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을 찾아 튀어!…호명산 백패킹
숲을 찾아 튀어!…호명산 백패킹
  • 류정민 기자 | 사진 김해진 기자
  • 승인 2015.05.08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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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R OUTBOUND ①트레킹&캠핑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지리산이 궁금해서 무작정 가보기로 했다. 그러나 너무 어중간한 기간이라 다음으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3월에 핀 산수유와 벚꽃은 나날이 지고 있었고 4월 말에 피어나는 철쭉도 아직 얼굴을 내밀지 않았으니까. 우연히 보게 된 호명산 잣나무 숲 사진. 가평의 잣나무는 유명하지만 이렇게 캠핑하고 산책하기 좋은 잣나무 숲이 있을 줄이야. 빛이 곱게 내리쬐는 잣나무 숲 사진 한 장만 보고 무작정 발길을 휙 돌렸다.

이번 백패킹은 유난히 즐거웠다. 달리기를 좋아하는 친구 (김)은영이와 사진기자의 대학 동기인 박경진 씨와 함께 해서였는지도. 웃음이 터져서 산을 오르기도 힘들 정도로 유쾌했는데, 그렇게 웃지 못했다면 가는 도중 짐을 다 놓고 퍼져버렸을 것이다. 그만큼 힘든 산행이었다. 가평의 가까운 산이라고 너무 쉽게 봐서일까?

BGM은 김동률의 ‘출발’
“작은 물병 하나 먼지 낀 카메라 때 묻은 지도 가방 안에 넣고서 언덕을 넘어 숲길을 헤치고 가벼운 발걸음 닿는 대로 끝없이 이어진 길을 천천히 걸어가네”

캠핑에서 음악은 빼놓을 수 없는 존재. 이번 캠핑의 배경음악은 김동률의 ‘출발’이었다. 산을 오르고 밥을 먹을 때도, 하다못해 멍하니 앉아있을 때도 이 음악을 어찌나 많이 들었는지. 멜로디만 주로 듣는 내가 가사를 줄줄 외울 정도니 말 다했다.

▲ 대성사에서 호명산 정상까지 가는 2코스. 돌밭을 지나니 꽃밭이 나왔다.

은영이는 음악 하나에 꽂히면 계속 듣는 친구다. 에이핑크의 ‘미스터 츄’를 한창 듣더니 요즘은 김동률의 ‘출발’만 내내 듣는다고 한다. 꽂힌 이유를 묻자 한 케이블 방송에서 하는 여행프로그램 ‘꽃보다 누나’ 배경음악으로 나왔던 노랜데 여행 풍경과 너무나도 잘 어울려서 요즘 계속 듣고 있단다. 은영이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원래 좋아라했던 이 노래도 다시 들리기 시작했다. 가사처럼 우리는 호명산의 새로운 풍경에 가슴이 뛰었고, 야생 꽃 한 송이만 봐도 호들갑을 떨었다.

은영이는 매주 수요일 저녁마다 한강에 모여 달리기를 하는 모임인 PRRC1936Private Road Running Club에서 만났다. 어느덧 함께 달린 지 일 년이 넘었다. 요즘은 둘 다 일이 바빠 뜸해지긴 했지만 그래도 우리는 달리기를 좋아하고 한강과 서울을 사랑한다. 달리기 말고도 여름엔 같이 서핑도 하러 갈 정도로 아웃도어 활동을 꽤나 좋아하는 친구라 꼭 함께 가고 싶었는데 기회가 생겼다. 계획 세울 때부터 어찌나 신나하던지 나까지 들뜰 정도였다.

▲ 경사가 어마어마해서 숨이 턱턱 막혔던 호명산 등산길.

경진 씨는 우리 잡지에도 이미 여러 번 나왔던 자칭 유명인사다. 무한도전 식스맨 고정멤버를 결정하는 것 마냥 자기 어필을 계속해댔다. “제가 출장을 함께 온 게 어느덧 세 번짼데요. 검은 친구 나올 때가 됐는데? 하면서 정기 구독하는 독자분도 있을 걸요?” 섬 캠핑에 이어 지난해에는 선자령 백패킹도 함께 다녀왔다고. ‘열정페이’만 받아도 좋으니 <캠핑> 객원 멤버로 채용해달라고 외치던 경진 씨는 캐나다에서 지내다가 잠시 들어왔다. 다음 주엔 다시 캐나다로 돌아가야 해서 친구와 함께 하는 이번 캠핑이 꽤나 기대가 되는 눈치였다.

여행은 역시 미리 세워 둔 계획에 차질이 생기는 맛으로 다니기도 하는 법. 근처 닭갈비 거리에서 점심을 먹고 상천역으로 가려고 보니 차를 타고도 30분이 넘게 걸리는 게 아닌가. 코앞에 등산로가 있는데 굳이 돌아갈 필요가 없을 것으로 판단. 대성사 앞에 차를 세운 뒤 주섬주섬 가방을 꾸렸다.
오후 4시 30분, 산행 시작.

