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다시 부르는 겨울연가
봄날, 다시 부르는 겨울연가
  • 글 사진 김산환 (꿈의지도 대표)
  • 승인 2015.04.23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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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니가타현 묘코고원 백컨트리 스키

늦은 저녁, 니가타공항에서 동해를 따라 묘코고원으로 가는 고속도로에 빗줄기가 굵었다. 차에 오른 일행 사이에 일말의 불안감이 감돌았다. 겨울 내내 백컨트리 스키를 하기 위해 손꼽아 기다렸던 발걸음인데, 궂은비라니.

봄비 앞세우며 발걸음 내딛은 묘코고원
사실 3월이 코앞이라 비가 내려도 하나도 이상할 게 없었다. 오히려 오는 봄을 위해 비를 기다리는 게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적어도 며칠은 더 버텨줘야 한다. 일본에서도 최고의 적설량을 자랑하는 묘코고원에서의 행복한 스키를 위해서는 절대 비가 내려서는 안 된다.

묘코고원은 동해에 접한 니가타현에 있다. 서울과 위도가 비슷한 이곳에는 높은 산들이 많다. 대표적인 곳이 유자와와 죠에쓰다. 유자와는 노벨문학상에 빛나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의 무대가 되었던 곳이다. 이곳에는 일본 최대 스키 리조트 가운데 하나인 나에바를 비롯해 신간센 기차역에서 곧장 곤돌라를 타고 스키장으로 가는 유자와 갈라 스키장이 있다. 죠에쓰는 니가타현의 남쪽 나가노현과 붙어 있다.

이곳은 일본 100대 명산의 반열에 든 묘코산(2454m)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스키장이 밀집해 있다. 특히, 죠에쓰는 일본 스키 발상지로 유명하다. 1911년 오스트리아 레르히 소령이 이곳에서 일본 육군 병사들의 스키를 가르쳐 주면서 일본의 스키가 시작됐다. 이 때문에 일본의 스키어들 사이에는 죠에쓰가 스키의 성지로 받아들여진다.

죠에쓰에서도 손꼽는 스키장은 묘코고원에 몰려 있다. 묘코산을 중심으로 북사면의 고원지대에 7개의 스키장이 있다. 이 가운데 1937년 일본 황실에서 개발한 알프스 산장풍의 럭셔리한 호텔이 있는 아카쿠라 칸코 리조트와 일본에서 가장 긴 다운힐 코스(8.5km)와 최장의 표고차(1124m)가 있는 스기노하라 스키장이 묘코고원의 얼굴마담 같은 존재다. 묘코고원은 특히 일본 최대의 적설량을 자랑한다. 하룻밤에 1m씩 눈이 내릴 때도 있다. 2월에도 평균 3m 이상의 적설량을 기록할 만큼 많은 눈을 자랑한다.

이 때문에 정설된 슬로프는 물론 스키장 구역 밖에서 즐기는 트리런이나 백컨트리 스키의 명소로도 각광을 받는다. 일본인이 선호하는 스키리조트 톱3에 항상 꼽히고, 일본 스키 마운틴 6클럽에도 소속되어 있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묘코고원은 일본 스키의 메카다.

아주 특별한 매력의 아카쿠라 칸코 호텔
자정을 넘겨 아카쿠라 칸코 호텔에 여장을 풀 때까지만 해도 날씨에 대한 불안감은 가시지 않았다. 하지만 다음날 아침이 되자 빗줄기는 어느새 눈으로 바뀌어 있었다. 눈발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거세졌다. 정오를 지나자 한치 앞도 보이지 않을 만큼 함박눈이 됐다. 정설을 해놓은 슬로프에도 발목에 차일 만큼 눈이 쌓였다. 그때 서야 안심이 됐다. 그동안 이상기온일 정도로 날씨가 포근해 녹은 눈을 채워주기에 충분한 양이었다. 딱 하루면 됐다. 하루만 열심히 눈이 내려주면 스키를 타기에 최적의 조건이 되는 곳이 묘코고원이다.

