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품은 황금도시 대만 진과스
상처 품은 황금도시 대만 진과스
  • 이두용 차장
  • 승인 2015.03.24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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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일치기 트레킹…아름다운 자연과 특별한 역사 간직한 명소

뜬금없는 여행을 좋아한다. 아무리 꼼꼼하게 계획한 들 인생이 내 맘대로 흐른 적이 있던가. 여행도 마찬가지. 그저 선택한 대로 혹은 주어진 대로 감사하며 즐긴다. 그래서 개인 여행을 떠날 땐 지도를 잘 보지 않는다. 명소를 알아보지 않는 건 물론 우연히 알게 된 장소도 찾아가는 방법을 사전에 찾지 않는 게 원칙이다. 갈 만하면 갈 테고 못 가게 되면 실수로 다다른 곳을 즐기면 되니 말이다. 참말 뜬금없지만, 결국엔 전부 다니긴 했다.

▲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대만 최고의 관광지 주펀.

일제의 상처를 관광지로 바꾼 진과스

대만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처음 가보는 대만. 숙소에 도착해서 처음 대만 지도를 봤다. 호텔에서 근무하는 대만 현지인에게 명소를 추천해달라고 하니 진과스(金瓜石)를 얘기해준다. 진과스는 대만의 수도 타이베이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1시간 30분~2시간 정도 걸리는 외각에 위치한 마을이다. 이곳은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아름다운 산의 능선을 따라 두 개의 마을로 연결돼 있다.

진과스는 2차 대전 당시 일본군 전쟁포로들이 일하던 광산이었다고 한다. 이곳에 철로공사를 하던 중 우연히 금광이 발견되면서 산속에 마을이 생겨나고 금광촌으로 급부상하게 되었다고. 거대한 금광이 연이어 발견되자 일본군은 금광을 찾아 산의 동굴과 계곡 곳곳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금광은 산 여기저기서 끊임없이 발견되었고 능선을 따라 이어진 아래 마을 주펀까지 금광 도시로 이름을 날리게 됐다.

▲ 권제당 건물 꼭대기엔 12m 크기의 관우 좌상이 놓여있다.

▲ 권제당 안쪽 작은 마당엔 화려한 조각상 분수대가 있다.

오랫동안 금광으로 부흥을 이어가던 진관스와 주펀은 1970년대에 들면서 금의 양이 급격히 줄면서 쇠락의 길을 걷게 된다. 결국, 금광의 몰락과 함께 마을은 버려졌고 20년 가까이 녹슨 기계와 낡은 시설만 덩그러니 남아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져갔다.

이곳이 다시 살아나게 된 건 1990년대에 들어 대만 정부가 관광지 개발지역으로 정하면서다. 바다가 보이는 아름다운 산과 계곡, 곳곳에 남아 있는 금광 시대의 흔적들은 외지인을 불러들이기에 충분했다. 이런 아름다운 자연과 특별한 역사 덕분에 진과스와 주펀은 영화 ‘비정성시’를 시작으로 영화와 드라마 촬영지로 인기를 끌었고 순식간에 대만의 명소로 급부상했다.

▲ 지붕 곳곳에는 삼국지와 중국역사, 설화 등이 조각돼 있다.

질문을 기다리기나 한 듯 진과스에 대한 설명을 이어가던 대만 친구의 말을 선뜻 끊기가 어려웠다.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다가 딴짓하는 척 가방을 챙겨 들고 “이제 가도 되지?”라고 말하고는 씨익 웃으며 등을 돌려서 나왔다. 그리고 진과스로 향했다.

삼국지의 명장 관우가 수호하는 마을
진과스는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산속에 위치한 마을이라 버스나 자가용 등 차량을 이용해서만 접근할 수 있다. 그런 이유에 대중교통의 불편이 싫어 택시투어를 이용해 이곳을 찾는 이도 많다. 숙소 인근 타이베이 메인 스테이션으로 향했다. 지하철을 타고 중샤오푸싱역으로 가면 그곳에 진과스로 가는 버스가 있다고 해서다. 원체 시간 계산을 하지 않는 나지만 당일치기로 다녀와야 하니 머릿속으로 대충 코스와 이동 시간을 가늠해봤다. 서둘러야 할 듯싶다.

▲ 능선을 따라 2~3시간 정도의 트레킹 코스를 만들어도 좋겠다.

▲ 권제당에서 숲으로 향하는 길엔 나무데크로 전망대가 마련돼 있다.

버스에 올라 2시간 남짓. 바다가 보이는 마을을 발판삼아 산허리를 돌아올라 주펀에 멈춰 섰다. 주펀만 돌아보려면 이곳에 내려도 좋다. 하지만 진과스를 함께 볼 계획이라면 이곳에서 10여 분 더 안쪽에 위치한 진과스에 내렸다가 나오면서 주펀을 보는 방법을 추천한다. 타이베이로 돌아가려면 어차피 진과스에서 주펀으로 나와야 하기 때문이다.