▲ 푹 자고 난 다음날 아침, 다시 떠날 채비를 한다.
고된 산행의 시작, 안내판도 다시 보자
모든 산행에서 정상까지 거리가 짧다면 한 번쯤은 코스를 다시 생각해봐도 좋다. 나의 백패킹 역사는 짧지만 정상까지의 짧은 시간 = 높은 경사와 힘든 코스를 뜻한다는 건 자명한 사실이다. 오르막이 이어졌다. 돌밭으로 된 오르막을 지나니 꽃밭으로 된 오르막이 나왔다. 한숨 돌리며 꽃밭에서 사진도 찍고 활동식도 챙겨먹었다. 그리곤 떠올리고 싶지 않은 코스가 계속 이어졌다.

각도기의 45도를 산에서 보여주기라도 하듯 그 경사는 상상이상이었다. 호명산을 우습게 봤다가 큰코다쳤다. 봄에 왔으니 다행이지. 캠핑도, 백패킹도 처음인 은영이는 “여기 정말 등산길 맞아요?”를 몇 번이고 물었다. 지난겨울에 갔던 험하고 험했던 서대산을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내가 같이 갔던 일행들에게 몇 번이고 물었던 말들.

어느덧 ‘호명산 정상 0.2km’ 안내판이 보이는 곳에 도착했다. 다왔다는 생각에 긴장도 풀렸고, 땀도 식힐 겸 한참을 쉬었다. 다시 출발해서 걷다보니 이상할 정도로 멀었다. 역시나 나무로 만들어진 안내판이 뭔가 미심쩍다 했더니 누군가가 긁어서 감쪽같이 바꿔놓은 것이었다. 1.2km의 길을 더 걷고 저녁 7시가 다 되어 도착했다.

정상은 바람이 너무 강해서 조금 아래쪽 나무가 우거진 곳에 자리를 잡고 텐트 두 동을 쳤다. 오늘의 우리집은 MSR의 초경량 텐트 플라이라이트와 엘릭서3다. 플라이라이트는 그라운드시트가 없는 탓에 땅의 냉기를 차단하기 어렵다. 아직 출시되지 않은 새로운 텐트에서 아침을 맞이하고 싶어서였을까? 남자들이 자진해서 자겠다고 나섰다. 덕분에 나와 은영이는 따뜻하고 넓은 텐트 안에서, 침대 같이 폭신한 에어 매트리스 위에서 곤히 잠들 수 있었다.

▲ 어느덧 따끈한 봄날. 봄볕이 따가워 타프를 쳤다. 트레킹폴을 이용해서 높이 높이.

호명산의 정상은 정상이 아니야

그 가파른 경사를 오르고 올라 동네 뒷산 스타일의 풍경을 보고 있자니 헛웃음이 나왔다. 그런데 호명산의 정상은 정상이 아니었다. 더 높은 봉우리들이 그 뒤에도 몇 개가 찾아왔고 호수를 지나서야 트레킹 코스라고 할 만큼 걷기 좋은 길이 나왔다.

하산 길, 물이 부족해서 혼났다. 배고프기 전에 먹어야 하고 목마르기 전에 마셔야 하는데, 어제 챙겨 온 1.5L 물 세 병은 우리에게 너무나 적은 양이었다. 문득 책상 위에 있는 ‘라이프 스트로우’가 생각났고 지금 이 순간, 절실히 필요했다. 호명산에서 잣나무 숲까지 가는 길에 호명호수가 있다. 호수 물을 정수해서 먹으면 어떨까? 하지만 현실은 빈 물통뿐.

▲ 진달래 꽃이 잔뜩 피었다.

무인도로 캠핑을 갔을 때 누군가 이야기해줬던 게 생각나 어금니를 꽉 앙다물었다. 물이 없는 곳에서는 이런 방법을 쓰기도 한단다. 침샘을 자극해서 목마름을 견뎌내는 거겠지. 물론 그 정도로 물이 고팠던 건 아니지만, 그때를 회상하니 글을 쓰는 지금도 물 1L를 한 번에 원 샷 할 수 있을 것 같다.

겨울이 지난 지금은 산이 기지개를 피는 날들이기도 하고, 그만큼 위험하기도 하다. 뭐랄까 격한 운동을 앞두고 체조하기 직전의 상태와 비교하면 되려나? 가뜩이나 목이 마른데 산을 타는 도중, 바싹 마른 흙과 나무를 보니 온 몸이 타들어가는 듯했다. “이곳이 가평의 사막이라면서요?” 장난치며 올라가던 길, 호수가 가까워졌는지 물방울이 섞인 시원한 바람과 물 냄새가 풍겨왔다.

