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찾아 튀어…거제도 노자산과 내도
봄날 찾아 튀어…거제도 노자산과 내도
  • 류정민 기자 | 사진 김해진 기자
  • 승인 2015.03.03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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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R OUTBOUND ①트레킹&캠핑

흰 눈이 소복하게 쌓여있는 서울을 뒤로 하고 남쪽으로 내려갔다. 누구보다 빨리 봄을 맞고 싶어서. 고된 겨울산행으로 발목이 시큰시큰 관절이 삐걱삐걱한 몸 구석구석에 봄날의 기운을 한껏 불어넣어주고 싶었다. 거기다 이번엔 걸스캠핑이다. 여동생과 친한 친구와 함께 떠나는 꽃놀이라니. 상상만 해도 설렜다.

▲ 노자산 정상에서 보이는 다도해를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남쪽의 땅 거제도는 봄이니까, 어디든 타프 하나 달랑 쳐두고 침낭만 챙겨서 비박을 할까도 생각했다. 처음으로 캠핑을 하러 가는 아이(?)들에게 “아마 그동안 서울에서 보던 별은 별도 아닐걸?” 큰소리 좀 뻥뻥 쳐보고, 쏟아지는 별구경하면서 말이다. 거제도는 날이 좋으면 은하수도 볼 수 있는 곳이라고 한다. 역시 럭키 걸들! 다행히 우리가 가는 3일 동안은 구름 한 점 없이 해가 쨍쨍할 예정이다.

그러나 5월의 봄날을 기대하고 갔던 거제도는 동백꽃이 피고 지는 12월의 쌀쌀한 초겨울이었다. 맛있는 도시락이나 싸가는 피크닉 콘셉트로 #힐링캠핑 이런 해시태그를 써보고 싶었다. 거제도에도 아직 봄은 오지 않았다. 아니, 정정한다. 우리가 간 곳은 거제도의 산이었으니 봄의 그림자가 얼씬도 못하는 곳을 스스로 찾아들어갔다고 해야 맞는 말이겠지.

▲ 구조라에서 내도로 가는 배를 타러 가는 길

어서와, 캠핑은 처음이지?

처음엔 그저 신났다. 1박2일 복불복 야외취침을 하는 것 같다고 까르르거리며 다들 들떠 있었다. 서로 바쁜 탓에 집에선 얼굴도 제대로 못 보는 여동생 지원이와 스무 살 재수할 때부터 친하게 지내는 친구 (최)유진이. “거제도로 꽃구경 갈래?” “콜” 단 한 마디로 아이들을 불러 모았다. 출발하기 전 날, 갑자기 친구가 물었다. “우리 정말 밖에서 자?” “당연하지. 캠핑인데 안에서 자겠어?”

친구는 방송작가다. 이 세계(?)를 잘 안다. 추운 겨울 캠핑 사진을 보고는 사진만 밖에서 찍고 잠은 실내에서 자는 줄 알았단다. “캠핑 팀 자존심이 있지. 아무리 추워도 밖에서 자야지” 라고 허세를 잔뜩 부리며 기대 반 두려움 반으로 떨고 있는 친구에게 멋진 캠핑 사진들을 두어 장 보여줬다.

▲ 첫날 밤. 거제자연휴양림
“나 정말 따라가도 되는 거지 언니?” 라고 묻는 동생은 치위생사로 치과에서만 일해서 밖으로 여기저기 다니며 캠핑하는 나를 언제나 부러워했다. 나보다 더 어른 같고 당찬 구석이 있어 손톱만큼도 걱정되지 않았다. 걱정은 바로 나 자신이었다. 캠핑 기자라고는 하지만 항상 누군가를 쫓아다니기만 해서 어찌 보면 막내 기자인 나에게도 첫 캠핑이나 다름없었다.

