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길 찾아 튀어!…북한산 둘레길
흙길 찾아 튀어!…북한산 둘레길
  • 류정민 기자 | 사진 김해진 기자
  • 승인 2015.04.06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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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R OUTBOUND ①트레일러닝&캠핑

달리기와 마라톤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이미 ‘트레일러닝’에 대해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자연 속을 달리는 ‘트레일러닝’은 도로에서 달리는 마라톤보다 인기가 높아지고 있고, 대중적인 스포츠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처음부터 무모하게 산을 달리는 것보다 서울 둘레길이나 북한산 둘레길을 달리며 가볍게 시작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누구나 도전하고 즐길 수 있는 ‘트레일러닝’ 그리고 멀리 가지 않아도 괜찮은, 북한산 주변에서 하룻밤 머물기.

도심 속 캠핑이야기
새 지저귀는 소리와 흥덕사에서 울리는 종소리를 들으며 북한산 부근에 있는 ‘두봉이네 캠핑장’에 우리의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트레일러닝과 캠핑을 함께 즐길 오늘의 게스트는 지난호에도 등장했던 기자의 친동생과, 대학생 시절 인턴으로 일하며 만나게 된 예비 아나운서 김학준 씨다. 나긋나긋한 목소리와 훈훈한 외모로 이번 취재에서 사진기자의 사랑을 듬뿍 받았더랬지. (참고로 사진기자도 남자다) 동생 지원이는 두 번째 캠핑이라곤 생각되지 않을 만큼 여유가 넘쳤다. 텐트도 혼자서 곧잘 치고 학준 씨에게 써머레스트 신제품인 ‘트레오 체어’ 펴고 접는 법도 알려주며 캠핑을 있는 그대로 즐기기 시작했다.

오늘의 우리집은 MSR의 허바허바와 엘릭서3다. ‘엘릭서3’는 3인용이니만큼 공간활용이 무척 좋다. 지난번 거제도 캠핑 때는 허바허바에서 여자 셋이 누워 몸의 반은 에어매트 위에, 반은 공중에서 둥둥 떠다니며 잠이 들었다. 이번엔 매트도 두둑하게 깔고 널찍하게 침낭을 폈는데도 이쪽저쪽이 휑하게 남아있어 그 빈 공간이 익숙하지 않았다.

▲ 아직은 꽃 한 송이도 피지 않고 나뭇가지들과 낙엽만 가득했던 ‘두봉이네 캠핑장’

사이트를 구축해놓고 중앙엔 타프를 하나 쳤다. 날이 좋아질수록 볕이 쨍하고 내리 쬐니 타프도 필수품 중의 하나다. 캠핑장 주인아저씨가 밥은 먹었냐고 건네준 냄비를 열어보니 찐 고구마가 잔뜩 들어있어 고구마엔 우유지! 하고 우유를 사러 나갔으니 주변에 슈퍼가 없어 쓸쓸히 다시 돌아왔다는 후문.

대신 ‘커피러버’ 사진기자가 내려주는 드립커피와 함께 맛있게 먹었다. 슬슬 어둑어둑해지고, 에피타이저를 해치웠으니 이제는 저녁 먹을 준비. 저번 캠핑 때도 느꼈지만 요리를 좋아하고 잘하는 동생이 있어 다행이다. 옆에서 어찌나 큰 힘이 되던지. 아 물론, 캠핑장에서 딱히 그런 요리 솜씨들을 뽐내진 않았다. 하하

다음날 아침, 눈을 떠서 기지개를 피며 나와 보니 학준 씨가 먼저 일어나 타프 아래서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고 있다. 얼마 만에 느껴보는 시간인지 모르겠다며 여유를 만끽하는 그의 모습이 참 좋아 보였다. 하고 싶은 일을 향해 숨고를 여유도 없이 바쁘게 지내다가도 이렇게 한 번쯤 심호흡을 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 달리기 전, 체조 먼저. 바로 달렸다가는 다음날 살아있는 송장이 되기 십상이다.

흙길을 달리다, 트레일러닝

지난여름, 아웃도어브랜드 ‘살로몬’에서 하는 대회를 통해 처음으로 ‘트레일러닝’을 해봤다. 주로 한강변과 공원 주위만 달렸던 기자에게 ‘트레일러닝’은 신세계였다. 나무, 풀, 꽃 사이사이를 신나게 뛰어다니는 그 쾌감이란. 한 발 내딛을 때마다 자연과 가까워지는 시간이었고, 마치 시골길을 달리는 강아지가 된 기분이었다.

