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킹을 바라보는 두 가지 다른 시선
트레킹을 바라보는 두 가지 다른 시선
  • 임효진 기자 | 사진 양계탁 기자
  • 승인 2015.04.08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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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트레킹학교 윤치술 교장&진우석 작가

‘트레킹 이거 참 좋은데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하지?’
광고 속에 트레킹이란 말이 넘쳐난다. 이제 트레킹은 등산·트레킹을 즐기는 사람들 사이에 ‘등산인 듯 등산 아닌’ 개념으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누구도 이렇다 할 정의를 내리기는 쉽지 않다. 아직 개념이 명확하지 않은 트레킹.
본지에서는 국내 트레킹 전문가를 대표하는 두 사람을 만나 정의를 내려 보기로 했다. 트레킹에 대한 개념만큼이나 두 인터뷰이의 생각 차이도 넓었다. 어느 이야기에 더 공감이 가는지는 독자의 몫으로 남겨뒀다. 한국트레킹학교 윤치술 교장과 길 탐미주의자, 걷기 달인 진우석 여행작가를 서울 서대문구 안산 메타세콰이아 숲에서 만났다.

트레킹이라는 용어가 익숙하지만 한마디로 정의하기 쉽지 않습니다. 두 분이 생각하는 트레킹은 각각 어떤 의미인가요.
진우석 작가(이하 진) 트레킹은 등산보다 대중적이며 범위가 넓습니다. 등산이 산의 정상을 찍고 내려오는 행위라면 트레킹은 꼭 등정을 목표로 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꼭 산에서만 이루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산이라는 공간에 얽매일 필요가 없죠. 트레킹의 영역은 무한합니다. 누구나 트레킹 전문가가 될 수 있고요. 꽃길, 물길, 단풍길, 눈길, 강길, 섬길, 예술이 창작된 길, 유적 답사 등 목적이나 테마가 있다면 트레킹입니다. oo길이라는 이름의 길을 하루 일정으로 걷는 것부터 산에서 텐트치고 비박을 하는 것, 며칠씩 걷는 종주도 모두 트레킹이고요. 그래서 저는 트레킹을 상상력의 공장이라고 합니다.

윤치술 교장(이하 윤) 어원에서 찾아야 할 거 같아요. 트레킹의 트렉(trek)은 남아프리카 원주민이 우차를 몰고 하루에 가는 거리의 단위를 나타내는 말이에요. 사람들이 트레킹을 워킹과 혼동하는 경우가 있지만, 어원에서 알 수 있듯이 트레킹은 힘들게 걷는다는 뜻이 내포돼 있어요. 이해하기 쉽게 산의 고도에 따라 설명하자면 산 아래 평지에서 걷는 게 워킹이고요, 그보다 조금 산으로 올라가는 게 하이킹이에요. 그 다음 단계가 트레킹, 클라이밍, 아이스클라이밍·락클라이밍, 마지막이 고산 등반입니다. 장비나 기술은 등산과 트레킹이 같아요. 차이점은 산을 대하는 자세입니다. 산을 정복의 대상으로 보느냐, 친근한 대상으로 보느냐의 차이겠지요.

트레킹에 대해 윤 선생님은 산을 기반으로 하는 행위라는 관점을, 진 작가님은 여행과 비슷한 개념으로 보시는군요. 걷는 행위만 놓고 봤을 때 산책하는 워킹과 트레킹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목적이 다른 거 같아요. 산책은 건강을 위해서 걷는 게 목적이라면, 트레킹의 목적은 모험이에요. 안 가본 길을 가보는 것, 그 과정에서 즐거움을 찾는 게 트레킹이죠. 닦여진 길, 둘레길이나 올레길 같은 트레일만 가면 심심해요. 모험을 통해 자신의 취향이 투여된 길을 찾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모험심이 높아지는 게 트레킹입니다. ‘목적의식성 걷기 여행’이라고 정의하고 싶습니다.

제 생각에 트레킹은 모험이 아니라 탐구예요. 새로운 세계를 알아가는 탐구요. 이렇게 이해하면 쉬울 거 같아요. 평지를 걷는 워킹이나 피트니스 센터의 러닝머신 위에서 달리는 반복적인 동작은 정신세계가 없어요. 걷거나 뛴다는 동작을 반복하는 지루한 활동이죠. 그러니까 앞에 모니터가 달려있는 거고요. 썬캡을 쓰고,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 한강변을 정신없이 걷는 것도 단순 동작의 반복이니 뇌가 움직일 일이 없죠. 하지만 트레킹에는 똑같은 동작이 없습니다. 길에는 울통불퉁한 요철이 있고 매번 시야가 바뀌죠. 이때 뇌가 움직이고, 사고의 폭이 넓어지는 겁니다.

