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 그릴 수도 없던 크로아티아 해변 국도 No.D8
꿈에 그릴 수도 없던 크로아티아 해변 국도 No.D8
  • 글 사진 길바울 기자
  • 승인 2015.04.23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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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 타는 유럽 횡단 ‘오늘을 산다’

어젯밤 두려움 속에 꾼 꿈 덕분에 발걸음은 가볍고, 가슴 옆 주머니에서 울리는 음악을 따라 부르며 느릿느릿한 나의 걸음을 즐기기 시작했다. 지금부터는 왠지 막막했던 발걸음은 기대가 되기 시작하는 것 같아, 홀로 외친다. “걷고! 걷고! 또 걷는다!! 힘내자!! 더 과감하자!!” 그렇게 푸른 하늘에 대고 외치며, 힘찬 발걸음을 옮겨 가는 동안, 나는 또 한 번 새로운 기쁨을 맛보게 되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태양에서 내리는 더위를 온 몸으로 받아 안으니, 어느덧 ‘D8 해안도로’ 위를 걷고 있었다.

▲ 국도에서 내려다본 두브로브니크

D8 해안국도는 크로아티아의 자랑이다. 도로 옆으로 에메랄드의 아드리아해를 두고서 끝없이 펼쳐진 도로이며, 이 길을 따라가면 프랑스까지 연결되는 환상의 해안도로이다. 크로아티아를 간다면 반드시 이 도로로 여행을 하기 바란다. 옆으로 시원한 속도로 달리는 자동차들을 볼 때마다, 내 걸음이 너무나도 느려 보이지만, 이 여행은 튼튼했다. 빠르게 얻은 것은 빠르게 사라지지만, 꼼꼼하게 얻어낸 것들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묵직한 깨달음과 희열들이 내 가슴에 차곡차곡 쌓여갈 때 마다 마음의 근육도 튼튼해지는 기분이다.

아름답던 두브로브니크, 알 수 없던 외로움
크로아티아 최남단에 있는 가장 유명한 휴양 도시 ‘두브로브니크’에 도착했다. D8 국도에서 내려다 본 두브로브니크의 올드 타운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워 몇 분 동안은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야만 했다. 하늘과 바다의 색은 푸를 대로 푸르렀고, 그 경계는 모호했다. 그 뜨거운 푸름에 포근히 감싸여 있던 두브로브니크는 환상적이었다. 흥분된 마음으로 달려가 냉큼 오래된 벽돌 길을 밟고 싶었지만, 올드타운으로 들어서는 마지막 계단에 앉아서 몬테네그로에서 사온 1유로짜리 빵을 여유 있게 씹어 먹었다. 느린 여운을 느끼는 자신이 대견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올드타운으로 들어서는 순간, 나는 소리를 질렀다.

▲ 안녕 두브로브니크

▲ 두브로브니크 메인 한복판에서
“으아!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는가?” 방랑자의 행색으로 고급휴양지의 한복판으로 들어섰다. 세월의 흐름을 고스란히 간직한 건축물들은 규칙적으로 세워져 있었고, 사람들도 북적북적 했다. 황량했던 외로움의 사막 속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기분이 이런 것일까?

바로 그 때 내 옆에서 내 고막을 울리는 음성 하나가 들린다. “한국인인가 봐?” 한국어다. 그 짧은 한국어가 내 귀 뿐 아니라, 이상하게 온 몸을 울려 퍼졌다. “네! 저 한국인입니다!.” 나는 웃는 얼굴인지 우는 얼굴인지 헷갈리는 표정을 한 것 같이 큰 소리로 대답했다.

한국어로 대화가 오갔다. 그렇게 주위를 둘러보니 부딪치는 사람마다 한국인들이었다. 이상하게 눈물이 난다. 웃으면서 울고 있는 오묘한 표정으로 한참을 한복판에 앉아있었다. 우리나라 사람을 만나면 외로움이 덜어질 줄 알았는데 이상하다, 더 외로워지는 것 같다.

매 순간순간 마다 전에 알 수 없던 새로운 감정과 생각이 내 안에서 솟구쳐 오르는 것이 낯설기만 하고 정신 없기만 하다. 혼자라는 사실이 더 사무치게 실감나는 까닭은 무엇일까? 조촐하게 저녁을 먹는 조용한 시간엔 내 뺨에 정말 외로운 눈물이 흘러내렸고, 저녁밥과 함께 그 눈물을 삼키며 내 자신을 위로하기 바빴다. 이 도대체 무슨 상태인지 알 수가 없다.