물론 오르막길이 계속 되면 등산하는 사람들과 함께 천천히 오르기도 했다. 쉬지 않고 논스톱으로 달리는 것도 좋지만 트레일러닝 대회는 첫 출전이었고 등산과 달리기를 함께 해보자는 마음으로 욕심내지 않았다. 그리고 일 년 정도 지난 지금. 그때와는 다른 코스로 북한산 둘레길을 다시 달렸다.

▲ 흙을 밟고 산길을 달리는 ‘트레일러닝’

총 21구간으로 구성되어 있는 북한산 둘레길 중 우리가 달릴 곳은 5구간 ‘명성길’이다. ‘명성길’은 정릉 주차장부터 형제봉 입구까지 2.4km코스로 되어 있다. 2.4km라고 ‘에이 얼마 안되네’ 라고 우습게 생각하면 큰코 다친다. 산길과 그냥 일반 도로는 천지차이기 때문. 초코바와 물 등 활동식을 담은 가벼운 배낭을 메고 입구에 들어섰다. 풍경소리가 은은하게 울려퍼진다. 달리기 전, 가볍게 체조를 마치고 휴대폰과 연동되는 달리기 앱을 켰다. 달리고 난 후 거리와 속도를 측정할 수 있어 편리하다.

처음엔 나무계단, 돌계단으로 된 오르막길만 있어서 숨이 헉헉 찼다. 그 순간 ‘명성길’의 조망 포인트가 보인다. 멋진 사진 찍으라고 만들어놓은 곳이니 사진도 좀 찍고, 숨도 돌리고 조망도 즐기며 잠시 쉬다가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 전망대에서 땀도 식히고 한 숨 돌리는 중. 각 둘레길 구간별로 역사, 문화적 의미가 있거나 경관이 좋은 장소를 선정해서 사진 촬영하기 좋게 만들었다.

‘오랜만에 달리기를 하려니 여간 힘든 게 아니네’ 생각하며 학준 씨에게 평소에 달리기 좀 하느냐 물었더니 추운 날씨만 빼고 거의 매일 뚝섬유원지를 달린다고 한다. “아무래도 아나운서하려면 계속 살 빼고 관리해야하니까 몸이 좀 무거워졌다 싶으면 나가서 달려요. 전반적으로 지구력이 좀 약해서 오래 달리진 못하고 5km 정도가 딱 좋아요. 달리면서 라디오 듣는 걸 좋아하는데, 음악도 음악이지만 어떤 멘트가 나오나 들으면서 달리는 것도 꽤 재밌어서.” 유년시절엔 육상부를 했단다.

▲ 난이도 ‘상’인 만큼 오르막 코스가 꽤 된다. 오르막과 내리막은 천천히 달리자.
어라, 내 동생도 육상부였는데! 가만히 있던 동생이 한 마디 보탠다. “저는 중학교 때 첫눈에 반했던 오빠가 육상부라고 해서 친구랑 같이 들어갔는데 육상부 코치님이 달리기 잘한다고 장거리 선수로 내보냈어요. 학교에서도 1등하고 대회 나가서도 은메달인가? 동메달 따기도 했는데” 달리기가 좋아서 했냐니까 그건 아니란다. 자기를 선택해 준 선생님 기대에 부응하려고 햇빛이 쨍쨍한 날 더운데도 토할 때까지 뛰었다고. 이렇게 트레일러닝 해보니 어떠냐고 묻자, 옛날 그 힘든 걸 다 잊을 만큼 즐겁게 달렸단다. 흙을 밟고 달리니까 더 신난다고.

트레일러닝이 처음이라는 학준 씨에게도 물었다. “산길을 전부 뛰기에는 좀 무리인 것 같아요. 가끔 집 앞에 있는 아차산을 달리곤 하는데 거긴 되게 낮고 쉬운 코스라 금방 뛰거든요. 근데 북한산 둘레길은 높이도 좀 있어서 힘들긴 한데 더 좋은데요?”

