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일러닝, 한번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어요”
“트레일러닝, 한번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어요”
  • 임효진 기자 | 사진 양계탁 기자
  • 승인 2015.05.07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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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레이서 1세대 유지성&청년대장 윤승철

몇 해 전부터 불기 시작한 러닝 바람과 중장년층의 국민 취미인 등산이 만나는 지점에 트레일러닝이 있다. 세간엔 여전히 산에서 뛰어다니는 걸 이해하지 못하는 까칠한 눈빛이 있지만,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달리는 대열에 합류하는 사람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그 선두에 유지성 대장이 있다. 많은 사람이 등산과 마라톤에만 집중하고 있을 때 혼자서 사하라 사막 레이스에 참가하며, 국내에 트레일러닝 씨앗을 뿌린 오지레이서 1세대 유지성 대장. 그와 함께 그의 뒤를 이어 최연소 사막레이스 그랜드슬램을 달성하며 젊은 층의 트레일러닝 방향을 비춰주는 청년대장, 윤승철씨를 만났다.

유지성 대장님, 윤승철 씨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유지성 (이하 유) 승철이는 사막마라톤 한국 최연소 그랜드슬래머이자, 1세대 대학생 오지 레이서예요. 근래 들어 트레일러닝이 많이 알려지면서 오지 마라톤에 도전하는 젊은 친구가 많은데, 그들이 보고 배울 게 많은 친구예요. 러닝에 대한 도전을 멈추지 않으면서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 가고 있죠. 변함없이 열심히 하는 그 모습에서 진정성을 볼 수 있습니다. 포 데저트(4 dessert) 그랜드슬램을 달성하는 과정에서 소셜 펀딩을 했던 것도 재치 있었고요. 또래보다 성숙한 자세로 국내 젊은 층의 트레일러닝 문화를 이끌고 있다는 점에서 제가 아끼는 친구입니다.

두 분의 첫 만남이 궁금합니다.
윤승철 (이하 윤) 2011년 사하라 사막 레이스에 참가하면서 인연을 맺었어요. 인터넷에서 지성이 형이 운영하는 카페를 봤을 거예요. 그날이 마침 사하라 사막 레이스 참가자들의 정모가 있는 날이었어요. 신청도 하지 않고 무작정 찾아갔죠. 그런데 반응이 의외였어요. 저를 이상한 애로 보지 않고, 아주 자연스럽게 맞아주더라고요. 누구나 할 수 있다는 따뜻한 말과 함께.(웃음) 그 말에 바로 신청했어요.

승철이는 그 당시 최연소 참가자였어요. 사막 레이스는 원하면 누구나 참가할 수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다고 독려해줬죠. 몸으로 하는 일은 복잡하게 생각하는 것보다 실천으로 옮기는 게 중요해요. 많은 얘기를 해주지도 않았어요. 그러면 재미없거든요. 스스로 체험하고 느끼는 게 중요하죠.

맞아요. 몸을 더 만든다든지 준비를 더 한 후에 간다고 생각했으면 아마 저도 못 갔을 거예요.

승철씨는 어릴 때 발목을 크게 다쳤었죠. 사막을 달린다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부담은 없었나요? 유지성 대장님도 위험했던 적이 있었나요?
일상생활에 큰 불편은 없었지만, 겁이 나서 축구나 산행 같은 과격한 운동은 안했어요. 하지만 사막 레이스는 알고 난 뒤에는 무조건 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때부터 검사도 받고 재활 치료도 받았는데, 다행히 괜찮았어요.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막을 달리는 동안 발목에 통증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참을만했어요.

지금까지 큰 부상을 당한 적이 딱 한번 있어요. 뛰다가 다친 게 아니라 풍경을 감상하느라 넋 놓고 있다가 다쳤어요. 2013년도에 아타카마 사막을 달릴 때였는데, 발목이 돌아갔습니다. 아킬레스건만 끊어지지 않고 주변의 모든 인대가 손상된 상태였어요. 더군다나 그날이 첫날이었지만 참고 끝까지 달려서 완주했습니다.