6시간 남짓 걸려 도착한 거제도는 이미 해가 넘어간 상태. 장을 보고 거제자연휴양림에 짐을 풀었다. 장을 보는 것도 쉽지 않았다. 장바구니에 이것저것 주워 담았다가 다시 빼기가 일쑤. ‘캠핑 가서 요리 해먹기도 쉽지 않은 일이구나’ 새삼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사실 다음날 내도로 들어가 가볍게 트레킹을 할 예정이라 미리 내도로 가서 백패킹을 할까 했지만, 내도를 비롯한 거제도의 주변 섬들은 한려해상국립공원에 속해 있어 취사와 야영이 금지다. 그래서 베이스를 거제자연휴양림으로 결정했다. 저녁은 거제도에서 맛있기로 소문난 ‘백만석’에서 멍게비빔밥을 한 그릇씩 뚝딱 해치운 터라 가볍게 고기만 몇 점 구워먹고 잠자리를 마련했다. 목요일 저녁의 야영장엔 우리뿐이었다.

덕분에 취사장과 화장실이 가까운 아주 좋은 자리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일행에게 헤드랜턴을 나눠주고 서둘러 데크로 짐을 나르고 텐트를 쳤다. 옆에서 쭈뼛쭈뼛 구경만 하던 친구와 동생은 어느새 폴을 끼우고 플라이를 이리저리 맞춰보며 함께 텐트를 치고 있었다. 여자 셋이 잘 거라 1-2인용 텐트인 MSR 허바허바를 두 개 챙겨왔는데 막상 컴컴한 숲속에서 자려니 둘 다 무섭다고 아우성. 결국 텐트 하나에 짐을 몰아넣고 나머지 하나에서 옹기종기 모여 잤다.

다음날 아침, 친구의 눈이 퀭했다. 텐트 밖에서 무언가가 콕콕 찔러 대고 이상한 소리도 들려서 잠을 한 숨도 못 잤단다. “아마 바람소리겠지. 산짐승들이 내려올 때도 있긴 한데, 사람 있으면 잘 안 와. 기분 탓일거야.” 하고 넘겼는데 그 순간 널브러져있는 쓰레기봉투가 눈에 들어온다. 바람에 날렸나? 하고 하나씩 주워 담다보니 어라? 군만두 봉투가 텅 비었네? 바람이 그랬다고 하기엔 쓰레기들이 너무나 멀리, 여기저기 펼쳐져 있었고 먹을 만한 음식물들은 이미 털린 지 오래였다. 상한 군만두라 뜯어놓고 못 먹은 건데 어쩌지, 어떤 동물인지는 몰라도 내내 배가 아팠을 거다.

▲ 내도 입성! 말하지 않아도 신난 모습이 보여요

트레킹하기 좋은 섬, 내도

거제도 곳곳에 많은 섬들이 있지만 대표적으로 외도와 지심도가 있다. 사실 꽃놀이만을 위해서라면 ‘안전빵’으로 동백숲길이 있는 지심도로 가는 게 낫겠지만 사람들에게 조금은 덜 알려진 내도를 가기로 결정했다. 비수기인데다 평일이라 어딜 가든 사람은 없겠지만 무작정 남들이 많이 안 가보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청개구리 심보. 그나마 덜 유명한 곳을 찾아 헤매기.

아이러니하지만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모든 이들이 원하는 유토피아다. 자연 그대로를 그대로 간직한 모습이 가장 아름답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도가 아무도 찾지 않는 섬, 오지는 아니다. 3km정도의 트레킹 코스가 제대로 갖춰져 있고 민박과 펜션 사업도 활발히 진행 중이다.

▲ 대나무 숲과 동백나무 숲 사잇길

▲ 내도 트레킹

탐방로 시작점부터 마을 어귀 선착장까지 트레킹코스가 이어진다. 어린 아이들 손잡고 가기에도 좋은 코스. 그렇다고 빤한 산길도, 재미가 없는 길도 아니다. 각각 다른 개성을 갖고 있는 길들이 계속 튀어 나와 시간가는 줄 모르고 트레킹을 즐길 수 있다. 도착하자마자 사진을 찰칵찰칵. 이 어마어마한 풍경을 사각 프레임 안에 담을 수 없어 아쉬워하며 찍고 또 찍었다.

▲ 내도 연인길에서
▲ 처음으로 셀카봉을 이용해 사진을 찍어봤다. 쉽지 않더군.

