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스며든 장흥으로 떠나다…천관산 산행
봄이 스며든 장흥으로 떠나다…천관산 산행
  • 이두용 차장 | 사진 양계탁 기자
  • 승인 2015.04.09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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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with MAMMUT | ①Mountain Climbing

서울 광화문에서 정 동쪽으로 선을 그으면 정동진에 닿는다. 북쪽으로 향하면 우리 땅에서 가장 춥다는 중강진으로 향한다. 중강진에서 다시 남쪽으로 광화문을 지나 아래로 선을 그으면 그 일직선상에 정 남쪽의 고장 정남진 장흥이 나타난다. 정남쪽에서 가장 따뜻한 고장이기도 한 장흥은 예로부터 산과 돌, 바다, 강, 호수가 어우러져 천혜의 자연경관을 자랑하던 곳이었다. 호남의 5대 명산인 천관산과 편백나무가 산을 뒤덮은 억불산, 동양3대 보림사 그리고 제암산 철쭉군락지 등 장흥은 일상에 지친 현대인에게 자연에서만 얻을 수 있는 위안과 휴식을 더해준다.

4월, 가장 먼저 봄이 찾아오는 땅 장흥에서 마음까지 따듯한 자연과의 교감을 해보자. 천관산 등산로를 따라 기암괴석 가득한 수석 전시장을 지나면 연대봉 정상에서 다도해 남해의 절경을 맛볼 수 있다. 편백나무 울창한 숲 사이로 오롯하게 조성된 데크를 따라 억불산 정상까지 오르는 길도 장흥에서만 누릴 수 있는 재미다. 남도 자연의 보고이자 아름다운 산과 바다가 만나는 곳, 올봄은 장흥에서 추억을 만들어 보자.

시곗바늘은 좁은 공간에서 원을 그리며 돈다. 마디마디 초와 분으로 채워가며 시간은 계절을 바꾸고 만물을 변화시킨다. 사람은 습관처럼 달력을 뗀다. 열두 장 온전한 달력이 한 장씩 떨어져 나가면 시나브로 봄이 찾아오고 다시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이 계절을 끌어안으며 우리에게 온다. 3월 달력을 넘기니 곧 날씨가 따뜻해졌다. 올해도 봄이 찾아왔다.

▲ 천관산은 높지 않은 산에 기암괴석과 계절마다 다양한 볼거리로 산행의 재미를 준다.

그리움은 벌레다. 스멀스멀 기어와 이내 한 방 물고가면 가만히 있던 사람은 한참이나 열병을 치른다. 겨우내 추위와 다투던 사람에게 봄은 그리움이 된다. 3월에 들면 봄을 향한 그리움은 최고조에 이른다. 한반도 발끝부터 물들기 시작하는 봄. 발목을 타고 오르는 속도가 여간 더디지 않다. 벚꽃이 피면 순식간에 연분홍 릴레이가 시작될 텐데. 성질 급한 사람은 봄이 왔다는 소식에 버선발로 남쪽까지 뛰어 내려가기도 한다.

나뭇가지에 물이 오른다는 소식도 잠깐, TV에서 연일 봄 소식을 쏟아냈다. TV가 워낙 좋아진 것도 문제였다. 생생하다. 화면 속에서 손을 흔드는 꽃가지가 방안에 꽃잎이라도 떨구는 건 아닌가 싶었다. 보는 내내 TV에서 봄꽃향기가 나는 듯했다. 올해는 잘 참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봄 향한 그리움이 ‘툭’하고 터져버렸다.

▲ 천관산 들머리로 향하는 길, 일행을 기다리기나 한 듯 사방에 동백꽃이 지천으로 피어 있었다.

남쪽으로 떠날 채비를 했다. 지난달에도 봄을 찾아 영암까지 내려갔는데 일행을 맞이한 건 하얀 눈이 곱게 올라앉은 설산이었다. 아쉬움은 자연스레 다음의 기약이 되었고 헛걸음은 영락없이 조바심이 되었다. ‘이번 달은 실패하지 않으리.’ 굳은 다짐이 지난달보다 더 남쪽으로 눈을 돌리게 했다. 이번 달은 ‘장흥’. 영암과 접해있지만, 그보다 더 아래에 위치한 곳이다. 이미 봄 소식이 방송에서 여러 번 나온 곳이라 의심하지도 않았다. 사실 며칠 전 천관산 일대에 동백꽃이 만개했다는 소식을 뉴스에서 본 터였다.