▲ 축구에 대한 열정이 뜨거운 크로아티아

조용함이 싫어서 밖으로 나섰던 그날 밤의 두브로브니크는 시끌시끌했다. 바로 월드컵 개막식이었고 그 첫 경기가 크로아티아 대 브라질 이었던 것이다. 축구라 하면 깜빡 죽는 나는 그 사실을 알고 난 후 광장의 큰 스크린 앞에 앉아서 크로아티아를 응원해댄다.

주위 크로아티아 친구들이 생겼고, 자신의 나라를 응원해주는 내게 음료와 음식을 주며 함께 열렬히 응원을 하며, 잠시 외로움을 잊을 수 있었고, 울다 웃는 묘한 상태를 경험하며 하루를 마감했다. 좋은 책 한 권 읽는다는 마음으로 나에게 응원과 최고의 잠자리를 후원해주신 ‘마이크로아티아’ 루시 누님에게 이 글을 통해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 해변에서 쉬고있는 연인

▲ 환상적인 아드리아해와 두브로브니크의 해변

작고 아름다운 마을 스톤ston에서의 불쾌함

아름다운 두브로브니크를 떠나려 한다. 너무나도 정신없는 이 곳이 무섭기도 하고, 몇 날을 있어도 부족한 두브로브니크에서는 하루의 기억만으로 만족한 채 걸음을 옮겼다. 언젠간 다시 올 것 같은 곳이기도 했다. 아침밥으로 루시 누님이 주신 신라면을 신나게 몹시 흥분한 상태로 게걸스럽게 먹어 치우고서 길을 다시 나섰다. 날은 몹시 더웠지만, 크로아티아의 해안도로는 방향을 잡을 것도 없이 아름다움에 흥건히 취한 채, 무조건 북쪽으로 향하기만 하면 된다.

크로아티아 사람들은 어찌나 친절한지 그냥 큰 배낭을 매고 있기만 해도 차를 세워서 자신이 가는 거리만큼 태워주기도 하고, 히치하이킹을 할 수 있는 좋은 장소에 안내해주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하염없는 여행이 주는 참 맛있는 이야기들이다. 나를 태워준 그들에게 나는 노래를 불러주기도 하고, 환상적인 해안도로를 시원하게 달려내며, 그들도 나도 모두 집으로 향한다. 그렇게 잠시 동안 만난 그들과 나눈 이야기들이 차곡차곡 내 발걸음과 함께 쌓여가고 있었다. 크로아티아는 오토캠핑장이 정말 많은 곳인가 보다, 길을 걷고 타다 보면 수도 없이 캠핑장으로 안내되는 표지판들을 보게 된다. 오늘은 캠핑장으로 향해 볼까?

▲ 두브로브니크를 빠져나가고 있다.

스톤이라는 작은 마을에 도착했고, 이 곳에 있는 캠핑장으로 향했다. 더워도 더워도 이렇게 더울 수가. 다행히 캠핑장으로 향하는 작은 트럭을 얻어 탈 수 있었는데, 이 아저씨가 한국 울산에서 일을 했다는 소리를 내게 던진다. 서울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만났어도, 울산을 알고 있다니 귀신 같다. 여하튼, 도착한 캠핑장에는 고급 캠핑카들 뿐 이었고, 가격도 만만치 않았다. 다행히 해변가 모래사장에 텐트를 칠 수 있게 되었는데, 그것이 화근이었다.

텐트를 쳐 놓고, 나는 캠핑장 안에서 유럽 사람들의 캠핑문화를 구경하며 다니고 있었다. 독일에서 온 노부부의 고급 캠핑카에서 같이 노래도 부르고, 그들의 삶을 공유하고 한동안 시간을 보내고 돌아온 텐트에는 경찰 2명이 있었다. 캠핑장에서 신고를 한 것이다. 경찰들은 이 곳에 텐트를 칠 수 없기에 캠핑장 안으로 들어가라고 했다.

▲ 오늘은 내가 전세 냈다.

그러더니, 독일 노부부 아저씨께서 자신이 페이를 할 테니 안으로 들어오라고 했는데, 나를 경계하던 캠핑장 주인은 독일 아저씨에게 그럴 필요 없다 한 후, 나를 향해 나가라고 손짓 했다. 몹시 기분이 불쾌했던 나는, 돈을 내고 캠핑장을 사용하겠다 했더니, “넌 돈이 없잖아. 나가주길 바라” 라고 내 말을 딱 잘랐다. 분노 게이지가 폭발했다. 나에게 수모와 조롱과 거지 취급을 했기 때문이다.

