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달루시아의 꽃, 그라나다
안달루시아의 꽃, 그라나다
  • 글 사진 전영광 기자
  • 승인 2015.05.13 17: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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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ROAD | 이니그마가 담는 세상

따뜻한 바람이 부는 계절이다. 오후의 햇살을 온몸으로 가득 담으며 낯선 길을 걷고 싶어지는 날들, 그곳이 안달루시아의 어느 곳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얀 집들은 눈부시게 빛나고 알람브라의 여름 별궁엔 장미가 한 아름 피어 있을 것이다. 5월의 어느 날, 그라나다의 오래된 골목길을 걸었다.

알람브라, 인간이 만든 가장 로맨틱한 건축물
프랑스에서 피레네 산맥 하나를 넘었을 뿐인데, 이베리아 반도는 너무나 따뜻하다. 펼쳐지는 풍경도, 그곳의 사람들도. 그러니까 스페인은 언제나 옳다. 그중에서도 서늘한 바람이 부는 계절엔 마드리드도 바르셀로나도 아닌 남부 지방 안달루시아가 으뜸이다. 계절의 여왕 5월은 스페인에서도 유효하다.

▲ 알람브라의 정원은 마치 동화 속에 와있는듯한 착각을 하게 한다.

지금의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자리한 이베리아 반도는 오랜 시간 아랍계 무어인들의 땅이었다. 이슬람이 탄생한 아라비아 반도에서 수천 킬로미터나 떨어진 이곳에, 가장 찬란하고 화려한 이슬람 문명이 꽃 피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1492년 기독교 문명에 그 주인을 내어주고 그들의 시대는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되어버렸지만, 찬란했던 시간은 알람브라 궁전을 통해 여전히 숨 쉬고 있다.

스페인으로 떠날 때 무엇 하나 예약하지 않았지만 딱 한 가지 예약한 것이 바로 알람브라 궁전이었다. 말하자면 알람브라 궁전을 보는 것은 하나의 버킷리스트였다. 그렇게 꿈에 그리던 알람브라 궁전에 도착해 거친 숨을 몰아쉬며 긴 줄 뒤에 가서 섰다. 그리고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내 차례가 되었다. 미리 예약한 티켓을 내밀었을 때 검표기에선 빨간 불이 들어왔다.

▲ 시간은 알람브라 궁전을 통해 여전히 숨 쉬고 있다.
▲ 벽면과 천장 장식의 섬세함은 말을 잃게 만든다.

어리둥절한 직원도 몇 번을 다시 찍어보지만 불길한 비프음이 들려올 뿐이다. 알고 보니 다음 달 오늘의 표를 잘못 예약했던 것이다. 결국 다시 표를 끊고 알람브라 궁전에 들어설 수 있었다. 하지만 남들보다 곱절의 입장료를 끊고서 만나게 된 알람브라 궁전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머릿속에선 아름답다, 아름답다는 생각만이 수없이 반복될 뿐이다.

이슬람 건축 약식은 우상숭배를 금한 교리에 따라 기하학적인 아라베스크 무늬와 아름다운 곡선이 발달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절정이 바로 알람브라 궁전이다. 벽면과 천장 장식의 섬세함은 말을 잃게 만든다. 절묘한 곡선의 아치와 늘씬하게 뻗은 기둥은 여인의 아름다운 선을 떠올리게 한다. 혹자는 알람브라 궁전을 일컬어 인간이 만든 가장 로맨틱한 건축물이라 말한다.

▲ 절묘한 곡선과 늘씬한 기둥은 여인의 아름다움을 떠올리게 한다.

▲ 기하학적인 아라베스크 무늬와 아름다운 곡선의 알람브라.

▲ 세상에서 가장 로맨틱한 곳이라고 일컫는 알람브라.

집시의 영혼을 만날 수 있는 사크로몬테 언덕

아기자기한 골목이 걷는 재미가 있던 알바이신 지구를 혼자 걷다 보니 어느덧 사크로몬테 언덕까지 오르게 됐다. 아무런 목적 없는 걸음이 여행의 가장 큰 즐거움을 왜 오르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별다른 목적 없이 걷다 보니 거기까지 가게 되었다. 생각해 보면 이렇게 아무런 목적 없는 걸음이 여행의 가장 큰 즐거움이 아닐까?

▲ 사크로몬테 언덕에서 우연히 만난 음악 하는 소녀들.

▲ 집시들이 살던 곳에 자유로운 영혼이 삶을 이어 나가고 있다.

언덕을 걸어 올라가다 보니 그 메마른 땅에 사람이 사는 집이 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사람 사는 동굴이 있다. 사크로몬테 언덕은 저 옛날 이슬람 왕국이 건재하던 시절부터 집시들이 살던 곳이다. 지금도 그곳엔 자유로운 영혼들이 삶을 이어가고 있다.

잠시 걸터앉아 아래를 내려다보니 알람브라 궁전과 그라나다 시내가 발아래로 펼쳐진다. 시원한 바람을 느끼며 그림 같은 풍경을 바라보고 있으니 어디선가 아름다운 기타 소리가 들려온다. 멜로디를 따라 고개를 돌려보니 언덕 위의 두 소녀가 기타를 연주하고 있다. 영화 속 아름다운 장면처럼 그렇게 때맞춰 들려오는 기타 연주는 아름다운 그라나다의 풍경을 완성한다. 가수가 되기 위해 연습을 하고 있다는 소녀들. “아디오스” , “아스타라 비스타” 그렇게 인사를 하고 언덕 아래로 다시 발걸음을 돌렸다. 언젠가 다시 찾을 그라나다에서 그녀들의 연주를 다시 만날 것을 기대하면서…

▲ 목적 없는 여행의 걸음이 우연한 사진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 그라나다 거리의 여유로운 여행자들.

여행자들의 도시, 그라나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유독 여행자들이 길을 잃는 도시가 있다. 가던 길을 멈추고 그저 머무르게 되는 도시. 그라나다가 바로 그런 곳이다. 알람브라 궁전과 알바이신 언덕이 아늑하게 품어주는 그라나다의 골목골목에는 아늑한 분위기가 가득하다.

▲ 가던 길을 멈추고 그저 머무르게 되는 도시, 그라나다.

느긋한 하루를 보내다 해질 무렵이면 호스텔의 친구들과 알바이신 언덕을 올랐다. 알바이신 언덕에 오르면 알람브라 궁전이 한눈에 펼쳐진다. 알바이신 언덕에서 바라보는 알람브라는 더욱 아름답고 로맨틱하다. 그 풍경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어느새 내 마음까지 말랑말랑해진다. 그건 아마 그라나다가 가진 신비한 힘이 아닐까 싶다.

그라나다의 하늘이 붉게 물들어갈 무렵이면 알바이신 언덕은 어느새 파티의 장으로 변한다. 아마 낮부터 마신 샹그리아와 맥주의 취기가 적당히 올라서일 게다. 세계 각국에서 그라나다를 찾은 이들은 여행자라는 이름으로 친구가 된다. 파티는 알바이신 지구를 가득 메운 타파스 바로 장소를 옮겨가며 늦은 시간까지 계속된다. 시간이 흘러가면서 알람브라 궁전에서 느꼈던 감동은 조금씩 바래져 갈지도 모르지만 이 친구들과 밤새 타파스바에서 맥주와 샹그리아를 마시며 떠들던 추억은 점점 진하게 남을 것 같다.

▲ 하늘이 붉게 물들어갈 무렵, 어디선가 음악이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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