진과스에 도착했다. 타이베이와 공기가 다르다. 따뜻하다고 해서 기대하고 왔는데 날도 궂고 바람도 쌀쌀맞다. 영 신이 나지는 않는다. 버스 정류장에서 위쪽으로 중국 소설 삼국지에 등장하는 관우를 모신 사당 권제당(勸濟堂)이 있다. 중화권에서는 삼국지의 주인공인 유비, 관우, 장비를 모신 사당을 흔히 볼 수 있는데, 유독 관우는 의와 부를 상징하기도 해서 식당이나 상점은 물론 일반 가정에 관우의 상징물을 두기도 한다고 한다.

▲ 전망대에서 해안까지는 로맨틱로드라는 이름으로 트레킹 코스가 이어져 있다.

권제당 인근에 오르니 향냄새가 진동한다. 현지인들이 많다. 사당으로 들어선 사람들은 향을 집어 불을 붙인다. 그리고 기도하듯 손을 모은 후 관우 상을 향해 몸을 굽혀 묵례를 하거나 절을 했다. 숙연해 진다. 사당 안쪽으로 연결된 계단을 오르니 2층 밖으로 나왔다. 이곳에서 위를 올려다보니 건물 꼭대기에 커다란 관우 좌상이 앉아 있었다. 12m나 되는 이 좌상은 권제당 지붕에 올라앉아 진과스 마을과 바닷가 마을까지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 지역의 수호자인 양 느껴지는 위압감이 대단하다.

금광촌에서 즐기는 힐링 트레킹
관우 좌상에서 우측으로 난 길을 따르면 주차장을 지나면서 길이 넓게 트인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나무데크로 전망대가 마련돼 있었다. 그런데 아래쪽 바다 풍광만큼이나 올려다보이는 산의 경치도 정말 좋다. 정해진 일정이 있는 것도 아닌 터라 진과스에서 트레킹을 즐기기로 했다. 주변을 한 바퀴 돌아보니 전망대에서 바다로 향하는 길과 산으로 향하는 갈림길이 있었다. 걷기에 좋아 일단 마음에 든다.

▲ 진과스와 주펀 인근에서 트레킹을 즐기는 대만 사람들.

산으로 연결된 길 앞에는 차곤산등산보도(茶?山登山步道)라고 쓰인 현판이 있다. 대만까지 와서 무슨 트레킹이냐 싶겠지만 와서 보니 산이 있고, 산이 있으니 오르고 싶은 마음이다. 현판을 지나고 30여 분 야트막한 오르막을 걸었다. 키 큰 나무가 없어서 사방이 걷는 내내 트여 있다. 바다에서 올라오는 바람과 산에서 내려오는 바람이 만나는 곳을 걷는다. 시원하다.

그런데 첫 갈림길을 만나면서 코스가 모호해졌다.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향하면 진과스가 내려다보이는 능선을 따라 정상까지 오를 수 있을 것 같다. 우측 길을 따르면 진과스 황금박물관 근처로 이어지는 것 같다. 다양한 등산코스가 있는 것 같은데 이정표도 없고 코스 안내도조차 없어서 정확히 가늠할 수는 없었다. 어느 정도 올라가다가 길이 명확하지 않아서 되돌아 내려왔다.

▲ 황금박물관은 옛 금광의 갱 입구 옆에 2층짜리 건물로 세워져 있다.

산행 출발지인 전망대에서 아래로는 해안까지 로맨틱로드라는 이름으로 트레킹 코스가 이어져 있다. 코스지도는 없지만 길이 잘 연결돼 있어 길을 잃을 염려는 없어 보인다. 더욱이 이 길은 평일에도 트레킹을 즐기는 대만 현지인이 많아 가고자 하는 길을 묻기에도 좋다. 바닷가 인근에는 이곳이 번성했던 시절을 가늠하게 하는 황금폭포가 있다.

바닷길과 산길을 연결해 코스를 개발하면 트레킹 명소로 더없이 좋을 것 같다. 능선을 따라가면 2~3시간 코스로 주펀까지 이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시간 여유를 두고 코스를 만들어 봐도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가벼운 트레킹을 마치고 황금박물관으로 향했다.

금덩이 보고, 광부도시락 먹고
박물관은 2층 규모로 한 눈에 봐도 그리 크지는 않았다. 1층엔 황금도시로 한창일 때 금을 캐고 추출하던 과정을 조형물과 마네킹 등으로 재현해 전시해놓았다. 당시에 쓰인 도구도 곳곳에 놓여있다. 2층엔 다양한 금 세공품이 전시돼 있었다. 여기저기 반짝이는 금붙이가 있으니 발을 디디는 순간 눈이 휘둥그레진다. 하지만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건 단연 220kg의 순금. 사다리꼴 육면체 모양의 이 금덩이는 금을 좋아하는 중화민족에겐 최고 인기다. 금이 전시된 유리관 양쪽에 작은 구멍을 뚫어 만져볼 수 있게 했는데 언제 와도 줄지어 서 있는 사람을 볼 수 있다. 금을 만지는 사람마다 올라간 입 꼬리가 내려올 줄을 모른다.