분노 섞인 목소리로 그에게 소리 높여 말했다. “이봐, 우리나라가 너네 나라보다 잘 살아. 내 핸드폰 하나가 네 월급보다 비싸다고, 네가 원하면 당장이라도 네 월급을 줄게.” 그는 되받아 쳤다. “이 캠핑장에서 나가.” 주위의 직원들은 난처한 표정이다. 나도 되받아쳤다. “난 여행자이지 거지가 아니야!! 무례하군. 네가 원하면 돈 줄게 언제든지 말해. 거지 같은 건 바로 너라고, 손가락 부러트리기 전에 손가락질 하지 마.” 모두들 우리의 싸움을 말리기 바빴고, 경찰은 해변에서 자고 내일 아침에 나가도 좋다며 나를 다독였다. 무례하고 기본도 안 된 놈을 만났지만, 아름다운 해변으로 나와 바다를 보니 마음이 한결 나아졌다.

▲ 캠핑장에서 만난 독일 부부 우브아와 니케

그날 밤은, 유난히 더 외로웠다. 호기심 가득한 고양이 한 마리가 텐트에 들어오고 싶어 밤새 텐트에 몸을 비벼 대는 바람에 한 숨도 잘 수 없었던 그 밤에 그 사장이 진짜 돈을 달라고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싶을 정도로 아찔하기만 하다. 맘 같아서는 돈을 모두 인출해서 얼굴에 뿌려주면서 조롱하고 싶었지만, 나를 위해서 참았다. 혈기도 쓸 만한 곳에 쓰기로 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나는 그 자리를 털어버리고 나오며, 다시금 좋은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스톤에서 스플릿으로_6번의 히치하이크, 사람으로 여행하다
불쾌한 일이 있었던 어제의 일을 훌훌 털어버렸다. 텐트 너머로 밝아 온 아침을 보고 난 일찍 다시 길을 나섰다. “오늘은 어떤 일이 일어날까?” 아침부터 트럭 한 대를 얻어 탔다. 아침과 저녁으로는 쌀쌀한 기운이 가득한 이곳에서 따스한 사람들을 만난 다는 것은 큰 힘이 된다. 작은 트럭이 서자마자 곧이어 차 한 대가 또 선다. “내가 메인 도로까지 데려다 줄게.” ‘브라드미르’이다. 그는 나를 위해 10km나 더 데려다 주었고, 서로 SNS를 주고 받았다. “헤이 폴! 우리 삶의 주인은 우리야. 힘내!!” 그가 남긴 마지막 메시지였다.

그 다음 만난 ‘조세프’라는 친구는 나를 태워가는 내내 환상적인 풍경이 나오기만 하면 속도를 줄이며 얼른 감상하라고 자동차의 속도를 낮추기를 반복하는 친절함도 보여주었다. 세 번째 만난, ‘이반’과 ‘제킨’ 부부는 나의 다음다음 목적지인 자다르를 향했는데, 내가 차에서 내리려고 하니 “폴, 자다르로 우리와 함께 가.” 자며 배려해주었지만, 나는 크로아티아 해안도로가 더 좋았기에 정중히 거절했다.

이쯤 되니, 나는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 다음 히치하이킹까지 2시간을 기다렸는데, 스플리트로 향하는 길은 고속도로와 국도가 있었다. 나는 과감히 국도를 선택했다. 국도는 여러 사람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엉덩이를 흔들며 강남스타일의 말춤을 추며 차들 앞에서 재롱을 부려본다. 대부분의 차들이 지나치지만 소리를 내며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워주기도, 방향이 달라 미안하다는 웃음으로 대답해주는 이들도 있다.

▲ 나를 초대해준 수정, 은소, 예영이

강남스타일의 말춤이 그냥 지친 말 같은 몸짓을 할 무렵 한 커플이 차를 세웠다. “어서 타. 우린 여기서 15km 정도 가니까 거기까지 가자. 거기에 히치하이킹 하기 좋은 장소가 있어.” 이어달리기인 셈이다. 유럽 사람들은 히치하이킹으로 여행을 곧잘 하기에, 히치하이커들의 필요를 잘 알고 있는 듯 했다. 모든 사람들이 태워주고 내려줄 때는, 내가 다음 히치하이킹을 잘 할 수 있도록 흔히 말해 ‘명당’으로 안내해준다. 그럼 새로운 차가 이내 나를 향해 서게 된다.