트레일러닝에 대한 정의를 짚고 넘어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트레일러닝이라고 하면 산을 달리는 것만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포장된 도로가 아닌 곳을 달리는 모든 걸 트레일러닝이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그 중에서 단연 사막이 가장 좋은 코스죠. 사막에 모래만 있을 것 같나요? 실제로 가보면 길이라는 길은 다 있습니다.

숲길부터 시작해서 오솔길, 강, 임도, 암벽 구간, 자갈길, 모래 길을 만날 수 있어요. 사막에 몽블랑도 있고 알프스도 있습니다. 초원에서 양떼가 풀을 뜯는 모습도 볼 수 있어요. 참고로 국제트레일러닝협회에서는 포장된 도로가 20km미만인 곳을 트레일러닝 코스로 인정합니다. 올 여름이 지나면 세계육상연맹에서 인정하는 종목으로 채택될 거예요.

저도 처음에 가보고 충격 받았어요. 고비 사막은 자갈과 바위, 모래 길이 있고 해발 4000m 넘는 고지대도 지나갑니다. 눈도 볼 수 있고요. 해변과 호수 길도 지납니다.

가장 좋았던 사막은 어딘가요?
사하라 사막이 어린왕자 속에 나오는, 제가 상상했던 사막의 모습이었어요. 사막이라고 다 같은 사막은 아니에요. 모래도 다르고 지형도 달라서 각각의 매력이 있어요.
아름답기로는 아타카마 사막이고, 다양한 지형을 볼 수 있는 곳은 지대가 넓은 고비 사막이죠. 사막의 분위기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곳은 사하라예요. 모래 능선이 정말 아름답고, 낭만이 있습니다.

2002년 사하라 사막 레이스에 한국인으로는 유지성 대장님이 혼자 참가했는데, 2011년에는 윤승철 씨를 포함해 많은 한국 분이 참여하셨죠?
30명이 참가했습니다. 참여하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는 건 좋지만 꼭 좋게만 볼 수 없는 점도 있어요. 언론에 화제가 되기 위해 변질되는 경우죠. 트레일러닝은 극한의 체험보다는 자연을 즐기고 자신만의 즐거움을 찾는 과정에 더 가까워요. 하지만 한번 화제가 된 경우에는 다시 화제가 되고 싶어서 일부러 극한 체험을 찾아서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자신이 하지도 않았던 일을 했다고 말하기도 하고요. 작게 보면 개인의 문제지만 결국은 그 한 사람으로 인해서 전체가 피해를 볼 수 있어요. 트레일러닝 문화 자체를 왜곡시키는 거죠. 유명해지고 싶으면 연예인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많은 사람이 참여하는 건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좀 걱정이 돼요. 위험한 일을 무리해서 하는 친구들이 있거든요. 방송에 나가는 것 때문에 그런 거라면 하지 말라고 이야기 합니다. 또 누구에게나 솔직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자신을 포장하는 글만 블로그에 올리는 경향이 있는데, 실수했던 점이나 준비가 부족했던 점 등 이면의 문제도 가감없이 털어놓아야 올바른 정보를 공유할 수 있고, 선의의 피해자도 나오지 않을 거예요.

두 분은 누구나 오지마라톤에 도전할 수 있다고 하시죠. 그 전에 뛰어본 경험이 없는 두 분도 하셨으니까요. 그런데 그게 어떻게 가능한 건가요? 무리해서 뛰다보면 신체에 무리가 오거나 최악의 경우에는 죽을 수도 있지 않나요?
참가비가 비싸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가보면 왜 그만한 비용을 내야하는지 이해합니다. 주최 측에서 안전장치를 모두 마련해 놓았기 때문에 개인이 크게 무리하지 않는 이상 안전하게 레이스를 즐길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사망했던 경우도 있었는데, 대부분 기록에 중점을 뒀던 상위 그룹에서 잠을 자다가 심장마비로 사망한 경우였어요. 몸에 무리가 갔던 거죠. 힘들지만 위험한 건 아닙니다.