첫날은 내리는 함박눈 속에서 아카쿠라 칸코와 아카쿠라 온센, 두 스키장을 오가며 스키를 탔다. 두 스키장은 붙어 있어서 공통권을 끊으면 자유롭게 오가며 스키를 탈 수 있다. 전체적인 규모는 아카쿠라 온센 스키장이 크다. 하지만 대부분의 슬로프가 초급과 중급 위주로 구성되어 있어 조금 심심한 편이다. 오늘처럼 함박눈이 퍼부을 때 슬로프를 잘못 선택하면 자칫 스키를 타는 시간보다 걷는 시간이 더 많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대신 스키를 처음 접하는 초보들에게는 다양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스키장처럼 보였다.

반면 아카쿠라 칸코 스키장은 일본 황실에서 개발한 스키장답게 품격이 있었다. 스키장은 폭이 좁은 대신 위아래로 길게 조성되어 있었다. 스키장 베이스에서 정상까지 가려면 리프트를 3번 갈아타야 한다. 표고차가 많이 나는 만큼 베이스와 정상의 날씨가 다르다. 베이스에 비가 내려도 정상에는 눈이 올 때가 많다. 슬로프 상태도 스키장 하단부가 약간 슬러시 상태를 보였지만 정상부는 뽀드득 소리가 날 만큼 설질이 좋았다. 날씨에 따라 슬로프를 선택해서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아카쿠라 칸코 스키장의 특별한 매력은 호텔에 있다. 아카쿠라 칸코 호텔은 스키장의 중간쯤인 해발 950m에 위치해 있다. 호텔에서 바로 슬로프와 연결이 되는데, 한참을 다운힐 해야 리프트와 만난다. 호텔로 돌아올 때도 다운힐을 하다가 현관에서 스키를 벗으면 된다. 이처럼 스키장 중간에 호텔이 있는 경우는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호텔의 품격도 아주 높다. 스키장이 내려다보이는 객실에서는 해맞이도 한다.

또 리프트와 거의 같은 높이의 노천탕(무심코 노천탕에서 일어섰다가는 리프트를 타고 가는 스키어에게 온몸을 노출당할 수 있다)이 있고, 코스 요리만 제공되는 일식과 프렌치 레스토랑, 호텔에서 직접 빵을 굽는 베이커리 등도 있다. 꼭 스키를 타지 않더라도 설국으로의 여행을 만끽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고 있다.

스키를 신고 산을 오르며 즐기는 백컨트리 스키의 매력
묘코고원에서의 2일째, 해가 쨍했다. 기온은 영상으로 올랐지만 어제 충분히 눈이 내렸던 터라 백컨트리 스키를 즐기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스키 라커에는 백컨트리 스키 전문 투어 가이드 3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팻스키(스키가 눈에 빠지지 않도록 플레이트가 넓은 스키)와 씰(산을 거슬러 올라갈 때 스키가 뒤로 밀리지 않도록 플레이트 바닥에 붙이는 장비), 비콘(눈사태 등으로 눈에 파묻혔을 때 위치추적을 할 수 있는 발신장치), 눈삽, 탐침봉 등의 장비로 무장하고 백컨트리 스키를 나설 준비를 했다. 이런 것까지 다 준비해야 하나 싶지만 만일의 사고에 대비하는 것은 기본이다. 올 겨울에도 묘코고원에서 백컨트리 스키를 하던 스키어 4명이 눈사태에 묻혀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다.

백컨트리 스키는 스키와 등산이 결합된 스키다. 인공적으로 조성한 스키장을 벗어나 자연 그대로의 조건에서 스키를 탄다. 적설량이 부족한 우리나라에서는 대관령과 울릉도 성인봉, 제주 한라산 등 극히 제한적인 산에서만 가능하다. 하지만 일본은 대부분의 스키장에서 백컨트리 스키가 가능하다. 그만큼 눈이 많이 내린다는 얘기다. 백컨트리 스키는 짧게는 1시간, 길게는 반나절 정도 산을 거슬러 오른 후 다운힐을 즐기는 일정으로 진행된다.