서울에서 5시간. 위도상으로 부산보다 아래에 있으니 멀어도 참말 멀었다. 하지만 차에 오르고 시간이 지날수록 창밖으로 부는 바람이 따뜻해졌다. 이상하리만큼 서울과 온도가 달랐다. 장흥에 들어서면서는 더욱 그랬다. 봄이 이곳에 스며들어와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남쪽이라 그런지 정말 공기가 다르네요. 서울에서 출발할 때는 확실히 쌀쌀했는데 어느 순간 자연스레 외투도 벗게 되는 것 같아요.” 산행에 처음 따라나선 여기자가 한 마디 꺼낸다. 일행은 자연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동백꽃 만개한 천관산 들머리
기대 이상이었다. 장흥군청이 있는 번화가에서 자동차로 30여 분. 천관산 들머리인 국립천관산자연휴양림 주차장으로 오르는 길. 일행을 기다리기나 한 듯 사방에 동백꽃이 지천으로 피어 있었다.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잎사귀들은 마치 바닷물 위로 보석처럼 쏟아지는 윤슬을 닮았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차를 세우고 밖으로 나왔다. 차에서 내려보니 더욱 장관이었다.

▲ 동백나무 가지마다 새빨간 꽃이 한복에 곱게 수놓아진 꽃무늬처럼 아름다웠다.

“우리나라에 이런 곳이 있었네. 동백꽃이 진짜 말 그대로 지천이네, 지천이야.” 눈이 휘둥그레졌다. 동백나무가 어찌나 많은지 ‘혹시 동백나무가 산 전체를 덮는 건 아닐까’ 하는 상상마저 들게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이 바로 뉴스에서 동백꽃이 만개했다던 천관산 동백생태숲이었다. 천관산자연휴양림으로 향하는 길목에 자리한 곳으로 그 규모가 약 20만㎡(6만500평)나 된다. 국내 최대 규모의 동백나무 군락지로 동백나무 외에는 다른 나무가 거의 섞이지 않은 곳이기도 하다.

잘 닦여진 도로 양옆으로 수령 20년에서 60년 정도의 동백나무 2만여 그루가 빽빽하게 서 있다. 어찌나 이색적인지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면 원시림 꼭대기에 올라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차도 옆 울타리 아래로 계곡을 따라 내려가 봤다. 동백나무가 촘촘히 맞대고 서 있어서 하늘이 잘 보이지 않았다. 신기하다. 동백나무 가지마다 새빨간 꽃이 한복에 곱게 수놓아진 꽃무늬처럼 아름다웠다. 5시간 넘게 달려온 수고가 한순간에 미소로 바뀌었다. 봄을 향한 그리움이 설렘 가득한 만남으로 바뀐 건 당연하다.

▲ 천관산 들머리는 양옆으로 나무가 늘어서 볼거리도 걷는 재미도 없다.

햇살이 뜨거운 날엔 동백생태숲으로 들어와 해먹이라도 쳐놓고 누워 있으면 신선놀음이 따로 없을 것 같다. 숲 위아래로 연결된 탐방로를 따르다가 숲이 내어준 그늘에 앉아 쉬면 말 그대로 자연이 주는 힐링. 아무리 좋은 보약도 이곳에서의 산책보다 몸에 좋을까 싶을 정도다.

“여기는 더 알려지면 좋을 것 같네요. 이렇게 아름다운데 동백이 한창인 철에 사람이 없으니 아쉬워요. 가족이라도 데리고 와야겠어요.” 여기자가 동백나무 숲을 내려다보며 아쉬워했다.

호남의 자랑, 장흥의 모산으로
동백꽃 향연에 생태숲에서 발목이라도 잡히면 어쩌나 했는데 용케 빠져나왔다. 천관산 허리춤을 동백꽃으로 예쁘게 수놓은 봄을 만났지만 사실 오늘의 메인은 천관산(723m) 정상. 지리산, 월출산, 내장산, 내변산과 함께 호남의 5대 명산으로 손꼽히는 곳을 오르지 않고 갈 수가 있을까. 천관산은 1998년 10월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곳으로, 호남에서 산이 많기로 소문난 장흥에서도 최고로 불린다.

▲ 암릉이 나타나면 하늘이 열리면서 사방이 조망된다. 이곳에서 잠시 쉬었다.

▲ 좌우측으로 신이 빚어놓은 듯한 절묘한 모양의 바위가 산 여기저기에 놓여 있다.

