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앉아있을 건가요? 이토록 아름다운 세상 속에서”
“그렇게 앉아있을 건가요? 이토록 아름다운 세상 속에서”
  • 문나래 기자 | 사진 양계탁 기자
  • 승인 2015.03.17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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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레이싱 더 플래넷 대표 메리가담스

기자는 가끔 이런 사람을 만나는 일이 두렵다. 가슴에 세상을 품고 있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 덩달아 마음이 거대하게 팽창하는 것 같다. 당장이라도 사하라 사막 한 가운데 떨어져 이정표가 없는 무(無)의 길을 달리고 싶다.

사막은 이정표가 없다는 점에서 우리네 인생과 닮은 듯하다. 그 막막함에 잠을 청할 수 없는 밤이 이어진다면 우리는 결국 삶이라는 허허벌판에서 자신만의 지도를 그려 넣어야 할 것이다. 미국 오지마라톤 기획사 레이싱 더 플래넷(Racing the Planet)의 설립자 메리 가담스(Mary K. Gadams)는 지금 자신의 지도 한복판에 와있다. 그녀는 더 많은 세상을 보고, 그곳을 달리고, 새로운 친구를 만들고자 하는 영화 같은 꿈의 지도를 아직도 한창 그려 나가고 있다.

“1999년부터 2002년까지 한국에 머물며 삼성 그룹에서 일했어요. 투자전문가였죠. 그러다 어느 날 문득 도저히 일을 할 수 없는 지경이 오더군요. 제가 원하던 삶이 아니었어요.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 이곳을 떠나지 않으면 세상의 아름다운 곳들을 결코 볼 수 없겠구나.’ 그렇게 해서 설립하게 된 것이 레이싱 더 플래넷(이하 RTP)이에요. 지구상에 남아있는 아름다운 곳들을 두 발로 뛰며 느끼자는 취지로 만들었답니다.”

RTP는 사막 레이스 그랜드슬램(4 Deserts Race) 이벤트를 주최하는 기획사다. 오지를 달리며 인간의 극한을 체험할 수 있는 사막 레이스는 중국 고비, 칠레 아타카마, 이집트 사하라, 남극 일대에서 열린다. 참가자는 6박 7일간 사막의 250km 거리를 달리는데, 배낭에는 그동안 먹을 식량과 침낭, 구급약품 등 약 10kg의 짐을 담아야한다.

“2002년에 인도에서 열렸던 레이스에 참가하고 난 뒤 RTP의 콘셉트를 또렷하게 생각할 수 있었어요. 당시 레이스는 5일간 100mile, 약 160km를 달리는 거였죠. 처음으로 오지를 달리며 아름다운 광경을 마주하고 중간마다 캠핑을 하며 친구를 사귀는 경험을 했어요. 어릴 적부터 꿈꿨던 제 미래의 모습이었답니다. 그 후 홍콩으로 가 RTP 본부를 설립했어요.”

첫 레이스는 2003년 홍콩에서 가까운 고비 사막에서 열었다. 고향은 미국이고 회사 생활은 한국에서 한 그녀가 왜 홍콩으로 가게 됐는지 묻자 이런 대답을 내민다. “그건 정말 개인적인 이유인데요, 2002년에 한국에서 홍콩으로 넘어왔을 때 당시 하이킹을 하다 홍콩남자와 사랑에 빠졌어요. 현재 남편이죠. 그 남자와 홍콩, 그리고 고비 사막에 매료돼 본부를 이곳에 설립하게 됐답니다.”

고비사막 레이스를 시작으로 아타카마, 사하라 등 지역을 확장해가며 지금까지 30개국에서 45번의 행사를 개최했다. 이 안에는 사막 마라톤 뿐만 아니라 다양한 나라에서 열리는 트레일러닝 행사가 포함되는데 올해의 레이스는 한국에서 개최할 예정이다. 매년 나라를 달리하며 열리는 이 행사는 베트남, 나미비아, 호주, 네팔, 요르단 등의 지역에서 개최한 바 있다.

“한국에는 트레일러닝을 하기에 좋은 길이 정말 많아요. 국립공원에서 규제를 하지 않느냐고 묻지만 그곳을 벗어나서 생각할 수도 있어요. 참가자의 입장에서 달리기 좋은, 자연을 느끼기 좋은, 풍광이 좋은 코스를 개발하는 것이 저희의 역할입니다. 일반인은 잘 모르는 그런 길을 찾아내는 거죠.”

오지 마라톤. 단어만 들어도 깊고 뜨거운 사막의 모래와 그곳을 달리는 이들의 땀 내음이 스친다. 행사를 수차례 진행해온 그녀에게 가장 마음에 남는 기억이 무엇이냐고 묻자 그녀는 조용히 하나의 사연을 꺼낸다. “아타카마 사막 레이스를 진행할 때였어요. 그 때 눈이 보이지 않는 한국인 남성이 레이스를 완주했죠. 한 번도 레이스 경험이 없던 그의 아들이 남자를 이끌고 결승선을 통과했어요. 이제껏 해온 수많은 레이스 중에서 가장 가슴 뭉클한 레이스로 기억 속에 남아있답니다.”

그녀는 이번 방한에서 RTP의 사막 마라톤에 참가했던 한국인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오는 5월 10일에 열리는 ‘Korea 50k’ 트레일러닝 대회는 경기도 동두천 왕방산 일원에서 개최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번 행사는 한국 트레일러닝 전문기업 런엑스런(RUNXRUN·대표 유지성)의 주최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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