달리면서도 학준 씨와 동생 지원이는 “꽃이 활짝 폈으면 더 좋았을텐데” 하며 아쉬워했다. 그도 그런 게 갑자기 비가 쏟아져서 나무 밑에서 비를 피해가며 달렸기 때문. 쨍한 날 다시 오자고 약속했다. 날이 흐려서 슬펐던 오후의 달리기 시간. 북한산 둘레길 21구간 중 코스별로 난이도가 있는데 우리가 달린 5구간 ‘명상길’은 난이도 ‘상’에 속한다. (총 3개의 ‘상’ 코스 중 하나다) 아마 다음에 나머지 구간들을 가면 식은 죽 먹기일 듯.

▲ 곳곳에 붙어 있는 ‘북한산 둘레길’ 이정표를 잘 보며 찾아가자. 한눈파는 사이 ‘국립공원’ 이정표가 눈에 들어온다면 그대도 둘레길이 아닌 북한산을 헤매고 있다는 증거.

▲ 둘레길 거리표. 나침반같이 생긴 동그라미 안에 ‘북한산 둘레길’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사실 5구간을 달려보고 욕심내서 7구간 ‘옛성길’도 달려볼 계획이었다. 그러나 5구간을 달리고 나니 해는 저물어가고 우리가 달린 거리는 4.2km. 거의 두 배의 거리를 달렸다. 길을 두 번이나 헤맸기 때문. 곳곳에 안내 표지판이 있지만 갈림길도 많아 까딱 잘못하면 길을 헤매기 쉽다. 한 번은 하산객들을 쫓아 내려가다가 정신 차리고 보니 둘레길 표시가 없어 다시 올라왔고, 또 한 번은 둘레길 표시 500m를 앞두고 쉬다가 형제봉 입구로 잘못 들어갔다.

어쩐지 둘레길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험한 바위들과 길이 잔뜩 나와서 ‘도대체 이 길을 달릴 수나 있을까’ 생각하던 찰나에 보니 형제봉 안내판이 등장. 덕분에 높은 바위에 올라 서울 시내를 한 눈에 보고 즐겁게 다시 내려왔다. 이리저리 길을 헤매긴 했지만 그마저도 좋았다. 등산에서는 이렇게 길을 헤매 다른 길로 산을 접하게 되는 걸 ‘알바’ ‘아르바이트’라고 한단다. 주된 등산길이 아닌 다른 길로 빠져서 주업 대신 ‘부업’을 이르는 말이겠지. 우리도 오늘 즐거운 ‘알바’좀 했다. 하하

▲ 바위와 바위 사이를 점프!

▲ 마지막까지 힘내서 달리기. 달릴 때는 힘들지만 달리고 난 후에는 개운하다.

둘레길이 끝나는 지점엔 우체통을 재활용해서 만든 스탬프 보관함이 있다. 북한산 둘레길 3코스 도장을 학준 씨 손등에 빡 찍어줬다. 북한산, 봉산, 앵봉산, 수락, 불암산 등 8개의 코스 여기저기에 28개의 스탬프가 있는데 이 도장을 모두 찍으면 ‘서울둘레길 완주 인증서’를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완주자도 많다고 하니 조만간 도전해 봐야겠다. 명상길을 기분 좋게 달리며 생각했다. 주말마다 친구들과 오르기로 했던 청계산 대신 한 두 개의 구간씩 북한산 둘레길을 걸어봐야겠다고. 그렇게 하나씩 코스를 익히다보면 길을 헤매지 않고도 요리조리 마음껏 달릴 수 있게 되겠지.

한참을 달리다 쉬고 있는데 지나가던 할머니들이 “어이쿠 이 나라의 보배들이네” 라고 하셨다. 보배들이 보배 같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은 마음을 나누는 것이라고 한다. 1박 2일 동안 우리는 같이 장을 보고 음식을 준비해서 맛있게 먹었고, 새벽이슬을 맞아가며 같은 공간에서 잠들었다. 산 공기를 마시고 잠깐 쏟아지는 빗줄기를 피해서 이리저리 열심히 뛰어다니기도 했다. 도심 캠핑이라곤 하지만 전혀 도심 같지 않았던 풍경 속에서 보냈던 이틀.

