얕보지 말자. 진달래의 흔적만 남아 있는 진달래 능선을 따라 천장봉까지 가는 길은 쉴 틈 없는 오르막이었다. 문득 전 날, 바람이 많이 불어 배가 운행하지 않아 옛길을 걸어오던 아주머니의 말이 떠올랐다. “하! 폐가 터질 것 같아” 그래, 바로 그 기분이다. 스틱에 온 몸을 의지한 채 한 발 한 발 떼어내는 동안 심장은 콩닥거리고 폐는 터질 것 같았다. 햇빛 쨍쨍한 날 바람이라도 불어주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천장봉부터 등잔봉까지는 호젓한 오솔길이다. 바람도 살랑살랑 불어와 주니 지상낙원이 따로 없다.

등잔봉은 한양으로 과거 보러간 아들의 장원 급제를 위해 등잔불을 켜놓고 100일 기도를 올렸다고 지어진 봉우리 이름이다. 지금도 그 효험이 있다고 해서 자식들을 위해 정성을 드리는 사람들의 발길이 잦다고. 천장봉은 이름 그대로, 하늘 아래 펼쳐진 자연 경관이 울창한 노송과 더불어 장관을 이뤄 그 풍광명미(산수의 경치가 맑고 아름다움)의 수려함에 하늘도 감탄하여 숨겨 놓은 봉우리라고 한다.

▲ 아침 밥 한 수저를 뜨고 보는 풍경. 자린고비가 조기를 매달아 놓고 밥을 먹는 황홀한 기분을 십 분 이해할 수 있다.

▲ 괴산에서 볼 수 있는 한반도 지형. 오른쪽엔 독도와 울릉도도 있다.

등잔봉을 300m 앞두고 바람이 미친 듯이 불어댔다. 소나무들이 신나게 춤을 췄고 흔들리는 풀들은 초록색 머리칼 같았다. 능선에서의 색다른 재미. 윙윙 바람소리가 파도소리처럼 들렸다. 나무가 없이 휑해서 더 했을 것이라. 능선 한가운데에 나무 대신 산불방지 CCTV가 설치되어 있었다. 얼마나 산불이 많이 났으면 산불방지 CCTV까지 있을까. 등산로는 돌산 같았다. 산이라면 이곳저곳 가리지 않고 많이 다녀본 사진 기자 선배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다녔으면 땅이 이렇게 딱딱할까”라고 말할 정도로. 그 옛날부터 마을로 들어가는 길이었으니 그렇게 단단해졌을 법도 하다.

▲ 구름도, 물결이 빠르게 흐르고 먹구름이 조금씩 자리를 잡기 시작할 무렵. 이런 불안한 날씨에 캠핑을 하는 것도 색다른 매력이 있다.

LNT, 산불조심

산막이 마을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아니온 듯 다녀가세요!’ 라고 적혀있는 입간판의 글귀. 백패킹의 기본은 LNT Leave No Trace. 알고는 있지만 조금의 불편함을 견디지 못하고서 지키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자기도 모르게 던진 불씨 하나가 산불의 원인이 될지도 모른다. 나무들을 다 베어버린 걸 보곤 ‘도대체 여기에 뭘 짓겠다고’ 생각하던 찰나 ‘산불로 인한 안타까운 현장입니다. 화마의 상처가 반복되지 않도록 산불조심 협조 바랍니다’ 라고 쓰인 팻말을 발견했다. 무릎까지 오는 묘목들을 보니 마음 한 켠이 쓰라렸다.

▲ 해발 450m도 무시하지 말라. 바람이 어마어마하게 불었던 날.
사실 캠핑을 하기 전, 산막이 마을의 반장님이자 ‘산막이 산장’ 지킴이 노광영 씨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조심스레 캠핑을 해도 되냐고 양해를 구했더니 “여기 캠핑할 데 널렸죠 뭐”라고 하시며 오히려 밖에서 자는 우리를 걱정했다. “필리핀 태풍 영향 때문에 서북쪽에서 바람이 엄청 부네요. 안 춥겠어요? 바람 잘 막고 캠핑하세요.”

광영 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 올라갔다가 다시 고향으로 내려온 지 4년이 됐다. 우리가 산막이 마을에 도착해서 한 바퀴 돌며 발견했던 ‘괴산 수월정’에 머물렀던 조선 중기의 문신, 노수신의 42대 후손이다. “여긴 바람이 잦은 곳이에요. 계곡을 타고 휘몰아치는 바람 때문에 바람소리가 우는소리 같아요.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갈 때, 계절시샘 할 때 한 달 정도가 바람이 원체 세요. 그리고 겨울바람, 여름엔 태풍이 있잖아요. 계절도 안 가려요.” 뒤늦게 등산을 끝내고 산불에 대해 물었다.

“산불이 세 번 정도 났어요. 원체 사람들이 많이 다니고 개인 사유지다보니까 법인에서 등산로를 개발하면서 관리를 해줘야하는데 그만한 체계적인 관리가 안돼요. 국립공원이야 술 먹고 담배 피우는 걸 다 단속을 하는데, 여긴 단속반이 없으니 산에 올라가서 밥도 해먹고 담배도 피우고 관광객은 1년에 150만 명씩 올라오니 아무래도 사건사고가 많죠. 그래도 요즘은 CCTV도 생기고 좀 나아지고 있어요.” 산막이 마을 반장님의 이야기다.

▲ 캠핑하기 딱 좋았던 선착장 옆 풀 숲.

괴산에서 저녁을 먹고 나오는 길, ‘서울 옷 파는 가게’와 ‘서울 식당’ 간판을 보다가 2시간 정도를 달려 진짜 서울에 와서 ‘서울교’를 보니 웃음이 흘러 나왔다. 근교에 이렇게 멋진 곳이 있다니. 거제도 내도에겐 미안하지만 여기가 훨씬 좋았다. 관광객이 많이 찾아도 그만큼의 관리가 필요한데 곳곳에 산막이 마을을 소중히 생각하는 마음 씀씀이와 손길이 닿아있는 듯했다. 산막이 마을은 계절마다 변하는 모습이 보고 싶고 가고 싶은 몇 안 되는 곳 중 하나다. 한여름의 모습을 보러 또 한 번 와야지.

▲ 계속 되는 오르막에 지쳐있을 무렵, 자연 나무 의자가 떡하니.

▲ 옛길은 대부분 나무 데크로 되어 있어 자연을 해치지 않고도 쉽게 걸을 수 있다.

▲ 몸이 휘청거릴 정도의 바람이 불었던 능선. 산불로 인해 큰 나무가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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