723m로 높지는 않지만 온 산이 바위로 이루어져 있어 숲이 우거진 곳 외에는 형형색색 기암괴석으로 가득하다. 실제로 아기바위, 사자바위, 종봉, 천주봉, 관음봉, 선재봉, 대세봉, 석선봉, 돛대봉, 구룡봉, 갈대봉, 독성암, 아육탑 등 수십 개의 바위와 기봉이 능선과 등산로 곳곳에 솟아 있어 볼거리는 물론 산행의 재미를 더해준다. 천관산이란 이름 역시 다양한 모양으로 솟아 있는 기암괴석이 마치 주옥으로 장식된 천자의 면류관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들머리인 천관산자연휴양림에 도착했다. 가족이 와서 쉴 수 있는 휴양지로 더 없이 좋아 보인다. 다만 주 등산로가 아닌지 안내도 하나를 빼면 등산을 위한 시설물이 없었다. 동백나무숲의 여운이 커서인지, 기대했던 천관산 들머리로는 다소 심심하다. 오늘은 동백꽃을 보기위해 이곳 코스로 천관산을 찾았지만 사실 많은 사람이 찾는 코스는 따로 있다. 일반적으로는 장천재에서 오르는 코스를 따른다.

▲ 진죽봉 즈음에 닿으면 암릉구간이 시작되면서 산행의 재미가 붙는다.

장천재에서 금강굴~구정봉~억새 능선을 지나 정상인 연대봉에 올라 정원석을 지나 다시 장천재로 하산하는 원점 회귀 코스다. 오늘은 동백생태숲을 거쳐 천관산자연휴양림에 올라 진죽봉~환희대를 지나 정상 연대봉에서 다시 원점회귀하는 코스로 선택했다.

장천재 코스는 들머리에서부터 하늘이 열려 능선을 따라 오르며 사방에 펼쳐지는 풍광을 즐길 수 있다. 이에 반해 오늘 코스는 초입엔 양옆으로 나무가 늘어서 볼거리가 없고 경사도 가팔라 동백꽃이 아니면 봄철엔 찾는 이가 적다.

“처음부터 생각보다 힘든데요. 계속 이렇지는 않겠죠?” 여기자가 벌써 거친 호흡을 뱉으며 걱정을 한다. “계속 그렇지는 않을 거야.”

▲ 멀리서는 작아 보이는 바위도 가까이에 가서 보면 때로 올라서기도 버겁다.

천관산의 진짜는 기암괴석부터

이정표도 거의 없고 재미없는 오르막만 계속됐다. 이따금 멈춰서 쉬어도 어디쯤인지 알 수가 없었다. 지도도 세 종류나 챙겨왔는데 정보도 서로 달랐다. 이럴 땐 지자체에 아쉬움이 생긴다. 이리도 좋은 자연을 자랑하고 활용하는 방법이 충분히 있을 텐데.

진죽봉에 이르면 흙길이 끝나면서 하늘이 보이기 시작한다. 여기서부터는 암릉과 흙길을 번갈아 오르니 걷는 재미가 붙는다. 가렸던 시야가 트이면서 조망도 좋다. 몇 걸음 걷기도 전에 좌우측으로 신이 빚어놓은 듯한 절묘한 모양의 바위가 산 여기저기에 놓여 있었다. “이야~! 저런 바위가 저절로 생겨날 수가 있을까요? 올라올 때 밋밋했던 풍광이 큰 반전을 주네요.” , “오! 저기 봐요. 위에 있는 암릉 구간은 주상절리예요.” 고개를 돌릴 때마다 일행은 감탄사를 쏟아냈다.

▲ 환희대를 코앞에 두고 마지막 오르막을 오르며 여기자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사방에 시선을 뺏기며 걷다 보니 환희대에 닿았다. 환희대(歡喜臺)는 한자 그대로 기쁨이 가득한 무대다. 정상인 연대봉과 거의 같은 높이인 이곳은 천관산의 기암괴석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가장 좋은 망루다. 환희대에서 뻗어 내려간 능선 곳곳에 자연이 정교하게 조각한 작품들이 올라앉아 있어 거대한 수석 전시장을 방불케 한다. 환희대에 올라 지어진 미소가 입가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환희대 옆에는 이런 글귀가 쓰여 있다. ‘책 바위가 네모나게 깎아져 서로 겹쳐 있어서 만권의 책이 쌓인 것 같다는 대장봉 정상에 있는 평평한 석대니 이 산에 오르는 자는 누구나 이곳에서 성취감과 큰 기쁨을 맛보게 되리라!’

의미야 다르겠지만 환희대에 오르는 사람마다 하나 같이 기쁜 건 사실이리라. 일행은 천관산에 머무는 봄과의 만남이 기쁨이 됐다. 날씨는 참말 따듯했다. 재킷을 벗어 배낭에 넣고 걸어도 바람은 시원했고 발걸음은 가벼웠다.

