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아내와 젖먹이를 버리고 멋대로 죽어버린 당신에게 이렇게 아무도 모르게 말을 걸고는 합니다”
당신은 선로 한가운데를 전차가 진행하는 방향으로 걷고 있었다고 합니다. 느슨한 커브여서 사람의 모습이 조명등 안으로 들어왔을 때는 이미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거리였답니다. 경적 소리에도, 엄청난 브레이크 소리에도 돌아보지 않고 당신은 치이는 순간까지 똑바로 걷고 있었다고 합니다. 서 있던 승객 여섯 명 정도가 급정차로 튕겨나가 부상을 입었답니다.
▲ ‘환상의 빛 幻の光’ 미야모토 테루 宮本輝 지음, 송태욱 옮김 (2014, 바다출판사) |
길에는 저와 그 남자밖에 없었습니다. 털장갑을 낀 손으로 머리에 감고 있던 머플러를 누르면서 저는 흠뻑 젖은 채 뒤를 쫓아갔습니다. 그때 아주 시커멓던 하늘도 바다도 파도의 물보라도 파도가 넘실거리는 소리도 얼음 같은 눈 조각도 싸악 사라지고 저는 이슥한 밤에 흠뻑 젖은 선로 위의 당신과 둘이서 걷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아무리 힘껏 껴안아도 돌아다봐 주지 않는 뒷모습이었습니다. 뭘 물어도 무슨 말을 해도 절대 돌아보지 않는 뒷모습이었습니다. 피를 나눈 자의 애원하는 소리에도 절대 귀를 기울여주지 않는 뒷모습이었습니다. 아아, 당신은 그냥 죽고 싶었을 뿐이었구나, 이유 같은 것은 전혀 없어, 당신은 그저 죽고 싶었을 뿐야. 그렇게 생각한 순간 저는 뒤를 쫓아가는 것을 포기하고 그 자리에 멈춰 서고 말았습니다. 당신은 순식간에 멀어져갔습니다. (‘환상의 빛’ 21~22쪽, 59~60쪽에서)
저작권자 © 아웃도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