그 다음 다시 만난 보스니아 부부 ‘잉카’와 ‘시드’를 만났다. 차에 타니 맛있는 빵부터 건넨다. 하늘에서 비가 떨어지기 시작한다. 이들의 손길은 아직도 내 마음에 따스한 온도로 남아있는데, 목적지에 다 와서는 차에 있던 과자며 음료수며 전부 담아서 건네고는 더 줄 것이 없는지 찾기까지 한다. “폴! 다 가져가. 우리가 응원해! 적을 것이 있어?” 잉카는 자신의 집 주소를 적어준다. “폴, 만약 보스니아에 오게 된다면 당장 여기로 와. 우리가 널 대접하고 싶어.” 그리고 이어서 주섬주섬 내 주머니에 무엇을 넣는다.

▲ 보스니아 부부 시드와 벨레토바크

“만약 여기서 차가 잡히지 않으면 버스를 타. 이 돈으로 말야.” “잉카 괜찮아요. 나도 돈이 있어요. 정말 감사해요.” 나는 눈물이 흘렀다. 잉카는 주머니에 돈을 쑤셔 넣어주며, 뜨거운 포옹을 해주었다. 낯선 곳에서 만난 따스한 사람들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내려준 곳은 국도 위 작은 버스 정류장이었고, 그곳에서 체코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에게 노래도 불러주고 내 배낭 크기에 놀라는 그들과 좋은 시간을 보냈다.

난 다시 도로 위를 향해 엄지를 치켜세우며 춤을 추며, 그 순간순간을 즐기고 있었고, 즐기는 법을 배워가기 시작했다. 마지막 만난 ‘자바’는 꽤나 빠른 속도로 국도를 달리다가 나를 보고 급하게 차를 세웠다. 다음 도시로 아이들을 데리러 가는 그는 가는 내내 주위를 살피며 말을 했다. “가만 있어보자… 어디가 히치하이킹하기 가장 좋은 곳일까?”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 싶어 하는 자바에게 노래로 감사한 마음을 대신했다.

그 때, 갑자기 폭우가 쏟아진다. 자바가 말한다. “너무 큰 비인데, 이러면 히치하이킹이 힘들어질 텐데.” 그러더니, 국도를 벗어나고 도착 한 곳은 버스터미널 같은 곳이었다. “폴. 잠깐만 기다려줘.” 그리고 그는 차에서 내리고, 스플리트로 가는 버스 티켓을 한 장 들고 다시 들어왔다. “폴, 스플리트 가는 버스 티켓이야. 비가 오는 날엔 히치하이킹이 힘들거든, 별 것 아니야. “ “자바, 내가 끊을 수도 있는데…” “정말 별 것 아냐. 내가 못해 줄 게 뭐야. 괜찮아.” 자바는 작은 것이라 하지만, 내게는 이만큼 큰 이야기들도 없을 것이다. “폴! 모든 것이 최고일 거야 좋은 여행해!” 자바는 창문을 내리고 큰 소리로 응원을 했다.

▲ 스플리트에 도착했다.

외로움을 기대하기 시작하다

그렇게 난 스플리트에 도착했다. 어제 캠핑장에서 당한 수모에 대한 위로를 아니 그 이상의 것을 오늘 받은 셈이었다. 이렇게 7시간 정도 걸린 히치하이킹은 모두 사람의 힘이었다. 내 삶에서 우리 삶에서 잃어버린 것들 중 하나였던 것이었을까? 이러한 여행이 새롭고 신기했다. 스플리트에서도 신기하게도 인연은 계속 되었다. 아니, 이 곳 뿐 아니라 점점 모든 곳에서 인연으로 여행의 과정을 그려가기 시작했다. 잠깐 사진 찍어준 인연, 길가다가 눈 마주친 인연의 작은 씨앗이 여정 속에서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그 인연의 이야기 전부를 어떻게 풀어내야 할지 고민이다. 좌충우돌 강남스타일 히치하이킹, 그리고 이날 저녁에는 두브로브니크에서 만난 예영이 수정이 은소에게 초대까지 받아, 맛있는 저녁을 대접 받았고, 늦은 새벽 잘 곳을 찾다가 스플리트 전체가 내려다 보이는 카페의 쇼파에서 월드컵을 보던 친구들과 함께 축구를 보고 아름다운 야경을 벗 삼아 따스한 소파에서 잠까지 잘 수 있었다. 나는 돈이 아니라, 돈으로 살 수 없는 사람으로 여행하고 있었다. 난 외로움을 기대하기 시작했다.

▲ 붉게 물든 스플리트의 해질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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