▲ 광공식당의 광부도시락은 금광의 광부들이 먹던 도시락을 재현한 메뉴로 인기가 놓다.

▲ 박물관 주변엔 금을 실어 나르던 철로가 말끔하게 복원돼 있었다.

황금박물관은 사실 주변에 볼거리가 더 많다. 당시 금을 캐던 갱과 그곳에서 인근 여기저기로 금을 실어 나르던 철로가 말끔하게 복원돼 있었다. 철로를 따라 10분 정도 따라 걸으면 이곳의 명물인 광공식당(鑛工食堂)에 도착한다. 광부식당이라고도 부르는 이곳은 그 당시 광부들이 먹었던 도시락을 요즘 식단으로 재현해낸 음식점이다. 철제 도시락을 보자기에 싸서 주는데 제공된 도시락과 보자기, 나무젓가락 등은 기념품으로 가져갈 수 있다. 음식 가격에 포함돼 있다.

오랜 기다림 끝에 광부도시락이 나왔다. 하얀 맨 밥 위에 볶음 양념된 채소가 덮이고 그 위에 큼직한 고깃덩이가 구워져서 올라가 있다. 보기만 해도 침이 꼴깍 넘어간다. 맛도 나쁘지 않았다. “밥은요. 이렇게 열어서 고기는 먼저 먹으세요” 종업원이 어설픈 한국어로 설명을 해준다. 한국인이 많이 찾는지 메뉴 하단엔 한글 표기도 있어서 주문도 쉬웠다.

▲ 주펀은 거미줄처럼 이어진 좁은 골목에 늘어선 홍등이 볼거리다.
애니메이션 속 홍등가, 주펀
식사를 하고 밖으로 나오니 비가 쏟아진다. 우산이 없어 잠시 멈칫 하다가 주펀행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으로 뛰었다. 버스를 타고 10여 분, 주펀 입구에 도착했다. 날이 조금씩 어두워지고 있었다. 다행히 비는 멈췄다.

차도 옆으로 난 좁은 골목 앞에 사람들이 그득하다. 주펀으로 향하는 길이다. 이곳은 대만의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곳으로 거미줄처럼 이어진 골목을 따라 빼곡이 늘어선 찻집과 음식점, 가판이 볼거리다.

특히 어둠이 내리는 시간 골목을 밝히는 홍등은 이곳의 최고 명물. 옆 사람과 어깨가 닿을 만큼 좁은 골목 안이 온통 붉은 빛으로 채워지면 주펀을 걷는 사람은 순식간에 영화 속 주인공이 된다. 아름답고 묘한 이곳 홍등의 정취를 토대로 일본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만들어졌다는 건 유명한 일화다.

골목에 들어서니 취두부 냄새가 코를 찌른다. 멀찍이 있는 음식 냄새치곤 꽤나 자극적이다. 걸음을 내딛는 곳마다 다양한 기념품과 먹거리로 넘쳐났다. 활기차 보여서 좋다. 다만 온갖 음식냄새에 시끌벅적한 분위기까지 더해지니 혼이 쏙 빠져나가는 느낌이다.

▲ 어둠이 내린 뒤 홍등으로 빛나는 주펀은 크리스마스트리로 수놓아진 거리를 닮았다.

날이 어두워지면서 상점마다 불을 밝히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거리에 붉은 물결이 일렁인다. 아름답다. 수치루(竪崎路)로 발걸음을 돌렸다. 이곳은 주펀의 매력을 오롯하게 느낄 수 있는 곳으로 주렁주렁 걸린 홍등으로 채워진 급경사길이다.

수치루가 내려다보이는 건너편 찻집에 들어가 차를 한잔 마셨다. 은근한 차향이 들뜬 마음을 가라앉혀준다. 거리는 온통 축제분위기다. 홍등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는 사람이 많다. 어둠이 내려앉은 주펀은 크리스마스트리로 수놓아진 거리를 닮았다. 사람들을 설레게 하고 기쁘게 하니 더욱 그랬다. 다시 비가 한 두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구름을 보니 예사 비가 아니다. 그냥 돌아가기엔 아쉬웠다. 카메라를 꺼내 분주하게 셔터를 눌렀다.

▲ 골목 안쪽 걸음을 내딛는 곳마다 다양한 기념품과 먹거리로 넘쳐났다.

▲ 다양한 음식을 파는 주펀에서도 인기가 남다른 소시지 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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