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에 떠나는 무임승차 여행 ‘어떤 날’
봄날에 떠나는 무임승차 여행 ‘어떤 날’
  • 정진하 기자
  • 승인 2015.04.03 16: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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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소설가·아나운서·인디가수 등이 써내려간 여행에세이

“요즘, 아침에 일어나기 죽기보다 싫지?”
“어떻게 아셨어요?”
“다음에 나를 한 번 찾아와.”

▲ 스페인 네르하에서 우연히 본 책 읽는 소녀.

점집이 아니다. 렌즈액을 사러갔던 약국에서 백발이 성성한 약사 할아버지와 나눈 대화다. 약국 문을 나서며 몽롱한 기분에 다시 뒤를 돌아 할아버지의 모습을 확인했다. 헛것이 아니었다. 부끄럽게도 낯선 이에게 무기력한 내 상태를 관통 당했다. 여행기를 읽는다는 것 자체가 피곤한 요즘, 페이지 속 누군가의 걸음을 열심히 뒤쫓다보면 이내 숨이 차오를 것 같다. 그래서 난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의 마음결을 따라 무임승차 여행길에 올랐다. 목적지는 없지만 지도 위 어디쯤 손가락을 짚고 있던 ‘어떤 날’에.

결석 네 번이면 F라는 학칙을 깊이 새기고 출결 사항을 다이어리에 적어가며 필사적으로 F‘만’ 면했던 학창시절. 나의 여행은 10개월간의 무결석 아르바이트로부터 시작됐다. 그리고 파리 음악축제 기간에 맞추겠다고 기말고사가 다 끝나기도 전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뒤죽박죽 모든 행동들이 전도되어 있던 그 때, 나는 저 멀리 도망치고 싶었다. 10시가 넘으면 어김없이 울리는 부모님의 메시지로부터, 한 발은 차갑고 한 발은 뜨거운 듯 불쾌한 기분에 사로잡힌 날들로부터. 그리고 그곳에서 나는 자연스럽게 철저한 이방인이 되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혼자가 된 그곳에서 사람들에게 보낼 엽서를 쓰고 있었다. 떠났지만, 떠나온 곳을 온전히 벗어나지는 못한 모양이다.

‘어떤 날’은 시인, 소설가, 아나운서, 일러스트레이터, 인디가수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우리는 왜 여행을 떠나는가’ ‘아픈 여행’ ‘휴가’ 등의 주제로 써내려간 여행에세이다. 현실도피를 이유로, 낯선 사람이 되고자, 혹은 가슴에 명장면 하나쯤을 간직하기 위해. 모두 다른 그들의 이야기에 길이 아닌 마음이 흘러가는 대로 페이지를 넘겼다. 그리고 이제는 누군가가 몹시 그리워질 때, 능글맞은 봄볕에 철저히 놀아나고 싶을 때, 거창한 핑계를 대지 않고 홀연히 짐을 꾸릴 수 있을 것만 같다. ‘어떤 날’은 교보문고, 예스24, 반디앤루니스, 알라딘 등에서 구입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1년 전 긴 긴 여행을 떠난, 어쩌면 갈 곳을 몰라 거기 어디쯤 멈춰있을지도 모를 사람들을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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