새소리, 물소리에 귀 기울이고, 계절에 따라 나무와 풍경이 변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기쁨을 얻는 게 트레킹의 매력일 텐데요. 누구나 처음부터 이 트레킹의 매력을 느끼기는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자연과 교감하는 방법에 대한 팁을 주실 수 있나요.
저는 감수성이 예민한 편이에요. 예전에 등산 잡지의 기사는 감정이 배제된 글이 많았어요. 하지만 저는 그때부터도 제가 산을 보면서 느낀 감정의 변화를 기사로 썼어요. 자연과 교감하는 방법에 대한 팁을 주자면요.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과 함께 가서 배우거나, 무작정 가보는 것도 좋은 방법인 거 같아요.

젊은 사람들은 산에 가는 걸 좋아하지 않는데, 중장년층은 산에 가지 말라고 해도 갑니다. 이유가 뭘까요? 산에서 느끼는 감동을 세대가 아는 거죠. 젊은 세대가 산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산이 힘들다고 생각해서 그래요. 제가 대학에서 교양 수업을 하는데 저한테 강의 듣는 학생들도 처음에는 등산을 싫어했습니다. 이유를 물어보니 부모님이 등산 갔다 오면 앓아누웠다는 겁니다. 하지만 교육을 받고 나서 그 학생들도 등산을 좋아하게 됐고, 부모님을 모시고 와서 강의를 듣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등산은 자극적인 자아성취 방법이고, 트레킹은 원초적인 행복입니다. 여기에 교육이 꼭 선행돼야 합니다. 수영과 헤엄의 차이로 이해하면 편해요. 교육받지 않은 헤엄은 하면 할수록 위험하고, 체력소모도 많지만, 교육이 바탕이 된 수영은 하면 할수록 체력은 더 좋아지고 위험에도 대응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등산도 교육이 필요한 겁니다.

자연과 교감하는 방법 외에 트레킹의 즐거움은 어떤 게 있을까요.
제가 여행작가학교에서 강의 시간에 수강생들에게 가장 먼저 묻는 질문이 있는데요. “당신이 좋아하는 여행이 뭔가”예요. 여행처럼 트레킹에도 여러 종류가 있어요. 그 중에 자신이 어떤 방식의 트레킹을 좋아하는지 먼저 찾으세요. 그 다음에는 걷기가 갖고 있는 매력에 대해 느껴보는 거죠. 걷기라는 원초적인 행위를 통해 건강해질 수 있고, 더 나아가서 나는 뭘 좋아하는지, 어떻게 살건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답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면서 내면이 깊어지는 시간을 가질 수 있습니다.

제가 하는 등산 교육 중에 칸타빌레 트레킹이 있어요. 음악을 들으면서 여유롭게 트레킹을 즐기는 거죠. 사람들은 성취에서 행복을 찾는다고 생각하지만 행복은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거예요. 행복을 뜻하는 ‘happiness’의 어원이 발생하다, 일어나다 라는 뜻의 ‘happen’인 데서도 알 수 있죠. 정복하고 성취하기 위해 가지 말고 즐기라고 말하고 싶어요. 더 빨리가고 싶다고요? 음악을 들으면서 천천히 가는 팀이 더 즐거웠고, 오히려 더 빨리 도착했습니다.

두 분도 처음에는 수직으로 산을 오르며 정상을 향해 가는 등산가에 더 가까우셨는데요. 언제 자연을 보고 즐기는 저산 중심의 트레킹을 즐기게 되셨어요?
산악 잡지 기자로 있다 보니 히말라야와 같은 고산에 대해 자주 접했어요. 2003년 호기심에 처음 히말라야에 갔습니다. 그런데 가서 보니까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매우 좋았어요. 마치 새로운 세상이 열린 기분이었죠. 그래도 오르기 위해 왔으니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며 오르기 시작했죠. 하지만 어느 순간 올라가는 것보다 산 구석구석을 둘러보는 게 더 재미있더라고요. 무엇보다 정상까지 갈 체력의 소유자가 아니라는 것도 깨달았고요. 5500m 칼라파타르 베이스캠프까지 갔다 내려왔어요. 그때부터 트레킹에 재미를 붙여 파키스탄에도 가게 됐죠.