▲ "으아 진짜 힘들다." 표정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오오 다 왔나봐!!! 물내 난다 물내. 이것 봐 바람도 다르잖아” 외치며 한 걸음씩 나아갔는데 웬걸? 아예 다른 길로 내려가는 표지판이 있고 호수까지 가려면 더 올라가야했다. 내려갈까 고민하는 남정네 둘을 뒤로 한 채 나와 은영인 그 시간에 한 발자국 더 올라가기 위해 산을 올랐다. “저런 쿨녀들이 있나” 하며 묵묵히 뒤쫓아 오던 그들.

먼저 내려간 사진기자가 흠칫 놀라는 모습을 보니 약수터가 있는 게 분명했다. ‘오 주여!!! ‘부적합’이라고 쓰여 있어도 마시겠어!!’ 하고 달려간 곳에는 신기하게도 조그마한 시냇물이 졸졸 흐르고 있었다. 손만 씻어야지 하고 손을 넣는 순간 맑디맑은 물이 눈에 들어왔고 입만 가글해야지 하는 순간, 이미 꿀떡 넘기고 있었다. 의외로 맛있었던 시냇물 몇 모금의 행복. 물이 있었다면 거들떠보지도 않고 지나갔을법한 이 시냇물, 우리에겐 ‘호명사막’의 ‘오아시스’나 다름없었다.

▲ 곳곳에 이름 모를 야생꽃이 잔뜩 피어 있어 놓칠새라 사진을 찰칵.
▲ 그 유명한 호명산의 잣나무 숲. 우린 고생 끝에 잣나무 숲을 겨우 발견할 수 있었다. 우리 다음엔 잣나무 숲에서 만나기로 해요!
호명호수와 잣나무 숲
호명호수는 인공으로 만들어진 곳이라 산행을 하는 내내 상상하며 그려왔던 호수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나무 데크에서 여유 있게 둥둥 떠다니는 백조 조형물을 보고 있자니 산행을 하다 한 숨 돌리고 가기엔 안성맞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빠르게, 빠르게 산을 오르다 아주 잠시 멈춰있는 풍경을 보는 느낌. 이 잔잔하고 고요한 호수를 보며 점심을 먹었다.

경진 씨는 캐나다에서 애니메이션을 전공했다고 한다. 지금 하는 일은 다른 일이지만 만화를 그리고 싶은 꿈을 이루기 위해 체계적으로 준비 중이다. 귀신에 대한 만화를 그릴 거라고 하니 호명산이 6.25때 격전지라고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호명호수에서 만난 어르신들도 “호명산이 군사지역이라 출입 허가가 난 지 얼마 안 됐어”라고 하셨다. 여기서 전투식량을 먹다니 기분이 묘했다. 그동안의 목마름은 맥주 한 캔으로 단번에 해결했고, 허기짐은 전투식량도 고기뷔페로 만들었다. 아마 곳곳에 있던 군인 귀신들도 전투식량을 맛보고 싶었겠지?

▲ 이번 백패킹을 함께 한 은영이와 경진 씨. 경진 씨의 가방이 꽤나 무거웠다.당신을 호명산 셰르파로 임명합니다.

▲ 정상에 오르자마자 해가 지기 시작했다.

▲ 호명산 정상에서 자려고 했으나 바람이 너무 불어 아래쪽으로 대피했다. 으슬으슬 4월의 겨울은 아직 춥다.

문득 캐나다에서는 캠핑을 어떻게 하는지 궁금해졌다. “여름엔 캠핑하고 겨울엔 스키를 주로 즐기는데 캠핑은 주로 호수 주변에서 해요. 캠핑카나 트레일러를 주차하는 공간도 잘 돼 있고, 불 피우는 곳도 따로 마련되어 있어요. 가족들 다 같이 가서 바비큐를 해먹거나 햄버거를 만들어 먹으면서 낚시와 수영을 하죠. 저도 캐나다 친구들과 호수 주변에서 캠핑을 자주 하는데, 백패킹은 산짐승들이 많아서 무서워요. 한 번도 안 해봤어요.”

은영이는 “회사를 일 년 쉬었다면 여기저기 엄청 따라다녔을 것 같아”라며 첫 캠핑을 마친 후기를 전했다. 힘들게 싸들고 온 식량을 평소만큼 많이 못 먹은 걸 가장 아쉬워해서 다들 깔깔 웃어댔다. (그래도 그녀는 일행들 못지않게 아주 잘 먹었다) 다음엔 아픈 사람 없이, 첫 캠핑이라고 긴장한 사람 없이 다시 이곳으로 백패킹을 하러 온다면 더 할 나위 없이 좋으련만.

▲ 호명산 정상엔 깨알같이 방명록 쓰는 곳도 마련되어 있다. “다음에 또 같이 오자!” 라고 쓰는 중.

▲ 멋지게 깎아놓은 듯한 네모 네모 바위들이 잔뜩 있던 구간. 숨이 차기 전에 쉬어야 한다. 중간중간 쉬어가며 활동식도 챙겨먹고 호흡도 고르기.

▲ 이름 모를 야생꽃. 제비꽃인가? 꽃 공부도 해야겠다. 예쁜 꽃들의 이름을 불러주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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