▲ 평평한 암릉 구간에서 건너편으로 뛰어서 건넜다. 보기보다는 안전한 구간이다.

다도해 병풍 삼은 연대봉
환희대에 오르면 오르막은 끝났다. 여기서부터는 구름에 오른 듯 정상까지 약 1km 정도를 걷는다. 올라오면서 수고는 눈앞에 펼쳐지는 억새밭과 그 뒤로 끝없이 이어진 남해에 시선을 뺏기는 순간 잊게 된다. 아름답다는 말로 표현하기에는 부족한, 여느 산에서는 보지 못했던 낯선 풍광이 산꾼들을 장흥 천관산으로 불러들이는 이유가 된다.

억새가 제철이 아닌 지금에도 늦가을 이곳에서 벌어질 축제를 가늠하게 한다. 이 일대에 펼쳐진 40여만 평 억새밭이 가을이면 온통 억새 평원을 이룬다.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가 가을 햇살을 머금고 금빛 물결이 되어 산 아래 남해의 푸른 물결과 대조를 이루며 환상적인 풍광을 자아낸다고 하니 기대된다.

▲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 뒤로 거금도와 금당도, 금일도 등이 눈에 들어온다. 산에서 볼 수 있는 풍광이 아니다.

▲ 환희대에서 연대봉까지는 억새가 주인이다. 가을엔 이곳에 억새축제가 벌어진다.

바람에 나부끼는 억새군락을 바라보는데 목구멍으로 침이 꿀꺽 넘어간다. 가을도 아니고 봄에. 어느 산에서 산의 오롯함을 만끽하며 바다까지 조망할 수 있을까. 남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연대봉까지 줄달음했다.

▲ 경사진 앞벽에 매달려 보았다. 손끝에 힘이 들어간다. 신난다.
연대봉은 바다를 꿈꾸게 하는 망루였다. 산을 올라왔는지 하늘을 날아왔는지도 모르게 일행은 남해를 호령하는 정상에 올라 있었다. 왼편으로는 소록도와 거금도, 금당도가 내려다보이고 그 뒤로 시산도가 조망된다. 정면으로는 제주 성산포로 떠나는 배가 정박하는 노력항이 있는 노력도가 코앞이고 그 뒤로 금일도, 약산도, 생일도, 고금도, 신지도, 청산도 등이 좌우로 이어져 있다.

우측 편으론 완도가 보인다. 그저 산에 올랐을 뿐인데 형형색색 기암괴석을 만나고 남해의 절경을 대하니 자연 앞에 마음이 숙연해진다. 우리나라 땅을 작다고 여겼던 내 자신이 부끄럽다. 남쪽 끄트머리에만 올라도 이리 웅장하고 아름다운 것을.

한참을 멍하니 서 있다가 뒷걸음치며 천천히 하산 길에 올랐다. 천관산자연휴양림에서 올라와 장천재로 내려가기도 하는데 오늘은 원점회귀라 올라온 길을 따라 내려가기로 했다. 하산하는 발걸음이 아쉽다.

늘 그렇지만 이번 달 천관산은 또 달랐다. 4월이면 천관산 정상 연대봉에서 장천재로 내려가는 길목에 진달래가 수를 놓는다고 한다. 조금 더 있다가 다시 와도 좋겠다. 이곳 말고도 연대봉 북쪽 사면과 천관사에서 천주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에도 진달래는 만발한다. 아직 꽃망울만 가득한데 분홍 물결 일렁이는 능선이 눈에 선하다. 환희대를 지나는데 좀 전과는 다른 기쁨이 가슴에 스며들었다.

천관산 안내
천관산을 오르는 코스는 많다. 산세가 험하지 않고 능선이 부드러워 정상에서 아래로 뻗어 나간 능선마다 등산로가 생겨난 이유이리라. 장흥군에서 내놓은 등산코스는 총 10개나 되는데 이중 세 개 코스가 가장 인기다.

장천재에서 체육공원~금강굴~환희대~연대봉을 오르는 3.6km, 1시간 40분 코스가 가장 인기가 높고, 장천재에서 양근암을 지나 금강굴이나 금수굴을 거쳐 연대봉까지 이어지는 2.5km, 1시간 30분 코스, 천관산자연휴양림에서 진죽봉~환희대~연대봉까지 걷는 오늘 산행한 2.5km, 1시간 30분 코스다. 세 코스 모두 편도로 소개했다. 워낙 구간이 다양하니 하산은 자신의 기호에 맞춰 다른 조합으로 도전해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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