학준 씨는 이미 머릿속에 캠핑을 가기 위해 뭘 사야하는지 목록을 짜기 시작했고, 그 모든 것들을 사서 캠핑을 다니려면 차를 사야겠다고 결론 내렸다. 차가 필요하지 않은 백패킹을 함께 가면 지금 머릿속에 있는 목록이 어떻게 바뀌게 될까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첫 캠핑을 거제도로, 두 번째 캠핑은 가까운 곳에서 보낸 동생은 가까워서 더 좋았다고 한다. 힘들었지만 힘든 내색 전혀 없이 즐겁게 마음과 시간을 내준 그들과 다음엔 어떤 캠핑을 할지 또 즐겁게 계획해봐야겠다.

▲ ‘북한산 코스 3’이라고 적힌 도장을 친구 손등에 찍어주는 중. 8개의 서울 둘레길 코스 중 8코스가 북한산인데 그 중 명상길과 솔샘길이 세 번째 코스에 속한다. 북한산 둘레길 ‘구간’과 헷갈리지 말 것.

▲ 500m를 앞두고 또 길을 잃다. 형제봉 방향으로 가다보니 조그마한 절이 하나 나왔다. 이 풍경을 매일 아침 기지개를 피며 볼 수 있다니. 부러울 따름이다.
 
▲ 북한산둘레길 종합 안내도

트레일러닝trail running이란 산길을 뜻하는 트레일trail과 러닝running의 합성어로 포장되지 않은 흙길이나 산, 들판, 초원지대 등 자연 그대로 놓인 땅 위를 달리는 것을 말한다. 프랑스 몽블랑과 일본 후지산의 트레일러닝 대회는 이미 유명해서 그 지역을 알리는 데 한 몫을 하고 있다. 특히 산악지형이 많은 우리나라는 ‘트레일러닝’을 즐기기에 꽤 좋은 환경을 갖추었다. 우리나라에서도 5월 10일, 국제 트레일러닝 대회가 열린다. 코스는 50km와 10km로 나누어져 있다. 동두천종합운동장을 출발해서 칠봉산, 천보산, 해룡산, 왕방산, 어등산을 거쳐 다시 원점으로 회귀하는 코스다. 바위나 돌 구간이 거의 없어 달리기 좋은 지형이라고 하니 10km 정도는 초보자도 기분 좋게 달릴 수 있을 것이다.

북한산 둘레길과 두봉이네 캠핑장
북한산 둘레길은 기존에 있던 샛길을 연결하고 다듬어서 북한산 자락을 완만하게 걸을 수 있도록 만든 산책로다. 전체 71.5km로 2010년 9월에 45.7km가 개통, 2011년 6월에 나머지 25.8km 구간이 개통됐다. 사람과 자연이 하나 되어 걷는 둘레길은 물길, 흙길, 숲길과 마음길 등 산책로의 형태에 각각 21가지 테마를 구성한 길이다. 누구나 쉽게 이용할 수 있는 둘레길은 역사와 문화, 생태를 체험할 수 있다.

5구간 ‘명상길’북한산 탐방안내소를 지나 정릉 주차장에서 청수사 입구로 진입하면 ‘명상길 구간’이 시작된다. 명상길 구간은 탐방로와 형제봉 능선 사이를 경유하는 곳으로 수평과 수직의 탐방이 적절히 배합된 둘레길 구간이다. 그동안 군사보호시설에 의해 통제되다가 최근에 개방된 ‘북악(산)하늘길’과 연결되어 있어 백두대간에서 한북정맥으로 이어지는 북한산의 혈류를 잇는 의미 있는 구간이기도 하다. ‘북악하늘길’에서는 1.21 사태의 흔적을 찾아볼 수도 있다.


북한산 두봉이네 캠핑장
미니멀 캠퍼와 백패커들에게 제격

‘두봉이네 캠핑장’은 데크 크기가 작아서 오토캠핑보다는 미니멀 캠핑이나 백패킹을 즐기러 오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총 19개의 데크가 있고 주말엔 예약을 해야 이용할 수 있을 정도로 북적인다.

캠핑장 내에 있는 매점엔 가스, 휴지, 커피, 맥주 등 캠핑을 할 때 꼭 필요한 것들만 판매하고 종량제 봉투는 사이트 당 하나씩 나눠준다. 개수대와 샤워실, 화장실도 깔끔하고 온수와 전기도 사용 가능하다. 4월 중으로 캠핑장 내 ‘카페’도 오픈할 예정이다.

시설 사용료 : 1박 기준 2만 원 (텐트 한 동 기준)
경기 고양시 덕양구 지축동 197
070-4224-2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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