저도 호기심에 고산 등반을 하러 갔어요. 설산을 보면서 걷는 건 좋았지만 3000m를 넘어가자 고소증이 왔어요. 고도가 높은 곳으로 가자 빙하도 나타났고요. 지형이 바뀌자 극한환경이었어요. 저 같은 일반인이 가는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죠.

실제로 그 이상 고도의 정상을 향해 가는 사람들은 제가 볼 때는 일반인과는 엔진, 그러니까 심장이 다른 사람이었어요. 담력이나 체력이 남달라야 하고요. 우리나라 언론에서도 마치 14좌를 달성하는 산악인의 모습을 통해 등산이란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이라는 이미지를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제가 생각할 때 그건 일부 아주 특별한 사람의 등반이지, 모든 사람에게 적용할 수 있는 등반은 아니라고 봅니다.

진 작가님은 파키스탄을 다녀오셔서 파키스탄 ‘카라코람 하이웨이 걷기 여행’이란 책도 쓰셨죠? 파키스탄이 유럽인들의 휴양지 역할을 하기도 했는데, 국내는 위험하다는 인식이 많습니다. 어떤 곳인지 소개해 주세요.
제가 3개월 동안 여행한 곳은 북쪽의 트레킹 코스인데요. 다양하고 순수한, 때 묻지 않은 아름다운 소수민족을 만나볼 수 있는 특별한 여행이었어요.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전통문화를 지키면서 살고 있었죠.

카라코람은 실크로드의 역사가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곳이에요. 동서무역의 교역로 역할을 했던 실크로드 위를 요즘은 배낭여행자들이 걷고 있다는 게 다르죠. 이 길을 통해서 실제로 유럽으로 넘어가는 배낭여행자가 많습니다. 배낭여행 문화가 잘 갖춰져 있는 것도 배낭여행자를 불러 모으는 데 한 몫 하는 거 같아요. 짐을 날라주는 포터에 대한 임금 체계는 네팔보다 훨씬 선진적입니다.

누구나 갈 수 있는 곳인가요?
그럼요, 여자 분이 제 블로그에 문의한 후 혼자 다녀온 경우도 있고요. 배낭여행 경험이 있다면 누구나 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주로 네팔 히말라야 트레킹을 다녀온 분 중 다음 여행지로 파키스탄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아요. 제가 갈 당시에는 정보가 없어서 론니플래닛을 참고했고요. 파키스탄을 다녀온 김창호 대장님께 정보를 얻어서 다녀왔습니다. 어디나 위험 요소는 있습니다. 하지만 저처럼 평범한 사람도 할 수 있는 거니까 두려워하지 말고 원한다면 떠나라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꽃이 만발하는 봄이 왔습니다. 봄이면 두 분이 자주 가는 트레킹 장소는 어딘가요?
봄에는 꽃이죠. 저는 특히 철쭉이 피었을 때 산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바래봉이나 황매산, 축령산 모두 아름다운 철쭉을 볼 수 있는 곳이죠. 저는 이번 봄에는 알프스와 히말라야 쿰부로 해외 트레킹을 다녀올 예정이에요. 세계 트레킹을 다니면서 예전부터 했던 걸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려고요.
능선을 보면서 걷는 산행을 추천해요. 태백산, 소백산, 덕유산, 지리산 모두 좋아요. 내가 걸어갈 길을 볼 수 있고, 걸어온 길도 뒤돌아서 볼 수 있습니다.

등산과 트레킹의 미래는 어떻게 변화할까요?
등산이라는 개념에서 점점 트레킹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봐요. 그래서 지금 트레킹과 등산의 경계가 모호할 수 있어요. 정해진 길을 걷는 트레일도 이제 한계가 있습니다. 새로운 길을 찾아 떠나는 트레킹 인구가 점차 늘어날 겁니다.

자연으로 회귀하고자 하는 인간 본성으로 등산 인구는 늘어날 거라고 봐요. 하지만 무작정 산에 가는 게 좋은 건 아니에요. 등산 인구가 늘어나면서 정형외과를 찾는 인구도 늘었어요. 교육이 없으면 건강한 사람만 산에 갈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지속가능한 활동이 될 수 없죠. 지속가능한 상태를 만들어가려면 교육이 필요하다고 재차 강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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