산을 거슬러 오를 때는 스키에 씰을 붙이고 올라가는 것과 스키를 배낭에 맨 채 설피를 신고 가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어쨌거나 다운힐만 있는 일반 스키와 달리 걸어서 산을 올라가는 것이 다르다. 백컨트리 스키는 날씨에 따라 크게 좌우된다. 시야가 흐리거나 바람이 강한 날은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시야가 확보되지 않으면 자칫 위험한 곳으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눈사태 등의 위험도 많다. 이 때문에 일본에서도 백컨트리 스키는 3~4월의 봄에 많이 즐긴다. 이때가 날씨가 안정되고 맑은 날이 많아서다.

슬로프를 뒤로 하고 묘코산의 품으로
오늘 백컨트리 스키는 이케노타이라 온센 스키장에서 하기로 했다. 이케노타이라 온센 스키장은 아카쿠라 칸코 스키장 왼쪽에 있다. 호텔에서 버스를 타고 15분쯤 거리다. 투어를 진행하는 댄싱 스노우의 가이드 윌리엄 로즈는 오늘은 백컨트리 스키 첫날이라 무리하지 않고 가벼운 코스를 잡았다고 했다. 그는 이케노타이라 온센 스키장 정상에서 1시간 정도 등산을 한 후 트리런으로 내려오는 코스를 탄다고 설명했다.

언제나 그렇지만 스키장을 뒤로 하고 산을 오르는 일은 행복하다. 슬로프를 뒤로 하고 일반 스키어들은 더 이상 갈 수 없는 공간을 향해 나아갈 때는 자신이 조금 특별한 존재가 된 듯한 느낌이다. 호기심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스키어들을 보면 조금은 우쭐한 마음도 든다. 아무도 가지 않은 새하얀 설원에 스키가 지나간 길만 남긴 채 오르다보면 가슴이 탁 트인다. 특히, 다운힐과 다르게 업힐은 나름의 매력이 있다. 스키를 밀면서 설원을 거슬러 올라가는 느낌은 걷는 것과는 또다른 느낌을 준다. 사실 스키를 신고 산을 거슬러 오르는 재미를 이해하지 못하면 백컨트리 스키는 ‘힘든 스키’가 되고 만다.

가이드가 안내하는 코스는 예전에 슬로프로 쓰였던 곳이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모르지만 지금은 운영을 하지 않는다. 바리캉으로 머리를 밀어놓은 것처럼 숲 사이로 난 슬로프는 순결함 그 자체다. 가끔 토끼가 지나간 발자국이 있기도 하지만 하얀 비단을 깔아놓은 것처럼 눈부신 자태는 그곳에 길을 내고 걷는 것이 차마 미안할 정도다. 40분쯤 슬로프를 따라 가다 숲으로 들어섰다. 자작나무숲으로 들자 안개가 자욱하다. 영상의 포근한 날씨 덕에 생긴 안개다. 땀은 비 오듯이 흘렀다. 그렇게 20분쯤 더 가자 탁 트인 공간이 나왔다. 이곳이 과거 이케노타이라 스키장의 정상이었던 곳이다. 오늘 투어의 종착점이기도 하다.

구름 위를 달리는 듯한 트리런의 감동
점심을 먹고 나자 자욱하던 안개가 걷히기 시작했다. 갑자기 뒤편으로 묘코산의 그림 같은 자태가 펼쳐졌다. 병풍을 쳐놓은 것처럼 아득하게 펼쳐진 하얀 산이 황홀하다. 정상 아래로 커다란 폭포도 있었는데, 겨울에도 얼지 않고 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마치 한폭의 산수화를 보는 듯한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안개가 다시 뒤덮었다. 일장춘몽처럼 묘코산의 풍경이 사라졌다.

이제 고대하던 다운힐이 시작됐다. 가이드가 잡은 다운힐 코스는 대부분 트리런이다. 트리런은 숲에서 나무와 나무 사이를 요리조리 빠져나가면서 타는 스키를 뜻한다. 나무를 통로삼아 빠져나가는 재미가 상당하다. 자칫 컨트롤 미숙으로 나무와 부딪히는 아찔한 순간을 맞을 수도 있지만 어느 정도의 실력만 갖추면 크게 문제 될 게 없다. 오히려 숲속은 바람이 없고, 설사면도 안정되어 있어 스키를 타기가 용이하다.