가장 좋았던 건 주변이 다 바다라서 트레킹을 하는 중간에도 산과 바다를 동시에 감상할 수 있다는 점. 물이 맑은 건 당연하고 파란 바닷물과 초록빛 바닷물이 뒤섞여 있다. 푸르른 나무들만 모아서 심어놨나 싶을 정도로 색색의 나무들이 있는 곳을 지나니 대나무 가득 죽림이 있고, 그 옆으로 바닥 여기저기에 동백꽃이 잔뜩 떨어져있다.

꽃구경이랍시고 왔는데 우리가 오기도 전에 꽃은 이미 진 건가 실망할 찰나, 동백꽃은 겨울부터 봄까지 계속 피고 지고를 반복한단다. 자존심 강한 꽃이라 지기 전에 스스로 떨어진다고. 3월 중순에는 수선화가 많이 핀다고 하니 책이 나올 때쯤에는 동백꽃과 수선화가 한창이겠다.

▲ 봄날, 대나무 숲

▲ 동백꽃 핀 내도

내도에는 세 개의 전망대가 있는데 세 개의 전망대에서 보는 풍경들도 다 다르다. 내도트레킹을 거의 마친 무렵 등장하는 희망 전망대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오전에 바삐 준비한 도시락들을 꺼내 예쁘게 세팅을 하고 허공에서 손이 엉킬 정도로 허겁지겁 먹었다.

▲ 도시락 냠냠 꿀맛
유부초밥과 주먹밥 그리고 다 식어버린 베이컨채소말이가 어찌나 맛있던지. 사실 베이컨채소말이가 너무 굳어서 휴양림으로 돌아가서 따뜻하게 데워먹자는 이야기도 나왔지만 이게 웬걸, 돌아가는 길 가방을 들었나 싶을 정도로 도시락 통을 텅텅 비웠다.

마을 어귀에 도착할 무렵, 예쁘게 꾸며진 민박집들이 보인다. 지붕 색도 아기자기하고 모양도 제각각이다. 민박집마다 나무로 만들어진 문패가 달려있는데 ‘대나무 민박 이정금 씨 댁. 18살 내도로 시집와서 섬과 함께 평생을 살아온 지킴이 할머니 집’ 이라는 글귀가 적혀있다.

지금 내도에는 열다섯 가구가 산다는데 각자 나름의 이야기가 문패로 붙어 있겠지? 하하 호호 실컷 웃고 떠들다보니 금세 마을 입구에 도착했고 배를 기다리는 시간 동안 바닷가를 거닐며 조개껍데기를 양 손 가득 주워 담았다. 어찌나 특이한 것들이 많던지 바다와 조개껍데기 구경을 하다 하마터면 배를 놓칠 뻔 했다.

▲ 걸스캠핑답게(?) 아침 일찍 일어나 도시락도 쌌다.

오후 5시 15분 마지막 배를 타고 우리는 거제도로 돌아왔다. 4시간 정도 있었지만 금세 친숙해진 기분. “내도로 꽃구경 가자”라고 친구와 동생을 꼬드긴 게 민망할 정도로 상상했던 것만큼 흐드러지게 핀 꽃구경은 하지 못했으나 내도는 기대 이상이었다. 거제도 주변의 수많은 관광지 중에서도 이곳을 선택하길 잘했다고 수십 번 생각했다. 내도에 들어서자마자 적혀있던 글자 그대로. 그야말로 여긴 자연이 품은 섬이다.

▲ 내도를 떠나기 전, 바닷가 조개껍데기 구경 중

다도해의 아름다움을 한 눈에

마지막 날, 새벽 4시에 힘들게 눈 비비며 겨우 일어났다. 노자산에서 일출을 보기 위해서다. 게으른 사람도 여행을 오면 누구보다 부지런해진다는데 캠핑도 여행이라고 다들 새벽부터 부지런을 떨었다. ‘어제 트레킹을 다녀와 바로 산행하기 쉽지 않을 텐데 다들 의외로 체력이 좋구나’ 감탄하고 있을 무렵, 친구가 갈까 말까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무리하지 말고 힘들면 쉬라고 했는데 새벽에 혼자 휴양림에 있는 게 더 무서울 것 같다고 울며 겨자 먹기로 함께 산행하기로 결정. 양치질을 하고 대충 고양이 세수만 한 뒤 출발했다. 일출은 7시 15분쯤, 대략 2시간 정도 걸릴 것 같아 넉넉히 3시간으로 잡고 등산을 시작했다. 전날, 휴양림 김봉수 소장님이 전망대에서 보는 일출이 더 아름답다고 추천해주셔서 등산로는 고민하지 않고 제1등산로로 택했다.