두 분은 기록을 내거나, 1등에 도전하고 싶은 욕심은 없으신가요?
지금까지 사막마라톤을 26번 참가했어요. 저에게는 대회를 빙자한 여행이죠. 놀면서 달려야지 부상도 안당하고 더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해요. 주변에서 기록에 욕심내는 사람을 보면 달리기 인생에서 단명하더라고요. 그런 사람들 중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해오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속도를 버리면 다양하게 변하는 주변 시야를 볼 수 있고 더 많은 걸 얻을 수 있어요. 하지만 속도를 쫓아가면 앞 사람 엉덩이만 보고 가야 합니다. 레이스를 마쳐도 기록 말고는 남는 게 없는 거죠. 젊을수록 기록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어요. 열정은 기록이 다가 아니에요. 자기를 얼마나 잘 알고 관리하느냐가 중요하죠. 무리해서 뛰다가 3~4일차에 그만두는 사람도 많아요.

선두권으로 달리는 사람 중에는 사진 좀 보내달라는 사람이 있어요. 사진을 보여주면 이런 데가 있었느냐고 되묻죠. 기록보다는 이왕 온 거 즐기면서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 ⓒ윤승철

멀쩡히 평지를 걷다가도 발목을 자주 삐끗하는 저는 요철 많은 산길이나 자연을 달리다 행여 발목이 부러지지는 않을까 걱정입니다. 초보자들은 어떤 점을 주의해야 하나요?

트레일러닝화와 일반 운동화의 차이점인데요. 트레일러닝화는 발목을 잡아주기 때문에 발목을 다치는 경우가 극히 적어요. 또한 자세도 중요해요. 몸을 약간 앞으로 숙인다는 느낌으로 발 앞부분부터 지면에 닿는 게 중요해요. 뒤로 미끄러지는 걸 방지하는 거죠. 다른 장비도 중요해요. 트레일러닝 배낭은 조끼처럼 등에 딱 붙는 형태예요. 일반 배낭을 메면 흔들리고, 그러면 무게 중심이 흐트러져 어깨와 허리가 아픕니다.

옷도 중요해요. 몸에 딱 붙는 소재를 입으세요. 근육을 잡아줘요. 반바지를 입을 때 긴 양말을 신는 이유죠. 다리가 긁히는 걸 보호할 수 있고, 종아리가 떨리는 걸 잡아줘요. 종아리가 떨리면 근육이 쉽게 풀리고 쥐가 나기 쉬워요. 필요한 장비를 갖추고 트레일러닝을 즐긴다면 부상이나 위험 부담이 적습니다. 트레일러닝은 거리나 장소에 제약이 없어서 여성이나 운동 경험이 많지 않은 사람들도 쉽게 접하고 즐길 수 있어요. 너무 겁먹지 않아도 돼요.

사막과 남극을 다녀오고 난 뒤의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인가요?
그런 건 없어요. 그저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을 뿐이에요. 다음에 또 가고 싶을 뿐이죠. 거창한 이유가 있어서 갔던 것도 아니고, 다녀와서 대단한 게 생긴 것도 아닙니다. 그저 막연히 가고 싶어서 갔을 뿐이고, 또 가고 싶을 뿐이에요.

아, 그런 건 있어요. 몸이 깨끗해지는 느낌. 사막레이스를 다녀오고 나면 7~8kg씩 빠지는데 몸 안의 노폐물이 모두 다 빠져나간 홀가분한 기분이 들어요. 몸과 마음의 찌꺼기를 사막에 비우고 오는 겁니다. 살면서 한 번쯤은 경험해 보세요. 삶에 생기가 생기고, 지쳤던 몸과 마음이 재생됩니다.

승철 씨한테 유지성 대장은 어떤 사람이에요?
제가 지금까지 만났던 사람 중에 자신한테나 남한테 가장 솔직한 사람. 주관이 솔직하고, 앞뒤 모습이 다르지 않은 허심탄회한 사람이에요. 희소한 정보를 알면 자신만 알려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런데 지성이 형은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으면 뭐든지 이야기 해줘요. 사실 처음에는 어려웠던 적도 있었어요. 저는 스스로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형의 조언이 잔소리처럼 느껴지고, 자꾸 개입하는 것처럼 느껴졌죠. 하지만 이제는 그때 형이 왜 그랬는지, 그게 무슨 뜻이었는지 이해가 가요. 저도 지금 저보다 어린 친구들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가 그때 형이 저한테 해주었던 딱 그 얘기거든요. 어쨌든 좀 오글거리지만 형이 참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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