초반부는 눈 상태가 아주 좋았다. 파우더라 불러도 좋을 만큼 가벼운 눈이 쌓여 있어 눈의 저항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구름 위를 걷는 듯한 기분으로 스키가 설사면을 미끄러져 내려갔다. 정강이를 치는 눈발의 가벼운 느낌도 느껴졌다. 이 맛, 정설된 슬로프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이 맛이 백컨트리 스키의 매력이다.

중반부를 지나자 눈의 무게가 달라졌다. 산 아래쪽은 영상의 기온을 보이면서 눈이 그새 녹기 시작한 것이다. 한겨울 같으면 며칠이고 같은 눈 상태를 보였겠지만 봄으로 가는 산은 날씨에 따라 설질이 크게 좌우된다. 눈이 무거워질수록 스키를 타기는 힘들어진다. 턴을 하기도 힘겹고 스키에 걸리는 눈의 느낌도 둔탁해진다. 무엇보다 스키가 지나가면서 만드는 눈보라를 기대할 수 없다.

하산 코스는 계곡을 가로질러 아카쿠라 칸코 스키장의 베이스로 잡았다. 버스를 타지 않고 곧장 아카쿠라 칸코 스키장으로 가는 것이다. 계곡을 가로지르는 재미가 특별했다. 가이드가 찾아낸 코스는 사방댐 아래다. 용케도 계곡 위에 ‘눈의 다리’가 만들어져 있어 그곳을 건널 수 있게 했다. 눈의 다리 위를 지날 때는 눈 속으로 흐르는 계곡물소리가 시원하게 들렸다. 산의 저 깊은 곳에서 봄이 오고 있는 것이다. 계곡을 건너서 부드러운 능선을 따라 내려가자 도로와 만났다. 스키를 벗고 도로를 따라 내려가자 슬로프 중턱에 있는 주차장이 나왔다. 여기서 다시 스키를 신고 아카쿠라 칸코 스키장의 베이스로 내려갔다. 그 새 오후가 깊어졌다.

3일째, 준비를 단단히 하고 댄싱 스노우 가이드팀을 기다렸다. 그러나 백컨트리 스키가 취소됐다는 비보가 들려왔다. 오늘은 스기노하라 스키장에서 미타하라(2347m)로 가는 코스를 잡았는데, 강풍으로 스기노하라의 리프트가 운항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오늘을 메인으로 생각하고 준비했는데, 허탈했다. 하는 수 없이 아카쿠라 칸코 스키장에서 마무리 스키를 하기로 했다. 이곳도 곤돌라는 운행을 하지 않고, 일부 리프트도 운행과 중지를 반복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스키장 하단부는 비가 내렸지만 상단부는 여전히 눈이 내린다는 것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스키를 즐기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여행정보
묘코고원은 니가타공항과 도야마공항을 이용한다. 거리는 도야마공항에서 가는 것이 가깝다. 도야마공항에서는 1시간 40분, 니가타공항에서는 2시간 30분이 걸린다. 다만, 인천~니가타공항을 오가는 항공편은 오후 늦게 출발하고, 이른 아침에 돌아오는 스케줄이라 개인의 사정에 따라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또 니가타공항을 이용하면 니가타현에서 모니터투어 명목으로 1만엔(한화 약 10만원)의 지원금을 준다. 묘코고원 스키장 1일 이용료는 4000~4500엔이다. 아카쿠라 칸코와 아카쿠라 온센은 공통권(2500엔 추가)을 이용해 탈 수 있다. 공통권 보다는 하루에 한 곳의 스키장씩 돌아가면서 타는 것을 추천한다.

묘코고원에는 아카쿠라 칸코 호텔을 비롯한 산장풍의 호텔이 많다. 아카쿠라 칸코 호텔은 1인 1일 숙박료가 1만5000엔 이상으로 비싸지만 최고의 대접을 받을 수 있다. 백컨트리 스키는 영어와 일어로 진행이 가능한 댄싱스노우(www.dancingsnow.com)에서 할 수 있다. 1일 투어비는 1만7000엔이며 스키와 배낭 등의 장비 대여료는 별도다.

가이드 없이 개별적으로 백컨트리 스키를 타는 것은 절대금물이다. 일본스키닷컴(www.ilbonski.com, 02-753-0777)은 묘코고원을 비롯한 다양한 일본 백컨트리 스키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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