▲ 노자산 정상에서 뜨거운 태양을 맞다.

3분의 1쯤 갔을까, 끝없는 나무계단과 오르막에 헉헉대다가 친구가 하산하겠다고 한다. 혼자 내려 보낼 수 없어 동생 지원이를 함께 내려 보내려고 했으나 동생은 함께 산행을 계속 하고 싶어 해서 할 수 없이 친구 유진이를 설득했다. 사진기자가 어디서 구했는지 유진이 키만 한 나무토막을 주워줘서 스틱 대신 사용하며 한 발자국씩 힘내서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친구는 이 산도 못 오르는 자기의 체력에 화가 난다며 몸이 천근만근, 발에 모래주머니를 찬 것 같다고 했다. 일출을 봐야겠다는 욕심보단 다함께 산을 오르고 추억을 쌓는 게 목적이니까, 힘들 때마다 활동식도 챙겨먹고 천천히 쉬었다가 가기로 했다. 넉넉히 세 시간 잡고 출발하기를 잘했다.

어둑어둑한 탓에 길을 잠깐 잘못 들기도 했지만 1시간 반 만에 전망대에 도착해서 싸온 빵을 먹고 한 숨 돌렸다. 새벽 6시 30분, 여명이 밝아오기도 전이다. 생각보다 전망대에 너무 일찍 도착했다. 3층 정도의 나무로 만들어진 전망대 덕에 해가 뜨면 몽돌해변의 굴곡까지 한 눈에 볼 수 있겠다 싶었지만 난간이 너무 많아 정상으로 향하기로 했다. 노자산 정상으로 가는 길, 불안할 정도로 끝없는 내리막길이 나와 모두를 당황케 했다.

▲ 힘들게 올라온 노자산 정상에서 기념사진 한 컷

걱정했던 대로 오르막도 잔뜩. 노자산 정상에 이르러서야 나뭇가지에 걸려있는 산악회 띠들이 보인다. 전망대까지 가는 길에는 어두워서 안보였던 걸까. 헨젤과 그레텔이 과자를 따라 집을 찾아가듯 우리도 안심하고 띠를 따라갔다.

울긋불긋 하늘에 그라데이션이 시작됐고 금방 밝아졌다. 정상에 도착하자 ‘헉’ 소리가 절로 났다. 많이 가보지는 않았지만 여태 본 산의 정상 중 최고의 풍경. 정상의 바람은 매서웠지만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은 감탄 그 자체였다. 가장 힘들어했던 유진이가 팔짝팔짝 뛰며 오길 잘했다고 정신없이 사진을 찍을 정도였으니 말 다했지.

친구의 소원은 ‘캠핑 가서 라면 끓여먹기’였다. 노자산에서 내려오자마자 늦은 아침으로 라면을 끓여 먹었고, 소원 성취했다고 웃는 친구 덕분에 캠핑 갈 때마다 지겹게 끓여먹는 라면을 감사히 먹을 수 있게 됐다. 캠핑 첫날 밤. 텐트 치는 재미에 맛 들려서 “1박 2일에 나오는 복불복 야외 취침하는 것 같아요. 신난다. 신나” 하던 여동생은 둘째 날 저녁 덜덜 떨면서 “언니 이건 진짜 리얼 캠핑이야. 삼시세끼 + 진짜 사나이야” 라고 말을 바꿨다. 노자산 정상에서의 일출과 쏟아질 듯한 거제도의 별을 25년 살면서 처음 봤단다.

날은 따스했지만 바람은 강했던 거제도에서의 첫 캠핑. “정민아 추웠지만 정말 행복했어” 라고 말해주는 친구와 “하루하루 지나가는 게 아쉬워” 라고 말해준 동생 덕분에 먼 길, 즐겁게 다녀올 수 있었다. 거제도, 첫 캠핑, 성공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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